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17화
“오, 오지 말아! 부탁이야!!”
아일리아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애원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인간의 의지가 사라진 좀비들에게 말이 통할 리는 없었다.
“도와줘요! 케톤, 아니 누구라도!!”
순간, 촌장의 집 지붕을 부수고 붉은 장발의 사나이가 난입해 들어와 아일리아를 공격하려던 좀비 두 마리를 반투명의 검으로 베어 버리고 그녀의 앞을 막아주었다.
“쳇, 죽기는 싫으신가 보군. 이 건달이 구해줘서 실망이 크시겠소.”
어제의 일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리오였다. 아일리아는 머뭇거리며 리오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리오는 피식 웃으며 검을 든 오른손에 힘을 넣었다.
“상관없어요. 떠돌이지만 이래 봬도 케톤처럼 기사니까 약한 자를 구해야죠. 그 사람이 누구건 말이에요. 오해는 하지 말아요, 구해준답시고 이상한 행동은 안 할 테니까요.”
달려드는 좀비들을 모조리 물리친 리오는 아일리아를 데리고 촌장의 집 밖으로 나갔다. 마을 안에 있던 좀비들도 그의 일행들에 의해 거의 소탕된 듯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땀을 닦던 케톤은 아일리아가 무사히 집에서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일리아! 무사했구나!!”
“케톤! 케톤!!”
아일리아는 곧바로 케톤을 향해 뛰어가 그를 부둥켜안고 다짜고짜 울기 시작했다. 일행의 시선에 약간 곤란스러운 느낌을 받은 케톤은 그녀를 떼어 놓으며 빙긋 웃어주었다.
“괜찮아? 다친 덴 없고? 어쩌자고 집 안에 남아있었어 아일리아.”
“으응… 난 괜찮아 케톤. 지진이 났을 때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집 안에 있어서 그만… 하지만 이젠 무사해….”
‘내 얘긴 한마디도 안 하는군….’
속으로 투덜댄 리오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기둥이 솟아난 장소를 향해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에 있는 거 다 아니 어서 나와라!! 숨는다고 내가 봐주는 줄 아는가!!!”
리오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기둥이 있는 숲 쪽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보라색 머리의 소녀가 그림자처럼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나타났다.
“스, 스나이퍼 씨, 그냥 어린 소녀잖아요…?”
노엘은 그 소녀를 보고 의외라는 듯 리오에게 물었고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말을 부정했다.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저 소녀는 사람이 아니니 더욱 그렇죠. 안 그런가 <홀핀>?”
파라그레이드의 날 끝을 살짝 땅에 꽂으며 리오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소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 소녀 역시 답하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홋… 나의 이름을 알다니, 꽤 산전수전 다 겪은 녀석인 것 같구나. 그래, 나의 이름은 <홀핀>, 죽은 자의 여왕 <홀핀>이다.”
홀핀….
전에 리오와 한 번 대결한 일이 있었던 상급 마녀 라기아와 동급으로 치는 마녀 중에 한 명이다. 라기아의 원래 직업이 서큐버스인 것처럼, 그녀의 확실한 직업은 네크로맨서, 죽은 생물의 시체를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어린 소녀와 같은 이유는 예전에 어떤 용사와 싸울 때 그의 검에 서려있는 성력에 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좀비들을 잘도 없애더군. 너와 저기 있는 이상한 차림의 여자가 특히 말이야. 처음 보는 마법을 사용하는데 꽤 효율이 좋더군. 어쨌든 여덟 기둥 중 하나, <마그엘의 정신>을 봉한 기둥이 풀렸기에 이 땅 주위의 시체들을 한 번 조종해 봤어. 너무 심했다면 용서해. 호호호호홋….”
어린아이의 외모와는 달리 전에 보지 못했던 사악한 웃음을 띠고 있는 홀핀을 보며 노엘은 몸서리를 쳤다. 리오는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서며 홀핀에게 물었다.
“나와 계속 대결할 텐가?”
홀핀은 양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라기아에게 너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일부러 찾아와 본 거야. 레프리컨트의 공주마마와 그의 선생 따위는 우리에겐 식은 죽 먹기지. 네가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하더군 리오·스나이퍼. 오늘 직접 싸우는 것을 보니 라기아가 그럴만도 하더군. 그러니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내가 지금 너와 싸워봤자겠지. 난 그럼 실례하지 리오·스나이퍼. 다음에 다시 만나길… 후훗.”
그녀의 몸은 곧 음침한 보라색의 빛에 휩싸여 사라져갔고 리오는 파라그레이드를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린 후 짜증 나는 듯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긁어 보았다.
“젠장… 싸움이 좀 길어질 것 같은데…?”
5장 <아르센의 킬러>
“헤헷… 뭐가 ‘헤헷’이냐 망할…!”
지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웃다가도 화를 내었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끝에 결국 리오가 있는 세계로 와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혼자 덩그러니 온 것은 아니었다.
“헤이–! 오빠 많이 기다렸어?”
지크와 같은 금발에 턱까지 오는 단발을 한 17~18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지크가 앉아있는 공원의 벤치를 향해 뛰어왔다. 지크 만큼이나 생기 발랄해 보이는 소녀여서 지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동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녀가 종이 봉투에서 던져준 과일을 받아 한 입 깨물어 삼키며 지크는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한 시간 기다렸으면 어떻겠냐? 젠장, 그 할아범은 붙여줄 천사가 없어서 얘를 붙여줘? 괜히 골만 더 아프게….”
그 소녀는 큰 눈을 멍하니 몇 번 껌벅이더니 지크의 목을 팔로 강하게 죄면서 협박하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게 오빠란 사람이 동생에게 할 소리야!! 어서 다시 말해봐!!!”
생각보다 강하게 조이는 바람에 이마에 핏줄이 솟은 지크는 켁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 어서 풀어!!”
그러나, 그녀는 팔에 힘을 더더욱 강하게 넣는 것이었다.
“그 상태로 말해!! 아니면 내가 하라는 대로 말할 거야?”
“네, 네가 하라는 대로는 죽어도 못 해! 그럼 다시 말하지… 이렇게 어여쁜 동생이랑 지원 임무를 수행하게 돼서 정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은데…?”
그 말을 들은 지크의 동생은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엇갈린 팔을 지크의 목에서 풀었다. 시뻘겋게 변한 목 언저리를 매만지며 지크는 먹던 과일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지크 오빠, 근데 할아버지께서 나까지 리오 오빠의 지원을 보낼 정도면 꽤 일이 큰가 봐. 저번에 고신들이 부활하려던 사건에서도 날 부르시지 않았는데 말이야.”
과일 하나를 다 먹고 다른 하나를 종이 봉투에서 꺼내던 지크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몰랐냐? 우리가 피 터지게 고신들이랑 싸우고 있을 때 그 할아범은 젊은 천사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는 거 말이야. 다 끝나가지고 상황 보고 하는데 그러더라구, ‘어엇, 내가 <루이체>를 안 보냈었나? 이런 실수를… 허허허, 미안하다 지크’라고.”
지크의 동생–루이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어머, 너무 심하셨다 할아버지.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서 지크 오빠만 욕했지 뭐야. 미안해 오빠, 헤헷….”
지크는 혀를 내밀고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동생을 이마로 살짝 치며 그 역시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