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23화 – 풍신(神) 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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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6권 23화 – 풍신(神) 발동

풍신(神) 발동

-생사기로-

항아리 모양의 계곡 안을 주회하고 있는 불꽃의 기류.

사나운 화룡은 거침없이 계곡 안을 날뛰었다.

열에 데워진 공기는 상승 기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계곡 안은 벽처럼 둥글게 둘러싼 불의 장막과 항아리형의 지형 때문에 상승해야 할 공기가 위로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압축되어 있었다. 이대로 연기에 질식사할 것인가 아니면 불에 타죽을 것인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은밀하게 마련해놓은 단 하나뿐인 비상 탈출구마저 뇌탄 의 폭발로 막혀버렸고, 하늘로 날아 탈출하기에는 등의 날개를 하늘에 맡겨놓고 온 상태였다.

“이대로 다 죽어야 하나?”

소용돌이치는 불꽃의 벽이 점점 더 포위를 좁혀오고 있었다. 이 거대한 재해 앞에서는 삼성의 무공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그들의 세 력을 저하시킬 수 있었지만 완전히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통의 불이었다면 애초에 그들의 검풍 앞에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불은 특별한 재료와 진법을 이용한 화진이었다.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단 말인가?”

여기저기서 연기로 인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불타는 홍매곡 정 가운데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절망의 빛 따위는 없었다.

“모두 한곳으로 모여요! 아직 방법은 있어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비류연이었다.

비류연에게 일격을 당한 대공자는 그의 수하들과 함께 이미 계곡을 빠져나간 후였다. 그는 계곡의 입구 쪽으로 단 한 번 열리는 생로의 때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 었다. 게다가 친절하게 입구까지 파괴해주었다.

다른 출구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비상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첫 번째 폭발로 이미 무너진 뒤였다. 적들은 그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들 의 적은 정말로 용의주도했던 것이다.

“소형제, 정말 방법이 있단 말인가? 우리 삼성조차도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검성이 물었다.

“물론 있죠. 하지만 그 방법은 막대한 내력을 소진하는 일이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아직 혼자 힘으로는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낼 자신이 없거든요. 좀 빌 어먹을 기술이라……

혁중과 천무삼성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정말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기(技)가 존재한단 말인가?”

“물론 확실히 제 몸속에 그건 존재하고 있어요.”

“소형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력을 아끼지 않겠네.”

혁중의 말에 천무삼성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불꽃의 벽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곧 ‘화룡멸겁대진’의 최종 단계로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아직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시냇물처럼 천천히 다가오고 있지만 곧 장마 때의 강물처럼 급격하게 불어난 불꽃의 흐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강력한 폭발과 함께 그들을 덮쳐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분명 모든 생명을 그 붉은 어금니가 번뜩이는 아가리 안에 삼켜버릴 것이었다.

“근데, 그 대신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뭐 물어볼 말이 있는데요?”

“뭔가?”

“만일 제 모험이 성공한다면……

“성공한다면?”

“이 화산지회의 우승자는 누가 되는 거죠?”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네 사람의 눈이 잠시 껌뻑여졌다. 잠시 후 혁중이 말했다.

“만일 성공만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자네가 이 화산지회의 승자가 되는 것일세. 그리고 모든 명예와 부상과 자격과 권리가 주어질 것이네. 물론 자네의 배당금 과 함께 말일세.”

혁중은 그때 안목품평회에 참가하던 비류연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절대 실패할 수 없겠군요. 그럼 우선…….”

비류연은 나예린을 바라보았다. 나예린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금세 알아차렸다. 이제는 말로 안 해도 그 눈빛 속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 다.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런 것까지 챙길 여유가 있단 말인가? 불꽃의 열기 때문에 붉어진 얼굴이 더욱 붉게 변했다.

‘성공을 위한 부적, 여신의 입맞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리고 더욱더 곤란한 것은 사부인 검후가 직접 보고 있는 앞이라는 것이었다.

“진짜로 해야 돼요?”

나예린은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고, 비류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맞춤을 해주지 않으면 불에 타죽는 한이 있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듯했다.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후우~”

나예린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긴 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공포와 절망 은 이미 어디론가 달아나버린 것 같았다. 이 사람을 믿자! 그리고 살자! 그런 결심이 들었다.

“흐읍~!”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검후와 검성과 도성과 혁중과 그 외 많은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는 왼쪽 손으로 나예린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았고 강인하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비류연과 나예린의 입술이 한곳에서 부딪쳤다. 어느 누구도 입맛 벙긋할 뿐 이 의외의 사태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긴 입맞춤이 끝난 후, 비류연은 입술을 떼며 씨익 한 번 웃었다.

“이게 효과가 끝내주거든요. 이제 절대 실패하지 않아요.”

실로 미심쩍기가 짝이 없는 말이었다.

어흠, 검후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좋은 배짱이다. 안 그래도 뜨거운데 더 뜨겁게 만들어주는구나. 정말 내 제자가 이런 애였을 줄이야……. 요 며칠간은 계속 놀라운 일의 연속이로구나.” 검후가 아직도 어물쩡거리고 있는 비류연을 향해 말했다.

“뭘 그렇게 뜸을 들이느냐? 냉큼 시작하지 않고. 뭣 하면 내가 대신 또 한 번 해주랴?”

“조심하게, 소년! 백 년 묶은 할망구의 입술에 당하면 중독사할지도 몰라.”

도성이 옆에서 심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였다.

와하하하하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희망을 되찾은 웃음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었고, 살아 있는 이상 희망은 있는 것이다.

“잘 들어라. ‘풍신’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풍신을 쓸 수 없다. 풍신이란 기술의 범주를 초월한 기 술이다.

