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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32화


7장 [교황]

지크 일행은 벌써 몇일 동안이나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리카와 세레나가 그만 독감에 걸린 것이었다. 병만큼은 마법으로 치료가 어려운 것이어서 둘은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였고, 지크 일행은 둘의 옆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들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클루토는 열심히 둘에게 약을 먹였고, 프시케는 서투르긴 했지만 둘을 간호원 이상으로 정성껏 대해주었다. 다만….

“어이, 오늘은 점심이 늦게 나오는데?”

지크만이 하는 일 없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그가 가만히 있자, 병상에 누워있던 세레나까지 일어나서 그에게 따지고 나서기 시작했다.

“지크 씨! 리오 씨가 언제 이곳을 지났는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요? 지크 씨라도 빨리 리오 씨를 찾아야….”

지크는 하품을 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함…. 리오에 대한 걱정은 너무 하지 말아요. 저도 그 녀석을 만나는 일이 급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한 가지 생각 못한 것이 있었어요. 리오 녀석은 지름길로 오지 않았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그 녀석은 이곳을 아직 지난 적이 없다 이 말입니다.”

세레나는 깜짝 놀라며 지크에게 다시 물었다.

“예에!? 그렇다면 우리가 리오 씨보다 앞에 있다는 소리인가요?”

지크는 의자에 길게 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몸조리나 잘 하세요. 리카도 잘만 자네요 뭐.”

일행 안에선 지크와 더불어 제일 활발하던 리카가 감기약의 효능 덕분인지 오늘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레나는 한숨을 길게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알았어요.”

그녀가 침대에 다시 눕자 지크는 빙긋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리오를 만나야 서로의 기분도 좋을 거 아니에요. 빨리 나아야 해요 세레나.”

세레나는 이불을 얼굴까지 푹 덮어쓰며 표정을 가렸다. 지크는 계속 싱글거리며 병실을 나섰고 나간 지 오래된 프시케를 찾아 병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어디 있는 거야. 물수건을 빨아 온다면서 보이질 않으니….”

도시 안에선 꽤나 큰 병원 중에 하나인 그 병원을 20분 가까이 돌아다닌 지크는 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프시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옆에 앉아 그녀의 뽀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훗, 힘들긴 힘들었나 보군. 자자, 일어나 일어나.”

프시케는 지크가 살짝살짝 흔들며 깨우자 눈을 비비면서 겨우 깨어났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스르르 쓰러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젠장, 환자가 하나 더 늘은 기분이잖아.”

지크는 투덜거리며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고, 일행이 있는 병실로 돌아가 그녀를 빈 침대에 눕혀 주었다. 이불까지 덮어주었을 때, 클루토가 들어오며 지크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얘기했다.

“저어… 지크, 소문 들었어요? 이 도시의 여신교 추기경이 어떤 괴한에게 혼쭐이 났다는 거 말이에요.”

지크는 그리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클루토는 더더욱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 괴한이 리오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지크는 클루토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되물었다.

“응? 어째서?”

“그게요, 그 괴한은 어떤 주점에서 주인과 그 일당을 혼내주고 추기경을 찾아갔거든요? 그런데, 그 일당을 혼내줄 때 사용한 무기가 놀랍게도 동전 몇 푼뿐이라는 거예요. 동전으로 사람을 굴복시킬 정도의 실력이라면 리오 아니면 지크 정도의 실력자 아닐까요? 그리고 우연치 않게도 그 괴한 역시 붉은 머리였고요.”

지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식 웃었다.

“리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구나. 동전 던지기로 그들을 쓰러뜨린 것 같은데, 그 정도의 기술은 웬만큼 기술을 쌓은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야. 게다가 붉은 머리가 리오 혼자냐? 잔말 말고 약이나 더 얻어와.”

클루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의 말대로 약을 받기 위해 다시 병실을 나섰다. 지크는 살짝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 녀석은 왜 이리 굼떠…? 수도에서 만나자고 했으면서 말이야.”


“뭐라고요!?”

