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62화
“휴우‥.”
리오는 병원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다른 차원으로 날려진다는 것이 이곳으로 날려왔기 때문이었다.
“‥왜 한숨을 쉬냐?”
“음?”
리오는 자신을 향해 투덜거린 옆 환자를 바라보았다. 바이칼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리오를 보고 있었다. 리오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너까지 이 정도로 끌어들이다니‥.”
바이칼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알면 됐어.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리오 역시 눈을 감으며 대답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야. 아직 그 차원에 있는 지크 등이 일을 너무 잘 해결하거나 기적적으로 여신 세 명을 모두 없앴다면 다시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아니면 여신들이 일을 다 처리해 다시 차원이 합해지면 우리가 전에 있던 세계로는 갈 수 있겠지. 그때는 세계라고 하기보다는 대륙이라 하는 것이 옳겠지만 말이야.”
그때 누군가가 병실 문을 노크해 왔다.
“아,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둘을 병원으로 보내준 연구소 소장이었다. 일주일 동안 얼굴을 익힌 상태라 어색한 것은 없었다.
“음‥몸은 어떤가?”
리오는 상체를 일으킨 후 팔의 근육질을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바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근데, 오늘은 어쩐 일로‥?”
소장은 의자에 앉은 후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음‥자네들에게 물어볼 것도 있고, 말할 것도 있고‥그래서 왔다네. 사실 자네들이 이 세계에 처음 날려온 존재가 아니거든. 자네들보다 먼저 날려온 사람은 여자였는데, 이 세계에선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마법’이라는 것을 쓰는 여자였지. 전 세계에선 레프리컨트 왕국에서 왔다고 그랬는데‥자네들도 그곳에서 날려온 것인가?”
리오는 힐끔 옆 침대에 누워있는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바이칼은 반대편으로 돌아누워버렸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상황이 조금 다르지요. 그런데, 저희보다 전에 날려온 여자라니요? 도대체‥?”
소장은 팔짱을 끼고 예전 일을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음‥그러니까 1년이 조금 넘은 어느 날이었지. 자네들이 날려왔을 때처럼 나는 한창 텔레포트 시스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똑같은 현상과 함께, 피투성이는 아니었지만 상처를 약간 입은 젊은 여성이 자네들이 나타났던 장소에 떨어졌었지. 그리고 똑같이 이 병원에 실려왔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도 그랬지만 참 이상하군. 다른 세계에서 날려왔는데 언어 소통이 문제가 없다니 말이야.”
통역 마법에 대해 소장이 알 턱이 없었다. 리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뭐‥그냥 넘어가시죠. 그럼 그 여자분은 지금 어디서‥?”
“다행히 프랑스에 친척 역할을 대신해 줄 좋은 분이 나타났지. 그분을 따라 프랑스에 가서 지금은 TV 기자를 하고 있다네. 이름도 알아 두게나, 티베·프라밍이라고 하지.”
리오는 자신들보다 먼저 떨어졌다는 여자의 이름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오의 그 표정을 본 소장이 그에게 물어왔다.
“응? 아는 사람인가?”
리오는 태연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그럴 리가요.”
“음‥그건 그렇고 자네들의 이름은 뭔가? 궁금하네.”
리오는 바이칼을 꾹꾹 찌르며 말없이 일어나라고 했으나 바이칼은 돌이 된 듯 가만히 있었다. 결국 리오는 한숨을 쉬며 소개를 했다.
“흠‥이 녀석은 좀 피곤한가 보군요. 대신 사과드립니다. 이쪽은 바이칼·레비턴스라 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리오·스나이퍼입니다.”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간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던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오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지크·스나이퍼란 청년 알고 있나?”
리오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말할 뻔했으나 그렇게 되면 자신의 정체를 설명할 길이 달리 없었기 때문에 정색을 하는 수 외엔 방도가 없었다.
“음‥성은 똑같긴 한 것 같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군요. 어떤 사람인가요?”
리오의 실험적인 질문에 소장은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BSP 한국 지부 대원이라네. 벌써 한 달이 넘게 BSP에 출근하지 않다가 며칠 전 BSP가 해체된 후 영영 소식이 끊기고 말았지. 거 참‥그 친구의 어머니가 이제 혼자 사셔야 할 텐데‥걱정이구먼. 어쨌든 2주일 전엔 전 세계 BSP 중 최강의 스트라이커였다네.”
