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11화
두 명째.
신장이라 불리는 자가 두 명째 그의 발밑에 쓰러져 갔다.
‘슈렌이 눈을 떴을 때 말릴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일까.’
신계의 전사들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의문시되던 말이었다.
슈렌은 자신의 기염(氣炎)이 옮겨붙은 <그룬가르드>를 천천히 돌리며 자신을 쓰러뜨리겠다며 소리소리치던 신장 중 온전히 서 있는 마지막 한 명, 라우소를 바라보았다. 표정 변화란 없는 슈렌의 얼굴에 라우소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러자 슈렌은 자세를 약간 풀며 라우소에게 말했다.
“‥자신이 없으면 도망쳐도 좋아. 어차피 너나 나나 좋은 일일 테니.”
「크윽‥!!!」
라우소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실 자신보다 강한 축에 드는 루카와 무스카가 그렇게 간단히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본 이상 라우소도 슈렌에게 덤비는 것이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신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라우소, 목숨을 걸고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각오하십시오, 신장의 진짜 힘을 접하기 전에 말입니다–!!!!!!!」
녹색의 빛과 함께, 라우소의 몸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 번 만났을 때 바이론의 [마리오네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커졌을 당시와 똑같았다. 라우소가 그렇게 커지자, 트립톤의 곳곳에서 커진 라우소의 모습이 들어왔고 사람들은 당연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른 강철의 거인으로 변한 라우소는 한 발을 슈렌 쪽으로 크게 내딛었고, 슈렌은 조용히 옆으로 몸을 움직여 라우소의 공격 아닌 공격을 피하였다. 쓰러진 동료 신장으로부터 슈렌을 떨어뜨린 라우소는 동료 신장들을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둘 다! 저 가즈 나이트는 내가 맡을 테니 여신들께 가보십시오!!」
「라, 라우소‥부탁하네‥. 반드시 다시 돌아오지‥!」
루카와 무스카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공중에 띄우며 벌써 멀리 떨어져 버린 여신들과 워닐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날아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라우소는 다시 슈렌을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하기 시작했다.
「‥저번처럼 동료 가즈 나이트가 없으니 어떻습니까, 당신 기분이 상당히 궁금하군요. 후후후훗‥.」
슈렌은 무표정으로 조금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말했다.
“음‥없으니 오히려 편한데. 말은 다 끝났나?”
슈렌의 몸에 기염력이 다시금 타올라 오기 시작하자, 라우소는 아까와는 달리 자신 있다는 듯 크게 웃으며 슈렌을 향해 자신의 양팔을 뻗었다. 곧, 라우소의 팔은 네 조각으로 갈리며 펼쳐졌고 펼쳐진 중앙점에선 녹색의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신상으로 변한 신장의 힘을 잘 느껴보십시오!! 어떤가 감상을 듣고 싶지만 당신의 감상을 과연 들을 수 있을지‥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라우소는 공중으로 자신의 거대한 몸을 떠올리며 변한 양팔에 모은 녹색의 빛을 일시에 방출하였다. 그 에너지의 방출로 인해 400여 미터 주위의 건물과 지면이 에너지의 압력으로 폭음과 함께 날아가 버렸고, 지표 역시 수십 미터 이상 함몰되고 말았다. 1분여 동안 에너지를 계속 방출한 라우소는 에너지를 거둔 후 팔을 정상적으로 접으며 자신의 발밑에 푹 꺼져 나간 지면을 바라보았다. 슈렌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하하하핫–!! 안타깝군요, 당신의 감상을 듣지 못하고 말았으니까요!! 하하하하하핫–!!! 이로써 신계 최강이라는 가즈 나이츠(God’s knights)의 이름은 오늘로서 끝입니다!!!!」
그렇게 라우소의 웃음이 계속되는 가운데, 라우소의 바로 밑, 함몰된 지표에서 커다란 불꽃이 다시 생성되었다. 확 소리와 함께 그 불꽃에선 슈렌이 나타났고, 슈렌은 자신이 나타난 것도 모르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라우소를 올려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표정으로‥.
“‥끝이라‥아쉽군.”
순간, 슈렌의 눈이 붉은색으로 번뜩였고 그의 몸에서 방출되는 기염력의 색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그룬가르드>의 끝을 오른손으로 잡은 후 하늘 높이, 정확히 말하자면 라우소를 향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걸 사용하긴 솔직히 싫지만‥날 조금 화가 나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지.”
크게 웃던 라우소는 함몰된 지면의 밑바닥에서 갑자기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자 깜짝 놀라며 밑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만든 지름 400여 미터, 깊이 수십 미터의 거대한 크레이터 전체가 지옥의 밑바닥과 같이 어느새 화염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무, 무슨–!?」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슈렌의 창 <그룬가르드>는 굉음을 내며 또한번 타오르고 있었다. 염창(炎槍) <그룬가르드>라는 이름을 의심했던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슈렌은 짧게 중얼거렸다.
“고대어 상급 신술‥[멜튼]‥!”
라우소는 도망치지 못했다. 아니, 도망치기엔 너무도 범위가 컸다. 공중으로 뿜어져 올라가는 거대한 불의 기둥 속에서, 라우소의 거대한 몸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라우소는 처참히 절규하기 시작했다.
「아, 안돼‥이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몸이‥크아아앗–!!」
라우소의 몸은 [멜튼]의 강렬한 붉은빛 안에서 폭발한 후 아래에서 뿜어져 올라가는 압력에 의해 위로 휩쓸려 올려졌다.
