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63화
“크읏‥!”
귀빈궁은 이미 반파가 되어 있었다. 아니, 반파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슈렌은 방어에 집중한 탓인지 레디처럼 간단하게 당하진 않았다. 그러나 전투라는 것은 공격을 해야지만 이길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렌은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앙그나라고 밝히는 괴물이 라이아를 자신의 앞에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랬지만, 앙그나는 상당히 강했다.
“호오‥이런 이런‥한숨 잠이나 자려고 왔더니 여기서도 활극이 벌어지는군‥크크크크큭‥.”
그때, 앙그나의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앙그나는 라이아를 잡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바이론은 벽에 손을 짚은 채 약간 힘이 빠진 얼굴로 슈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녹색 머리 소년은 어디 있지? 세수라도 하러 갔나?”
슈렌은 아직도 방어 태세를 취한 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이 잘못됐어‥.”
그러자, 바이론은 미소를 지은 채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크크크크크‥하긴, 약한 녀석은 죽는 게 당연하지‥. 아이까지 넘겨줬으니 내가 죽였을지도 몰라‥크큭‥.”
그렇게 바이론이 중얼대며 서 있기만 하자, 앙그나는 짜증이 났는지 바이론을 향해 달려들며 자신의 양팔을 뻗었다.
“앙그나, 네 웃음소리 싫다! 죽인다!!!”
파앗–!!!!
“크오오오오오오오옷–!!!!!!”
순간, 열 개의 긴 살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앙그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로 주춤거렸다. 오른손에 어느새 다크 팔시온을 든 바이론은 왼손으로 안면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광기 어린 눈빛을 폭사하며 자신의 앞에서 괴로워하는 앙그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크크크‥손가락을 잘라줬으니 이젠 내 웃음소리가 맘에 들겠지 털복숭이‥. 자아, 이젠 내 모든 것이 맘에 들도록 해 볼까‥응? 크크크크크크‥.”
손가락이 모두 잘린 채 괴로워하던 앙그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바이론을 쏘아보았다. 확실히 무차별적으로 덤빌 기세였다.
“–!!!”
순간, 앙그나는 라이아를 데리고 창밖으로 몸을 날렸고, 바이론은 이를 악물며 앙그나를 뒤쫓기 위해 역시 몸을 날렸다. 슈렌은 앙그나가 갑자기 도망친 것에 의문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안돼‥!!”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거머쥐며 역시 앙그나를 뒤쫓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슈렌의 체력은 한계에 달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그대로 방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직 힘이 남아있군.”
휀은 자신의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카에를 바라보며 말했고, 와카루 박사는 무엇이 그리 조마조마한지 손을 모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 아니 어떻게‥!? 분명 린라우님이 이 녀석들의 힘은 4대 용왕과 필적할 수준이라고 하셨는데‥!!! 허허, 이런‥!!”
그러자, 휀은 와카루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4대 용왕? 하긴, 그 정도는 될 것 같군‥.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니‥!?”
와카루는 흠칫 놀라며 휀을 바라보았고, 휀은 플렉시온에 기를 주입하며 짧게 중얼거렸다.
“말이 너무 많았군.”
순간, 와카루는 자신의 뒤쪽으로 작은 캡슐을 집어던졌고, 그 캡슐은 바닥에 떨어져 깨지며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곧, 캡슐이 떨어진 자리엔 무서울만치 어두운 공간이 생성되었고, 와카루는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친 후 비틀거리는 카에에게 소리쳤다.
“카에! 어서 들어오너라!!!”
와카루는 곧바로 어두운 공간, 데몬 게이트 안으로 도망치듯 사라졌고, 카에도 역시 사력을 다해 데몬 게이트 안으로 거대한 몸을 밀어 넣었다. 곧이어 휀의 곁을 스치며 또 한 명이 데몬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암흑 투기를 뿜어내는 검 하나가 막 닫히려고 하는 데몬 게이트의 입구에 박혔다.
휀은 플렉시온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그 검을 보고 중얼거렸다.
“급하긴 했군‥바이론.”
어느새 휀의 뒤에 서 있던 바이론은 분한 듯 이를 갈며 다크 팔시온의 마력에 의해 겨우 닫히지 않은 데몬 게이트를 쏘아볼 뿐이었다. 휀은 자신의 코트 자락을 툭툭 턴 뒤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일 없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좋은 날씨.”
※
그날 밤, 바이론의 다크 팔시온이 데몬 게이트가 닫히는 것을 막고 있는 현장에서 붕대를 상체에 묶은 슈렌은 레이를 비롯해서 이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인 후 바이론과 함께 기나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오스님께선 라이아의 잠재 의식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심어두셨습니다. 아, 라이아의 언니가 되는 세이아라는 분께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을 미리 예상을 하셨나 봅니다. 이것은 저희들도 최근에 안 사실입니다. 이오스님은 이 세계의 시간으로 1000년 전, 물론 모든 시간을 합하면 더 오래 되었겠지만 다른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신벌을 받으셨습니다. 이오스님은 좀 강도가 약하게 받으신 탓에 신의 힘만을 제외당하셨지요. 그래서 하이 엘프의 몸으로 계속 살아오시다가‥약 20여 년 전 한 남성을 만나게 되셨습니다. 레프리컨트 왕국의 마법 기사 [발컨·드리스]라는 사람이 지요.”
