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18화 – 진성곤 임성진의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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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6권 18화 – 진성곤 임성진의 일격

진성곤 임성진의 일격

-아버지와 아들-

“독자인가?”

복면인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임성진을 향해 물었다.

“그렇소.”

“누나는?”

“저런 얼굴을 한 아버지 밑에 여자 형제가 있다면 좀 불쌍하지 않겠소?”

“그건 그렇군!”

복면인은 너무나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해버렸다. 그러자 뒤에서 욕하는 소리가 잠시 들려왔다.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너희 부자는 오늘 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고,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오래 즐기지 않아도 될 테니 말 이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 말의 뜻은??

임성진의 힘 있게 뻗은 굵은 눈썹이 땀 맺힌 이마 아래서 꿈틀거렸다. 복면인이 으스스한 한기를 뿌리며 말했다.

“오늘 유비, 관우, 장비, 이 삼국지의 세 영웅이 도원결의라는 술잔치까지 거창하게 벌려놓고도 달성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주겠다는 것이다. 영광으로 알아라.” 한날 한시에 죽게 해주겠다는 말을 꼭 그렇게 길고 복잡하게 말해야 하는 건가? 영광으로 알아야 될지 말아야 될지 판단하기 전에 임성진의 뇌리 속에 먼저 든 의 문이었다.

성광일시라 했던가…….’

불에 달군 쇠꼬챙이에 지져지기라도 하는 듯한 고통이었다. 뼈가 으스러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상처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그의 정신을 비명 지르게 만들고, 그의 육체를 몸부림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 고통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복면인은 분노했고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그의 날카롭게 연마된 검을 치켜들었고, 산악을 누비는 사슴의 다리처럼 단련된 다리로 대지를 박찼다.

그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공간을 가로질렀고, 임성진의 간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긴 간격을 지닌 상대와 싸우는 법을 아는 자였다.

“끝이다!”

그의 검이 곧 임성진의 심장을 관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검은 암살자의 독심 어린 검이 심장을 관통하려는 찰나, 임성진은 전심전력으로 곤을 회전시켰다. 쐐래래래래랙!

소용돌이를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회전력과 함께 발생한 강력한 회전 기류가 지척까지 다가온 검을 튕겨내며 그의 심장을 수호했다.

“큭!”

일 장 밖으로 밀려난 복면인이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과 옆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엄청난 회 전력이 휘젓고 지나간 곳이었다. 회전하는 나선의 경력에 그의 옆구리 쪽의 옷이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맨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손바닥의 사정은 더욱 끔 찍했다. 단단하고 질기기 짝이 없기로 소문난 교룡피로 만든 특수 장갑은 이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맹수가 물어뜯은 듯 찢어진 상처에서는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큭, 내가 너를 무시한 것 같구나!”

이런 낭패를 당할 줄은 몰랐다.

“미리 말했지 않소. 나를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거라고!”

“아직 자만하긴 이르다!”

복면인이 씹어 내뱉듯 말했다.

“그런 말은 이 일격을 받아본 다음에나 하시오!”

임성진이 곤을 들어 가장 기초적인 기본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한 손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아버지가 보고 있었다. 그의 곤법을 무시하던 아버지가 곤은 연약한 놈이나 쓰는 거라고 말했던 아버지가 절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 절호의 기 회를 그는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성진아, 잘 들어라.”

“예, 사부님.”

“지금부터 우리 문파의 최고 오의를 너에게 전수해주마.”

임성진은 숙연한 마음으로 사부님의 말을 경청했다.

“너는 가장 강력한 일격은 어떤 일격인지 아느냐?”

사부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곤의 시작은 하나요 그 끝도 하나다. 곤은 찌르기에서 시작해 찌르기로 끝난다. 가장 짧고 가장 단순한 공격이 가장 강력한 공격이다. 자신의 목숨이 실린 가장 짧 은 일격, 그 일격에 너의 몸과 마음을 모두 실을 수 있다면 너는 최강의 일격을 내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예,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방어는 원(圓), 공격은 점(點), 힘의 이동은 나선(螺旋). 가장 기본이면서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가르침이다. 너는 이것을 머릿속에 새기고 잊지 말도록 해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가르침이었다.

