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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23화


“야아‥이거 대단한데 루이체?”

마키는 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채 루이체를 향해 감탄을 연발했고, 루이체는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응, 그래. 시속 600km로 가니 진짜 대단하지. 그건 그렇고 저기 앉은 두 남자들은 뭘 하는 걸까?”

루이체는 리오와 바이칼이 앉은 뒤를 흘끔 바라보았다. 둘은 별 얘기 없이 같은 무표정으로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었기에 안내원조차 둘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시간이 꽤 지나 루이체와 마키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에 빠지자, 리오는 낮은 목소리로 바이칼에게 물었다.

“‥짐덩이가 둘 불어났는데‥어쩌지?”

리오의 물음에, 바이칼은 별 표정 없이 유리창을 손가락 끝으로 부비며 대답했다.

“나하고는 상관없지. 죽든 말든‥.”

“‥하긴 그렇군.”

리오는 피식 웃은 뒤, 멀리서 다가오는 안내원에게 손짓을 했고, 안내원은 미소를 지으며 리오에게 다가왔다.

“예,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초콜릿 밀크, 차가운 것으로 부탁해요.”

“예? 호홋‥.”

건장한 근육질의 남자가 갑자기 초콜릿 우유를 주문하자, 안내원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고, 리오는 안내원을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엇, 주문은 주문이에요 아가씨. 너무 그러지 말아요.”

리오의 말에, 안내원은 실례를 했다 생각하고 즉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아‥죄송합니다, 안내원이 된지 얼마 안 돼서‥.”

“아아, 괜찮아요. 음‥넌 뭘 마실 거지?”

리오는 바이칼을 바라보며 물었고, 안내원 역시 주문을 받기 위해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바이칼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없어져.”

그 말에, 안내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리오는 일어서서 대신 사과를 하며 안내원에게 말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저 녀석 말버릇이 좀 그렇거든요. 이해해 주시고‥.”

안내원이 괜찮다는 말과 함께 식당칸 쪽으로 가자, 리오는 한심하다는 듯 자리에 앉으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이봐, 여긴 드래고니스가 아니니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안 돼? 너무 심하잖아.”

“흥‥인간 따위에게 내가 예의를 지킬 필요는 없어.”

바이칼의 그 싸늘한 말에, 리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푸욱 눌러 앉았다.

“그래‥그러시겠지. 하긴 뭐 너의 그 말을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니 나도 상관은 없지만. 음‥샌프란시스코까지 일곱 시간이나 걸리니 주문한 우유나 마시고 한잠 자볼까나‥.”

바이칼은 자신의 앞에서 눈을 살짝 감는 리오를 흘끔 봤다가 이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세 시간 후,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가는 한계선 검문소에서 일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휘말리게 된다.

어제 밤 알코올 기운에 숙면을 취했던 리오는 잠이 잘 오지 않아 그냥 눈만 감고 있었고, 바이칼은 마네킹처럼 똑같은 포즈로 계속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문은 그들을 저지할 대상이 아니었다. 정식 미군 헌병들이 ID 카드만을 검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미리 빼돌려 완벽하게 위조해 둔 ID 카드로 합법적인 통과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일행이 검문을 마친 뒤였다.

“‥출발이 늦는군‥.”

리오는 눈 감고 있기도 지겨워진 듯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볼만한 것은 별것 없었다. 전력의 감소로 인해 20세기 후반에 쓰이던 것과 같은 광고 판넬만이 번뜩일 뿐이었다.

슈웅–

순간, 리오의 눈앞에 붉은 구체 하나가 쏜살같이 지나갔고, 그 구체가 날아간 쪽에선 잠시 후 강렬한 불빛과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아, 아니, 저것은‥5급의 [파이어 밤]!? 맞지 바이칼!”

바이칼은 별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는 달리, 리오는 즉시 열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열차 밖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파이어 밤의 빛과 폭발에 놀라 웅성거리며 나와있는 상태였다. 폭발이 일어난 곳에선 BX-03 세 대가 기계음을 내며 호버 이동으로 리오가 있는 쪽을 향해 고속으로 오는 중이었다.

퓨웅–!!

그때, 다시 한번 파이어 밤의 불꽃이 리오의 앞을 지나쳐 BX-03을 향해 날았고, BX-03 두 대가 그 마법탄에 직격하며 폭발의 충격에 의해 뒤로 멀찌감치 나뒹굴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또 한방의 파이어 밤이 날았고 나머지 BX-03도 똑같이 파괴되어 플랫폼 위에 쓰러졌다. 리오는 즉시 시력을 확대하며 로봇들을 향해 마법탄을 발사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곧 한 여성이 빠르게 반대편을 향해 뛰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직감적으로 그녀가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수께끼의 마법 사용자와 리오의 거리는 단숨에 좁혀졌고 리오는 그녀를 뒤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이봐요! 잠깐 거기 서세요!!”