발컨에 대해 알고 있는 노엘과 로드 덕은 흠칫 놀랬고, 슈렌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오스님은 검술에 대한 애착이 깊으신 분이셨죠. 결국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세월이 지나 그 발컨이라는 남자의 아이를 잉태하셨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첫째 아이가 라이아의 언니 세이아양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라이아가 태어났죠. 그런데‥흐윽–!!”
말을 계속하던 슈렌은 순간 피를 토하며 몸을 숙였고, 그가 회복 마법을 할 줄 아는 미네아에게 회복 주문을 받는 동안 나머지 얘기는 바이론이 해주었다.
“‥그 두 아이는 반신반인이기 때문에 신으로서의 능력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 다 반신반인으로서 각성을 하지 못했지. 최근까지‥하지만 여신들의 신벌이 강대한 마력에 의해 억지로 풀리면서 둘에게까지 보이지 않는 여파가 미친 것이다. 이오스님껜 미치지 않았지만‥. 어쨌든 힘을 쓸 줄 모르는 둘은 평상시대로 살아왔지만‥어느 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이세계의 군대가 둘을 갈라놓게 되었다. 우리로서는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운이 좋게도 라이아는 지크 녀석에 의해 우리에게 양도되었고, 바로 몇 시간 전‥우리들에게서 사라져 갔다.”
모두는 자신들에게 들려진 놀라운 사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 아이와 순진한 시골 처녀인 줄 알았던 세이아가 반신반인일 줄은‥. 슈렌은 사바신에게 부축을 받으며 얘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크읏‥어쨌든, 둘은 이오스님의 힘을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언니인 세이아양은 이오스님의 정신을‥동생인 라이아는 이오스님의 육체를‥그것도 더한 힘을 가지고‥. 그 둘이 바로 이오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저희들에게 남기신 말, 새벽의 자식, [여명]인 것입니다‥.”
그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휀은 슈렌과 바이론, 사바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간단히 말해 임무는 반쯤 실패했다는 것이군‥뭐, 좋을 대로.”
그러자, 사바신은 발끈하며 휀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 여기까지 와서 그 재수 없는 입을 나불대는 거냐!!!! 한 번 붙어보자 이 빌어먹을 녀석!!!!”
사바신이 그렇게 소리소리를 치자, 휀은 관심 없다는 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결과가 뻔한 싸움은 사양하지.”
“이, 이‥!!!”
사바신이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려 하자, 순간 린스가 그의 앞으로 나서며 오히려 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 멍청아!! 여기까지 와서 너희들끼리 싸우면 누가 잘했다고 박수 칠 줄 알아? 그런데 힘 쓸 시간 있으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할 방법이라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니야!!!”
그러자, 사바신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휀으로부터 돌아섰고, 휀은 별 반응 없이 계속 눈만 감고 있었다. 곧, 옆에 있던 바이론이 데몬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다른 녀석들에겐 불가능하지만, 나는 데몬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다. 휀 녀석은 천사들이 사용하는 빛의 길을 통과할 수 있지.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어쨌든, 여긴 휀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죽은 레디 녀석 열 명을 모은 것보다 저 녀석이 더 실용적이지, 크크크크크‥.”
그러자, 이번엔 베르니카가 발끈했으나 사바신처럼 나서지는 못했다. 바이론은 미소를 지은 채 계속 말했다.
“‥처음 가즈 나이트가 되었을 때‥난 바보 같게도 이오스님의 초상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빛을 낼 수 없는 난 그분이 내시는 빛을 소유하고 싶어했지‥크크큭. ‥그런 주제에 이오스님 한 분을 지키지 못했고, 지금은 또 그분의 자녀를 지키지 못했다‥. 세이아라는 여자가 잡혀가긴 했지만 어떻게 탈출을 하긴 한 모양이야. 아직까지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지. 난 그쪽 세계로 가서, 그 마지막 여명을 찾아낼 것이다. 800년이 넘게 내려져온 내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도‥크크크크크크크‥.”
그 순간, 바이론의 말에 담긴 진짜 뜻을 속으로 느낀 일행들은 지금까지 피에 미친 미치광이인 줄 알았던 바이론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다르게 보였다. 바이론은 데몬 게이트를 양손으로 잡은 뒤 힘으로 벌리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휀·라디언트‥이오스님께서 나에게 부탁한 것 중에 저 짐덩이들을 무사하게 해달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여왕이란 여자와도 계약을 좀 했지. 너에게 넘기겠다‥그건 웬만한 저주보다도 힘드니까, 크하하하하하하핫–!!!!”
휀은 눈을 살짝 뜨고 바이론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좋을 대로.”
곧, 바이론은 별말 없이 다른 세계를 향해 출발을 했다. 그가 사라진 후 데몬 게이트도 닫혔고, 슈렌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모두에게 말했다.
“‥아직 우리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대륙에 있는 신주를 지켜야만 합니다. 으윽‥!!”
고통스러워하는 슈렌에게, 린스는 빙긋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와 그의 넓은 어깨를 두드려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좀 쉬어 돌덩이. 이제 믿을 것은 너뿐이잖아, 안 그래?”
그러자, 슈렌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공주님‥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