[멜튼]의 열권 안에 있는 구름들은 모조리 구멍이 뚫리며 멀리멀리 확산되어갔다. [멜튼]의 불꽃은 이내 사라져 갔고, 구멍에서 나온 슈렌은 붉게 달구어진 <그룬가르드>를 바닷물 속에 던져 식히기 시작했다.
“‥아깝군. <그룬가르드>의 에너지를 반이나 소모하다니‥.”
<그룬가르드>가 들어간 바닷물이 더 이상 끓어 오르지 않자, 슈렌은 다시 <그룬가르드>를 떠올린 후 손으로 잡으며 바이론이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불안한데.”
“크큭‥크크크크큭‥!! 웃기는군‥!!!”
바이론은 웃기 시작했다. 여전히 광기가 어린 미소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바이론은 떨어져 나간 자신의 왼팔 부위를 오른손으로 감싸 지혈하며 자신의 앞에 멀쩡히 서 있는 워닐을 바라보았다. 워닐은 녹색으로 빛나는 눈으로 웃으며 자신의 앞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바이론에게 물었다.
「아직도 그렇게 웃을 기운이 있다니, 멋진걸 가즈 나이트 바이론? 후후훗‥넌 강하다. 확실히 워닐의 힘을 능가하고 있지. 하지만 나의 힘 앞엔 아무것도 아닌걸. 하하하하핫‥내가 너무 강한 것뿐이다. 그렇게 실망 안 해도 괜찮아.」
“‥다른 신장들도 너에 대해 알고 있나?”
워닐은 바이론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멍청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신이 멀쩡하다 알고 있지. 이미 인형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야. 하아‥그들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후후훗.」
워닐은 고민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바이론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워닐에게 물었다.
“‥넌 다시 한번 할마게돈을 꿈꾸는 건가? 그 유치한 전쟁을?”
워닐은 어깨를 으쓱이며 무너진 건물 파편에 앉아 대답했다.
「그럴 리가, 나도 할마게돈 정도의 대 전쟁은 싫어. 그런데 의외군. 널 개조한 주신이 최고신이 된 계기가 할마게돈인데 유치한 전쟁이라니‥. 자, 질문 시간은 끝이다 가즈 나이트. 끝을 내 볼까?」
워닐은 앉은 채 바이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보라색의 빛이 스파크를 내며 워닐의 손바닥 안에 모여들었고, 바이론은 이를 악물며 인상을 찡그렸다.
「잘 가라‥어둠의 가즈 나이트, 후하하하하하하하핫–!!!!!」
평소답지 않은 광소와 함께 워닐은 자신의 손에 모인 광체를 바이론에게 쏘았다.
투웅–!!!
무언가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바이론은 움찔하며 자신의 앞을 바라보았다. 몸에서 찬란한 빛을 뿜고 있는 여신, 이오스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워닐이 쏜 광체는 이오스에 의해 간단히 튕겨져 나갔고, 워닐은 유감이라는 듯 눈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흥‥역시나 날 방해하는군 이오스. 역시 맘에 안 드는 존재야 너는.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인형이긴 하지만 날 도와줄 신이 셋이나 나에게 있으니 말이야.」
이오스 역시 알고 있었다. 바이론은 애써 몸을 일으키며 이오스의 옆에 섰다.
“‥왜 나오셨습니까 이오스 신이시여‥당신만 살아 계신다면 저 같은 건‥.”
「‥아니에요 바이론. 당신은 아직 죽어선 안 돼요, 당신들이 지켜야 할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잠깐 저에게 가까이 오시겠나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바이론은 왼팔의 단면부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눈을 움찔거리면서도 자신보다 키가 훨씬 작은 이오스에게 몸을 굽혔다. 이오스는 자신의 빛나는 손으로 바이론의 회색 장발을 쓰다듬어 주었고, 바이론은 눈을 크게 뜨며 이오스를 바라보았다.
“당신께서 그런‥!? 하지만‥!!”
이오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요 바이론. 이제 이 세계는 당신을 포함한 가즈 나이트들에게 달렸어요. 자, 어서 가세요. 모두가 동방으로 향하는 배로 가고 있으니 그들을 지켜줘야 하잖아요.」
“….”
바이론은 말없이 뒤로 돌아섰다. 이오스는 빠르게 벗어나는 바이론의 뒷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워닐은 녹색 빛을 내는 자신의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오스를 노려보았다. 이오스는 가벼운 자신의 옷을 갑옷의 형태로 바꾸며 전투 태세를 취하였고, 일명 새벽의 검이라 불리우는 자신의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자, 결판을 내자!!! 네 뜻대로 세계를 넘겨줄 수는 없다!!!!」
그러자, 워닐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을 들었다.
「‥후훗, 미안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군. 귀찮은 파리 두 마리가 날아오니 사양하겠어. 후후후후훗‥하하하핫!!!」
워닐은 순간 치켜든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강타했고, 갑옷과 피부를 파고든 손에 의해 검은색의 피가 치솟았다. 이오스는 자해를 하기 시작하는 워닐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워닐의 자해는 계속되었다. 왼팔을 스스로 부러뜨렸고, 복부에도 몇 차례의 타격을 가하였다. 워닐은 스스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으윽‥!」
놀란 눈으로 워닐을 잠시 바라보던 이오스는 멀리서 기에 의한 충격파가 날아오자 가볍게 튕겨내며 충격파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상처를 심하게 입은 두 명의 신장이 이를 악문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오스‥감히 워닐님을 저렇게 만들다니!! 우리의 신들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사람들이 대피하는 가운데, 네 명의 젊은이와 한 명의 노인, 또 한 명의 아이가 거꾸로 트립톤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검은 말에 탄 짙은 금발의 청년–지크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너무 늦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