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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16화


수련은 단호히 말했다.

“물론이야.”

동천은 내심 잘 걸렸다고 생각했다.

“흐응. 좋았어. 헌데 말야. 그냥 하면 좀 재미없지 않겠어? 그러니까 우리 내기를 해볼까?”

“내기? 무슨 내기?”

“무슨 내기냐 하면, 너하고 나하고 대련을 해서 이긴 사람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 거야. 물론 이긴 자가 억지 부탁은 못하고. 어때? 해볼래?”

수련은 별로 내키지 않는 제안이라 섣불리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자 동천이 약간 비꼬듯이 말했다.

“자신 없으면 말고.”

또다시 기름을 끼얹는 동천의 행동에 수련은 이성의 끈을 놓쳐버렸다.

“뭐? 누가 자신이 없대? 해! 하면 될 것 아냐! 하자고!”

동천은 수련이 흥분해서 날뛰는 걸 보고 실실 미소를 쪼갰다.

“히히,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고. 히히히! 나가자.”

자신의 방에서 목검을 들고나온 수련은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불길한 느낌을 쉬이 지우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동천의 뒤를 따라 나왔다. 다쳤던 발가락이 다 나았던 동천은 신발 안에서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준비운동을 시켰다. 동천의 준비운동이 다 끝나갈 무렵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대던 수련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승패는 어떻게 정하지?”

동천은 두 발로 통통 뛰면서 대답해주었다.

“간단해. 넌 네 검법으로 나를 때리면 내가 지는 거고, 난 신법으로 널 제압하면 내가 이기는 거야. 네가 조금 유리하긴 하지만 내가 남자니까 그건 감안해줄게. 됐어?”

거리를 두고 목검으로 한 대 때리는 것과 신법을 발휘해 근접전을 시도하는 것을 놓고 보자면 확실히 수련이 유리한 입장에 서 있었다. 이에 은근히 후회하고 있었던 수련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래. 난 별 이의가 없어. 그런데 단판승부야?”

“물론이야. 이제 시작할까?”

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작!”

동천은 그녀의 입에서 시작 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약간 거리를 띄운 후 수련의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며 여유 있게 행동했다.

“히히, 너 긴장하고 있구나? 몸이 굳었는걸?”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집어낸 동천의 지적에 수련은 반발적으로 소리쳤다.

“야! 말 걸지 마! 무공이 무슨 말로 되는 줄 알아? 에잇!”

흥분한 수련은 성급하게 옥로무녀검법의 1장 1절을 시도했다. 10년의 내공밖에 없었던 수련은 옥로무녀검법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기타의 기본 검법을 시도했어야 했다. 1장 1절을 제대로 시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년의 내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여태껏 사정화가 보내준 무공기서들을 읽기는 했으나 실상 그녀가 배우고 익힌 건 이 옥로무녀검법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뭔가 나오겠지.’ 하고 있었던 동천은 실소가 절로 나왔다. 동천은 수련의 검을 가볍게 피하며 말했다.

“야, 너 지금 장난하는 거지? 그렇지?”

동천이 여유 있게 피한 후 자신을 놀린다고 오해한 수련은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찔러 들어갔다.

“그렇다! 어쩔래? 에잇, 맞아라!”

동천은 피식 웃었다.

‘놀고 있네…….’

목적을 위해 대련을 하는 거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력 차이가 나도 너무나도 났다. 동천은 자신의 신법에 만족해하는 반면, 싱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동천은 시간을 끌 것 없이 얼른 끝내기로 했다.

“아앗?”

수련은 한순간 두 개로 늘어난 동천의 신형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하다 바로 코앞에까지 근접한 동천을 발견하곤 뒤늦게 목검을 휘둘렀으나 허리의 뜨끔함을 느끼고 풀썩 쓰러져버렸다. 손쉽게 이긴 동천은 수련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킬킬거렸다.

“우히히히! 졌지?”

