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49화
“사실, 저희 도련님께서는 말투가 고약한 사람들과 잠깐 사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거친 말투가 입에 배어 가끔가다 도련님도 모르게 그런 말씀을 하시죠. 또한 아까 전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그곳에 중 대인께서 계실 줄 그 누가 상상을 했겠습니까? 나라님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분을 욕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거늘 방금 상황이야말로 그러한 것일 겁니다. 그러니 대인께서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해주시지요.”
“…….”
중소구는 너무도 논리 정연하고 그럴듯한지라 도연의 말이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동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내심 도연을 칭찬하는 동시에 질투심이 일어나 흉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별걸 다 가지고 질투를 하는 동천이었다.
“해명이 되었는지요.”
그제야 중소구가 본래의 자신을 되찾았다.
“아? 하하. 되었네. 헌데 말일세. 그건 그렇다 치고, 저놈이 히히히! 거리며 요사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것은 또 뭔가?”
도연은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잠깐 사이에 대답을 해주기에는 좀 벅찼던 것이다. 사실, 방금 것은 동천이 쫓긴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물쩍 넘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군을 쫓아오면서 그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던 도연은 ‘이번에도 잘 말해주겠지.’라는 동천의 바람을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도련님께서 예전에 한번 버릇을 들이셨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허나, 나쁜 뜻으로 그런 웃음을 지으신 건 아니기에 이번 것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중소구는 도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단 말인가?”
“예.”
중소구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동천을 주시했다. ‘그만 지껄이고 빨리 갔으면…….’ 하고 있던 동천은 미친놈이 자신을 노려보자 두려운 나머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중소구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자신의 죄는 뉘우치는 듯하구만.”
동천은 옳다구나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나 뉘우치고 있다. 그러니까 아가리 그만 놀리고 제발 꺼져라. 응?’
도연은 동천을 바라보며 쐐기를 박았다.
“도련님, 뉘우치고 계시지요? 다시는 그렇게 웃지 않을 거지요?”
눈치가 빠른 동천은 얼른 동조하고 나섰다.
“그, 그래! 네 말이 맞아.”
말을 해놓고도 좀 모자란 감이 있다고 생각한 동천은 중소구에게 인사까지 올렸다.
“중 대인님,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대인의 인격에 감동받아 다시는 개에 관련된 것이나 히히거리며 웃는 버릇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대인의 덕분이니 앞으로 대인의 앞길에는 무한한 영광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무한한 영광이 있을 겁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중소구는 아까와는 달리 동천의 아부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큰둥한 신색을 내비쳤다.
“흥! 입에 발린 소리는 잘하는 놈이로다.”
동천을 쏘아보던 그는 도연에게 푸근히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겠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도연은 비록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왠지 모를 정감을 느끼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대인.”
이에 반해 동천은 다시 오면 죽여버릴 거라고 생각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잘 가세요.”
중소구는 도연의 인사만을 받고 골목에서 약간 치우쳐진 공터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동천은 그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휴우, 저 미친놈 때문에 십년감수했네.”
그때 간 줄 알았던 중소구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야.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야. 사람의 나쁜 버릇이 어찌 한순간에 사그라지겠는가? 내 대인이 된 기념으로 저놈의 버릇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봐주리라.”
동천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예에? 뭐라고요?”
중소구는 뚱한 얼굴을 했다.
“이놈아. 못 들었느냐? 네놈의 버릇은 골수에 파묻혀서 쉽사리 제거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 잔말 말고 한 1년만 내 밑에서 지내거라. 그리하면 남들에게도 떳떳한 시선을 받으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느니라.”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무는 법이다. 아울러 성깔 있는 동천이 이대로 물러나겠는가? 부득, 이를 악문 그는 중소구를 노려보며 천천히 허리띠를 풀렀다.
‘개놈의 새끼. 네가 과연 나를 쫓아올지 두고 보자.’
보아하니 전 내공을 사용해 도망가려는 것 같았다. 동천이 감히 도망갈 생각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의 사부인 역천의 말 때문이었다.
-지금의 네 성취는 가히 독보적이로다!
