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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43화


리오는 공작의 집 정원에 나와 전에 자신과 루카의 싸움 이후 겨우 복구가 된 꽃밭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망토와 무장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왠지 불안하군‥.”

별 생각 없이 중얼거린 리오는 한숨을 쉬며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누군가의 인기척이 뒤에서 느껴왔고 리오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큰 키의 여성이 밖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 베르니카 단장님?”

리오가 먼저 자신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자, 베르니카는 멀쓱한 표정을 지으며 열려 있는 정문을 통해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 뭐 하세요 리오씨, 경기장엔 구경 안 가시나요?”

리오는 베르니카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없어도 충분히 잘들 해줄 거라 생각해서요. 단장님은 어쩐 일로 공작님 댁까지 오셨지요?”

베르니카는 엄지손가락으로 코끝을 부비며 대답해주었다.

“아‥그냥, 여기 사시는 아주머니들을 뵈러 왔어요.”

리오와 베르니카 사이엔 그 이후 잠시간 말이 없었다. 어색함을 느낀 베르니카는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고, 리오는 빙긋 웃으며 현관을 가리키고 말했다.

“그럼 들어가 보세요, 아주머니께서 반가워하시겠군요.”

“예, 그럼‥.”

베르니카는 자신의 어색함을 속으로 책망하며 뒤로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여섯 시 무렵, 경기가 다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공작의 저택으로 몰려왔다. 물론 케톤과 하롯은 자신의 집으로 일찍 돌아간 후였기에 해당은 없었다. 바이론 역시 왕성으로 돌아간 지 오래여서 그들과 같이 해당은 없었다. 지크가 안에 들어오자 리오는 그에게 경기 결과를 물었다.

“어떻게 됐어?”

지크는 입을 앞으로 쭉 내밀며 대답했다. 그렇게 만족스럽진 못한 모양이었다.

“어떻긴, 똑같지 뭐. 난 이겨서 한 명 또 잡았고, 빈혈 남자 상대는 도망쳐버렸어. 나머진 뭐 네가 예상하는 정도지.”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과 린스도 오늘은 공작의 저택에 왔다. 공작이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이었다. 린스는 딱 하루 동안 못 본 리오를 보고 매우 반가워했고, 리오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노엘은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공작의 부인인 레이필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리오를 흘끔 본 후 한숨을 쉬며 안으로 들어갔고, 리오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레이필과 노엘은 리오와 지크에게 잠깐 보자는 말을 남겼다.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너 말실수한 거 있었어?”

“아, 아니‥별로. 저 두 사람이 왜 저러는 거지?”

지크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리오는 식사를 마친 뒤 지크와 함께 둘이 기다리고 있는 서재로 향하였다.

문 앞에서 노크를 한 리오는 안에서 들어오라는 레이필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으로 들어섰다. 레이필은 허름한 책 한 권을 들고 있었고, 노엘은 의자에 앉아 약간 불안한 얼굴로 리오와 지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는 안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를 한 번 들이마신 후 레이필에게 물었다.

“‥저와 지크에게 물으실 것이 있으신가요?”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나요 리오군?”

레이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고 있던 책을 뒤로 넘기기 시작했다. 책의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레이필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 책은 한 마법사가 실수로 용들의 성에 공간이동하여 들어간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용제와의 대화도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설마‥?’

레이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리오는 레이필과 노엘이 자신과 지크를 부른 이유를 얼핏 알 것도 같았다. 리오는 묵묵히 듣고만 있기로 했다. 그것은 지크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맨 끝부분엔 [가즈 나이트]라 불리우는 신의 전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 몇 줄뿐이라 저도 그렇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리오군, 그리고 지크군을 만난 후로 그 부분이 자꾸만 떠올랐지요. 반신반의하며 노엘양과 상의만 약간 할 뿐이었는데‥오늘 확신이 섰습니다. 지크군과 린스 공주님의 대화를 들은 후였지요.”

그 말에, 리오는 지크를 흘끔 바라보았고, 지크는 머리를 긁으며 그 대화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기 시작했다.

“린스 공주님께서‥푸른색 머리의 여자에 대한 질문을 우연히 지크군에게 던지셨습니다. 그러자 지크군이 “그 애는 신계로 올라갔다”라고 했지요. 지크군과 린스 공주님은 이 수도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대답을 명쾌히 하셨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실까요?”