수련은 분한 마음에 아무런 말없이 동천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눈시울을 붉히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으앙! 엉엉엉!”

“어, 어라? 야! 왜 울어?”

동천은 당황했다. 소연이 운다면 울지 말라고 몇 대 때려주면 그만이었으나 수련은 사정화의 직속 하녀였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련이 사정화에게 이를까 봐 조마조마한 동천이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수련이 고대로 사정화에게 말해줄 리도 없고 또 사정화가 자신의 말을 믿어줄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골치 아픈 년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재빨리 수련의 혈을 풀어준 다음 도망가며 말했다.

“수련아, 나 잘못 없다. 너도 잘 알지? 헤헤, 그럼 안녕!”

동천은 수련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신법을 발휘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는 쫓기듯 마차에 올라탄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괜히 재료 구하러 갔다가 큰일 날 뻔했네. 그건 그렇고, 이제 그년은 물 건너갔으니 어떻게 한다? 에이 씨! 그년도 그래. 졌으면 깨끗이 인정해야 될 거 아냐? 꿇리니까 질질 짜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해? 아주 싹이 보이는 년이라니까?”

동천이 약왕전으로 돌아왔을 땐 정오가 거의 다 되었을 때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동천은 마지막 재료를 못 구해서 머리를 싸맸다.

“그냥, 사부님께 다 말씀드리고 여자애 하나 보내달라고 할까? 아냐. 그렇게 되면 사부님께 완성된 단환을 적어도 1개 이상 줘야 할 테니 안돼. 하루치 분량으로 만드는 거라 많이 만들어져봤자 2개가 고작일 테니까…….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동천이 침대에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소연이 문을 두드린 후 조심스레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다.

“주인님. 청뇨로명단을 만드시기 위해 10세의 여아를 구하신다는 게 사실이에요?”

동천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어? 너 어디서 들었냐?”

그렇다는 우회적인 답변이었다. 사실이라는 게 명백히 드러나자 완고한 성격의 소연은 동천을 설득하려 들었다.

“제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셨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용독경을 보니까 그, 그러니까, 오줌을……. 어쨌든 그것을 받아서 만든다는 것은 요사스러운 방법이에요. 그만두세요.”

내심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던 동천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적잖이 실망한 눈치를 보였다.

“뭐야, 그 따위 소리를 하려고 온 거야? 쳇! 그런 거라면 듣기도 싫으니까 그만 나가.”

소연은 혼나는 게 무서우면서도 주인님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이미 악에 물들 대로 물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는 아닌 모양이었다.

“주인님. 제발요. 만약, 소문이 퍼져나가면 주인님의 평판이 안 좋아지신다고요.”

동천이 어디 주위의 평판을 의식하고 살았던 놈인가? 동천은 같잖게 들리는 소연의 설득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됐어. 그만해. 너 한번만 더 지랄이면 맞는다!”

“주인님. 그러, 아? 아아…….”

소연은 말을 채 잇다 말고 한 손으로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그걸 본 동천은 이상한 예감에 소연의 눈치를 자세히 살폈다.

“왜 그래? 요새 변비야?”

대번에 얼굴을 붉힌 소연은 은근히 느껴지는 하복부의 통증을 참으며 대꾸했다.

“아니에요. 벼, 변비라뇨.”

소연이 쪽팔림을 참아가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지만 동천에겐 소연의 대꾸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 대신 동천의 시선은 소연의 하복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저게 뭐랴?’

동천은 자신이 뚫어지게 보고 있는 부분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제야 주인님의 음흉한(?) 시선을 눈치챈 소연은 재빨리 몸을 틀어 도망가려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무언가가 퍽! 터져버리는 기분 나쁜 느낌에 황급히 다리를 오므리며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무언가가 자신의 치마를 스멀스멀 물들여 가는 것을 보았다. 뭐라고 말을 해보고 싶었으나 몸이 덜덜 떨리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동천은 소연이 아니었다. 동천은 대경해 하며 소리쳤다.

“피, 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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