일점일격필중필살의 의지로 나선의 힘을 담아, 임성진이 일섬 찌르기를 선보였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공격. 빛이 그의 오른손에서 빠져 나와 적의 중심을 향해 쏘아졌다.

진성십이곤 최종오의(最終奧義)

일점필중

한줄기 섬광처럼 작열하는 필살기에 복면인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이 일격이 뚫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제길, 놓쳐버리고 말았군요. 재빠른 게 바퀴벌레 못지않네요.”

그는 나타날 때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우거진 수목과 낙엽은 그에게 좋은 은폐물이 되어주었다.

검은색으로 전신을 칭칭 두른 암살자를 떠올리며, 임성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바퀴벌레와 동질성을 느꼈다. 아마 그 검은 복면인은 깜장 바퀴벌레를 볼 때마다 무한한 애정과 친밀감을 느끼리라. 임성진은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쯧쯧, 누굴 닮아서 그렇게 굼뜬 거냐?”

임성진은 도끼눈을 희번득거리며 자신에게 이런 굵직하고 두툼한 몸을 물려준 아버지를 째려보았다.

“뭐, 뭐냐, 그 눈빛은? 잘하면 내리찍겠다?”

“지금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그렇게 무식하게 굵은 팔뚝과 통나무 같은 허벅지를 매일 달고 다니시면서도요? 저라고 좋아서 굼떠진 게 아니라구요!” 육체의 빠르기는 어느 정도 선천적인 재능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천적인 단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딱 한 가지, 유일하고 무이한 방법이 있다는 이 야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꾸며대기 좋아하는 행자 하나가 남긴 헛소문인지는 확인해볼 방도가 없었다.

바로 환골탈태였다. 과거의 몸을 새롭게 바꾸고, 육체의 능력을 재편성하는 지고의 경지. 그 아득한 경지까지 심신을 단련해야만 하는 것이다. 현 강호에서 그 경 지를 넘은 사람은 추측만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건 그렇고 몸 상태는 어때요?”

“멀쩡하다, 멀쩡해! 몇 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이런 거야 긁힌 거에 불과한 정도지. 크하하하하하!”

임덕성이 사지에 입은 상처를 보여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바람에 쇠침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들이 바람 맞은 소나무처럼 흔들렸다. 강철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착각이 일 정도로 그의 몸은 튼튼했다.

“누가 아버지한테 물어봤어요?”

아들이 퉁명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그럼?”

“죽여도 죽지 않을 만큼 튼튼한 사람 걱정을 제가 왜 합니까? 그런 시간 낭비는 하기 싫어요. 그 무식하게 큰 근육은 그냥 장식품이 아니잖아요? 강철호체신공을 약장수하려고 익힌 것도 아닐 테고. 제가 걱정하는 건 무식하게 튼튼한 강철근육갑옷을 두른 아버지 쪽이 아니라 거기 그 사람이오, 아버지가 업고 있던 사람.” 저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그것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임덕성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그것도 꽤나 젊은 애송이처럼 보이는 인물을 업고 도망이란 것을 죽음보 다 수치스러워하는 쳤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 자초지종이 무엇일까?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의 반응은 당연히 아버지의 심기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이… 이놈이!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여태껏 키워준 애비한테 고딴 식으로밖에 말 못 하냐?”

눈알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임성진은 고개를 돌린 채 못 들은 척했다.

“쫓아낸 것도 바로 그 키워준 아버지죠. 그것도 굉장히 시답지 않은 이유로.”

가시가 느껴지는 대꾸였다. 평소 둔감하기 짝이 없는 임덕성도 그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임덕성이 조용해졌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나 왔다.

“집 나간 아들놈한테 도움을 받다니, 나도 늙었구나!”

“이제 인정해주시는 겁니까?”

“아직 멀었다! 그런데 너, 돌아오지 않을 거냐?”

