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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49화


가르발이 지크에게 준 것, 그것은 바로 그가 타던 거마였다. 다른 말보다 1.5배가량은 더 커 보이는 그 거대한 말의 이름은 <카루펠>, 가르발의 말에 따르면 이보다 힘이 센 말은 없다고 한다. 말 한 마리만 남기고 부하들과 함께 사라진 가르발의 뒤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지크는 옆에 다가와 자신을 쏘아보는 듯한 카루펠을 힐끔 보았다. 짙은 회색의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갈기는 그냥 척 보아도 명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 이름이 카루펠이라고?”

지크는 카루펠의 턱을 주먹으로 살짝 건드리며 묻듯이 말했고 카루펠은 콧김을 강하게 뿜어 지크의 머리카락을 날려 보았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좋아, 네 주인이 널 나에게 주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대신 먹을 건 네가 챙겨 먹어. 난 책임 안 져.”

카루펠은 다시 한 번 지크의 머리카락을 콧김으로 날렸다. 사람의 말로 <알겠다>, **<좋다>**는 뜻인 것 같았다. 지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천천히 여관가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고 카루펠은 지크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잠깐, 내 할 말은 아직 안 끝났어.”

그때, 지크의 앞에 나타난 건 바로 베르니카였다. 지크는 팔짱을 끼며 베르니카를 바라보았고 카루펠 역시 멈춰서서 베르니카를 바라보았다.

“뭐야 애꾸. 한 번 더 붙어보자는 거야?”

“아니, 살인검을 쓰는 녀석과는 붙어볼 생각 없어. 그건 그렇고 넌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노엘이란 여자 알고 있어?”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 보았으나 그의 기억 속에 노엘이란 이름이 있진 않았다.

“모르는데, 그 여잔 뭐 하러 찾는 거지?”

그 말을 들은 베르니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갚을 빚이 있어서… 너따윈 몰라도 돼.”

지크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가봐 살인검. 이 이후 다시 만나지 않길 빌어. 그럼….”

베르니카는 말을 마친 후 어디론가 사라졌고 지크는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런 말 들으면 꼭 다시 만나던데… 모르지 뭐. 쳇….”

지크의 말에 동감이라도 하는 듯, 카루펠은 낮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역시 명마는 다르다 생각하며 지크는 카루펠의 목 언저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 약간 마음에 드는데? 헤헷….”

“오, 오빠 미쳤어?”

루이체는 여관 앞에 메여진 카루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지크에게 소리소리쳤고 지크는 미안함이 반쯤 섞인 얼굴로 카루펠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구. 사나이끼리 주고받는 선물은 거절할 수 없는 법이야. 게다가 저 녀석 보기보다 머리가 좋은 데다가, 너 힘들게 걸어 다닐 필요 없잖아. 좋게 생각해봐 동생아.”

“어쨌든 난 싫어! 동물은 싫단 말이야!!!”

루이체는 소리치며 방 밖으로 뛰쳐나갔고 지크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누웠다.

“…하긴, 저 녀석도 그때 그 기억이 너무 쓰라렸겠지. 하지만 카루펠 녀석은 애완동물이 아닌데….”

지크는 중얼거리며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뇌가 회전할 한도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그의 생리적 반응이었다. 간단히 말해 지크는 귀찮으면 자버린다. 마키는 약간 거리를 둔 상태에서 지크가 데리고 온 카루펠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의 멋진 말이었다. 카루펠과 친해지고 싶었던지, 마키는 천천히 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고 카루펠 역시 마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키는 흠칫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아, 안녕? 난 마키라고 하는데….”

마키가 평소보다 약하게 나오자 카루펠은 무시하듯 고개를 돌려버렸고 마키는 이내 인상을 쓰며 여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쳇, 뭐 저딴 말이 다 있지? 데리고 온 녀석이랑 똑같잖아…!”

그로부터 약간 떨어진 여관에선 지크 일행을 지켜보는 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베르니카였다. 지크의 가공할 만한 무술을 직접 느껴본 베르니카는 그녀 자신도 검을 쓰는 사람인 이상 더욱 자신의 검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검술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지크의 뒤를 모르게 따라다니기로 했고 지금은 그들이 묵고 있는 곳의 건너편 여관에 방을 잡고 그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배울 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빨라서 보질 못하겠단 말이야. 빌어먹을 자식….”

여자 치고는 꽤 거친 말투였다. 하지만 그녀의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와 그 안대의 위아래로 비어져 나온 흉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흠, 오늘은 어디 다른 곳으로 떠날 상황은 아닌 것 같군. 그럼 나도 좀 쉬어볼까?”

갑옷을 벗은 베르니카는 침대에 털썩 누우며 눈을 감아 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보통의 여자완 많이 달랐다.

다음날 아침.

지크는 옆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마키가 깨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관 밖으로 나간 지크는 물을 마시고 있는 카루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어이, 나하고 한 번 달려볼래? 난 너 한 번도 탄 적 없잖아. 안 그래?”

카루펠은 가만히 지크를 바라보다가 콧김을 흥 뿜으며 긴 목을 위아래로 움직여 보였다. 어서 타라는 뜻이었다.

“좋아, 한 번 달려보자구!”

카루펠의 엉덩이를 쳐 먼저 달리게 한 지크는 달려가는 카루펠을 향해 뛰어올랐고 곡예단이 하는 것과 같이 정확히 안장에 내려 시승식을 시작했다. 다른 말보다 덩치가 컸기 때문에 지크는 마치 소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루펠은 어느새 마을을 빠져나갔고 자신이 직접 달리는 것과 또 다른 스피드감을 느낀 지크는 소리를 높게 지르며 기뻐했다.

“호오–! 좋았어! 너 갈수록 마음에 드는데!!”

지크는 그렇게 계속 카루펠과 함께 질주를 했고 그들이 마을에 다시 돌아온 시간은 아침 식사 시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카루펠을 다시 여관 앞에다 묶어둔 지크는 기분이 좋은 듯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여관 안에 들어갔다. 그러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둘의 표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마키와 루이체는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둘 다 말없이 빵을 씹으며 식사를 하다가 지크가 상쾌한 얼굴로 식당에 들어오자 버럭 인상을 쓰며 그에게 소리쳤다.

“이봐!!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둘의 목소리는 너무도 커서 같이 식사하던 손님들의 분위기를 망치는데 충분했고 지크는 허리를 일일이 굽히며 자기들을 쳐다보는 손님들에게 사과를 하였다. 진땀을 흘리며 자리에 앉은 지크는 루이체의 코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 녀석!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이렇게 소리치면 어떡해!!”

빨갛게 변한 자신의 코를 매만지던 루이체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 듯 발로 건너편 지크의 정강이를 강하게 쳤다. 지크는 인상을 찡그리며 루이체를 쏘아보았고 루이체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돌리고 다시 빵을 씹기 시작했다.

“치잇…! 근데 루이체는 내 동생이니까 화낼 만하다 치고, 넌 왜 나한테 소리쳤냐? 좀 따지자.”

마키는 그 질문을 받자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돌려버렸고 지크는 속으로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던 일행의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침에 신나게 말을 타더군 살인검.”

어느새 일행의 여관에 들어온 베르니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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