그 대답을 들은 리오는 깜짝 놀라며 소장에게 물었다.
“한 달이요?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습니까?”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와 소장 사이엔 얼마간 잡다한 얘기가 흘러갔다. 지금 세계의 정세 등등‥이윽고 소장이 나간 후 리오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라늄이 전부 납으로 변했다는 것은 차원 간 자장이 강력하다는 증거‥, 게다가 지크가 떠난 시간이 한 달 전이라면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시간 차가 거의 없다는 소리인데‥.’
“‥일이 심각한가?”
리오는 중얼거린 바이칼을 돌아보았다. 바이칼은 어느새 몸을 돌려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아무래도 이곳에서도 힘쓸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바이칼은 곧장 이불을 덮어버렸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계속 생각을 해 보았다.
다음 날, 그들은 의사와 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5일간 병원 신세를 졌으니 충분하다는 말만 남기고 퇴원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본 원장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법으로 겉옷의 모양을 잠시 속인 리오와 바이칼은 기억을 더듬으며 지크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엔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리는 몰라도 그곳만은 알고 있었다. 오후 늦게쯤 지크의 집을 찾게 된 그들은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똥–
서서 지크의 양어머니 레니가 나올 때를 기다리던 그들은 현관의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자 깜짝 놀라며 문을 열어준 레니를 바라보았다. 레니는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지크가 아니자 한숨을 쉬며 리오들을 맞아주었다.
“‥죄송합니다, 어서와요 리오. 그쪽은‥친구분이신가요?”
리오는 레니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고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이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찾아봬서 죄송하지만,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집 안에 들어간 리오는 거실 소파에 레니와 함께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리오는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망설였지만 레니가 친어머니 이상으로 지크를 아껴준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지크의 정확한 존재와 현재 지크가 어디에 있는지, 왜 오지 않는지까지‥. 그러나 레니의 반응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라고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듯했다. 레니는 지크가 살아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까보다는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행이군요. 그 애가 어디에 있건, 살아있기만 하면 전 족해요. 후훗‥나이 34세에 완전히 할머니 같은 얘기를 하는군요. 아, 저녁 드시지 못했죠? 잠시 기다려주세요, 오래간만에 다른 사람 식사까지 차리려니 자신이 없는데요? 호홋‥.”
리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탁드립니다.”
리오는 곧바로 바이칼의 옆구리를 찔렀고, 바이칼은 거의 억지로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리오는 TV를 켜 보았다. 이 세상의 정보 대부분이 저 검은 판에서 (벽걸이식 고화질 TV) 나온다는 것을 리오는 알고 있었다. 때마침 만화 영화가 나오고 있었고 바이칼은 신기하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흠‥드래고니스 안에 있는 [버추얼 디스플레이] 보다 못하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듯하군. 괜찮은데?”
리오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때, 화면이 치직거리며 뉴스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만화의 성우 대신 울려 퍼졌다. 리오는 인상을 굳히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긴급 속보입니다!! 울산 지역의 제8 정유기지가 블랙 프라임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치이이이이잇–!!!!!」
또다시 화면이 치직거리며 이번엔 검은색의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뉴스 앵커 대신 화면 중앙에 나타났다. 중간에 전파를 차단하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변조된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 방송은 현재 낮 시간인 모든 세계에서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후훗, 멋지지 않나? 난 블랙 프라임의 총수, 『엠페러』다. 이 방송이 나가는 순간에도 전 세계의 자원은 우리의 것이 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주인의 손으로 돌아오고 있다겠지. 후후훗‥마음에 안 드나? 그렇다면 총을 들고 싸워라. 그것이 어디 가서 천국을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보다 에너지 소비 효율이 높을 테니까. 내가 말하는 것이 헛소리다? 천만에 말씀, 난 신의 뜻을 전하는 것뿐이다. 너희들을 전기라는 악마의 힘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우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석유! 지구의 피다. 석탄! 지구의 살이다. 후후‥우라늄이란 자원이 모두 사라졌지? 신의 뜻이다. 우리의 어머니 지구의 뜻이다!! 거역하지 마라, 하하하하핫–!!!」
곧 화면은 괴 전함들과 헬기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정유 시설들의 모습으로 바뀌어졌다. 리오는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신의‥뜻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