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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25화


암흑마교에는 사전(四傳)이 존재했다. 역천의 약왕전, 혈귀옹의 만검전, 유혼의 아수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예(胱刈)의 독전(毒傳). 이렇게 사전이 정 사각형으로 암흑마교를 든든히 받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원만한 관계였으나 유독, 독전과 약왕전만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서로 길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확연히 다르다 보니 생겨난 결과였는데, 되 물림의 영향 탓인지 아무리 활발한 역천이 친근하게 다가와도 독전의 광예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예가 역천을 꺼리는 이유는 그의 실력이 역천보다 한 수 아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역천을 능가하기 전까진 바깥출입을 자제하겠다 마음먹고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호오? 이것들을 섞으면 이런 결과가 나온단 말인가?”

자신이 섞어 놓은 독초들의 배합을 조절하며 흥미로운 눈길로 주시하던 광예는 어느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영향권 내에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누구냐.”

크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음성이 울려 퍼지자 멀지감치서 한 사내가 부복을 했다.

“속하 이옵니다.”

목소리로 누구인지 깨달은 광예는 굳이 신형을 돌리지 않은 채 방금 드러난 연구 결과를 옮겨 적기만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마친 광예는 그제야 부복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전리염(電利炎). 네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더냐. 네가 이곳에 올 정도라면 적어도 화급을 요하는 일일 터.”

전리염이라 사내는 바닥에 머리를 찧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약왕전의 이 공자께서 급히 보내달라는 독초가 있는데, 그게 워낙 귀한 것이라 허락을 받기 위해 속하가 온 것입니다.”

광예는 자못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공영수가?”

“옛!”

“그래, 무엇이더냐.”

전리염은 품속에서 조그마한 서찰을 꺼내 두 손에 받쳐 공손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광예는 허공을 격하고 서찰을 끌어당겼다. 반으로 곱게 접혀있는 것을 펴서 쭈욱 읽어 내려가던 그는 중간 부분에서 자못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나중에 가서는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천갈초(天喝草)를 달라니, 이 녀석도 제법 간이 커졌군.”

천갈초. 서역의 오지에서만 자란다는 이 독초는 다면양류만큼 귀하면 귀했지 그 이하는 아닐 정도로 희귀한 독초였다. 왜 굳이 비교를 할 때 다면양류를 거론했냐하면 다면양류와 천갈초는 서로 상극이기 때문이었다. 즉, 중화 작용을 하는 게 다면양류라면 천갈초는 거의 천여 가지나 되는 약초와 독초들을 파괴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 이름이 천 가지를 꾸짖는다는 이름으로 명명되었겠는가? 처음 광예가 천갈초를 달라는 부분을 읽었을 땐 정신 나간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천갈초가 필요한가를 서술해놓은 부분을 읽고 나서야 생각을 뒤바꿨다. 그 내용인즉, 자신의 사제가 다면양류를 사용해 단환을 만들어서 사부인 역천에게 주기로 했는데 그것을 망쳐놓기 위해서는 다면양류의 상극인 천갈초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광예는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다.

-천갈초를 몰래 섞어 넣어 만들어진 단환은 분명히 모양새는 갖추었으나 효력은 전혀 없는 단환이 될 겁니다. 더군다나 천갈초가 들어간 이상 어떠한 부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만약 사부님께서 그것을 드셨을 경우……. 더 이상 설명을 안 드려도 무슨 뜻인지 아실 줄로 아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좋은 회답을 바랍니다.

광예는 서찰을 한 손으로 움켜쥔 후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첫째는 그렇다 치고, 제 아래인 셋째를 그렇게 보내버리더니, 이제는 넷째까지 손을 쓴다? 후후후, 이놈이 생각 외로 제법이군. 재미있어.”

말을 들어보니, 광예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

청뇨로명단을 만들 때에는 오줌을 끓이는 불의 세기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물론, 액체 성분을 끓이는 다른 것들도 그러했지만 특히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이 단환을 만들 때였다. 낮에는 양기가 강했으므로 은근히 끓이며 졸지 않게 이슬물을 간간이 부어주어야 했으며, 반대로 밤에는 음기가 강해서 불을 강하게 해야만 했다. 이는 조금만 한눈을 팔았을 시 단환이고 뭐고 끝장나는 것이므로 단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동천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아까 낮부터 자정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내내 불만 때우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씨팔! 이걸 다른 인간들에게 맡길 수도 없고. 온다던 감송도 안 오고. 으으, 좆같다.”

