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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05화


“왜 그래 노엘? 설마 춤을 못 추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요 공주님. 그냥 머리가 아파서‥.”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 노엘은 춤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춤과 노래, 운동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대신 요리와 과학, 마법만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어 하였다.

“응‥그래? 그럼 옷이나 좀 골라줘 노엘.”

이윽고 저녁 만찬의 시간이 되었다. 장내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그 안엔 물론 린스, 리오 등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라세츠까지. 일명 ‘높으신 분들’의 축사가 진행될 무렵, 리오는 혼자 쓸쓸히 서서 사람들만 구경하고 있는 지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이, 그 할아버지는 어디 가고 너 혼자냐?”

지크는 머리를 긁으며 대답해주었다.

“응‥간식이라며 술을 사주시더라고. 난 한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그 할아버지 혼자서 술 한 병을 다 비우지 뭐야. 잔뜩 취하셔가지고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저택에 데려다 드렸지. 아휴‥그 요술 할멈이 어찌나 날 혼내는지‥간신히 도망쳐 왔다구.”

리오는 속으로 불쌍하다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서 있는 관계로 여자들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흐음, 나중에 찾지 뭐. 근데, 루이체가 여기까지 오는데 말썽 안 부렸어?”

리오의 질문에 지크는 잘 됐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해주었다.

“말 마라, 애가 좀 컸다고 막 오빠 머리 위에 기어오르더라구. 하지만 내가 어쩌겠냐, 힘 있는 내가 참아야‥으윽!?”

지크는 순간 짧은 비음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고 지크와 리오의 뒤엔 어느새 루이체와 레이가 서 있었다.

“아하‥참으셨다 이거지? 좋아, 있다가 여관에 가서 좀 보자구 오라버니‥!!”

지크는 루이체에게 꼬집힌 옆구리를 매만지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으이구‥.”

리오는 피식 웃으며 루이체의 옆에 서 있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루이체와는 달리 평상복을 그냥 입은 레이는 계속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레이씨, 아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요.”

그 말을 들은 레이는 리오를 올려다보며 살짝 웃어주었다. 하지만 불안한 기색은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축사가 끝난 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궁중 악단의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은 지크는 자신의 앞에 차려진 푸짐한 음식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헤헤헷‥오늘을 위해서 3일을 굶었다!!”

‘거짓말‥.’

속으로 중얼거린 루이체는 가만히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고 리오는 음식엔 관심이 없는 듯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당히 오랜만이군, 궁중 만찬은. 근데 건달들 때문에 조금 맛이 떨어지는데‥?”

지크는 하던 식사를 멈추고 자신들의 뒤에서 중얼거린 누군가를 쏘아보았고 리오와 루이체 역시 약간 인상을 쓰며 그를 돌아보았다.

“‥라세츠인가 뭔가 하는 제비 아니야? 여왕님이 어떻게 부르셨군‥맘도 좋으셔라.”

라세츠는 피식 웃으며 가만히 앉아있는 레이의 옆으로 걸어가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르며 가까이 붙었고 기습을 받은 레이는 흠칫 놀라며 몸을 피하려 했으나 라세츠의 숙련된 기술(?) 앞에선 피할 도리가 없었다. 케이라면 모를까.

“호오‥모래밭의 진주신가? 동방 아가씨 같으신데 내 자리로 오지 않겠소? 서방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줄 용의가 있는데 말씀이야‥후후훗.”

라세츠의 손은 슬그머니 레이의 몸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레이는 괴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자신이 소리치면 분명 일이 생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손 떼시지‥.”

그 모습을 도저히 보지 못할 성격이었던 리오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라세츠를 향해 말했으나 라세츠는 코웃음을 치며 레이에게만 시선을 던졌다.

파악-!!

“으윽!?”

순간, 다리에 충격을 받은 라세츠는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다리를 친 누군가를 바라보았으나 더 이상의 일은 없었다.

“어라? 째려보면 어쩔 건가, 라세츠·시렌·브리톨 경?”

“‥훗, 죄송합니다 공주님. 사죄드리죠‥.”

린스는 인상을 쓴 채 라세츠를 올려다보았고 라세츠는 쓴 미소를 지으며 리오들이 있던 자리를 슬그머니 떠났다. 린스는 투덜대며 의자를 두 개 빼 리오의 옆에 앉았다.

“쳇, 저 재수 없는 녀석은 변한 게 없네? 언제나 예쁜 여자만 보면 꼬리를 치지. 괜찮아 레이?”

레이는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리오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속으로 미안하다 생각하며 리오는 린스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성에 돌아오시니 기분이 어떠세요?”

