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21화 – 은가면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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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6권 21화 – 은가면의 정체

은가면의 정체

비류연과 그 일행은 풀려진 실을 따라 생각 이상으로 쉽게 은가면들의 뒤를 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을 때는 모두들 놀라고 말았다.

그들 세 명은 어디선가 잡아온 멧돼지를 통째로 불 위로 올려놓은 채 빙글빙글 돌려가며 지글지글 굽고 있었다. 붉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여인이 빨랑빨랑 하라며 재촉을 하고 있었고, 키가 작은 땅딸보 노인은 열심히 통돼지 구이를 돌리고 있었다. 무척 맛있는 냄새가 사람들의 코를 찔렀다. 그러고 보니 추적을 한다고 두 끼 정도는 굶은 듯했다.

“응? 이거 오랜만의 손님이로세.”

열심히 통돼지를 돌리던 땅딸보 노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비류연 일행은 아직도 풀숲 안에 숨어 있는 그대로였다.

“무슨 일로 예까지 찾아왔나? 숨어 있지 말고 나오게.”

은가면을 쓴 키 큰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용휘는 저 목소리가 그때 그 밤에 자신이 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때는 공 포 그 자체처럼 느껴졌는데 낮에 이러고 보니 묘한 친밀감까지 느껴지는 게 아닌가.

“거기 그렇게 쭈그리고 있지 말고 나오너라.”

키가 큰 백염의 노인이 말했다.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게 된 비류연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풀숲에서 나왔다.

“용케도 여기까지 찾아왔구나?”

“변변찮지만 몇 가지 재주가 있어서요.”

그답지 않은 겸손을 떨며 비류연이 말했다.

“여기까지 온 것은 기특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각오는 되어 있겠지?”

“그 통돼지 구이를 함께 나눠 먹을 정도의 각오는 돼 있지요!”

예상 밖의 대답에 세 사람은 유쾌한 듯 크게 웃었다.

“허허허, 재미있는 아이구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 용건이 무엇이냐?”

“한 가지 질문할 게 있어서요.”

“질문?”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요.”

“죽음?”

세 명의 은가면이 흠칫하며 반문했다. 비류연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그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그자의 이름은?”

“안명후라고 하더군요!”

마침내 비류연이 말했다.

“뭐라고? 안명후가 죽었다고!”

키 작은 노인이 산이 떠나갈 듯한 대갈성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왔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이 보였으리라. 땅에서 마찰열에 불탄 것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먼지였다.

노인은 비류연의 멱살을 움켜잡으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멱살을 움켜잡고 목을 조이며 숨을 쉬지 못해 호흡 곤란에 빠져 괴로워하는 그에게 이실직고를 받아낼 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은 비류연의 옷깃 바로 한 치 앞에서 멈추었고, 그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다. 그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였다. 미묘한 차로 자 신의 금나수를 피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에 봤을 때 내 눈을 의심했지만, 과연 보통 놈이 아니구나!”

“언제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하고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비류연은 여유를 잃지 않은 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생사의 기로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놀라운 배짱이었다.

“입심 한번 대단하구나! 대단해! 그리고 좋은 배짱이다, 아가!”

여인이 탄성을 터트렸지만 이내 어두운 얼굴로 돌아갔다.

“아가, 다시 한 번 말해보거라! 지금 구척철심안 안명후가 죽었다고 했느냐?”

“별호가 팔척인지 구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이 안명후라는 것만은 틀림없죠. 정확히는 살해당했어요.”

전방위에 걸쳐 그물처럼 펼쳐졌던 살기가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비류연도 경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이, 이런…….”

키가 큰 노인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어지며 그 사이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세 사람 모두 일신에 세상을 뒤엎을 만한 무력을 지니고도 그런 사소한 일에 놀라고 있었다.

과연 무슨 일이 어떻게 얽혀 있는 것일까?

자초지종이 궁금해졌다.

“잠시 시선을 뗀 사이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도락에 너무 빠져 있었던 거지. 애들하고 노는 재미에 빠져 중요한 일을 망각하다니…….”

“우리 모두의 책임이에요.”

세 사람 모두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어라? 당신들도 몰랐던 겁니까?”

