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망상
망상 속에서 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관점으로 재해석-변질에 가까운해 받아들인다. 물론 주위의 고정관념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다.
하지만, 이 경우 이들은 그 중심이 매우 불안정하다. 이리저리 관념과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변화하기 일쑤다. 자기 중심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중 심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세상은 또다시 그 안에서 뒤죽박죽으로 왜곡되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자기 편의(이 경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나 이익에 따라 자기 좋은 대로 해석해버리고 단정 지어버리니 멋대로 해석당하는 쪽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한 적 없는 말이 그 사람에게는 한 적 있는 말 혹은 했던 말로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 시선의 공통점은 모두가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을 직시할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때론 자 신을 직시했다고 착각하고 자신의 시선이 맞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지만, 그 절대적 확신부터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는 오히려 자신의 시선에 약간 의심 을 품고, 좀 더 이성적이고 객관적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쪽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세상의 삶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이 부여한 의미가 곧 삶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세상에 내재된 의미는 모두 다르다. 같은 것은 없다. 조화를 이룰 수는 있어도 그것이 같을 수는 없다. 때문에 타인을 만났을 때는 상대 와 함께 삶의 의미를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의미를, 자신의 세계를 타인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그것은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안타깝게도 자신이 결정한 의미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가 그러지 않은 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정도가 심한 인물 중에 위지천이란 이름을 지닌 한 인간이 끼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여신인 나예린과 버러지만도 못한 비류연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그 현상이 고 정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두 사람의 관점을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그에게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원히 퇴짜 맞을 일 은 사라진 것이다. 그의 내면세계 안에서만은.
인간이 이런 상태로 돌입하게 되면 상대의 진심 어린 ‘거절’도 ‘긍정’의 다른 표현 양식으로 들릴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그 사실을 자신의 내면 안에서 만 들어낼 수 있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런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 ‘만’으로 세상을 재해석한다. 그래서 위지천도 그렇게 했다.
자신의 우상인 나예린이 저런 출신도 모르는 비천한 자에게 호의를 품을 리 없다. 그것이 그의 내부 세계에서는 자명한 이치였다. 그와 사이가 좋아졌다는 것은 착 각일 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비류연이라는 놈팽이에게는 어떠한 가치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볼 수 없는 부분에서 나예린이 그 가치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가정은 당연히 무시되었다. 이런 무시와 임의적 가정을 무의식상에서 수십 수백 번 반복하지 않으면, 이런 망상 따위는 계속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관점은 고금 불변의 절대적 진리라고 확신하는, 겸허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확고한 대전제가 이 경우 필수 조건이었다.
위지천은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착각을 하고 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저 간악한 놈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뭔가 약 같은 혹은 주술 같은 저열 한 수법을 쓴 것이 틀림없다. 자신은 그 증거를 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감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증거보다 자신의 감을 믿 기로 했다. 그쪽이 훨씬 달콤한 결과를 가져오기에.
위지천은 정의(正義)롭게 분노했다.
감히 나의 우상에게 그 따위 비겁한 방법을 쓰다니……. 이런 천인공노할 놈을 봤나! 하늘의 정의가 울부짖고 있었다. 정정당당한 하늘은 당연히 그 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 하늘의 정의(그가 마음대로 정의한)를 누군가가 실현시켜야만 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도 없었다. 아아, 신의 이름을 대신해, 하늘을 대신해 천벌을 내릴 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소명이 내려졌다.
비류연 같은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악(惡)일 뿐이다. 악의 축인 것이다. 이대로 놔둔다면 앞으로도 엄청난 재앙을 이 세상에 가져올 것이 분명했 다.
자신은 질투 때문에 이러는 것이 분명 아니었다. 자신은 하늘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아마 물어봤더라도 하늘은 명쾌하게 대답 해줬을 것이다) 하늘이 그것을 원하고 있음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위지천은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이미 천명이 하늘 높은 곳에서 울려 퍼졌는데 무엇 을 망설이고 있는 것인가? 남은 것은 오로지 악의 말살뿐이다. 나는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천벌, 하늘의 심판이다.
나는 정의의 사도, 하늘의 대리인이다.
강호 명문의 자제로 태어나 권세의 포근한 품 아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온갖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그였기에 이런 방식의 사고에 어떤 위화감도, 의문도 없었다. 그렇다! 그가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존재의 말살……
하지만 그에게는 힘이 부족했다. 여태껏 몇 번의 실패를 계속해서 겪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가 힘이 부족하고, 지금 힘이 매우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힘을 빌려주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일지니! 보라! 하늘도 나를 돕고 있지 않은가!
하늘이 사도를 보내시어 나의 행사를 도우시니 두려울 것 아무것도 없어라. 정의는 나에게 있다. 하늘의 이름으로 오직 그것을 행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