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54화
도연은 결코 편한 인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곰을 유인하고 곧바로 주군에게 되돌아가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주군을 만난 뒤 또 뜀박질을 해야 했으니, 어찌 힘이 들지 않겠는가. 옆구리가 끊어질 듯 아파 왔지만 도연은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도연이 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 동천은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히죽거렸다. 별 의미 없는 웃음이었다.
“여기에서 쉰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도연의 물음에 동천은 눈을 떴다.
“어디 다른 곳에 쉴 곳이라도 있냐?”
“모르겠습니다.”
동천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럼, 개소리 말고 망이나 봐. 짜샤.”
“예.”
도연은 주군의 명에 따라 묵묵히 경계를 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숨결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렇게 일다경이 지났을 즈음 누워서 편히 쉬고 있던 동천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동천은 도연이 불렀음에도 도연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도연과 반대된 쪽을 바라보던 동천은 서서히 뒤로 물러서더니 도연에게 소리치며 내달렸다.
“튀어!”
그와 동시에 숲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고 도연은 생각했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이 도연의 중추 신경을 자극했다. 마음은 주군을 따라가고 있었으나 다리는 뿌리를 박은 듯 땅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도연이 몸을 움직인 것은 다시 돌아온 동천이 자신의 뒷머리를 후려갈겼을 때였다.
“이 새꺄! 너 죽고 싶어? 빨리 따라와 임마!”
그제야 도연의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었다. 뭐가 뭔지 잘 몰랐으나 도연이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땐 달려가는 동천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호랑이입니까?”
동천은 다리에 힘을 가하며 말했다.
“보면 몰라? 으으. 그 노랭이 새끼. 세 놈이나 줬으면 됐지 뭐가 더 부족해서 나를 쫓아온 거야?”
주군의 몸이 눈에 띄게 빨라지는 바람에 도연도 이를 악물고 따라가야만 했다. 그는 힐끔 돌아보았다. 쫓아오는 것은 없었다.
“주군! 포기한 것 같습니다!”
뒤에서 도연이 그렇게 말했지만 동천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도연과 동천과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곰에게 얻어맞아 다친 놈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다급해진 도연은 더욱 크게 소릴 질렀다.
“주군!!”
마침내 동천이 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그 호랑이가 포기한 것 같습니다!”
동천은 신형을 바로 멈추었다.
“헉헉, 정말이야?”
십여 장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므로 도연은 한참을 달려서야 동천에게 당도할 수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도연의 대답에 동천은 버럭 화를 냈다.
“이 씨필아! 그럼, 확실하지 않다는 소리잖아!”
동천의 다그침에 도연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동천의 얼굴에는 짜증에 왕짜증이 섞인 티가 팍팍 났다.
“죄송이고 뭐고, 나 목마르니까 물 좀 줘봐.”
도연은 얼른 물통을 찾았다. 그런데 옆구리에 갔던 도연의 손이 무심하게도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크게 뜬 도연은 혹시나 해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했던 만큼 역시나였다.
“야. 빨리 달라니까 뭐 하는 짓이야.”
동천이 마른 입술에 애써 침을 축이면서 재촉을 했지만 도연에게는 물통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마도 흘린 것 같습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동천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도연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뭐야? 없어? 이런 병신새끼!”
도연은 힘없이 자빠져 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동천이 후속타를 먹이러 발을 든 순간, 동천의 머리가 찌끈! 거렸다.
“욱?”
그와 동시에 머리 위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도연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정면으로 내려오는 그 물체를 볼 수 있었다.
“피하십쇼!”
도연은 누워있는 자세에서 다리로 동천의 배를 있는 힘껏 갈겼다.
퍼-억!
“커억?”
동천이 주르륵 밀려났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날카롭고 강인한 발톱이 동천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옆으로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도연은 급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검은 얼룩의 맹수를 마주보았다. 표범이었다. 그러나 동천과 도연은 표범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저건 뭐야?”
동천이 아픔도 잊고 도연에게 물었지만 위에서 말해주었듯 도연도 표범을 본 적이 없었다. 도연은 대답해줄 상황이 아니기에 미미하게 고개만 저었다. 도연은 어느새 떨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아까 흑곰에게 가졌던 것이 위압감이었다면 눈앞의 맹수에게 가지는 느낌은 공포였다. 몸의 떨림을 막아보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떨림이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크르르릉.”