풍신이나 뇌신 모두 자연을 인간의 몸으로 체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자연과 동조시켜 가장 강력한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인간 내부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는 법. 소우주의 힘은 눈덩이를 굴리는 힘이다. 그리고 그 눈덩이를 키우는 것은 대우주의 힘이다.

기본은 이렇다. 이 세상은 끝없이 순환하고 있으며 그것을 상징적으로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원이다. 하지만 원의 형태로 순환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 다. 태극이란 이름의 원형 틀 위에서 그것을 축으로 음과 양 두 개의 축이 나선으로 한데 얽히며 세계란 이름의 바퀴를 굴리는 것이다. 그것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 로 강하고 장대한 힘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자신을 먼저 동조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곧 자연을 움직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일분수(理一分殊), 모든 것은 리에서 나왔기에 리가 아 닌 것이 없고, 그렇기에 전체는 하나이며 하나는 전체다. “자표이리(自表而裏) 급기관지(及其貫) 만사일리(萬事一理).’ 현존하는 사물은 그것을 받쳐주는 이면의 원리가 있다. 그 원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사(萬事)를 하나로 꿰고 있는 리(理)에 도달하게 된다. 그 리가 무엇인지 접하고 깨닫고 그것을 구현한다.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자신이 먼저 세상이 움직이는 형태로 움직인다.”

먼저 원(圓)을 그리고… 하늘[天]과 땅[地] 사이에 그려진 원의 내부를 두 개의 힘이 나선螺旋)을 그리며 달린다.

철컹철컹철컹!

비류연의 양손에 채여 있던 묵환과 오른쪽 다리에 채여 있던 묵환이 모두 풀려 나갔다. 그리고 그의 양 소매에서 열 개의 비뢰도가 모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 만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전에 그의 주위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좌우 다섯 개씩, 열 자루의 비뢰도와 뇌령사가 마치 나선의 춤을 추듯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처음에 그 회전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회전 운동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비류연의 모습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회전하는 은빛 소용돌이가 반경 삼 장 정도의 원형벽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 원 중심에 비류연은 눈을 감고 고요하게 서 있었다. 부동(不動)의 동인(動因)처럼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힘이 그의 내부에서 끓어 넘치고 있었다. 우 주의 핵(核), 세상의 중심에 자기가 있었다.

비뢰도(飛刀)

최종비전오의(最終秘傳奧義)

풍신(神) 발동(發動)

그 순간 비류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콰콰콰콰콰콰콰!

비류연의 전신에서 엄청난 힘이 방출되면서 나선으로 얽혀 있던 기가 거대한 용권풍이 되어 포효했다. 주위의 자갈과 먼지가 날뛰는 용권풍 안으로 빨려 들어갔 다.

“이… 이것이 인간의 기술이란 말인가?”

천무삼성마저도 그 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몸에서 이런 힘이 뿜어져 나오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용권풍의 힘은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자 마침내 그들을 삼키기 위해 시시각각 다가오던 불꽃의 벽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압축되어 있던 기류가 비류 연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용권풍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세 배는 빨라진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던 불의 장벽도 오 장 앞으로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 다.

번쩍!

그 순간 화룡멸겁대진이 마지막 용트림을 했고, 잠재되어 있던 모든 힘을 폭발시켰다. 엄청난 충격파가 계곡 전체를 휩쓸었고, 불의 홍수가 생명을 유린하기 위해 날뛰었다.

비류연이 만들어낸 용권풍의 세력도 이번 폭발을 견뎌내지 못하고 점점 더 좁혀졌다. 비류연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모두 죽는 것이다. 천무삼성과 혁 중이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아직 힘은 다 소진되지 않았다.

비뢰도

최종비전오의

풍뢰(風雷)의 장(章)

나선螺의 인刃)

용권(龍승룡(昇龍)

거대한 폭풍이 계곡 전체를 미친 듯이 휩쓸었고, 마구잡이로 뒤흔들었다. 비류연이 서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엄청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놀랍게도 비류연이 서 있는 장소만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힘은 지금도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팽창되고 갈 길을 찾지 못하던 뜨거운 공기가 비류연이 하늘과 땅 사이에 만들어놓은 바람의 기둥을 타고 하늘로 하늘로 끝없이 밀려 올라갔다. 그 모습이 멀리서 보면 마치 붉은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엄청난 바람과 불이 한데 어우러져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리고 이 엄청난 작업에 힘이 다했는지 불꽃은 단번에 꺼져버렸다. 더 이상 태울 재료도 공기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믿을 수 없는 고요가 그들의 주위를 감쌌다. 이제 어디에도 그들을 위협하는 불꽃은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며 서로를 얼싸안고 축복했다.

“살았군요. 살았어요, 류연!”

나예린이 기뻐하며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실로 대담무쌍한 행동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네요.”

비류연은 나예린의 가냘픈 허리를 감싸면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같은 활기가 깃들여 있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몸속에 힘은 한 조 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내 정신을 잃었고 나예린의 품속으로 안기듯 쓰러졌다.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런 기절이었다. 전 무림의 질투 어린

공분을 살 만한 만행이었다. 

“류연! 류연!”

천하제일의 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피로감과 싸우고 있었고, 그것의 해결 방법은 잠밖에 없었다. 사람 걱정 잔뜩 시켜놓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니깐……”

그녀의 입가에 살포시 가느다란 미소가 어렸다. 나예린은 그 자리에 앉은 뒤 비류연의 머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계속해서 그의 자는 얼굴을 지켜보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뜰 때까지.

“수고하셨어요, 류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예린이 꿈결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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