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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03화


<동천의 가르침>

도연의 하루 일과는 꽤나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운기조식을 마치고 해가 질 무렵까지 주군의 무공수련을 지켜본 다음 저녁에 가서는 장로들에게 가서 무공수련을 한 뒤 시간이 남으면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또 다시 무공수련을 했고 아니면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는 게 다였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도연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의 머릿속으로 막대한 무공지식이 쏟아져 들어와 도연은 기뻐하며 수련을 쌓아갔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포화상태가 되어 주체하지 못하고 삐거덕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장로들은 일년이란 시간동안 도연에게 너무 많은 지식을 주입시킨 탓에 도연의 상태는 점점 더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도연이 이런 지경에까지 도달한 이유에는 도연 자신의 문제가 제일 컸다고 할 수 있었다. 즉! 도연은 자신이 주체못할 정도의 지식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아니 걸러내질 않고 미련하게 모두 수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도연의 무공진전은 갈수록 느려졌고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장로들은 차츰 도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랭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후우!”

운기조식을 마치고 주군에게로 가고있는 도연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근래에 들어서 도연은 운기조식을 할 때마다 단전 부위가 조금씩 아파 오는 것을 느끼고있었다. 주화입마의 초기단계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기초지식이 없는 도연에게 처음부터 절세신공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을 전수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나 다름없었다. 장로들은 욕심이 과한 나머지 도연을 죽음의 강으로 서서히 밀어 넣고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도연이 단전부위의 통증을 장로들에게 말했다면 그들은 즉시 도연의 무공수련을 중단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도연은 곧 그러한 증상이 없어질 것이라 여겨 자신이 맡은 바를 묵묵히 수련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도연을 괴롭게 했지만 그는 애써 털어 내며 주군의 수련장소로 향했다. 일명 기초체력장인 동천의 뒷마당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도연이 동천에게로 가서 그를 불러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인지 전주님께서도 오신다 하여 전주님보다 미리 주군을 데려와야 했던 도연은 곧장 주군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히히히. 옳지 잘한다. 한번만 더 해봐!”

동천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방문 너머 도연에게까지 들렸고 그 뒤를 이어 다소 꺼칠꺼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주이이인니이님.”

“오오, 잘했어! 다시!”

“주이이님이니님.”

“오오, 끝내 줘! 다시!”

“주이이이이님.”

“오오, 짱이야! 다시!”

도연은 이대로 내비둘까 아니면 주군을 부를까에 대해서 약간의 고민을 가졌다. 분명 주군은 화정이의 말을 트이게 하고 있지만 죄송스럽게도 자신이 듣기에는 장난하는 것같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허나,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밖에 누구야? 언놈의 새끼가 알짱거리는 거야?”

도연은 흠칫 했지만 평상시와 똑같이 행동했다.

“주군, 도연입니다.”

“…….”

잠시 말없이 침묵을 고수하던 동천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왜 왔냐?”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황당한 전개였지만 이미 내성이 쌓여있었던 도연은 태연하게 자신이 할말만을 이야기했다.

“시간이 되어 주군을 모시러 왔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전주님께서 친히 오시는 날이니 준비가 다 되셨으면 나오시기 바랍니다.”

괜히 반발심에 쓸데없는 잡소리를 늘어놓던 동천도 그제야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맞다! 오늘이 그날이었지? 이런이런!”

속옷 바람으로 화정이와 놀고 있다가 깜짝 놀란 동천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모든 준비를 다 끝마친 동천은 바삐 나가려다 화정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 주인님은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이따가 소연이 오면 잘 놀아라. 알았지? 나 간다.”

화정이도 동천을 따라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것을 본 동천은 왠지 흥이 겨웠다.

“캬! 내가 이 맛에 산다니까? 히히!”

동천은 웃으면서 방문을 나섰지만 정작 나와서는 안색을 굳히고 도연을 꼴아보았다. 동천은 못마땅한 듯 뒷짐을 지고 도연을 향해 위아래로 눈동자를 굴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 안색이 안 좋다? 뭔 일 있냐?”

그냥 해본 소리인지 아니면 알고 한 소리인지 몰라도 주군의 이야기를 듣고 도연은 약간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보다 어서 가시지요. 전주님께서 먼저와 기다리시면 제자 된 입장에서 불경입니다.”

동천은 도연이 경직되나 안되나 그게 그거여서 알아차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았다.

“뭐? 너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거냐?”

순간 도연이 눈을 똑바로 치켜 떴다.

“아닙니다.”

나직하지만 강하게 부정하는 도연의 눈빛에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더군다나 여러 가지 악순환 때문에 지금 도연의 눈은 충혈되 있었으므로 물러난 동천으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즉, 쫄았다는 얘기였다. 감히 무서운 도연의 눈빛과 마주 대할 수 없었던 동천은 그를 급히 스쳐지나가며 짐짓 큰소리로 떠들었다.

“조심해! 알았어?”

“예, 주군.”

