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16화
케톤과 린스는 그 기둥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저런 기둥을 다시 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건…?! 설마 전설이 사실일 줄이야…!”
노엘은 자신의 안경을 깨끗이 닦고 다시 그 흑색 기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믿고 싶지 않아도 일은 그녀의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전설’이란 말을 들은 케톤이 노엘에게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전설이라니요?”
노엘은 대답하기를 잠시 주저하였다. 사실, 노엘 자신도 그 전설을 알았을 때 복잡한 감정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여신… 망자의 여신, 고대의 여신, 새벽의 여신, 그리고 분노의 여신, 이 네 명의 여신들이 그녀들 마음대로 어떤 세계를 갈라놓았다는 이유로 최고위 신에게 신의 자격을 박탈당하였는데 저런 흑색의 기둥 여덟 개가 솟을 때 그녀들에게 가한 최고신의 징벌은 사라지고 다시 직위를 되찾은 여신들이 자신들이 갈라놓은 세계를 합한다는 전설이지요. 우리들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힘이 저 기둥을 솟아오르게 만드는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아, 케톤과 공주님께서 저런 기둥을 하나 보셨다고 하셨지요? 그럼 확인된 건 두 개군요….”
그때, 누군가가 황급히 촌장의 집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 장발의 사나이, 바로 리오였다. 그는 모두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이마의 땀을 닦았다.
“휴우~ 무사하시니 다행이군요. 그건 그렇고 아직 괴물들이 나타나진 않았지요? 저번에 지진이 일어난 뒤에 고대 마물들이 튀어나와서 말이에요.”
아직까진 마물들이 튀어나오진 않았다.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쿠구국–!
순간, 앞장서서 걷던 리오와 일행의 뒤를 따르던 레이는 숨을 죽이고 괴음이 난 지면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른 일행은 느끼고 있지 못한 듯했다.
“뭐하세요 스나이퍼 씨? 마을 사람들에게 가 봐야…?”
순간, 노엘은 자신을 노려보며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다가오는 리오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고 리오 역시 서서히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리오가 검을 뽑아들자 마을 사람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케톤은 잔뜩 긴장한 채 레드 노드를 뽑고 리오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이 지금껏 느낀 바로 리오와 자신의 실력 차를 감안할 때 자신이 리오를 검으로 막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기사란 계급이기 때문에 그는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리, 리오! 왜 그러는 거예요!! 정신 차리세요!!!”
“…!”
리오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시선을 케톤의 발 밑으로 내리깔았다. 케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시선도 아래로 내려 보았다.
“으아아아악–!??”
지면에 솟아난 무언가를 본 케톤은 경악을 하며 뒤로 주춤거렸고 솟아난 그 무언가는 자신의 썩은 육체를 날려 케톤을 공격하였다.
“차앗–!!”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린 케톤은 레드 노드로 반격을 가하였고 둘로 나뉘어진 그것은 땅 위에 떨어졌다.
“조, 좀비!? 좀비가 한낮에 튀어나오다니…!?”
케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나누어 놓은 좀비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디바이너를 집어넣고 또 다른 검 파라그레이드를 뽑으며 씁쓸히 내뱉었다.
“튀어나오기만 하면 귀엽기나 하지…. 촌장님! 마을 사람들을 바닥이 돌로 되어 있는 집에 대피시켜주세요! 어서요!!”
리오의 외침에 따라 촌장은 서둘러 사람들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비들의 공격은 이제 시작되는 것이었다.
“크와아악–!!”
달리던 한 주민이 땅에서 튀어나온 좀비의 공격을 받고 무참히 쓰러지자 리오는 급히 파라그레이드에 자신의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파라그레이드 <웨이크 업(Wake up)>–!!”
리오의 기는 파라그레이드 중앙에 위치한 오리하르콘 막대에 전해졌고 그 막대에선 반투명의 넓은 칼날이 생성되어 나왔다.
리오가 가진 디바이너의 속성은 무속성, 반면에 또 다른 검 파라그레이드의 속성은 유속성이었다. 지, 수, 화, 풍, 광, 암의 6대 속성이 모두 하나로 섞인 속성이 유속성이어서 생사 여부가 불완전한 <언데드(Undead)>계에겐 쥐약이었다.
“자, 어서요! 제가 막아드릴 테니 빨리 도망치세요!!”
리오는 파라그레이드로 좀비들을 하나씩 처치하며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나머지 일행도 상황 판단을 한 듯, 각자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물론 린스는 대피 행렬에 끼어 있었지만.
“6급, <화이어 월>–!!”
주문으로 마법을 전개한 노엘은 화이어볼보다 광범위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중단위 마법 화이어 월로 점점 수가 많아지고 있는 좀비들을 공격하였다. 넓은 불의 장벽은 막 일어서고 있는 좀비들을 순식간에 태웠으나 다 타지 않은 좀비들은 자신의 몸이 불에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민들과 일행을 향해 전진을 하였다.
“뭐, 뭐야!? 어떻게 저런 괴물들이 생겨난 거지?”
그들의 질긴 생명력에 노엘은 몸서리를 치며 다음 주문을 준비하였다. 적들이 일렬로 몰려오는 관계로 케톤은 쉽사리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레이가 일행의 앞으로 나섰다.
“이들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노엘 선생님. 성불하지 못한 망자들을 처리하는 술법은 동양이 더 발전한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레이는 수인을 이리저리 교차하며 짧게짧게 주문을 외웠고 주문이 다 완성되자 그녀의 손 사이에선 엄청난 밝기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동양의 정신술, 일명 <음양오행술>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뿜어진 빛은 전진하는 좀비들의 육체를 무너뜨려 먼지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고 노엘과 케톤은 처음 보는 동방의 정신술에 감탄을 연발하였다.
“이건…! 성직자들의 엑소시즘보다 훨씬 효율적이군요, 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발산되는 것인가요?”
노엘의 질문에 레이는 다시 수인을 맺으며 답하였다.
“정신의 힘입니다. 정신 집중에서 나오는 힘으로 주위에 퍼져있는 자연의 힘을 움직이는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연을 지배하는 서방의 마법과는 달리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이것이 동방 정신술의 기본 원리입니다.”
말을 끝낸 레이는 다시 한번 손 사이에서 빛을 방출하였고 좀비들은 또다시 무너져내렸다.
“간다–앗! 지뢰 자르기–!!!”
리오가 파라그레이드를 기합과 함께 지면에 강하게 꽂자 날카로운 충격파들이 지면을 타고 달렸고, 다가오는 좀비들의 육체를 산산조각으로 찢어 놓았다. 그래도 좀비들은 끝없이 땅속에서 솟아올랐고 리오는 침을 땅바닥에 뱉으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가하였다.
“젠장, 네크로맨서나 언데드 소환사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다시 다가오는 좀비들을 원래의 썩은 고기 조각으로 자르던 중, 어떤 민가에서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리오의 귀를 강타했다.
“꺄아아아악–!! 도와줘요!!!”
다가오는 좀비 하나를 어깨로 밀어 쳐 다른 좀비들과 함께 멀리 날려보낸 리오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빠르게 돌아보았다.
“초, 촌장님의 집!? 다 대피했을 텐데…?”
약간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리오는 땅속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을 하나하나 없애가며 촌장의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