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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21화


6장 <버서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여관을 나선 일행은 천천히 아르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큰 도시답게 아르센은 나가는 길목에서도 볼거리가 풍부해 일행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러나 마키는 매일 보아온 탓인지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듯했다.

계속 거리를 거닐던 지크는 멀리 보이는 무엇인가를 보고 잠시 멈춰 섰다. 마키와 루이체는 궁금한 표정으로 지크를 보았고 지크는 마키의 목과 어깨를 팔로 강하게 두르며 손가락으로 자신이 보는 것을 가리켰다.

“어이, 저기 저거 보이지? 저 시커먼색 기둥 말이야. 원래 저기에 있었던 거야?”

마키는 슬쩍 지크의 팔에서 빠져나가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건 한 보름 전에 발생한 지진과 동시에 솟아났어. 아르센의 최고 현자라는 늙은이가 분노의 여신 <이스말>의 정신이 깨어났다고 소리치고 다니며 자신과 함께 행동할 전사들을 뽑더군. 하지만 아무도 자원한 사람은 없었어. 그건 그렇고, 이상한 것이 저 기둥이 솟아난 다음부터 경찰이나 모험가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 거야. 원인은 불명이지만 수가 점점 늘어나서 고민이지. 함부로 죽일 수도 없고….”

마키의 설명을 들은 지크는 솔직히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고개는 끄덕였다. 반면 루이체는 마키의 말을 들은 순간 불안감이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나중에 알게 되겠지 뭐. 자, 가자구.”

마음속에 뭘 두는 성격이 아닌 지크는 휘파람을 불며 계속 걷기 시작했고 마키와 루이체는 약간 인상을 쓴 채 지크를 뒤따랐다.

“이봐, 이봐!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 여자가 이러는 거지? 당신 어서 꺼지지 못해!!”

2미터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한 근육질의 전사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여성을 향해 호통을 치며 꺼지라는 손짓을 했고 그의 동료 전사들 역시 인상을 쓴 채 그 여성을 바라보았다.

“후후훗… 돈을 줄 테니 잠시 몸을 빌려달라는 것뿐인데 왜 그러는 거지? 너희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돈이면 사람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쳐죽이는 너희들이?”

전사는 코웃음을 치며 그 여성의 앞에 자신의 투박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이봐, 돈을 줄 테니 목숨을 바치라고 하면 누가 돈을 받겠나? 남의 몸을 빌리겠다니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야!! 아무리 우리가 해결사 노릇을 하는 망나니지만 우리 목숨만은 아낄 줄 안다고!!! 더 이상 지껄이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말을 마친 전사는 뒤로 돌아서서 술을 마시고 있는 동료들에게 돌아갔고 확실히 부탁을 거절받은 여성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두터운 사막용 코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리석은 것들… 그럼 한바탕 땀을 흘리게 해주지, 후후후후훗….”

다시 밖으로 나온 그녀의 손엔 은색의 긴 피리가 들려져 있었다.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전사들은 흘끔 그녀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천천히 그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거야 저 여자? 이봐!!”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짐을 느낀 전사들은 일어서서 그녀의 연주를 막으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전사들의 눈은 차츰 광체를 잃어갔고 결국 그들은 눈을 뒤집은 채 멍하니 서있게 되었다.

피리의 연주를 마친 그녀는 다시 피리를 품에 넣고서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후후훗… 이 라기아님의 연주 솜씨가 어떤가? 이 ‘달의 피리’ 소리는 너희들을 강하게 만들어 준단다… 몸이 박살 날 때까지 싸우게 만들어 주지. 호호호호홋… 자아, 어서 가거라 쓰레기들. 너희들의 광기를 마음껏 부리는 거다… 하하하핫!!!”

웃음 소리와 함께 마법을 이용하여 사라진 라기아를 뒤로, 광전사 버서커로 변한 일곱 명의 전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

그들의 괴성에 놀란 시민들은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그 광전사들을 보고 힘껏 달아나기 시작했고 근처를 순찰하던 경관들 역시 주민들보다 먼저 대피하기까지 하였다. 광전사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무기로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젊은이, 중년, 노인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도망쳐온 경찰관의 사건 신고를 들은 경찰서장은 또다시 일어난 광란의 살인에 치를 떨며 출동을 외쳤다. 솔직히 그 서장도 자신은 없었다. 몇일 전에 일어난 경찰 제15소대의 광란… 그것을 막는 데 경찰 17명이 사망했고 56명이 중경상을 입고 말았다. 물론 15소대 전원은 같은 경관들의 손에 의해 거리에서 사형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거의 들리지 않다시피 하는 귀를 가지고 있는 목격자 할아버지는 회색 머리의 한 여인이 은색 피리를 불어 경관들을 미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할아버지들의 옛날 이야기와 같아서 경관들은 거의 무시해 버렸지만 서장은 오늘 그 진술과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일치시켜 보았다. 달의 피리를 불며 사람들을 광전사로 바꿔 버린다는 마녀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에서도 마녀는 죽지 않고 도망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서장은 설마 하면서 부하 경관들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현장에서 본 것은 그 일곱 명의 광전사와 대치하고 있는 붉은 겉옷의 한 남자, 예쁘장하게 생긴 흰 옷의 청년, 그리고 단발의 미소녀였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지크 일행은 흠칫 놀라며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비명 소리와 함께 겁에 질린 듯한 시민들은 그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도망치다가 다친 듯, 몇 명의 노인들과 아이들은 무릎 등에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도 잊은 채 도망치고 있었다. 야수에 쫓기고 있는 짐승들처럼….

“뭐야, 무슨 일이야!?”

지크는 약간 인상을 쓰고 사람들이 달려온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마키와 루이체도 뒤따라 뛰기 시작했고 셋은 곧 자신들 앞에 벌어진 참상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는 온통 검붉은색으로 도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색으로 몸을 두른 일곱 명의 전사들이 눈을 뒤집은 채 자신들 이외의 생명체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저 자식들…!? 미친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지크는 크게 소리치며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한 아주머니를 돌려 보았다.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반이 없어져 있었다. 곤봉이나 철퇴의 일격에 당한 것 같았다. 지크는 아주머니의 시체를 반듯하게 뉘여놓은 후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살아남은 사람이라도 내장 파열이나 심한 찰과상을 입고 있어서 살 가망성이 희박했다. 아니, 이미 시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곱 명의 광전사들은 천천히 눈길을 일행에게 돌렸다. 그들의 눈빛을 본 루이체는 두 주먹을 꼭 쥐고서 낮게 중얼거렸다.

“광전사… 버서커.”

마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자신의 등에 거꾸로 장비되어 있는 검에 손을 얹은 후 루이체에게 물었다.

“버서… 커? 그게 뭔데?”

“인간의 파괴 본능을 마법이나 정령의 힘을 빌어 극대화한 실체에요. 그들의 상태는 마법에 의한 것이라 지금은 풀 수 없어요. 이미 정신 상태가 무너져 버렸으니까요. 시체나 다름없어요.”

지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 광전사들을 천천히 쏘아보며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그의 칼, 무명도에 손을 가져갔다. 눈에서 푸른색의 광체를 뿜기 시작한 지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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