리오의 목소리에, 그녀는 거짓말 같이 즉시 서서 리오를 돌아보았고, 리오와 그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마주서게 되었다. 긴 갈색 머리의 그 여성은 리오를 보고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리오 역시 그녀를 어디서 많이 본 듯했으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우물거렸다. 조금 후, 여자 쪽에서 리오를 알아봤다는 듯 자신의 손바닥을 마주치며 리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 리오·스나이퍼!! 여기서 만나다니, 꿈만 같군요!!!”

“예? 아 예‥.”

그러나 리오는 아직 그녀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리오가 아직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듯하자,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저에요, 프시케라고요!”

“‥예, 예!?”

그녀의 손을 따라,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은 서서히 푸른색으로 바뀌어갔고 리오의 기억에선 그녀의 모습이 점차 뚜렷해졌다. 4년 전, 고신 전쟁 때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환수신, 프시케였다. 하지만 그때보다 많이 어른스러워졌기 때문에 리오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니, 어째서 프시케 님이 여기에‥? 당신은 그쪽(신계)에 계셔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프시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전 더 이상 신이 아닌 걸요. 아, 얘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앗!!”

마악 돌아서려던 찰나, 프시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리오의 옆으로 물러섰고 리오는 정색을 하며 프시케의 시선이 고정된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로봇도, 군인도 물론이었다. 단 한 명, 옆에 노트북 컴퓨터를 낀 작은 체구의 동양계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지은 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허허허헛‥예상이긴 했지만 당신이 진짜 서부로 가는 열차를 탈 줄은 몰랐소이다. BSP의 유일한 매직 유저‥[사이키·맥브라이드]. 멍청한 군인들이 보내지 말라는 BX-03을 보내서 괜한 세금 낭비를 하다니‥쯧쯧쯧. 응? 그런데 언제 머리를 파란색으로 염색했소? 남자 친구도 그새 만들었구먼‥역시 청춘은 좋다니까, 허허헛‥.”

노인은 안경 뒤로 보이는 동그란 눈을 재미있게 찡그리며 자신의 턱에 듬성듬성 난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리오는 알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보통의 노인과 같은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뿜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프시케를 자신의 뒤로 돌리며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군데 이 여자를 쫓는 거지? 블랙 프라임에서 보낸 늙은 개인가?”

그러자, 노인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핫‥젊은이, 무슨 실례의 말이오. 이 늙은이는 이래 뵈도 과학자란 말이오. 아, 시간이 너무 지났군, 쯧쯧쯧‥. 할 수 없지, 방해할 생각이면 잘 가시오 젊은이.”

리오는 순간 그 노인의 양옆에서 뿜어지는 싸늘한 분위기에 약간 긴장을 하며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가다니, 어딜 말입니까?”

노인은 눈앞이 흐릿해져서인지 안경을 벗은 후 옷자락으로 열심히 닦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흐음‥눈치가 없는 젊은이구먼. 어디긴 어디요, 저승이지. 어허〜이런, 렌즈를 바꿀 때가 되었나? 너무 긁혔군‥쯧쯧.”

노인의 대답이 시작되었을 때, 노인의 양옆에선 순간 검은색의 거대한 구멍이 생성되었고, 그 구멍에선 중무장을 한 생체 로봇, 나찰과 수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두 로봇은 나오자마자 크게 포효하며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을 하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 식인 로봇이다!! 식인 로봇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각각 다른 비명 소리에, 그 노인은 귀를 후비며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응응‥이런, 노인의 귀는 약하다는 것을 잊었나보군. 자‥귀염둥이들아, 저 청년은 알아서 하고, 저 파란 머리 아가씨는 모시거라. 어이구‥착하지?”

노인은 나찰과 수라의 두꺼운 장갑질 다리를 두드려주며 손자를 돌보는 할아버지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리오는 씨익 웃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저 로봇들을 만든 것이 당신인가? 그랬군‥이름을 듣고 싶은데 말해줄 수 있겠지?”

리오의 질문에, 노인은 자신의 손바닥을 지압하며 가볍게 대답했다.

“응? 나찰과 수라를 아는 모양이구먼. 난 <후지바라·와카루>라고 하네. 사람들은 닥터 와카루라고 하지만‥응, 그럼 자네 이름은 뭔가?”

그 질문에 반응이라도 하듯, 리오는 자신의 모습을 원래대로 바꾸며 대답했다.

“리오·스나이퍼, 가즈 나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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