장홍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몰랐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세상을 뒤집어엎어서라도 막았을 거다.”

침통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비류연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변고가 생긴 듯하오.”

“이제 어떡하죠?”

“궁리를 짜내봅시다.”

세 사람이 수근수근 의견을 나누었다.

“당신들, 도대체 정체가.. .?”

비류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정말 독특한 모임이었다. 얼마 전 자신들을 ‘공포’와 ‘절망’과 ‘비탄’이라고 소개한 사람들과 도저히 동일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아, 우리들 말이냐?”

작고 통통한 사람이 말했다. 비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사람이지.”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고, 그들을 휘감고 있던 분위기가 전변되었다.

세 사람이 일제히 가면을 벗었다.

“설마, 그 세 사람이…….”

대공자 비의 목소리가 세차게 떨렸다.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기억이 나겠느냐?”

도성의 말에 세 명 모두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얼굴에 썼다.

“헉!”

여기저기서 헛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이 얼굴에 쓴 것은 바로 차갑게 빛나는 은가면이었다.

“어… 어째서 이런 일을…….”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대공자 비가 물었다.

“그건 내가 대신 대답해주지!”

그렇게 말하며 대화에 끼어든 사람은 바로 혁중이었다.

“이번 화산지회에서 저희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시다고요?”

검성이 노인을 향해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그 노인, 혁중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천무삼성의 예를 받을 만큼 충분한.

“아, 그렇네. 저 밖에 모여 있는 아이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상당히 재능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나이에 저 정도 경지까지 오르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지요. 재능도 그렇고…….”

“그럼 저 친구랑 비교하면 어떤가?”

노인의 손가락 끝에 도성이 서 있었다.

“그건 비교의 의미가 없는 것 같군요.”

검성이 솔직히 대답했다. 비교라는 것은 어느 정도 비슷한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필요한 행위다. 하늘이 높은지 나무가 높은지 비교하는 것은 비교가 아닌 것이 다.

“저 아이들은 고르고 골라 수십 종류의 시험을 뚫고 들어온 아이들이네. 영재라고 할 수 있지. 현재 가장 촉망받는 인재들… 강호에서 가장 강한 애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냐. 하지만 저 애들이 겪은 건 아직 작은 경험일 뿐이지. 온실 속의 화초일 뿐, 그 이상은 안 돼. 그런데 저 아이들은 그걸 몰라. 우리들이 경험했고, 그들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 그것은 그들의 행운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지.”

“그것이라 함은…….?”

검성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혁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하늘의 넓이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자네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걸 저 애들에게 가르쳐줬으면 하는 거야. 압도적인 공포(恐怖란 것을 말일세…….”

현 강호를 이렇게까지 단결시켜준 것은 아이러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천겁혈신 위천무 덕분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강호는 두 개의 큰 축으로 재편되지 못했으리 라. 물론 천무학관이나 마천각 같은 무공연구교류육성기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고, 광적인 무공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겁령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그에 대응할 힘을 모색하게 만들었고, 현재의 무공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각파의 인사들이 한데 모여 자유로운 논검과 토 론을 통해 서로의 무공을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육성한 덕에 강호의 무공은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천겁혈신이 없었다면, 아마 이런 일은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이전투구에 정신없는 밤낮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예 멸망해 버렸거나.

물론 백도와 흑도가 표면적으로 화해의 약속을 하고, 서로 간의 교류도 활발해졌지만, 두 집단 간의 이익 대립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다. 이권의 개입은 언제 어디서나 말썽을 가져오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래도 자제력은 있었는지, 그것이 표면적으로 부상하는 일은 없었고 언제나 음지 속에서 해결되었다.

백도와 흑도의 무공 교류의 장, 그리고 미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검과 방패, 강호를 지킬 철벽, 위협을 물리칠 단옥단강(斷玉斷鋼)의 예기, 최강의 방패, 최강 의 검을 만들기 위한 장이 바로 화산규약지회였다. 그리고 이것 이외에 또 다른 목표가 더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열쇠지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왜 백 년 전 강호는 흑백의 분간을 잊고 하나로 뭉쳤을까?”

혁중이 물었다.

“확실히 ‘그’에 대한 공포심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군요.”

