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75화
이탈리아 근처를 순회하던 리오는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밤에 티베가 자신에게 말한 것, 바로 이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이해가 안 되던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음‥티베가 어제 나에게 이런 말을 했거든? 이 세계에서 살면서 자신은 변해버렸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 세계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지크는 언제나 별반 다른 것이 없었거든? 물론 이 세계의 시간으로 볼 때 5년이긴 하지만‥.”
바이칼 역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는 듯, 말이 잠시 없었다가 잠시 후 대답을 했다.
“‥그 녀석은 멍청하니까.”
“‥훗, 하긴‥.”
리오는 피식 웃으며 바이칼의 몸을 두드렸다. 그러나 바이칼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크 녀석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환경에 적응했잖아. 하지만 그 여자는 이 세계를 접한 지 1년밖에 안 되었어.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한 후 자신의 모습은 변한 거라 생각될 수밖에 없겠지. 지크 녀석과 그 여자를 비유하다니, 오늘따라 바보 같은 질문만 하는군, 너답지 않게.」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래, 그럴지도. 자,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계속 가 봐. 난 음악이나 듣고 있을 테니까.”
리오는 카세트에서 이어폰을 꺼낸 뒤 귀에 꽂고 스위치를 라디오 모드로 돌렸다. 진행자의 상쾌한 목소리와 함께 때마침 빠른 템포의 록 음악이 시작되었다.
한창 인기가 있다는 무슨무슨 그룹의 <God’s cry>라는 곡이었다. 한번 앨범을 사서 들어볼까 리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한창 신나게 듣고 있을 무렵, 또다시 음악이 끊기며 뉴스 속보가 들려 왔다. 리오는 손가락으로 이어폰을 지그시 누르며 귀를 기울여 보았다.
「뉴스 속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정체불명의 괴 로봇들이 나타나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있다 합니다. 이미 천 명에 가까운 이스라엘 국민들이 죽음을 당하였다고 유선으로 전해지는데 그쪽을 취재할 수 있는 모든 카메라가 이상 자기류로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어 정확한 피해 규모는 이쪽에서 알 수 없습니다. 인근 국가들 역시 자기장의 영향을 받고 있어 도움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리오는 곧바로 이어폰을 빼 카세트 안에 집어넣고 복면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직접 가서 봐 주지. 자, 가자 바이칼!”
바이칼은 남쪽을 향해 방향을 튼 후 다시금 날개를 접고 플레어 부스터를 사용하였다. 리오를 태운 바이칼의 몸은 곧바로 공간 방호막에 싸여 음속을 넘어선 스피드로 이스라엘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10여 분 후 예루살렘에 도착한 리오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인간의 사체는 없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의 일부분만 남아 폐허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마치 야수들이 포식을 하고 남은 찌꺼기를 보는 듯했다. 리오는 팔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금치 못했고, 바이칼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폭약 등에 당한 모습이 아니야. 마법도 아닌 듯하고‥이건 괴물의 짓이 분명해. 그것도 굶주려 있는‥.」
그때, 저편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는 순간 눈을 부릅뜨며 바이칼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바이칼 역시 급히 리오를 따라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곳에선 검은색의 로봇–나찰 한 대가 집을 부수고 한 노인을 끌어내는 중이었다. 집 안에 있는 한 남자아이는 이스라엘의 국민답게 양손을 모으고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나, 그 소년의 눈에 비친 것은 구세주가 아닌, 나찰의 이빨에 갈기갈기 찢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안 돼–!!!! 할아버지–!!!!!”
그 소년의 울부짖음을 들은 나찰은 반쯤 몸이 뜯긴 노인을 집어 던지고 그 소년에게 팔을 뻗었다. 소년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또다시 소리쳤다.
“싫어! 하나님–!!!”
핑–!
순간, 짧은 괴음과 함께 나찰의 몸은 멈추었고, 이빨을 드러낸 상태인 나찰의 머리는 위로 튕겨지며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찰의 몸은 곧 뒤로 쓰러졌고 소년은 멍한 눈으로 몇 초 전까지 나찰의 모습이 보이던 뚫어진 지붕을 바라보았다. 곧 그 지붕에선 붉은 장발의 사내가 넓은 검을 들고 나타났고 소년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내–리오는 소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소년의 앞에 선 후 곧바로 물었다.
