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55화
슈렌은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서 정신을 극도로 집중하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존재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존재도 슈렌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완전히 기척을 감추고 사라지고 말았다.
“… 확실한 것 같군. 그렇다면….”
슈렌은 재빨리 대성당 근처에서 벗어나 다시 샤오민의 집으로 향하였다. 모든 병사들이 이유도 없이 사라진 지금 갑자기 결혼식이 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결혼식 이상의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슈렌은 중얼거리며 더더욱 갈 길을 재촉하였다.
지크는 짐의 정원에서 천천히 몸을 풀어보았다. 이틀 동안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려고 하려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근육을 풀어 본 지크는 자신의 허리에 어중간히 매여있는 무명도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허업.”
짧은 기합성과 함께 무명도로 허공을 몇 차례 가른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명도를 넣었다.
“좋아, 몸은 다 회복되었군.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다시 팔을 돌리며 몸을 풀던 지크에게 슈렌이 도착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지크!”
“어? 왜 지금 왔어?”
예상보다 슈렌이 빨리 돌아오자 지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슈렌은 바로 등을 돌리며 지크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어서, 시간이 없어!”
“뭐?”
갑자기 슈렌의 행동이 빨라진 것에 적응을 하지 못한 지크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가 움직이게 된 것은 슈렌이 얼굴을 약간 찡그린 직후였다.
샤오민에게 인사도 없이 집을 떠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였지만 슈렌이 이렇게까지 법석을 치는 것으로 보아 보통일은 아닐 것 같아 지크는 군말 없이 슈렌을 따라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대성당으로 향하였다.
“어? 뭐야 이건?”
지크 역시 성당 근처만이 축제 분위기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를 살펴보던 슈렌은 성당 주위에 사람이 많자 지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너 잠행술로 저 성당까지 들어갈 수 있지?”
몸이 다 회복된 지크에게 있어서 슈렌의 이 질문은 우스운 것이었다. 지크는 피식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쳇, 말이라고 하냐? 나보고 저 안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 이거지? 알았으니까 여기서 조금 기다리고 있어.”
지크는 정신을 집중하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살짝 치고 나서 잔상과 함께 성당 안을 향하였다. 그의 잠행술은 지크와 옷깃을 스친 사람도 그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그와 맞먹거나 약간 약한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있었지만….
사람들 사이를 여유 있게 통과한 지크는 유리창에 무명도로 구멍을 내고서 성당 안으로 여유 있게 들어갔다. 메탈 재킷을 상대하는 것보다 잠행술이 그에겐 훨씬 쉬운 일이었다.
성당 안에 들어선 지크의 눈에 제일 처음 들어온 것은 의자에 앉아 신랑과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하객들이었다.
“흐음… 진짜 결혼식인가? 하지만 제국에서 결혼식 하나 가지고 이렇게 북적댈 일은 없는 걸로 알았는데.”
지크는 성당의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였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지크는 안에 별다른 것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약간 시끄러운 복도로 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틈을 걸었다.
“별것 없는데 이상하군… 에라 모르겠다.”
어깨를 한번 으쓱인 그의 눈에는 신부 대기실이라 쓰여있는 방 푯말이 들어왔다. 지크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아아, 실례합니다.”
지크는 들어서자마자 신부 쪽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리낌 없이 꽤 넓은 방 안을 활보하였다. 방의 구석에선 분홍색의 드레스를 입은 채 열심히 화장을 받고 있는 신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 저 여자가 신부인가 보지? 팔자도 좋아….”
지크는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신부의 얼굴을 한번 보려고 시도를 하였다.
“어이, 잠깐.”
지크는 자신을 부른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돌아보았다. 머리가 천정에 닿을 듯한 거대한 몸집의 사나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크는 손바닥을 펴 보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신부 대기실 밖으로 나섰다.
“봐줬다, 기분 좋은 날 사람을 때리면 안 되겠지. 그럼 나가 보실까?”
지크는 제법 익숙한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며 천천히 성당의 입구로 향하였다.
지크가 안에 들어간 사이에 슈렌은 계속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찾고 있었다.
“… 그도 날 느낀 건가? 내가 실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슈렌은 결국 성당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화사한 옷차림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화제와 오늘의 결혼식으로 소란스러웠다. 슈렌은 시끄러운 것이 싫었으나 임무 중에는 그런 것도 들리지 않았다.
“….”
사람들을 살펴보던 슈렌의 시선엔,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한 여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검은색 가죽에 부드러운 느낌의 흰색 털이 붙어있는 코트를 입은 30대 초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슈렌과 그 수수께끼 여성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여자 쪽에서 먼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슈렌의 미간엔 노기가 어린 주름이 잡혔다.
“당신이로군.”
슈렌은 짧게 내뱉었다.