“공포뿐만이 아니었네. 공포와 절망과 비탄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지. 저들은 단결할 필요가 있어. 겉보기만이긴 하지만 백 년 동안 평화가 지속된 지 금, 강호는 다시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어 있네. 그들 모두 자신만의 이익과 자존심을 앞세울 뿐 뭉치려 하지 않아. 그들은 단결할 필요가 있어.”

“왜 직접 교습하지 않으시고?”

검후가 물었다.

“자네들도 잘 알지 않나. 가르쳐서 되는 것이 있고, 가르쳐도 안 되는 것이 있지. 남에게 넘겨들은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라 할 수 없네. 그건 진정한 앎이 아니지.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 스스로 깨닫고 발견한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만이 진정한 앎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네. 진정으로 마음에 새기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맞는 말이었다. 그런 것은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아이들이 뭉치지 않으면……?”

“뭉치지 못한 힘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뿐이지. 참 교훈을 깨우치지 못하면 죽음뿐이네. 현명한 선택이 생존에 얼마만큼 이익을 안겨주는지 몸소 체험해보면 알 수 있겠지. 해줄 텐가?”

“재미있겠군요.”

도성이 대답했다.

“흥미롭기도 하고.”

검후가 대답했다.

“물론 받아들이겠습니다, 대형!”

검성이 대답했다.

“우리도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아아, 나름대로 화끈하더군요, 이곳도!”

비류연은 오히려 그런 게 마음에 드는 듯했다.

“흥, 그런 방법으로 모래알들이 뭉쳐질 수 있을까? 어차피 일시적인 타협일 뿐이야. 곧 다시 분열될 뿐.”

“폭력과 억압으로 묶어놓은 단결 역시 한시적인 건 마찬가지! 어차피 그럴 바에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쪽이 더 옳다고 보여지는군요. 더 오래가기도 하고.” “저 사람의 정체는 어떻게 알았나?”

비가 아직도 정신을 잃은 채 널브러져 있는 우둔우를 가리켰다.

“아, 그건 우연이었어요.”

비류연이 검지를 불쑥 세우며 말했다.

“그나저나 실마리가 완전히 끊어져버렸군! 이제 어떻게 하지?”

도성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분명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목격했고, 그것을 이곳에 전하려 했다. 그가 목격한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는, 그를 뒤 쫓던 무리의 규모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살해버렸고, 남은 것은 이제 안명후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판 사이 그마저 죽어버린 것이다. 입맛이 씁쓸했다.

“그렇게 섣불리 단정하긴 이르죠.”

비류연의 말에 두 사람의 고개가 눈부신 속도로 회전했다.

두둑!

목뼈에서 괴상야릇한 마찰음이 울렸지만 무시했다.

“뭔가 있나?”

둘의 눈빛이 똑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몇 가지 들은 게 있어요. 단편적인 정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그게 뭔가?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보게.”

다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장홍이 재촉했다.

“그는 계속 혼수상태였는데, 뭔가 알아낸 게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알아낸 건가? 자네, 독심술이라도 익혔나?”

“독심술은 무슨. 그런 편리한 건 아직 못 익혔어. 그냥 지나가다 들려오는 걸 들은 것뿐이야.”

“뭘?”

“잠꼬대!”

“잠꼬대? 혹시 잠자면서 중얼거리는 그것?”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아아, 바로 그 잠꼬대. 굉장한 악몽을 꾸고 있던 중이었나봐. 사람들 이름을 막 부르는데, 부하였던 모양이더군. 다 죽었나봐, 임무 수행 중에. 뭐, 그런 사람들에 겐 흔히 있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충격이 컸던 모양이야.”

“그래서?”

비류연이 그때를 회상하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는 별로 신경써서 듣지 않았지. 그런데 뭔가 그냥 흘려 지나칠 수 없는 말을 하더군.”

“그게 뭔가?”

꼴깍!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비류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화산이… 위… 위험. 그는 그렇게 말했지.”

“이곳이 위험하다고?”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나?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내용만으로는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잖아. 하긴 벌써 사람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충분 히 위험하긴 하지만…….”

장홍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도 했었지. 에… 그러니까……?”

