가즈 나이트 – 121화
지크는 프시케가 신발을 고르면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이상한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를 살짝 치며 다시 생각했다.
‘참나, 나도 많이 오염된 사람이구나.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것 같은데 새 신발을 고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크의 팔을 누군가의 손가락이 살짝 압박해왔다. 프시케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른 모양이었다.
“아, 다 골랐어? 어디 한번….”
황색의 가죽으로 된 평범한 여행용 신발이었다. 지크는 고개를 이리저리 끄덕이며 계산을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옮겼다. 그때였다.
“자, 이때다! 어서 저 여자를…!”
이라고 하는 작은 목소리가 지크의 귀에 들려온 것이었다. 지크는 급히 프시케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앞쪽으로 보낸 후에 신발 가게 주인을 불러서 계산을 했다. 프시케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주위를 이리저리 더 둘러보았다. 주인과 계산을 마친 지크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다시 프시케에게 덮어준 후에 그녀에게 속삭였다.
“… 절대로 나 이외의 남자를 따라가선 안 돼, 알았지? 옷을 사줄 때까지 이 내 옷도 벗지 말고!”
프시케는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크는 그녀와 함께 신발 가게에서 나왔고 그들의 뒷모습을 아깝다는 듯이 쳐다보는 두 남자도 가게의 모퉁이에서 나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우리의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닐 테고…?”
약간 덩치가 큰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키가 작은 남자가 그의 배를 치면서 소리쳤다.
“자자, 우연이겠지 우연! 잔말 말고 어서 뒤따라가자구!”
지크와 프시케가 인파에 싸이기 시작하자, 두 남자는 급히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둘이 다시 멈춘 곳은 옷가게의 모퉁이였다.
“이런! 저기로 들어가면 놓칠지 모른다구! 어쩌지?”
덩치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작은 남자는 머리를 세차게 긁은 뒤에 대답했다.
“안 되겠다, 친구들을 부르자! 그러면 저 키다리에 상관하지 않고 저 여자를 붙잡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부르러 갈 테니, 넌 이곳에서 지키고 있어!”
그들이 멀리서 이렇게 작당을 하고 있을 무렵, 프시케는 사제복을 벗고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축제를 앞두고 입을 새 옷을 고르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지크는 그녀의 옷을 골라주며 한편으로는 정신을 집중하여 주위를 살폈다.
“자아, 이건 어때요 지크?”
지크는 다섯 번째의 옷을 입고 나온 프시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도 마음에 드는 옷이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에, 녹색의 약간은 두꺼운 듯한 윗옷이었다. 지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옷가게의 밖에서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좋아. 여기 돈이 있으니까 계산해. 난 잠시 밖에 나가있을게.”
지크는 밖으로 나가면서 프시케가 입고 있던 사제복을 상점의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가 밖에 나오자마자 본 것은 도시 안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수명의 폭주족들이었다. 지크는 속으로 무명도를 배낭 위에다 끼워두고 온 것을 잠깐 후회했다.
‘젠장, 빨리 끝날 수 있었는데….’
지크가 가게의 문에서 나오자 폭주족의 뒤쪽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어서 여신교 사제를 우리에게 내놔라!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 일을 시끄럽게 하고 싶지는 않겠지!”
매우 큰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안 들린다는 듯 손을 모아 귀에다 갖다 대었다. 소리를 친 키가 작은 남자는 지크가 그렇게 나오자 앞에 있는 폭주족에게 소리쳤다.
“야! 저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폭주족 중 한 명이 자신의 바이크에서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꺼내었다. 병의 마개는 헝겊으로 막혀 있었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가 헝겊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화염병을 만든 폭주족은 그걸 던질까, 말까 하면서 지크에게 소리쳤다.
“이봐! 우린 사고 치고 싶지 않다고! 불로 샤워하고 싶지 않다면 어서 그 여자를 내놔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지크는 다시 한번 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들리지 않는다는 행동을 취해 보였다. 사실, 폭주족들이 화염병에 불을 붙인 것은 처음엔 지크에게 위협만을 주려고 했던 것인데, 지크가 그런 도발적인 행동을 취하자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폭주족은 세차게 화염병을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타악!
화염병을 집어 던진 폭주족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분명 온 힘을 다해서 던진 화염병이 지크의 왼손에 그대로 들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으, 으히익!?”
지크는 놀라지 말라는 듯 오른손 손가락을 그들의 앞에서 저어 보였다. 그리고 오른손을 천천히 화염병에 가까이 가져갔다. 폭주족들은 지크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 봐라, 날이면 날마다 구경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지크가 소리를 치며 화염병을 스스로 터트리자 폭주족들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찔했다. 잠깐 사이에 화염병에서 나온 불꽃은 사그라들었고 멀쩡한 지크는 천천히 폭주족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계단을 한 칸 내려오자 모든 폭주족들이 자신의 바이크를 몰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폭주족들이 바람같이 사라지자 인파 앞에 남은 것은 덩치 큰 남자와 키가 작은 남자, 이 둘뿐이었다.
지크는 그들의 앞으로 다가와 덩치 큰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지크의 키가 훨씬 컸기 때문에 그 남자의 다리는 땅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한 가지 묻지, 친구. 여신교인가 뭔가가 대체 뭐지?”
덩치 큰 남자의 중앙 쪽 바지 색이 약간 짙어지기 시작했고 소변 냄새가 주위에 진동하였다. 덩치 큰 남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대답했다.
“여, 여, 여, 여신교는 말이지요, 여, 여, 여신교는요…!”
그 남자의 말에 의하면, 이 제국에서 세력이 가장 큰 종교의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제복만을 보고 이 정도로 시비를 건 이유는 여신교의 의식이 너무나도 잔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처녀의 심장을 뽑아서 제단에 바치는 의식도 있었고, 민가의 가축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피를 뽑아내는 의식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 좋아, 대답해줘서 고맙군. 그건 그렇고, 저 여자는 내가 신전인가 뭔가에서 구해온 여자니까 사제복을 입은 건 이해해줘. 알았지?”
지크는 남자의 멱살을 놓아주며 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두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에서 도망쳤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수군대며 다시 자신들의 일을 보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지크가 일을 끝냄과 동시에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시케가 옷가게의 안에서 나왔다. 지크는 손짓을 하며 프시케에게 말했다.
“계산했지? 자, 가보자.”
그러나 프시케는 발을 땅에서 떼지 않았다. 지크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 저,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지크 씨가…!”
지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많이 들은 터라(?) 잘 알고 있었다. 지크는 살며시 프시케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도 더 이상 너에게 묻지 않을게. 언젠가 네가 나에게 스스로 말해줄 거라고 난 믿을 테니까. 알았지? 그러니 울지 말아.”
프시케는 지크를 올려다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지크 씨….”
지크는 그녀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의 기대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러지 마세요, 여긴 사람들이 많다고요….”
3장 [바람의 사나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