지크는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어떻게든 둘러대기 위해 억지로 웃으며 말하려고 했다. 그때, 리오가 지크의 가슴에 살짝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지크. 괜히 거짓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잘된 거지. 당신이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전 프리 나이트가 아닙니다. 지크도 역시 감전된 얼간이는 아니지요.”

지크는 리오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며 중얼거렸다.

“‥이봐 이봐, 이왕 할 거 잘 좀 말하면 안 돼?”

리오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저는 가즈 나이트. 사실 주신의 명과는 상관이 없지만 누군가를 찾기 위해 이 세계에 4년 전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도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크는 제 형제 한 명에게 제 지원을 부탁받고 이 세계에 온 같은 가즈 나이트입니다. 이 정도면 됐습니까?”

레이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노엘 역시 그러했다. 둘이 말이 없자. 리오는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제가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네‥?”

레이필은 리오가 너무나도 진지하게 물어오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계속 말했다.

“린스 공주님께서 우연히 지크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했는데‥왜 그 질문이 나왔는지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

노엘과 레이필의 얼굴은 일순간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다. 지크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책장에 기대 서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

“맞아요, 할머니가 린스 공주의 질문이 우연히 나온 거라 했는데, 그 질문이 사실이 아니라면 저희들이 가즈 나이트라는 사실 역시 거짓이라구요. 근데 할머니하고 안경 선생은 그 질문이 진실인지 파악도 하지 않고 우리를 무조건 가즈 나이트라 확정을 지으셨죠. 뭔가 알고 있어서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지크까지 그런 말을 하자, 노엘과 레이필은 벼랑에 몰린 듯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그렇게 말없이 불안에 떨고 있자, 리오는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

“‥전 4년 전부터 이 세계에서 한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리카라는 이름의 아이인데요, 사고로 다른 차원에 튕겨져 날아간 비운의 소녀지요. 그때 당시의 나이는 15세, 지금은 린스 공주님과 같은 나이일 것입니다.”

그 순간 노엘은 창백한 얼굴로 변명하듯 리오에게 소리쳤다.

“아니에요! 린스 공주님은 어렸을 때 왕가에 입양된 단 하나뿐인‥!!”

그러자, 리오는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와 떨리고 있는 노엘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제게 또 거짓을 말하실 생각이신가요‥?”

리오의 얼굴은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다 하는 것이 옳았다. 노엘은 도중에 말을 멈추고 말았고, 리오는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영혼이란 것은 고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가지고 있는 기억, 그리고 추억이란 것은 더더욱 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 이상의 무엇을 준다 해도 부모님과의, 친구들과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과 기억은 바꿀 수도, 만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전 이미 여왕님께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 거짓을 말씀하시는 것은 슬픔을 더욱 크게 만들 뿐입니다.”

지크가 덧붙였다.

“‥아무리 왕자, 공주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지만, 어떤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라는 직업 역시 굉장히 좋은 직업이죠. 누군가 물리적 힘으로 그것을 억누른다면 반발력 또한 강할 겁니다. 아마 린스, 아니 리카가 저에게, 그리고 리오에게 가끔 4년 전의 일을 말하는 것은 그 애의 기억이 속에서 반발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거예요.”

“‥후우‥.”

레이필은 고개를 저으며 가지고 있던 책을 탁자에 놓았고, 노엘은 리오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리오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며 또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책임을 진다며 다시 그 애의 기억을 되돌린다면 그것은 더 잔인한 일이 되고 맙니다. 4년 동안, 이미 리카는 린스 공주님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나름대로의 추억이 생겨났습니다. 그 추억을 또다시 깰 정도로 전 잔인하지 못합니다. 그리고‥예전의 리카에게, 그리고 아직도 그 애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겐 미안하지만 전 만족합니다.”

노엘은 눈물 때문에 눈이 벌게진 상태로 리오를 올려다보았고, 지크는 그 모습을 보고 보이지 않게 실소를 터뜨렸다. 리오는 계속 말했다.

“‥지금의 리카는, 아니 린스 공주님은 한 번도 슬픔에 빠진 일이 없습니다. 만약 처음 만났을 때 그 애가 울고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애는 절 4년 만에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훗‥아직도 잊을 수 없군요.”

「이봐! 도와주려면 일찍 도와줘야 할 거 아니야!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이 대사를 떠올린 리오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일찍 도와줬어야 했는데‥4년이나 걸리고 말았군요‥후훗‥.”

이상하게도, 리오의 그 마지막 웃음은 이미 나이가 들 대로 들은 레이필의 눈에서도 눈물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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