동천은 걸쭉해진 액체를 나무 막대로 휘휘 저으면서 고달픈 자신의 신세를 음미(?)하고 있었다. 동천은 그러던 중 귀를 쫑긋 세웠다.

“누가 왔어?”

감송이길 바라며 물어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아니었다. 곧이어 동천의 시야에 잡힌 것은 자그마한 물통을 들고 온 소연이었다. 그걸 본 동천은 인상을 팍 구겼다.

“뭐야? 또 쌌어?”

소연은 자신이 죄를 지은 양, 기어들어갔다.

“예…….”

동천은 소연이 들고 온 오줌 통을 보고 버럭 화를 냈다.

“제길! 그년은 거시기가 뚫렸나? 왜 심심하면 쏟아내고 지랄이야!”

처음 수련이 오줌을 자주 쌌을 때는 좋았다. 아주 좋았다. 많이 쌀수록 단환의 부피가 점점 늘어나게 되고, 운이 좋으면 한 개 더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동천의 기쁨은 여섯 번째가 되면서 점차 시들어가더니 종래에는 고통으로 바뀌었다. 이에 소연은 더더욱 고개를 못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그만 싸라고 하니까, 나오는 걸 어떻게 하냐고 하길래…….”

탕관에서 약간 비켜선 동천은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됐어! 여기다 부어!”

“네에.”

소연은 조심스레 다가가 오줌물을 부었다.

촤아아!

약간 검은 끼를 내포한 오줌이 시원하게 쏟아져 들어갔다.

‘으으, 좆만한 년이 더럽게도 많이 쌌네.’

다 붓고 난 소연은 동천의 눈치를 보았다.

“저기,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생각 같아서는 이 모든 일을 소연에게 떠맡기고 싶었다. 허나, 그렇게 했다가 실패를 한다면? 동천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됐어. 됐으니까 가서 송 영감 좀 불러와. 씨팔, 온다고 해놓고 왜 안 오는 거야?”

“그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소연이 가고 나서 동천이 묽어진 내용물을 반각여 동안 젓고 있을 때, 드디어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동천은 기쁜 마음에 큰소리로 외쳤다.

“오오! 왔어? 빨리 들어와!”

밖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사람은 그 소릴 듣고 재빠르게 달려왔다.

“주군, 무슨 일이 있습니까?”

“…….”

도연이었던 것이다. 동천은 하마터면 계속 그러고 서 있을 뻔했다. 지속적으로 저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동천은 황급히 저어댔다.

“크, 큰일 날 뻔했다. 야! 넌 또 왜 왔어? 낮에 좀 있었으면 됐잖아!”

도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잘하고 있나 해서 왔습니다.”

너무도 황당한 소리에 몸을 휘청거린 동천은 그나마 휘젓던 막대 때문에 창피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는 벌개진 얼굴을 하고 소리쳤다.

“으으, 잘하고 있으니까 꺼져! 꺼져 이 새꺄!”

잠시 동천과 눈싸움을 하던 도연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러고는 동천의 욕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연의 뒷모습을 씹어먹을 정도로 노려보던 동천은 막대를 휘젓는 동작을 반복해가며 투덜거렸다.

“오라는 늙은이는 안 오고, 애새끼만 오면 어쩌겠다는 거야? 열 받는데 단환이고 뭐고 확 엎어버려?”

“허허허! 왜 그리 화가 나셨는지요.”

깜짝 놀란 동천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동천이 그토록 기다리던 감송이 오색빛깔 선연한 광채를 뿌리며(동천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오오! 감 노인! 잘 왔어! 잘 왔어! 자자, 이거 잡고 빨리 돌려.”

엉겁결에 막대를 건네받은 감송은 막대와 동천을 번갈아 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니, 저기…….”

동천은 해맑게(?) 웃으며 달아났다.

“부탁해! 내일 봐!”

감송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고개를 절레 내두르던 감송은 내용물이 굳어가는 것을 보고 재빨리 손을 썼다.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는 성공했군. 허허!”

사실 감송은 하루 동안 모른 척한 뒤, 이런 작업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찾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방금 소연이 찾아와 ‘주인님께서 다 죽어가요.’라고 말해서 온 것이었는데 직접 대하니 팔팔하지 않은가?

“허허허!”

감송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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