표범이 길고 새하얀 이를 상대에게 한껏 비추어주었다. 도연은 하마트면 검을 놓칠 뻔했다. 자신의 떨림이 싫었던 듯 도연도 표범에게 작은 이를 보여주며 칼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태<太>의 기본 자세였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도연의 단전 부근에서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치고 올라왔다. 아직 내공의 운용이 서툴렀지만 바른 자세가 나오자 몸이 알아서 내공을 끌어올려 준 것이었다. 순간, 거짓말처럼 도연의 떨림이 멈추어버렸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한 도연은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우우웅, 소리와 함께 그의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표범은 달라진 상대의 기세를 느끼고는 흠칫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상대의 길다란 발톱을 예의 주시했다. 표범은 그것을 피하면 곧바로 상대의 목을 물어뜯으리라 생각했다. 서로들 그렇게 탐색하고 있을 때, 어느새 멀리 도망가 있던 동천은 도연이 꼼짝 못하는 걸 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제길! 내가 팔만 성했어도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진심이 섞인 헛소리였지만 그래도 도와줄 마음은 있는 것 같았다. 하기사 이런 무서운 곳에 자신만 홀로 남게 된다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그래도 도연이 있어서 무서워도 오기로 뻐팅길 수 있었는데 만약에 죽어버리면 동천도 얼마 못 갈 것이 뻔했다. 동천은 급한 김에 날카롭고 뾰족한 돌맹이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그 돌에 전 내공을 불어넣고 표범에게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뒈져라!”
쉬익-! 퍽!
“캬아-앙!”
고통의 포효를 한 표범은 약간 떠올랐다가 뒹굴며 쓰러졌다. 도연은 깜짝 놀라 돌이 날아온 쪽을 봤다가 표범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돌맹이를 맞은 표범의 뱃가죽은 놀랍게도 뚫려 있었다. 튀어나온 창자가 피를 동반하며 순식간에 주위를 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즉사한 것 같았다.
“…….”
“…….”
서로들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지만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경박한 웃음소리였다.
“히, 히히. 이히히히! 봤어? 봤어?”
“봤습니다.”
동천은 재빨리 달려와 흥분된 얼굴로 늘어져 있는 표범을 가리켰다.
“그래그래!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니까?”
“알고 있습니다.”
신이 난 동천은 표범에게 다가가서 발로 밟아댔다.
“씹쌔꺄! 니가 감히 위대한 동천님을 해코지할려고 해? 죽어! 죽어!”
퍽퍽퍽퍽!
뚫려진 배 부근을 밟아서 그런지 피가 쫙쫙 튀겼다. 신나게 밟아대던 동천은 바지에 피가 튀긴다는 것을 깨닫고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이런 씨! 이게 얼마 짜린데! 야! 그 칼 줘봐!”
도연은 군말 없이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건네주었다. 냉큼 받아든 동천은 표범의 여기저기를 푹푹 쑤셔댔다. 날이 예리했고 내공이 뒷받침되어 동천은 한 손으로도 잘도 휘둘렀다. 한참을 쑤셔서 거의 난도질을 해댄 동천은 어느 정도 만족을 했는지 도연에게 피묻은 검을 돌려주었다.
“후아! 힘을 좀 썼더니 배가 고프네? 도연아. 가지고 온 밥이나 먹자.”
도연은 밥을 먹자는 소리에 눈쌀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주군이 없는 것만 달라고 하니 해줄 말은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없는데요.”
동천은 좋았던 기분이 홀라당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뭐? 또 없어? 이씨! 내가 세 개나 등분해서 나누어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 정도도 안 챙겨왔단 말이야?”
“면목없습니다.”
지가 소연의 말을 듣고 약초꾼들에게 삼등분 해주었으면서 괜히 도연을 탓했다.
“당연하지 짜식아! 면목이 있으면 그게 사람이야? 너, 내가 배고픈 걸 얼매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지? 하다못해 저기 죽어 자빠진 점박이 새끼도 먹고 살겠다고 나한테 덤볐는… 가만?”
무슨 생각에선지 동천은 표범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리고는 표범의 시체를 위 아래로 감정하듯 살펴보았다.
“흐음.”
동천은 자신의 뇌리를 가동시켜 표범의 가죽을 한 번 벗겨보았다. 그런 대로 괜찮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토막을 내 보았다. 그러자 여느 고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친김에 아예 구워보니 구수한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것 같았다. 꿀떡, 침을 삼킨 동천은 결론을 내렸다.
“야. 이거 먹어도 되겠지?”
도연은 표범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순간 동천의 입 꼬리가 살짝 말아 올려졌다.
“히히!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