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96화
또르르르.
눈물이 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새삼 기운이 솟는다며 웃어주시던 어머니가 자고 일어나니 돌아가신 것이다. 모두들 울고 있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말이다.
“엄마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참는 것일까? 눈앞이 흐려서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울지 말아라. 그리고 인정해라.”
뭘? 뭘 인정하라는 말이죠? 엄마의 죽음? 아버지인 당신의 무관심? 일년 전만 해도 아버지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어머니와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었어요. 무엇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죠? 무엇이 아버지를 그렇게 차갑게 만드신 거죠? 무공?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내일 다시 오마.”
…오지 말아요. 당신은 아버지의 자격이 없어요. 오지 말아요.
쏴아아아!
그날 비가 내렸다. 누구의 눈물일까? 어머니? 아니면 무공에 미친 아버지? 아버지는 일년 전 가문 비전의 중대한 결점을 인식하곤 그 결점을 보완한다시고 가정에 소홀했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귀영광의 역천조차도 겨우 생명을 연장시켜야만 했던 저주의 구음절맥(九陰絶脈). 그나마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악화되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폐관에 들어가면서 시름시름 앓으시다 결국에는 돌아가시고야 말았다. 아름다운 어머니. 자상했던 어머니. 나를 낳기 위해 오 년의 생명을 버려야 했던 어머니.
“…”
어머니의 손을 잡아보니 차가웠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꼬옥 끌어안았다. 새삼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어째서…”
으득! 그따위 무공이 그렇게나 중요했단 말인가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할 정도로? 좋아요. 좋다고요. 그렇다면 그 잘난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제가 체험해보도록 하죠. 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그렇게 매달렸던 무공이 어머니의 임종을 소홀히 할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어요. 이제부터 흘리지 않겠어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어머니, 이제 아프지 말아요.”
나는 어머니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다시 눈물이 솟아나려 한다.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버지, 이번 한번만 더 울겠어요…
밖으로 나간 후 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은 동천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조금씩 어깨를 들썩였다.
“크크크크! 크헤헤헤!”
미친놈처럼 웃어대는 동천. 그럴 만도 하리라. 그녀의 첫 입맞춤을 빼앗았다는 것은 정말로 통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데굴데굴 구르고 싶었으나 체면을 생각해서인지 낄낄거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역시 저에게는 하늘님밖에 없수. 히히히히!’
동천이 좋아라 웃고 있을 때 얼마 되지 않아서 소진이 난감한 모습으로 내려왔다. 그 낌새를 느낀 동천은 얼른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벌써 내려오십니까?”
소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깨어나셨는데 이제 됐으니 가보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정화의 어른 기피증 때문인 것 같았다.
“부전주님이 이해하세요. 아가씨가 사람을 좀 꺼리시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아? 아가씨께서 소전주님을 찾으시더군요. 올라가 보시지요.”
동천은 그녀가 치료해준 것 때문에 부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침착하게 행동했다.
“예. 살펴가세요.”
속으로 킥킥거리며 동천이 올라가자 사정화는 등에 베개를 받치고 앉아있었다. 올라올 때는 당당하게 올라왔는데 막상 사정화의 눈길을 대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동천이었다.
“헤헤, 깨어나셨어요?”
사정화는 동천의 인사를 무시하고 옆에 서있던 수련에게 말했다.
“잠시 나가있어. 난 동천하고 할말이 있으니까.”
수련은 싫다고 버팅겼다.
“아가씨, 조용히 있을게요. 그러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돼요?”
사정화는 냉정하게 거부했다.
“나가있어.”
“예, 아가씨.”
찔끔한 수련은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동천은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느라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그런 동천에게 사정화가 말했다.
“네가 나를 치료했다고?”
동천은 쑥스럽지도 않으면서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한 일을 했던 것뿐인데요 뭘. 헤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정화는 조용히 수련을 불렀다.
“수련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수련이 활짝 웃으며 들어왔다.
“호호! 부르셨어요?”
사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밖으로 나가있어. 개인적인 얘기를 할 거니까.”
수련은 자신의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알겠습니다.”
사정화는 수련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끝까지 듣고 난 후 입을 열었다.
“침술로 치료했다고?”
뭔지 몰랐지만 불안한 느낌이 감지되었다. 말 한번 잘못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에, 그러니까. 헤헤. 그렇다고 할 수 있네요.”
사정화는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맞으면 맞는 거지 그렇다는 건 또 무슨 소리지?”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분명히 무슨 일 때문에 뒤틀려 있는데 그 화풀이를 자신에게 할 거라고 생각한 동천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처해졌다.
‘저 년은 살려줘도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니. 누가 마녀 아니랄까 봐 걸고넘어지냐? 으으, 그런데 뭐라고 답해야 하는 거지? 그래. 분명히 소진한테 침술로 치료를 받았다고 들었을 테니까 괜히 대답을 꼬아 가지고 한 대 맞지 말고 침술로 밀어붙이자.’
결론을 내린 동천은 굽실거리며 이야기했다.
“침술이 맞습니다. 제가 말을 잘못해서 심기가 어지러우셨다면 용서해주십시오.”
사정화는 동천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정말이지?”
왠지 잘못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럼요. 지난 일 년 동안 사부님께 가르침을(이론만) 받았는걸요. 헤헤. 근데 뭐 잘못된 점이라도 있습니까?”
사정화는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침은 어디에다 놓았지?”
“그야, 헉?”
동천은 그제야 사정화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사정화는 침을 놓을 때 자신의 옷을 벗겼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정화는 동천이 헛바람을 들이키는 것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다시 한번 묻겠어. 어디에다 놓았지?”
동천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씨이. 살려주면 됐지. 그딴 건 왜 물어보고 지랄인 거야…’
그 사이 사정화는 동천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동천.”
동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예, 아가씨.”
아직까지는 사정화가 동천보다 약간 키가 컸다. 사정화는 싸늘한 눈으로 진땀을 흘려대는 동천은 내려다보았다.
“난 진실을 원해.”
사형 선고보다 더욱 두려운 질문이 동천의 심장을 콕콕 찔러왔다. 호흡이 거칠어진 동천은 울상을 지으며 떨리는 손으로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겉옷 하, 한 개만 벗겼는뎁쇼.”
순간 사정화의 매서운 손바닥이 동천의 뺨을 휘갈겼다.
쩍!
“켁?”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른 동천은 한 바퀴 돌아서 넘어졌다가 재빨리 일어났다. 짝! 소리도 아니고 쩍! 소리가 날 정도로 얻어맞은 동천은 귓가에서 왱왱거리는 파리 떼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동천. 난 진실을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