임성진이 그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아직 경험해봐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이 있습니다. 역시 세상은 넓더군요.”

“그러냐…….””

약간 침울한 목소리로 임덕성이 대답했다. 하지만…

“열심히 해라!”

그것은 아들의 행동을, 인생을, 삶을 인정해준다는 이야기였다. 항상 아들의 길을 부정하려 했던 아버지에게 그는 처음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서, 그 는 드디어 홀로 서게 된 것이다.

“고… 고마워요, 아버지!”

무진장 쑥스러운지 코끝을 긁적이며 임성진이 말했다.

“근데 저 사람 진짜 누굽니까?”

“아, 저 사람…….”

어쩔 수 없이 임덕성은 짧게나마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성진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우상 천무삼성을 만나 함께 이 곳에 올라왔다는 대목에서는 까무라칠 정도로 놀라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천무삼성은 자기 아버지를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지 않았을까? 그 점이 참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임성진이 등 뒤쪽 나무 위를 보며 말했다.

“구경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좋은 장면은 다 지나간 것 같은데? 이야기도 다 끝났고.”

“아, 들켰나?”

나무 위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인영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부자 싸움이야말로 세상이 시작되고 인간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계속되는 세기의 싸움 아닌가? 그쪽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다구. 꼭 몸으로 치고받고 하는 싸움 에서만 흥미를 느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난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너그럽고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네.”

“네, 네놈은!”

임덕성이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그도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우, 산적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이 산에 영업하러 오셨나요?”

비류연이 활기차게 인사했다.

“생업은 잠시 접었다. 휴가 중이야.”

임덕성이 대답했다.

“휴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비류연의 고개가 모로 꼬였다. 산적질에 휴가라니…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는 노골적인 반감이었다.

“이십 년 근속했으니 나도 좀 쉬어야지. 오랜만의 휴가다.”

임덕성이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자기 아버지지만 참으로 뻔뻔스럽다고 생각하는 임성진이었다.

“혼자 오셨나요?”

그제야 그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한 사람을 기억해냈다. 방치해두고 나온 한 사람을!

“아차, 고래!”

“고래 아저씨도 여기에 오셨어요?”

고래란 모경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이런! 난 급히 가봐야겠다. 이 사람은 너희들이 좀 보살피고 있어라. 그쪽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깐 이쪽이 더 안전할지도 몰라. 그놈도 아직 숨이 붙어 있 고… 그럼 잘 부탁하마.”

“어어, 아버지!”

그러고는 아들의 애타는 부르짖음도 무시한 채 삼성각을 향해 달려가는 임덕성이었다.

그 시각 모경은 삼성각에서 피 웅덩이에 처박힌 채 몸을 파닥거리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OOO 행님요… 빨리 오이소…….”

핏기가 가신 창백해진 그의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문 저편에서 저승사자들이 손짓하며 그를 부르고 있었다.

“자, 그럼 이 짐을 어쩐다?”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일단 떠메고 가봐야지.”

임성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라 역시 웬수였다. 한순간 좋은 감정을 가졌던, 부자간에도 정이 흐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였 다.

“그건 또 뭔가?”

거처인 동굴에 도착하자 장홍이 물었다.

“아, 이거? 임시 보관 물품이야.”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사람 같은데?”

“사람 맞아.”

“죽었나?”

축 늘어져 대롱대롱 들려 있는 게 보기에도 애처로웠다.

“아니, 아직 살아 있어.”

“은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암습자 때문에 안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데, 그런 짐까지 떠맡아서 어쩌겠다는 건가?”

“글쎄… 검성이 부탁했다고 하니 별 수 없잖아.”

“거, 검성님이!!!”

“어, 그렇다는구만.”

검성의 부탁을 받은 산적 우두머리의 일방적 부탁이라는 부분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알리지 않았다. 어쨌든 검성의 부탁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 니었으니깐 말이다. 이편이 더 편했다. 그편이 이 환자에게도 좋을 것이다. 이름값 하나로 대우가 확연히 틀려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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