린스는 리오의 반응이 별로 변한 게 없자 속으로 실망을 했다. 사실 조금 다른 반응을 원했기 때문에 노엘과 함께 슬그머니 수도로 간 린스였지만 리오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었다.

“쳇‥재미없는 녀석‥기분이야 좋지 뭐, 어떻긴 어때. 근데, 저기 저렇게 예의 없이 음식을 먹는 녀석은‥이익!?”

린스는 지크를 보고서 흠칫 놀랐고 큰 칠면조 구이를 혼자 다 먹어치우던 지크는 린스를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헤헷, 아까 그 동생분 아니신가? 근데 이 나라 공주님이시라니 놀랬어요〜와하하하핫!!”

린스는 리오를 돌아보았고 리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제 형제인 지크라고 합니다. 원래 저런 녀석이니 이해해주시길‥.”

린스는 리오와 지크가 형제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셨군요 리오씨, 공주님이 얼마나 기다리셨다고요.”

역시 평상복 차림을 한 노엘이 레이의 옆에 다가와 앉았고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후훗, 케톤에게 끌려 다니느라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그러세요? 어머, 레이양도 왔어요? 근데, 무슨 일 있었나요?”

노엘은 레이의 표정이 전혀 아니자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었고 린스가 아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라세츠가 다녀갔었어. 그래서 저래.”

라세츠란 이름을 들은 노엘의 표정은 순간 굳어져버렸고 그 모습을 본 리오는 예전에 노엘의 나이트메어 안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까 린스가 말했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이 있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랬군, 그 녀석이 바로 노엘 선생님을‥.’

리오는 인상을 가볍게 쓰며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위 관직인 것 같이 보이는 라세츠를 그냥 건드렸다간 일행들이 곤란에 빠지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있는 수밖에 없었다.

“노엘, 괜찮아?”

“아, 예‥괜찮습니다 공주님.”

노엘은 거의 억지로 웃으며 노엘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는 린스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었지만 리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리오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녹색 칵테일을 마시며 속을 가라앉히기로 하였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자자, 오늘은 린스 공주님이 성에 돌아오신 날이에요. 모두 맘껏 드시고 즐기세요. 그래야 여왕 마마께서도 편하실 것 아니겠어요?”

노엘이 다시 활짝 웃으며 모두에게 말하자 지크가 음식을 다시 먹는 것을 선두로 모두는 다시 분위기를 풀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이와 리오는 노엘이 상당히 고생을 하는구나 생각을 하며 자신들의 기분도 풀어보기 시작했다.

“음‥레이양, 동방에선 무도회가 없죠?”

리오의 물음에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희들이나 무녀들이 의식을 위해 춤을 추는 것 외엔 서방의 무도회와 같은 개념의 축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어울려 벌이는 축제는 있지요. 이 무도회처럼 사람을 가리는 것이 아니랍니다. 자유도가 상당히 높지요.”

그 말을 들은 리오는 턱을 괘며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흐음‥그렇다면 무리겠군요.”

레이는 눈을 약간 크게 뜨며 리오에게 물었다.

“예?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나중에 레이씨랑 한번 춤추고 싶었는데‥무리일 것 같군요. 후훗‥.”

그 말을 들은 린스는 순간 눈을 부릅뜨며 리오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미소를 지은 채 린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린스는 갑자기 뭐라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픽 돌리고 말았다.

‘칫‥그렇게 보면 화가 가라앉잖아‥!!’

“린스, 여기 있었구나.”

린스는 자신을 찾아온 미네아를 돌아보며 다시 활짝 웃어 보였고 일행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미네아와 베르니카는 옆의 빈 테이블에 앉았다.

“자아‥조금 있으면 무도회가 시작될 텐데, 저하고 춤추실 분 안 계신가요? 라세츠 후작님께서 댁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러는데‥.”

리오는 손을 들 수 없었다. 아니, 들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던 지크는 옆에서 누가 쿡 찌르자 얼굴을 구기며 뒤를 돌아보았고 곧 미소를 짓고 있는 미네아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설마 저하고요?”

미네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지크는 얼른 포크와 나이프를 식탁에 놓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헤헷‥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미네아님. 이 지크가 잘 모시지요.”

그러자 루이체는 깜짝 놀라며 지크에게 전음을 이용해서 물어보았다.

<이런 곳에서 추는 춤 출 줄 알아?>

<그냥 손잡고 돌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걱정 말아라, 난 빨리 배우니까.>

루이체는 곧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쉬었고 지크는 과일 주스로 입가심을 하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흐흥‥그럼 난 당연히 꺽다리랑 춰야 하겠지. 호호호홋‥!”

린스는 리오와 팔짱을 끼며 웃기 시작했고 리오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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