“다친 곳은 없니?”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주위에서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인상을 찡그리며 또다시 물으려 했다. 그러나 소년은 현재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리오는 안타까움에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바이칼, 잠시 아이를 부탁한다.”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바이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는 곧바로 몸을 창밖으로 날렸다. 저 멀리 수십 대의 나찰과 수라들이 아직도 파괴와 살육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에는 고기 조각으로 변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고 귀엔 그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리오의 눈은 결국 붉은색으로 빛을 발했고 그는 곧 그 장소를 향해 분노를 토하며 내달렸다.
“없애버리겠다–!!!!!!”
강력한 생체 에너지 반응에 나찰과 수라들은 리오가 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전열의 나찰과 수라 몇 대가 음료수 캔이 터지듯 세포질을 뿜어내며 터져 버렸고 도망치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멀리서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나찰과 수라가 한 대씩, 또는 수대씩 터져 나갔다. 온몸에서 푸른색의 기를 뿜어내며 로봇들을 박살내는 리오의 모습을 본 한 중년의 랍비가 성경책을 들고 앞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메시아‥?”
순식간에 십여 대 수준으로 줄어든 나찰과 수라들은 이상한 에너지를 방출하더니 공중에 생성된 검은색의 구멍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점점 닫히는 검은색의 구멍을 향해 리오는 팔을 뻗으며 외쳤다.
“어딜 도망가나!!!”
쿠직–!
리오의 팔이 구멍 안에 들어간 순간, 스파크와 함께 구멍 안에선 무언가가 잡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팔에 힘을 넣어 잡은 것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검은 구멍의 입구는 리오의 힘에 못 이겨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곧 크게 벌려지며 수라 한 대가 리오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바닥에 멀리 수라를 내동댕이친 리오는 다시 구멍을 바라보았으나 아쉽게도 구멍은 닫히고 말았다. 리오는 여전히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천천히 일어서고 있는 수라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수라의 몸이 공중에 들려졌고, 네 개의 팔과 다리가 이상한 힘에 뒤틀려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아이를 업고 오다가 그 광경을 본 바이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흠‥텔레키네시스군.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야.”
팔다리가 몽땅 뒤틀린 수라는 꺾어진 부위에서 세포질을 뿜어내는 채 전투 불능 상태로 계속 공중에 떠 있었다. 리오는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팔을 뻗어 마법진을 전개했다.
“5급, 코메트‥!”
마법진에서 뿜어진 빛의 기둥에 의해 수라와 세포질들은 증발되어 사라졌다. 남은 잔광을 바라보며 리오는 기를 낮추었고 그의 눈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파라그레이드도 거둔 리오는 팔짱을 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바이칼은 아이를 안전한 곳에 두고 재빨리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 리오의 머리 위로 솟구쳐 천천히 순회를 하기 시작했다. 완전 범죄였다.
중년의 랍비를 선두로 사람들은 리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리오 역시 그들에게 다가갔고 랍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약간 두려움이 서린 얼굴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사실 수라 한 대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구겨버리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풍길 수 없었다. 랍비는 리오의 앞에 선 후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남은 사람들이라도 무사하게 해 주셨으니 정말‥감사합니다. 전 랍비인 호르세라고 합니다.”
랍비는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리오는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런데, 그 괴물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아까 사라진 그대로 나타났었습니다. 그 검은 구멍에서 말이지요. 너무나‥너무나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괴물들은 파괴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살육하고 그들의 피와 살을 즐겨 먹었습니다. 아아‥어째서 이 세상에 그런 괴물들이 나타나야 하는지‥!”
리오는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랍비에게 조용히 물었다.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랍비는 성경책을 들며 고개를 자신있게 끄덕였다.
“예, 당연합니다! 게다가 당신까지도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리오는 뒤로 돌아서며 바이칼에게 고도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낸 후 말했다.
“‥그분이 절 보낸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라는 것은 가지고 계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 당신들의 눈앞에 펼쳐지더라도‥말입니다.”
리오는 곧바로 바이칼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렸고 곧바로 북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리오와 바이칼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자, 랍비는 손을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비록 메시아는 아니시지만 힘을 내주시길‥신의 전사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