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45화
「그러니 너희들은 하급 마족에 불과한 것이다. 변변치 못한 것들…!」
케이는 라기아가 어느새 자신들의 앞에 내려와 있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쓰러져 있던 마귀족은 라기아가 내려오자 비틀거리며 일어서 그녀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갔다. 마귀 삼인중을 처리한 라기아는 빙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셋을 돌아보았다.
「후후훗… 거기 있는 여자, 마귀 삼인중을 혼자서 처리했나?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한데… 너희 일행 중에 있는 리오란 남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하지만 잠재된 능력은 나조차 무시 못 할 정도군, 호호호호홋…! 한 번 시험해 볼까?」
순간, 라기아의 눈에선 붉은색의 사광(邪光)이 폭사되었고 케이를 제외한 케톤과 테크는 그 빛을 본 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케이는 라기아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세를 낮추고서 몸의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앗–!!!”
그녀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황금빛의 아지랑이를 본 케톤과 테크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케, 케이 씨…!?”
케이는 표정을 굳힌 채 케톤에게 다가가 그가 가지고 있는 레드 노드를 빼어들고 자세를 취하였다. 그녀의 기에 반응이라도 하듯, 레드 노드의 날은 달궈진 쇠처럼 붉은색 빛을 뿜어냈다. 레드 노드가 이런 반응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케톤은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잠깐 빌려줘요 케톤, 잠시면 될 거예요…!”
케이는 검을 바로 들고있지 않았다. 날이 손 아래쪽에 오는 특이한 자세였다. 암살자들이 얇은 검을 잡는 자세이기도 했다. 케이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와 레드 노드를 본 라기아는 크게 웃으며 순간 몸을 움직여 케이의 앞에 섰다. 마력을 이용한 순간 이동이어서 케이가 반응하지 못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케이의 가녀린 목과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라기아는 말했다.
「호호홋… 귀여운 것. 아직 경험이 없군, 그렇지? 남자 냄새를 맡아본 적도 없으니 낭패인걸…? 내가 간접적으로라도 맛보게 해줄까? 호호호호홋…!!」
라기아의 음담과 손짓에 얼굴을 붉힌 케이는 힘껏 레드 노드를 휘둘렀으나 라기아는 이번에도 순간 이동으로 지붕 위까지 피한 후 소리쳤다.
「나이트 메어는 어차피 풀렸으니 오늘은 이만 가주마, 내가 너무 리오 녀석만 의식한 것 같군. 나의 실수야 완전히… 그럼 다음에 보자!!」
라기아의 모습과 기척은 곧 사라졌고 케이는 공력을 내리며 레드 노드를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케톤에게 전해주며 중얼거렸다.
“공포스러운걸…? 직접 맞붙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어쨌든 대단해. 그건 그렇고 둘은 괜찮아요?”
케톤과 테크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노엘 선생님도 괜찮으시죠?”
“예, 리오 씨가 잘 처리해 주셨어요. 탈진할 정도긴 했지만… 자, 우리도 이제 들어가죠. 오늘은 너무 힘든 하루였어요.”
케톤은 고개를 끄덕이며 테크, 케이와 함께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피곤한 만큼 잠을 깊이 잘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리오는 여전히 레이의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케이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침대가 셋이어서 문제는 없었다. 한 이불은 아니지만 남자와 같이 잔다는 것이 동방에서 온 그녀로선 약간 꺼림직하긴 했다.
여관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고 밤은 깊어져 갔다. 물론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9장 [이상한 감정]
아르센을 떠난 지 3일째, 지크 일행은 오늘도 불편한 노숙을 하며 밤을 지새야만 했다. 지크는 투덜대며 셋이 덮고 있는 모포 중 제일 얇은 것을 덮은 채 말했다.
“쳇, 저 녀석도 남자인데 왜 나만 이런 거적때기를 덮어야 하는 거야 루이체. 이거 너무 불공평하지 않니?”
“흥, 오빠는 산에 매달려서도 잘 수 있는 사람이잖아. 투덜대지 말고 어서 잠이나 자!”
지크는 인상을 살짝 쓰며 그대로 잠들었고 루이체도 뒤따라 잠에 빠져들었다.
“…!”
둘이 잠든 것을 확인한 마키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서 근처의 호숫가로 달려갔다. 달빛이 매우 밝은 밤이어서 호숫가의 물은 마치 거울과도 같았다. 호숫가에 웅크려 터번을 벗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 마키는 한숨을 쉬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남자처럼 보이나… 내가….”
보통 사람에 비해 약간 검은 얼굴에 아마색 머리를 가지고 있는 마키의 얼굴은 그냥 보면 햇볕에 그을린 미소년처럼 보였다. 긴 속눈썹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 때처럼 인상만 쓰지 않는다면 여자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자지만.
“남자가 남자처럼 보이지 그럼 어떻게 보이냐? 멍청이….”
마키는 흠칫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붉은색 재킷을 벗고 반팔 면 티만 입고있는 지크가 씁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키는 표정을 얼른 찡그리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뭐 하러 여기 온 거지? 설마 날 죽이려고 온 거냐?”
그 말을 들은 지크는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으며 마키의 곁에 앉아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낮게 말했다.
“그러면 어쩔래? 헤헷… 잠이 하도 안 와서 그런다. 뭐, 같이 수도까지 가려면 우정을 깊게 하는 것도 괜찮잖아, 안 그래?”
마키는 픽 실소를 하며 씁쓰름하게 말했다.
“훗, 우정? 언제 널 죽일지 모르는 사람과 우정을 거론하다니, 너도 참 멍청한 녀석이구나.”
“이 자식이….”
지크는 마키의 어깨를 두르고 있던 팔의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를 살짝 치며 말을 이었다.
“누가 쉽게 죽어준대? 하루 이틀 만에 죽어줄 생각은 없어, 꽤 오래 걸릴 테니 친분 관계를 가지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야 나중에 너에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때 살려달라 빌면 살려줄 확률도 높아질 거 아니야… 하하핫.”
마키는 웃고있는 지크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전혀 걱정이 없는 자유분방함이 그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계속 웃던 지크는 마키가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인상을 팍 쓰며 물었다.
“뭐야, 너 나한테 관심있냐?”
지크의 입에서 갑자기 그런 말이 터져 나오자 마키는 흠칫 놀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마키가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본 지크는 마키에게서 떨어지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젠장, 이상한 취미가 있는 녀석이잖아? 예쁘장하게 생겨선… 역시 이상한 녀석이라니까. …아하, 네가 그래서 우정을 도모하자는 말에 화를 낸 거군?”
“그, 그래서라니 무슨 뜻이야…!”
마키는 여전히 허둥댔고 지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넌 그런 녀석이니까… 우정보다는 ‘애정’을 가져달라 이 말 아니냐고… 으윽!?”
마키는 순간 화를 내며 호숫물을 지크에게 뿌려버리고선 잠자리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물을 흠뻑 맞은 지크는 씁쓸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헤헷… 속아주는 것도 재미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