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37화
“으‥저 녀석 너무 심하게 하잖아‥!”
린스는 케톤이 쓰러진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자 그렇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이론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크크 섬‥상당히 봐준 거라고 공주. 리오 녀석이 칼등으로라도 저 얼간이를 진짜로 치게 되면 몸이 충격에 뜯겨나가. 그리고 지금 방금 한 공격의 진짜 파워는 저 쓰러진 얼간이를 바닥에 붙여 육포로 만들어 놓고도 남을 정도지. 크 섬‥오해하지 마.”
바이론의 사실적인 묘사가 곁들여진 말을 들은 린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속으로 투덜댈 뿐이었다. 린스가 아무리 억센 성격이라도 바이론이 인정사정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소리칠 수는 없었다.
“으, 으으윽‥!!”
어느덧 정신을 차린 케톤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공중에 올려쳐지거나 바닥에 떨어뜨려진 기억이 없었다. 리오에게 등을 맞고 날아갈 때부터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계속할 텐가 케톤?”
리오의 목소리는 케톤의 정신을 번쩍 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육체는 따라주지 않았다. 케톤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위해 오른손을 힘겹게 들어 보였다.
“기권입니다, 심판.”
선수 대기실에도 또 한차례 회의를 하던 워닐은 12 신장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대충 말해준 후 오늘 벌어질 경기에 대해 충고를 막 시작하려 했다.
“오늘은 가즈 나이트 두 명과의 대결이 있다. 만약 같은 신장들끼리 붙게 된다면 대충 싸우다가 서열이 낮은 신장이 기권을 하도록.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각오해라.”
“예!”
말을 마친 워닐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신장들에게 나가자는 말을 하려 했다. 그때, 경기 정보 수집차 밖에 나가 있던 12 신장 니마흐가 급히 들어오며 워닐에게 인사를 올린 후 초조한 목소리로 워닐에게 말했다.
“워닐님,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워닐은 인상을 찡그리며 니마흐를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가.”
니마흐는 한숨과 함께 자신이 본 것을 얘기했다.
“리오·스나이퍼가 기권했습니다.”
케톤은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이미 압도하고 있는 상태의 리오가, 한 대도 맞지 않은 그가 갑자기 기권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글자가 떠올라 있는 케톤의 표정과는 달리, 리오는 빙긋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심판도 리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쨌든 기권 선언이었기 때문에 심판은 즉시 케톤의 승리를 외쳤다. 리오는 피식 웃으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케톤에게로 걸어가 그를 부축해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키가 맞지 않아 케톤은 리오의 어깨에 걸쳐진 오른팔이 아팠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왜, 왜 기권 선언을‥!?”
“응? 음‥별거 아니야, 4연속 우승을 도와주려고.”
리오가 그렇게 말하자, 케톤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이유를 물으려던 케톤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며 생각했다.
‘아니야, 리오씨 정도라면 생각이 있어서 이랬겠지. 나중에 물어보자.’
“뭐? 리오가 졌어!? 아니 도대체 어느 정도의 녀석이길래 그 녀석이 뻗는단 말이야!! 누구야 루이체!!”
늦잠을 자느라 경기장에 늦게 도착한 지크는 루이체에게 리오의 패배 소식만을 접하고 펄쩍 뛰었고 루이체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케톤군에게 패했어.”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지크는 가만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루이체에게 다시 물었다.
“케톤? 기사 케톤? 그 샌님?”
“응.”
가만히 루이체를 바라보던 지크는 곧 피식 웃었고 루이체 역시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다 지크가 갑자기 루이체의 목을 팔에 끼고 조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 감히 오빠와 농담하자는 거냐!!! 어서 바르게 불지 못해!!!!”
“아, 아야얏!! 진짜라니까!!! 어서 목 풀지 못해!!!”
“진짜라고? 너 어렸을 때처럼 나한테 볼기를 맞고 싶어서 이러니!! 리오 녀석이 미쳤으면 미쳤지 왜 그런 희끄무레한 샌님에게 패배를 당해야 하냐고!!!! 그놈이 무슨 오딘이냐?”
“저어‥.”
그때, 누군가가 지크의 등 뒤에서 그를 불렀고, 지크는 루이체의 목을 계속 조이고 있는 상태로 인상을 쓴 채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어, 케톤?”
케톤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고 지크는 루이체의 목을 풀어주며 케톤을 바라보았다.
“너, 진짜로 리오를 이겼냐?”
케톤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지크는 그러면 그렇지 하며 목을 매만지고 있는 루이체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케톤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이기긴 이겼지만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리오씨가 기권을 하셨거든요.”
지크는 다시 케톤을 돌아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기이권(기권)–!?”
지크는 곧바로 리오가 있을 귀빈석으로 뛰었고, 문을 벌컥 열어젖힌 지크는 다리를 꼰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리오에게 다짜고짜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이! 너 기권했다며?”
리오는 지크를 스윽 돌아본 후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었어? 그건 그렇고 일찍 좀 일어나, 그곳에서 나오는 버릇이 또 나오기 시작한 거냐.”
경기를 지켜보던 린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지크를 돌아보고 중얼거렸다.
“‥저 회색 인간에다가 돌머리까지 가세했군‥. 피곤하다니까‥.”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지크는 리오에게 계속 묻기 시작했다.
“아니, 네가 아무리 저 샌님하고 잘 아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12 신장들이 날뛰는 이 마당에 네가 빠지면 어떡해? 이유라도 있는 거야?”
리오는 슬쩍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너도 결승전에서 케톤에게 져줘야 할 거야.”
“무어라!?”
지크는 그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아직 리오의 얘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음‥뭐라고 할까? 굳이 내가 경기에 꼭 낄 필요는 없어서 그랬다고나 할까? 내가 만약 케톤을 이겼다 해도 16강 경기와 8강 경기엔 12 신장을 만날 수 없어. 12 신장들은 너와 바이론이 속해 있는 그룹에 몰려있지. 그래서 너와 바이론은 첫 경기부터 12 신장들과 싸워야 해. 난 12 신장들과 싸울 뿐이야, 우승할 생각은 없어. 솔직히 너와 바이론도 그렇잖아, 안 그래?”
바이론은 말없이 킬킬 웃을 뿐이었고, 지크는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리오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12 신장 중 가장 강하다는 워닐 녀석이 초반에 기권을 했어. 그 녀석 따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해. 나라도 자유로워야 그 녀석을 막겠지. 그리고 공주님을 지키는 건 너와 바이론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해. 뭐, 어차피 공주님은 표적에서 제외된 듯하니 문제는 없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은 지크는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는 자리에서 일어서 지크의 어깨를 툭 쳐준 후 린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이 녀석도 왔으니 그렇게 불안해하시지는 마세요. 전 이만‥.”
“이잉?”
린스는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고, 리오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아직은 도망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요.”
린스는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포옥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수고해.”
“예.”
짧게 대답한 리오는 곧바로 귀빈석을 나섰고, 지크는 린스의 바로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린스 역시 쓰디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크는 투덜대듯 린스에게 말했다.
“표정 풀어요, 변비 환자도 아니고‥쯧.”
“흥, 너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