동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부가 독보적이라 했으니 제자인 그가 의심을 할 리 없었다. 물론, 그때 역천이 한 말 중에 ‘네 나이에 비해’라는 대목이 빠져있었지만 말이다. 그런고로, 아까 자신이 잡혔던 것은 내공의 부족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동천은 전신으로 퍼지는 내공의 충만함을 느끼며 나직이 웃었다.
“히히. 이히히.”
그 웃음에 중소구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어허? 역시, 아직도 못 고쳤도다!”
동천은 상관않고 더욱 크게 웃었다.
“히히히! 그래 나 못 고쳤다, 이 개 잡종아! 그래서 네가 어쩔 건데? 응? 이히히히!”
자신이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한 동천은 귀영신법을 이용해 중소구와는 정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주군!”
“엇? 저놈의 신법이 잠깐 사이에 저리도 늘다니!”
중소구의 신형은 놀람을 터트리는 순간 움직이고 있었다. 동천도 빨랐지만 그도 못지않은 움직임이었다. 이렇게 되면 남아있는 것은 도연뿐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배어있었다. 주군이 허리띠를 매고도 겨우 따라붙었는데 풀고 도망을 갔으니 어찌 쫓는다는 말인가. 그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인지 멀리서 중소구의 전음이 들려왔다.
<자네는 기다리고만 있게. 이 대인이 가서 잡아옴세. 으하하!>
꽤 멀리 있는 것 같은데 도연에게 정확히 전음을 날리는 것으로 보아 보기보다는 상당한 실력자인 듯했다.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저런 고수를 만나다니……. 역시, 세상은 넓구나.”
탄식 비슷한 탄성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길이라도 엇갈리면 큰일이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참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신법 수준에 대해서 심각한 고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3개의 그림자가 내려앉은 것도 그때였다.
“히히, 쫓아오지도 못하는 자식이 까불고 있어.”
동천은 귓가에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것은 동천이 그만큼 빨리 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부와의 약속과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어도 별 불편함을 못 느껴 그대로 놔둔 것도 있지만 동천이 암흑마교에서 도망치는 동안 허리띠를 풀지 못했던 것은 전적으로 도연 때문이었다. 그가 허리띠를 착용했을 때, 도연과의 내공 차이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운용결(運用訣)의 묘리가 달라 몇 단계 앞서나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도연의 사부들이라 할 수 있는 장로들의 신법 수준이 처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동천과 도연이 차이가 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 동안 동천은 신법에만 매달렸고, 도연은 무수한 무공 지식과 검법을 병용해 신법을 익혔던 관계로 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이쯤이면 그 자식도 포기했겠지? 후아, 간만에 힘 좀 썼더니 피곤하네.”
동천은 경공을 전개함에 있어 힘만을 강조한 탓에 급속하게 빠져나가는 진력을 못 이겨 멈춰 서야만 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동천의 경공은 영원히 단시간용이리라.
“으하하! 고작 여기까지밖에 못 도망갔느냐?”
“으엑? 버, 벌써 쫓아왔단 말야?”
동천은 자리에 앉으려다 벌떡 일어나 튀었다. 뒤를 돌아보자 자칭 대인이라 부르는 중소구가 기쁜 표정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어린놈이 의외로 빨라 놓친 줄 알았는데 또 의외로 얼마 못 가 쉬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은 잡히면 단단히 각오하거라!”
두 사람의 차이는 점점 좁혀져갔다. 한쪽이 지쳐가는지라 당연한 결과였다.
“헥헥, 대! 대인! 잘못했슈!”
그리고 동천이 돌변한 것 또한 당연한 결과였다. 중소구는 어린놈이 지쳐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다.
“입안에 사기(邪氣)가 낀 어린놈아! 그래봤자 늦었다!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면 지금 멈추는 게 나을걸? 으하하!”
‘개놈의 새끼! 너 같으면 때린다는데 멈추겠냐? 으으, 그건 그렇고 예전에는 몰랐는데 왜 이리 내력 소모가 심한 거야.’
당연히 예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그가 언제 이렇게 오랫동안 경공을 시전한 적이 있었던가?
“셋을 세겠다. 흐흐, 셋을 셀 동안 멈추지 않는다면 어디 부러질 각오를 하거라. 하나! 둘! 세에…….”
“머, 멈췄습니다! 대인 어른 멈췄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