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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57화


동천보다는 못해도 그 나름대로 진이 빠졌던 도연은 주저앉은 모습으로 숨을 고르다 자빠져서 헥헥거리고 있는 동천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동천은 번개처럼 일어나 도연의 멱살을 잡고, 있는 힘껏 흔들어댔다.

“이, 씹쌔끼! 너 늪지에서도 그렇고 나 죽이려고 작정한 거지? 그렇지! 뭐? 빛이 보여? 내가 이 나이에 극락가서 부처하고 히히덕거릴 일 있냐? 이눔의 시끼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길이라고 가르치고 지랄이야! 너 어디 죽어볼래?”

할 말이 없었는지 도연은 상체가 흔들리고 고개가 아래위로 까딱이는 상황에서도 말이 없었다. 그러자 제풀에 지친 동천은 도연을 거칠게 밀어내고 쉴 겸해서 운기조식을 취했다.

동천에게 독기가 뿜어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도연은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나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투른 심법이지만 도연도 운기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럴 때에는 한 사람이 다 끝날 때까지 호위를 해주고 다음 사람이 번갈아 운기조식을 취해야 했지만 초심자였던 도연은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다.

시간이 흐른 후, 도연은 사령공능대법(四靈攻能大法)을 거두었다. 동천에게 가보니 동천은 그때까지도 운기조식에 취해있었다.

“후우…”

도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길이 막막한 것이었다. 도연은 새삼 암흑마교의 광활한 영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산 한 자락이 이렇게 끝이 없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조금 돌아다니다가 산으로 내려가면 주위를 지키는 무사들이라도 만날 줄 알았다. 그러나 벌써 산 두어 개를 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무사들은커녕, 무사 비슷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동천이 운기조식을 막 끝마쳤다.

“으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으잉? 새끼손톱은 붙기만 하고 아직 낫지는 않았네? 이게 뭐야?”

새끼손톱 가지고 뭐라 하는 걸 보니 동천은 아마도 한 번의 운기조식으로 그 손톱이 나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나마 쩍 갈라졌던 손톱이 보기 좋게 붙은 것만 해도 다행일 텐데 동천은 만족하지 못했다.

문득, 배가 고파짐을 느꼈다.

“야, 남은 고기 있냐?”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본 도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계획성이란 게 없었던 동천은 도연이 건네주는 주머니를 풀어서 아드득 씹어먹으며 말했다.

“됐어 임마. 우선 먹고 보는 거야. 냠얌.”

마지막으로 남은 고기를 먹고, 산을 빠져나가기 위해 반나절 이상을 걸어가던 동천은 지치고 힘든 와중에서도 이상한 점을 느끼고 멈추었다. 도연은 피곤한 눈으로 동천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동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이 길 말야. 혹시, 우리가 아까 전에 이곳을 지나치지 않았어?”

도연은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살폈다. 듣고 보니, 지금 이곳이 눈에 익었다.

“음.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대답을 못해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말에 동조를 했으므로 동천은 봐주기로 했다.

“도연아. 그러지 말고, 우리 한번 실험을 해볼까?”

잘 이해가 되질 않는 듯 도연의 눈썹이 가지런히 모였다.

“실험이요?”

“그래. 실험. 저기 약간 솟아오른 바위가 보이지? 거기다가 줄을 그어서 표시를 해놓는 거야. 어때?”

그제야 한곳으로 모여있던 도연의 눈썹이 넓게 펴졌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히히! 그렇지? 우리 어서 해보자.”

동천은 신이 나서 도연의 검으로 바위 한복판에 긴 사선을 그었다. 내공을 끌어올려 그런지 자국이 깊었다. 동천은 만족의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가보자.”

과연 또 똑같은 길로 들어서는지 자못 궁금했던 동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같은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낯익은 풍경에 후다닥 달려온 동천은 자신이 그어놓은 바위로 다가가 좋아라 웃었다.

“우히히히! 어때! 내 말이 맞지? 아아, 내 머리는 역시 타고났다니까?”

철이 없는 주군은 좋아라 웃어대고 있었으나 당연히 도연은 그렇지가 못했다.

‘큰일이다.’

그렇다. 큰일이었다. 안 그래도 산중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로에 빠진 듯 같은 곳을 반복해서 맴돌고 있으니 어찌 큰일이 아니겠는가.

아직까지도 사태 파악을 못하고 웃어 제끼던 동천은 도연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자신도 돌연 얼굴을 굳혔다.

“야, 넌 내가 뛰어난 게 그렇게 못 마땅하냐?”

도연은 당연히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거라면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헉?”

순간 동천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꼈다. 그제야 동천의 대가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천은 눈알을 좌우로 돌려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 갇히게 되, 되었다는 소리야?”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씨발! 그럴 리 없어! 야! 따라 와!”

동천은 이성을 잃었는지 광분하며 숲을 헤치며 들어갔다. 아마, 길이 아닌 곳으로 간다면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절대로 그럴 리 없어. 절대로! 자, 어떠냐?”

동천은 무작정 걸어간 다음에 짠! 하고, 길가로 나왔다. 그러자 길게 베인 자국의 바위가 하하호호 웃으며 동천을 반겨주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으악! 이건 뭐가 잘못된 걸 꺼야!”

화가 나서 무엇이든 때리고 싶었는지 이리 획! 저리 획!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던 동천은 바위 옆에 자리한 어른 키만 한 나무를 발견하곤 애꿋은 나무를 걷어찼다.

“죽어! 죽어! 이새꺄! 그만큼 살았으면 충분하지? 죽어!”

그때 뒤에서 도연이 황당해하는 음성으로 동천을 불렀다.

“주, 주군.”

“왜!!”

동천은 지한테 화풀이를 안 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일 텐데, 이 상황에서 자신을 부른 용감한 도연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어느 한곳을 보고 있었던 도연은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경치가 바뀌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도연은 자신이 보고 있는 쪽으로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길 보십시오. 갑자기 저곳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인가(人家)가 나타났습니다.”

‘인가’라는 소리에 동천의 고개가 눈부신 속도로 이리저리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어디? 어디야?”

도연은 친절하게도 동천의 고개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게끔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아까까지만 해도 숲이 무성했던 자리였는데 지금 보니, 정말로 조그마한 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야호! 됐어! 도연아, 우린 이제 살았다구!”

동천과 마주 보며 웃던 도연은 문득, 다른 곳에 생각이 미쳤다.

“그런데 어떻게 저 인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요?”

듣고 보니 그랬다.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잠시 머리를 굴려 본 동천은 설마 하는 눈으로 자신이 발로 후려쳤던 나무를 바라보았다.

“너냐?”

그러나 나무가 대답해 줄 리 없었다. 신중하게 생각한 동천은 그 나무를 한 대 후려치고 재빨리 인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엇? 사, 사라졌잖아?”

동천과 도연은 서로 신기한 눈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제야 뭐가 뭔지 알 수 있었던 동천은 도연에게 아까 그곳을 잘 보라고 시킨 뒤, 그 집이 다시 나타나면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걷어찼건만 인가가 나타날 생각을 안 했다. 그래서 괜히 건드렸다고 내심 후회도 해보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라 다리에 쥐가 나도록 나무를 쳐대던 동천은 마침내 도연이 그만하라는 소리에 급히 발을 멈추었다.

“헉헉, 됐어? 보여?”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입니다.”

“그래? 히히히. 어서 가보자. 아마도 저기는 어느 고인이 살고 있는 곳일 게 분명하다구.”

방금 전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동천은 입을 함지박만큼 벌려가며 혹여, 다시 사라질지 모르는 그곳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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