“후후훗, 당신도 날 찾고 있었나요? 나도 당신을 찾았답니다. 리오 스나이퍼란 사나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닌가요?”
둘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전음이었다.
슈렌은 말없이 헝겊에 싸여있는 그룬가르드에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본 수수께끼의 여인은 검붉은색을 띠고 있는 입술을 가르며 더욱 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간단한 대답이로군요. 마음에 들었어요… 그럼, 싸우기 전에 예의부터 갖출까요? 제 이름은 ‘바만다라’. 이제는 전멸된 육마왕의 마지막 인물이랍니다.”
슈렌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룬가르드를 감싸고 있는 헝겊을 풀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슈렌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당신은요? 미남 씨.”
슈렌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슈리메이어 반 스나이퍼- 간단히 슈렌이라고 하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슈렌의 몸에선 강력한 기염이 뿜어졌고 주위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은 그 놀라운 광경에 숨을 죽였다.
바만다라는 약간 놀랐다는 듯한 얼굴로 감탄이 섞인 말을 했다.
“호오… 굉장하군요. 그리 강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말로만 듣던 증폭력인가요? 운이 좋군요, 자신의 속성을 이용하여 능력을 끌어 올리는 그 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말이에요, 호호홋.”
바만다라는 얘기하는 도중에 자신의 코트 단추를 풀었다. 생각보다 풍만했다. 그러나 그녀의 육체보다 먼저 슈렌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작은 펜던트였다.
“아… 이 펜던트가 맘에 드시나 보군요. 하지만 줄 수는 없어요. 제 소중한 친구의 유물이니 말이에요. 자… 이제 갑니다.”
바만다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싶더니, 그녀의 앞엔 어느새 중형의 소환진으로 보이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슈렌은 속으로 움찔했다. 이렇게 소환진을 빠르게 그리는 소환술사는 처음이어서였다.
“지옥의 업화를 다스리는 정령이여, 나의 명령을 받아 적을 물리치시오! 소환! [이프리트]!!”
“이프리트!?”
슈렌은 의아스럽다는 말을 토해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의 속성을 가진 자신의 상대로 불의 정령인 이프리트를 꺼낸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이상하겠지요. 그러나 상대해보시면 알 겁니다 슈렌 씨.”
그녀의 말과 함께 거대한 불덩이를 휘감은 사나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불의 정령 이프리트가 소환진에서 실체화하여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프리트는 뭐라 괴성을 지르며 슈렌에게 달려들었다.
“으음…!”
짧은 기합성과 함께 슈렌은 그룬가르드에 자신의 기를 주입하였다. 그리고 달려드는 이프리트에게 창을 빠른 속도로 두 번 휘둘렀다. 그의 기술, 더블 하켄이었다.
“쿠오오오옷!!”
몸이 네 조각으로 나뉘어진 이프리트는 잠시 거대한 불덩이로 변했다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며 역으로 슈렌을 공격하였다. 슈렌은 아차 하며 이프리트의 공격을 피하였다.
“… 머리가 좋군 바만다라.”
바만다라는 처음부터 슈렌을 죽이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 때문에 그를 붙잡아 놓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에 제격인 것은 슈렌의 화계 공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이프리트가 제격이었다.
슈렌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불덩어리, 이프리트를 바라보며 거의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통의 전사들에겐 이프리트란 드래곤 이상으로 공포를 주는 강력한 존재이다. 고위 정령이라 그런 것은 당연하지만 이 슈렌이란 사나이는 다르게 느껴졌다.
“… 그러나 착각했어.”
지크가 성당에서 나오자마자 본 것은 거대한 불덩어리-이프리트와 슈렌의 싸움이었다. 그제서야 지크는 일이 보통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거칠게 내뱉던 지크는 자신의 옆에 쓰여있는 푯말을 보고서 보통 일이 아니라는 강력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프, 프시케!? 설마…!!”
이프리트는 소환이나 계약에 의해서만 지상에 실체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뜻 없이 화염계 성위(聖位)의 위치에 있는 슈렌과 붙을 리는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와 프시케가 처음 만난 여신교의 성전이 떠올려졌다.
“괴물 벽화… 얼음… 그렇다면 환수신(幻獸神)!?”
그는 이 공간에 파견되기 직전에 주신에게 들었던 환수신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소환사가 환수를 꺼내기 위해 소환진을 만들고 마력을 사용하여 공간을 여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소환되는 소환수의 급수에 따라서 마력의 소비도 달라진다. 그러나 환수신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 문제없이 공간의 문을 열 수 있었고 어떠한 환수도 단수가 아닌 복수로 소환시킬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이 가능하다.
그 환수신이 바로 프시케일 확률은 100%에 가까웠다. 지크는 다시 성당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쳤다.
“제기랄, 보통 일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