“음?”

“용린… 염우(炎雨)…라고 말야.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걸 말할 때 식은땀깨나 흘리더군. 표정도 죽어가는 부하들 부를 때만큼이나 심각하고.”

ᆞ용린… 염우…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들어봤지??

장홍은 필요할 때마다 기억력이 나빠지는 자신의 대갈통을 저주하고 싶었다.

“용린! 염우!”

그때 도성이 경악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갑작스런 반응에 깜짝 놀란 검성이 재빨리 물었다.

“왜 그러나, 자네? 혹시 아는 게 있나?”

검성의 질문에 도성은 심각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며 암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 내가 이러저리 떠돌아다니는 방랑벽이 있다는 건 알지?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주워듣는 것도 많아지게 되지. 게다가 때때로 일반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 는 정보를 접촉하게 되는 일도 생겨.”

“뜸 다 들었네. 밥 타기 전에 빨리 얘기해보게.”

“염우란 특별히 제조된 고순도의 기름을 말하네. 듣기로는 휘발성이 대단히 강해서 취급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더군. 그리고 용린은 그 염우와 한 쌍이 되는 물건인데, 전설의 문파인 벽력궁에서 가장 특별히 취급되었던 물건이라고 하더군.”

“전설의 벽력궁이라면…….?”

검성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 그런데 왜 전설이냐면 이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약 백이십 년 전에 멸문한 문파라서 그러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화약의 제조와 응용 기술 이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었다고도 해. 그 후 그 기술의 일부가 군부로 흘러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칠대금용암기 에 속하는 염마뢰도 그쪽에서 제조법이 흘러나온 것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백이십 년 전 사라진 문파의 물건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

한편, 이때 자유 연상에 의해 유도된 비류연의 의식 흐름은 전혀 엉뚱한 곳에 도달해 있었다. 이미 멸문한 문파의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기름? 요리? 맛있는 것? 덩치? 복면인? 거지? 노학?”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단편들을 모아 하나로 통합하자 채워지지 않은 전체 그림의 여백 속에서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노학 건이었다. 노학이 목격한 네 사람 중 두 사람의 정체를 밝혀낸다면 그들이 이 일과 관계가 있음은 점쳐볼 것도 없이 명백했다 잃어버린 조각 들을 맞출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방금 그중 하나가 있을 만한 곳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던 노학의 증언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 덩치가 곰 같은 복면인은… 에,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맛있어 보였어요.’

염우는 기름이라고 했다. 만약 뭔가 일을 꾸미려면 보통의 양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럼 그런 위험천만한 물건을 가장 안전하고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노학은 왜 그자를 처음 본 순간 입에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다는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받았을까? 그에게 식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맛있는 것은 요리,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것도 요리… 요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대량의 기름을 가지고도 전혀 의심받지 않을 만한 곳, 많은 물품이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야 하는 곳, 기름을 가장 많이 쓰는 곳, 수백 명분의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곳은……?”

“주방이다!”

비류연이 느닷없이 큰 소리로 외치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주방이라구요! 기름을 대량으로 쓰고도 모자라는 곳, 대량의 기름을 보유하고도 전혀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곳, 그럴 만한 곳이 주방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아무래도 요리사로 오래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냄새가 배었으리라. 그쪽이라면 그런 물건들을 숨기는 일도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고, 그걸로 일을 도모하기도 쉬웠으리라.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비류연의 추론은 매우 타당해 보였고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었다. 도성이 외쳤다.

“가자!”

그 다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약간의 협박과 회유로 노학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비류연은 그 길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학은 그자를 한눈에 알아 보았다. 주방이라는 단절된 장소에만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를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덩치는 검은 천으로 감싼다고 숨겨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비류연과 일행은 곧 일에 착수했고, 별 어려움 없이 그자를 확보한 다음, 매우 고도의 정치적이고 아주 약간의 주먹적 기술이 가미된 방법을 이용해 일의 대강의 전 말을 캐낼 수 있었다. 게다가 창고에서 식용을 가장해 들여온 기름도 찾아낼 수 있었다. 기름을 가져온 곳은 놀랍게도 ‘중원표국’.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는 세세하 게 신경쓸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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