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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75화


방송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쇼 녹화 방송의 시간을 기다리는 교복 차림의 소녀들은 서로 자신들이 보기 위해 온 남자 스타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때, 검은 머리에 보통 키 정도의 소년이 보자기에 싼 긴 등짐을 진 채 그 소녀들에게 다가왔고, 소년은 머리에 쓴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소녀들에게 물었다.

“저어‥한 가지 말씀 좀 물어도 될까요?”

상당히 준수한 용모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소녀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그 소년을 흘끔 보며 말했다.

“예, 그러세요.”

“네에, 그러니까‥티베·프라밍 씨를 찾고 있습니다만, 어디에서 그분을 뵐 수 있을까요?”

그러자, 소녀들은 모조리 인상을 찡그렸고, 소년은 자신이 무슨 말을 실수한 것이 아닌가 하며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들은 그 소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헹‥하긴, 뉴스 한번 본 남자들은 전부 한 번쯤 그 여 기자 보고 싶어 하니까‥. 지금은 아마 기자실에 있을 거예요. 기자니까 기자실에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럼 이제 사라져요.”

설명을 해 준 여학생은 껌으로 풍선을 불며 그 소년에게 가라 말했고, 소년은 감사하다며 머리를 조아린 후 곧 기자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어이, 정신 차리라구. 쫓기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편히 자고 있으면 어떡해.”

지크는 아직도 기절해 있는 티베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고, 티베는 이윽고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그 애들은?”

티베가 아직 혼이 나간 상태로 자신에게 물어오자,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응? 응‥지금쯤 우릴 찾아다니고 있겠지. 지금 우리 옆이나 천장 위에 있을 수도 있고. 만나고 싶으면 부탁만 해, 헤헤헷‥.”

그러자, 티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다시 물어왔다.

“뭐, 뭐라고!? 부, 분명히 내 눈앞에서 목이 날아갔을 텐데‥!?”

지크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당연하지. 나도 처음엔 놀랐는데, 목이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탐지 범위 안에서 계속 기가 느껴졌다구. 아마 인간형 괴물 내지는 바이오 버그 둘 중 하나일 거야.”

지크가 그렇게 대답을 하는 동안, 티베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아, 아니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분식점에 와서 앉아있는 거야!!!”

지크는 자신의 앞 식탁에 놓인 샌드위치 중 하나를 입에 접어 넣은 후 씹어 삼킨 뒤 음료수로 입가심을 하며 대답했다.

“이봐, 난 점심 못 먹었다구. 싸워도 배는 불리고 싸워야지. 자자, 많이 사왔으니까 너도 먹어. 방송국 분식점 치고는 맛 좋은데? 헤헤헤헷‥.”

어쩌면 이렇게 태평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이 티베의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지크라는 남자의 전직은 BSP.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온 직업이었고 BSP 사이에선 통칭 “최강”이라 불리기까지 했으니 그 괴물 닌자들은 그의 앞에선 “고작 일곱 마리”라는 개념으로 보일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디 보자‥그 녀석들 일곱 명이었으니까‥?”

순간, 지크가 갑자기 뭐라고 중얼거리며 살짝 자리에서 일어섰고, 지크의 말대로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티베는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크는 오른 주먹에 낀 장갑을 버릇대로 조이며 바닥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어느 순간 바닥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쿠웅–!!!

지축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분식점 안에 있던 모든 방송인과 손님들이 지크와 티베 쪽을 바라보았고 티베는 왜인지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바닥에 주먹을 내리꽂은 지크는 말없이 그 부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원형질이 깨진 틈에서 비어져 나오자 씨익 웃으며 주먹에 기를 집중했다.

파지지지직–!!!!!

곧이어 엄청난 스파크가 지크의 주먹에서 튀기 시작했고, 바닥의 깨진 면에서 비어져 나오던 원형질 덩어리는 곧바로 지글지글 타들어가갔다. 잠시 그렇게 방전(?)을 하던 지크는 이윽고 주먹을 바닥에서 거두었고 바닥엔 약간 금이 간 흔적만이 있을 뿐 원형질의 흔적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지크는 샌드위치 하나를 다시 집으며 중얼거렸다.

“헤헷‥여섯 마리 남았군.”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티베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저 그렇자 오히려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아, 아니‥!? 왜 사람들이 아무 반응도 안 보이는 거지?”

지크는 멍하니 벌어진 티베의 입에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넣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해 주었다.

“으응‥사람이 용 타고 날아다니고, 건물 자르고, 탱크 자르고, 없던 대륙이 갑자기 나타나고, 악마가 나타나고 그러니까 사람들도 면역이 된 것이겠지. 사람이 갑자기 전기를 뿜어내는 것 따윈 별것 아니라 생각할 걸? BSP가 싸우는 모습을 본 사람도 많으니까. 헤헤헷‥.”

티베는 입에 들어온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씹으며 그것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댔다.

“그런가‥? 하긴, 생각해 보니‥.”

샌드위치를 다 먹은 지크는 왼손 다섯 손가락에 칭칭 감고 있는 피아노 선을 천천히 풀어내었다. 강철선을 이용한 암살 방법이 통하지 않는 적으로 변한 이상 피아노 선은 이제 무용지물이었다. 선을 풀어내며, 지크는 티베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말이 나온 김에‥저쪽 대륙이 다시 나타났는데 가고 싶은 생각 없어?”

그러자, 티베는 움찔하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의 표정에선 장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티베가 아무 말이 없자, 지크는 피식 웃은 뒤 자신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실 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가 보고 싶거든. 양 어머니이시긴 해도 나 하나 덕분에 34세가 되시도록 시집을 못 가신 분이시지. 지금 그분 혼자 집을 지키고 계실 거야. 물어보는 이유? 글쎄‥나도 이런데 너도 집에 가고 싶지 않을까‥해서.”

콰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어–!!!!!」

그때, 천장을 뚫고 흉측한 모습의 괴물 한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분식점 안으로 떨어졌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인간형의 그 괴물은 즉시 티베와 지크를 향해 소태도를 들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시끄러워.”

퍼억–!!

순간, 지크의 기전력이 실린 강렬한 백 너클이 괴물의 몸 중앙을 강타했고, 괴물의 몸은 뒤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멀찌감치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곧 괴물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 소태도만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크는 짜증 난 표정을 지은 채 주먹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오래간만에 진지한 얘기를 하는데 귀찮게‥에이, 기분 깨졌으니 다시 돌아다니자구.”

“도, 돌아다니자니? 집으로 가는 것 아니었어?”

티베는 갑자기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이 남자가 생각하는 것은‥. 지크는 씨익 웃으며 티베에게 자신 있게 대답했다.

“헤헷, 도망치는 것은 성미에 안 맞아. 널 습격한 것이 이곳저곳에 숨어 있을 클리너들이나 괴물 일곱 마리뿐이 아니기 때문에 도망쳐도 언제나 결과는 똑같애. 나만 믿으라구. 오늘부터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잘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지크가 그렇게 말하자, 티베는 순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너 말고 다른 사람 믿으면 안 될까‥? 리오 씨나‥바이론 씨나‥. 아! 악의는 없으니 화내진 말아.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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