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69화
케톤은 가만히 리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쌔신 나이프는 케이의 피부를 그냥 누르고만 있을 뿐이었고 생명에 해가 갈 정도로 상처를 입히진 않았다. 리오는 리마가 케이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힘이 남아도는가 보군. 그럼 나에게 칼을 휘둘러 보시지 그래, 가브의 숨을 멎게 한 것은 나니까 말이야.”
그 말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리오가 전투 때엔 잔인한 사람이라는 건 모두 보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동료를 죽일 정도로 비정한 인물일 줄이야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뭐… 뭐라고…?”
리오가 동료 가브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리마는 아까 케이에게 달려들 때와 같이 분노가 치밀지는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오의 눈빛이 자신의 마음속에 뭔가를 말해주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리오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그때 가브는 이파리의 공격에 의해 척추가 끊기고 등 쪽의 상처로 내부 기관이 보일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그 정도의 상처라면 살아남는다 해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폐인이 되고 만다. 게다가 그 상황에선 출혈도 심했기 때문에 단련된 근육의 가브라 해도 살 수는 없었어.”
그런 리오의 말에 반문하듯, 리마는 리오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래도 가브는 살 수 있었을지 모르잖아!! 조금이라도 살 가망성이 있다면 살려야 하는 게 동료의 의무 아니야?”
그 말에, 리오는 실소를 하며 대답했다.
“풋, 의무라고…? 좋지, 그러나 그 의무 중엔 죽어가는 동료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만약 너라면… 가브가 죽기 직전에 마음이 바뀌어 살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보면 어땠을까? 너 역시 편하지는 않겠지만 가브의 영혼 역시 상당히 괴롭겠지. 눈앞에 사신이 다가오고 있는 장면은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장관이야,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아니면 고통을 동반한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말을 들은 로드 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북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서 양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케톤 역시 고개를 숙이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오는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더 이상 얘기하면 변명을 하는 것 같겠군. 한가지만 말하지, 정 날 죽이고 싶다면 죽일 기회는 언제든지 주겠다. 하지만, 쉽게 죽어주진 않을 거다. 난 봉사 단체의 회원이 아니니까.”
리오의 차디찬 음성을 들은 리마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료를 잃은 슬픔과,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정신 안에서 충돌을 한 탓일지도 모른다. 케이는 침울한 눈으로 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리오씨가 일을 처리하려는 거죠…? 가브가 죽은 건 저 때문인데….’
케이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마음이 이상하게도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새벽 동이 트고 있는 산 사이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리오는 디바이너를 조용히 꺼내어 자신의 앞에 꽂은 후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조용히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디바이너에서 황색의 빛이 살며시 튀어나왔고 그 빛덩이는 리오의 눈앞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나 가브, 어서 가지 않고.”
그러자 그 빛덩이는 양쪽으로 흔들렸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뒤에 있는 리마를 가리키고서 말했다.
“그럼 리마나 안심시키고 가줘, 잘못하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후훗.”
그 빛덩이는 조용히 리마에게 날아갔고 흐느끼던 리마는 자신의 눈앞에 갑자기 이상한 빛덩이가 나타나자 울음을 멈추고 그 황색 빛덩이를 바라보았다.
“뭐, 뭐지 이건…?”
리마는 가만히 그 빛덩이를 보다가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그 빛덩이를 양손으로 감싸며 소리쳤다.
“가, 가브! 가브가 틀림없어!!”
리마의 그 외침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빛덩이를 바라보았고, 로드 덕은 리오를 돌아보며 물었다.
“리, 리오군! 이건…!?”
리오는 디바이너를 다시 집어넣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 검으로 가브의 생명을 끊었습니다. 이 검 안에 가브의 영혼을 잠시 넣어 두었죠. 밤에 죽음을 당하면 그 영혼은 어둠 속을 방황하다 저승으로 간다는 건 아시죠? 이 새벽이라면 방황할 필요가 없겠죠… 후훗.”
로드 덕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리오란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리, 리오군…!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리오는 계속 하늘을 바라본 채로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떠돌이 기사입니다.”
가브의 영혼은 리마의 주위를 몇 바퀴 돈 후에 리마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 리마는 가브의 뜻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알았어 가브…, 꼭 환생해서 다시 만나길 바래….”
리마의 말을 들은 가브의 영혼은 케이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케이는 주문을 자신의 귀와 입술에 건 후 가브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가브씨, 저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아니에요, 전 가브씨와 테크씨에게 큰 빚을 졌어요. 그리고 리오씨에게도… 아, 용서해 주신다는 말 고마워요. 절대 잊지 않을게요…. 극락왕생 하시길….”
케이와의 대화를 마친 가브의 영혼은 다른 사람들의 주위를 몇 바퀴 돈 후에 공중으로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로드 덕은 계속 리오를 바라보다가 예전에 서적을 뒤지다가 찾아낸 한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신의 무력을 대행하는 자… 절대 악도 아닌, 절대 선도 아닌, 자신들이 믿는 것을, 의(義)를, 인(仁)을 행하는 자….
“…가즈 나이트?”
그러나 그 중얼거림은 누구의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 낮은 음성인 탓이었다. 리오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자신의 머리를 털며 새벽의 공기를 흠뻑 마셔 본 후 돌아서서 동료들에게 말했다.
“자아, 돌아가 볼까 다들?”
리오가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에게 말하자, 일행들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소를 짓던 리오의 표정은 일순간에 살기로 일그러졌고 일행들 역시 흠칫 놀라며 부서진 중앙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뒤로 돌아서며 디바이너에 손을 가져간 채 자세를 취하고 중앙 분수대를 쏘아보았다.
구구구구궁–!
땅에 진동이 시작되었고 그 진동은 점점 파괴력을 더하여 중앙 분수대를 중심으로 바닥을 덮고 있던 돌 블록들을 모조리 부숴버렸고 주위의 가옥들엔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문을 닫은 상점들의 간판들 역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중앙 분수대를 뚫고 나온 검은 물체를 본 리오의 눈빛은 이파리보다 강한 상대를 대면한다는 생각에, 투쟁 본능이 일으키는 흥분감에 푸른 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후훗… 행차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