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69화
함장들은 일그러진 표정만을 짓고 있다가 갑자기 회심의 미소를 띄우기 시작했다. 상황판에 출력된 마력의 수치가 현저하게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땐 높게, 어쩔 땐 낮게… 그런 것을 반복하고 있자 빨리 가이라스 수도를 폭격해 박살낸다면 요새가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좋아, 요새 하단 포문 전 개방! 단숨에 쓸어버리는 거다!”
리오는 요새 하단의 포문 덮개가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하자 속으로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다. 바이나의 힘을 비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직접 메가 프레아로 날려 버렸다면 이런 긴박한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게 뻔해서였다.
“이, 이봐! 이거 도저히 못 참겠어!”
바이나는 마법진에 손을 댄 채 진땀을 흘리며 요새 하나를 계속 조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력의 변화가 너무나 급격했기 때문이었다. 바이나의 마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쏜다면 파괴력의 역류 현상이 일어나 그야말로 ‘끝장’이 되기 때문이다.
‘젠장…!’
리오는 속으로 애만 태울 뿐이었다. 괜히 겉으로 드러냈다간 바이나의 정신이 흩어져 위험해지는 까닭이었다.
“어, 언제 쏘면 되는 건지 말 좀 해줘!”
바이나가 당황하기 시작하자 리오 역시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런 둘의 앞에 무인 요격기들을 모두 부순 지크가 우뚝 섰다.
“이봐! 계속 그러고만 있을 거야 빨간 언니?”
지크가 예전처럼 자신을 부르자 바이나는 흥분하여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지크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마법진인가 뭔가는 리오가 쓰는 게 아니란 말이야! 이제 네 거야, 네가 쓰는 거라고! 리오는 뒤에서 네가 폭풍에 날아가지 않게 받쳐주는 것뿐이니 네가 쏘고 싶을 때 쏴!”
지크가 말하고 있는 시간에도 요새의 대열은 서서히 움직여 결국엔 대열의 중앙과 가이라스 왕성은 일치하게 되었다.
제국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최적의 폭격 위치였다.
가이라스 왕성 안의 모든 사람들은 지하에 만들어준 대피 시설로 피한 상태였다. 대피 시설이라고는 했지만 그저 대단위 폭풍이나 회오리바람, 태풍 등을 막을 수 있는 정도였다. 열 대의 요새에서 뿜어내는 고폭(高爆) 엘리마이트 빔을 막기에 지면은 종이장일 뿐이었다.
요새의 함장들은 아까와는 달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폭격 명령을 내리기 위한 준비였다.
“후우, 괜한 걱정을 했군. 이제 1차 임무는 완수다, 하하하….”
조준 따윈 필요 없다. 무조건 지상을 향해 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서! 이대로 너의 국민들이 재로 변하는 걸 보기만 할 거야!”
지크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래도 바이나는 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모, 못하겠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바이나의 거친 입에서 이런 약한 말이 나오자 지크는 이를 갈며 크게 소리쳤다.
“웃기지마! 기적이란 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거야!”
바이나의 뒤에서 묵묵히 서있던 리오도 지크의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을 바라는 희망과, 기적을 믿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기적을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넌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난 생각해. 적어도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라면….”
그 말들을 들은 바이나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눈엔 왕성을 향해 발사되기 시작하는 엘리마이트 빔의 직선이 들어왔다.
“… 헉!?”
상황판을 보고 있던 한 병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사 명령을 내린 자신들의 함장이 여유만만하게 앉아있는 지령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병사는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태양의 광도를 뛰어넘은 푸른색의 빛이 그 병사의 신체를 원자 단위로 분해 시켰기 때문이었다.
쿠오오오오오-
대기를, 아니 공간을 구길 정도의 거대한 에너지의 흔적이 가이라스 왕성의 하늘을 뒤덮었다. 메가 프레아를 정면으로 맞은 대열 중앙의 요새를 중심으로 열 대의 요새가 연쇄 폭발과 함께 파편 한 조각도 없이 사라져가는 모습은 일생 동안 보기 힘든 진정한 장관이었다.
물론 가이라스 왕성에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간이 일그러짐에 따라 생긴 충격파가 왕성을 덮쳤고 모든 건물의 3층 이상은 그 경이적인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건 수도 주민들이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이나의 아버지, 선왕이 만든 대피용 지하 시설의 덕분이었다.
리오와 지크는 기절한 바이나를 뛰어나온 병사들에게 맡긴 후 곧바로 페가수스에 올라탔다. 종결 지어야 할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이제 가이라스 왕국과도 이별이군. 꽤 재미있었던 장소였는데….”
지크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쉬운 건 리오도 동감인 듯 쓸쓸한 미소만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자, 가보자고.”
리오와 지크를 태운 두 마리의 페가수스는 높은 울음소리와 함께 최고의 속도로 동쪽을 향해 날았다.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말스 왕국을 향해.
18장 [전개]
세 시간이 지났다.
말스 왕국 내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과 외국에서 지원하러 온 마법사들은 서로 교대를 해가며 성 외곽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메탈 재킷들과 혈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처음의 두 시간은 무적의 말스 왕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방어력을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무인 요격기와 지원하러 나온 몇 대의 메탈 아머에 의해 점점 밀리기 시작하였다.
“힘을 내시오 모두들!”
모든 마법사들을 응원하는 이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 바로 몇 주 전에 유폐에서 풀려난 말스 왕국 최대의 마도사 라가즈였다. 말스 왕국이 영주들의 손에 들어감과 동시에 그는 변방의 한 작은 집에 유폐를 당하였었다. 물론 그의 능력으로 보아 빠져나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으나 말스 국왕의 목숨이 달린 일이어서 그러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도중 돌아온 태라트 황태자와 슈렌의 활약에 의해 왕국은 다시 회생되었고 그의 유폐도 자동적으로 풀리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말스 국왕의 특명에 따라 마법사로서 이름이 높은 사람들만을 찾아내어 왕국으로 데려오는 것에 힘을 쏟았고 결국 모은 마도사 부대로 말스 왕국 수도의 외곽을 지키는 중이었다.
“마력을 아끼시오! 너무 무리하면 요새를 공격할 수단이 없어지니 말이오!”
그의 지휘에 따라 마법사들은 무인 요격기들과 메탈 아머들을 효율적으로 차례차례 부수어나갔고 1차로 공격해온 제국의 지상군을 괴멸 직전까지 몰 수 있었다. 물리력만이 있었던 가이라스 왕국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 꽤나 버티는군, 과연 과학력과 마력의 싸움은 대단해.”
황제는 교황과 술을 같이하며 상황판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조금 후, 제1 지상군의 괴멸을 표시하는 문자가 상황판에 점멸하자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카이저 아머에 장치된 교신기를 통해 전 제국군에게 전달했다.
“… 전력을 투입한다. 우르즈 로하가스를 제외한 전 요새, 말스 왕국의 수도로 이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