기초체력장은 바로 뒷마당이었으므로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였다. 동천이 시간을 다소 끌었음에도 다행히 역천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동천은 도연을 노려보았지만 정작 도연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역천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풀어보겠다고 애를 쓰고있는 중인 것이었다. 동천은 도연이 멍한 눈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대려산을 바라보자 몰래 다가가 도연의 뒤통수를 때리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

‘때릴까, 말까. 때릴까, 말까. 때릴까? 말까?’

“허허, 이미 와 있었더냐?”

‘에이 씨발. 어떤 새끼가…….’

심사가 뒤틀린 김에 한껏 욕질을 하려던 동천은 그 상대가 자신의 사부인 것을 깨닫고 황급히 일그러졌던 안면근육들을 펴냈다.

“사부님 오셨어요? 앗?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보고 놀라하는 제자의 모습에 역천도 깜짝 놀라 물었다.

“제자야. 왜 놀라느냐?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느냐?”

동천은 경악에 찬 얼굴을 하고 말했다.

“10년은 더 젊어 보여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젊어 보인다고 좋아하는 건 여인들만이 아니었다. 특히, 평소 피부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있던 역천으로서는 제자의 아부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 없었다.

“크헤헤헤! 이 사부를 알아주는 것은 역시 너 밖에 없구나! 과연 이 몸의 제자로다! 하긴 피부관리에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얼마냐고? 한 달에 자그마치 금……. 험험! 제자야.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빠졌구나.”

끝에 가서 그나마 정신을 차린 역천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동천과 도연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이란 소리가 나왔다면 적어도 1냥 이상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1냥이라고 친다해도 은자로 치면 100냥이니 실로 역천은 피부관리에 적지 않은 돈을 쏟아 붓고있다는 셈인 것이다. 제자와 도연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하는 것을 목격한 역천은 안되겠다 싶어 먼저 선수를 쳤다.

“제자야. 내 오늘 너를 찾아온 것은 그간의 네 화후를 보건데 실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 다음 단계까지 가르쳐주기 위해서이다.”

“예에? 그게 정말이에요, 사부님?”

동천이 좋아서 폴짝 뛰었지만 역천은 되려 굳은 표정을 보였다.

“본문의 경공술은 1단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2단계를 같이 병행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허나, 주의할 점은 1단계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3단계까지 넘보다간 네 둘째 사형과 셋째사형의 꼴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 좋아라 듣고있었던 동천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며 긴장이 한껏 배인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럼, 그분들은 모두 한 단계가 아니라 두어 단계를 모두 병행하여 무공을 익히시다가 반신불수하고 다리 병신이 되셨던 거였어요?”

역천은 자못 비통한 신색을 지었다.

“그렇지. 그 멍청한 놈들이 1단계를 다 끝마치기도 전에 2단계와 3단계, 심지어는 4단계까지 모두 병행하여 익히려다 그 꼴이 된 거란다.”

자신의 생사와 직결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천의 대가리는 마차 바퀴처럼 떼굴떼굴 잘도 굴러갔다. 그때 동천은 사부의 말에서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사부님. 사부님께서 사형들에게 분명히 주의를 주셨을 텐데 어찌하여 사형들은 무리하게 경공술을 익히다 그렇게 된 거죠?”

동천의 물음에 역천의 안색이 약간 펴졌다.

“좋은 질문이다. 마침 이 사부도 그 얘기를 해주려고 하던 참이었다. 이 귀영신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4단계 모두가 성질이 각각 달라서 따로 따로 익혀도 될 것 같지만 실상 본문의 신법은 1단계에서 4단계까지 정교한 고리로 연결되어있단다. 그래서 1,2단계까지는 병행하여 익혀도 별 탈이 없지만 1단계도 성취 못했으면서 3단계까지 욕심을 낸다면 몸에 무리가 온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1단계를 완성하면 2단계와 3단계를 병행할 수 있고, 2단계까지 완성하면 3단계와 4단계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사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다음 단계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들이 보기에는 1단계나 2단계를 다 연마하지 못했더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충분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란다. 물론 그놈들도 처음에는 두려웠겠지. 이 몸의 경고가 있었으니까. 헌데 자기 몰래 해보니까 괜찮았던 거야. 병신들. 처음이니까 괜찮지. 무공이란게 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녹록한 건 줄 알어? 그럴 거면 아예 지들이 창안해서 뜀박질을 해보지 그래? 그 놈들은 내 제자들도 아냐. 셋째 그 자식은 다리 병신이 좀 되면 어때? 그런다고 내가 지를 어떻게 했어? 왜 자살하고 지랄이야? 둘째 놈도 그래. 반신불수 되었다고 뛰쳐나갔다가 근 15년만에 들어와서 고작 하는 말이 잘못했슈?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알고 보면 참으로 불쌍한 분이야. 첫째 놈 뒈졌지. 둘째 놈 반신불수. 셋째 놈은 또 자살. 크흑! 그나마 넷째인 네가 있으니까 오늘날 내가 그나마 웃고 산다만은……. 아이구, 종식아!”

이 상황에서 종식이만 찾는 것을 보면 그래도 가출했던 둘째와 자살했던 셋째보다는 첫째가 제일 미련이 남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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