리오는 크리스의 말을 듣고서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다음날이 여신교의 예언 중 하나가 풀어지는 날이라는 것과, 그 예언의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메이린과 히렌에게 확인하려는 듯 물어보았지만, 둘의 대답도 같았다.

“맞아요 리오. 내일이 바로 여신의 말을 들은 성수가 강림하는 날이에요. 그리고, 장소는 바로 이 도시고요. 아무래도 떠나는 건 조금….”

리오는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메이린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예언인가 뭔가엔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했니?”

“으음… 이 예언이 마지막 예언인데요, 이 마지막 예언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고….”

리오는 내용을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소리는 그리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 만약에 그 예언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맞아떨어진다면, 아무리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야. 어쨌든, 오늘 출발하려는 계획은 당분간 미루는 게 좋겠어요 크리스.”

리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안전하지 못한 이 도시 안에서 계속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리오의 머릿속에는 ‘예언’보다는 그 안에 나오는 ‘성수’라는 것이 더욱더 가득 차 있었다.

“그건 그렇고, 여신인가 뭔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이 도시의 여자들을 모두 한 사람씩 만나볼 수는 없고 말이야. 그렇다고 또 따로 떨어져 찾아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게다가, 지명수배라는 점이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만약에 찾아다니다가 제국군에게 걸린다면 골치 아파지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좋아, 성수인지 뭔지 기다려보자구. 모두들 더 쉬어두도록 해.”

리오의 해산 명령과 함께 방엔 리오와 히렌 둘만이 남게 되었다. 아직은 오전이라 별 할 일도 없는 상황이어서 리오는 조용히 침대에 드러누웠다.

“후우… 히렌, 수상한 사람이 노크하면 날 깨워라. 문 함부로 열어주지 말고 말이야. 알았지?”

히렌은 대답한 후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리오의 디바이너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히렌은 그 검을 잡아보았다.

“저, 리오. 이 검 한번 만져봐도 되나요?”

리오는 히렌을 슬쩍 바라보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고개도 끄덕였고 히렌은 디바이너를 천천히 뽑아 올렸다.

“우와, 생각보다 무겁네…?”

양손으로 검을 겨우 들어 올린 히렌은 한번 휘두르려 했으나 그러지는 못하고 겨우 들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금방 지친 기색을 내보였고 결국은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런 이런… 조심해야지 히렌.”

침상에서 일어나 다시 디바이너를 칼집에 넣은 리오는 히렌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후에 다시 누웠다.

“네 체형과 중심이 틀리기 때문에 무거워지는 거야. 네가 나하고 키가 비슷하다면 모를까, 휘두르는 건 어림 없을걸? 그만하고, 네 검이나 꺼내서 자세나 외워라.”

히렌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검을 꺼내었다.

‘상당히 좋은 검인 것 같은데….’

보라색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날… 히렌은 처음 봤을 때부터 사실 디바이너에 매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들어보고 난 뒤에 사용해 보겠다는 마음은 슬쩍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 정도 되는 바스타드 소드도 들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검보다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어른들도 보통은 휘두르기 힘들 거야. 아마도….’

히렌은 머리를 두어 번 흔든 뒤에 정신을 집중하고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방안이라 약간 좁긴 했지만….


지크는 리오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혼자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아까 자신이 말한 대로 리오가 아니면 또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긴 있었다.

“… 아니면 말지 뭐….”

그가 병원에서 안 보일 정도로 사라짐과 동시에, 병원 뒤로 오고 있던 메탈재킷 여섯 대와 제국군 몇 명이 바로 병원에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누군가의 수배장도 들려 있었다.

“이 감전된 얼간이가 이곳으로 들어갔다는 제보를 받았다. 같이 있던 여자의 얼굴도 여기 있으니 확인하도록! 알았나!!”

병사들은 절도 있게 상관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병원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들이 들고 있는 수배장에는 푸른색 머리카락의 여성과 금발에 붉은 재킷을 입고 있는 한 사나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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