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7권 11화 – 몽환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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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7권 11화 – 몽환산장

몽환산장

-또 하나의 령

쏴아아아아아!

비가 폭포가 되어 세상을 집어삼킨다.

우레 같은 빗소리.

푸른 번개가 찰나 속을 번쩍이자 쌍둥이 동생인 천둥이 뒤따라 포효하며 하늘을 진동시킨다. 대지와 수면을 때리는 빗소리가 사나운 야생마의 말발굽 음(音) 같 다. 전장을 내달리며 혈우(血雨)를 뿌려대는 육두전차가 대지 위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미친 듯이 날뛸 때 같은 광포한 난타음이 자연의 제(齊) 소리를 한입에 집 어삼킨다.

과연 봄에 내린 비가 맞나 하는 의구심부터 샘솟는 그런 난폭하기 짝이 없는 강우(降雨)였다.

여인은 신음하고 있었다.

하늘의 찢어진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은 슬픔을 담아 세상을 쓸어버릴 듯한데 몸은 뜨거웠다. 용광로 속에 들어가 있는 쇠처럼, 화산 속에서 끓는 용암처럼 참 을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영겁의 겁화처럼 영혼을 불사를 것만 같았다.

‘괴로워…….’

비명은 침묵의 사슬에 속박당한 채 허파 속에 감금되어 있다. 숨결이 점점 거칠어진다.

공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쓰고 있는 검은 두건 탓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 검은 어둠, 공포와 직면하게 될 때 자신이 얻는 것은 오직 절망뿐이다. 검은 두건은 치우지 않는 것이 이롭다. 눈도 마주치면 안 된다. 잡아먹히고 만다. 잔인무도한 공포는 심장을 꿰뚫고 육신과 영혼을 천참 만륙하리라.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된다. 절대로. 자신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나는 나약하다. 절망과 싸워 나가기에 자신은 너무도 나약하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해. 잡히면 끝장이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도망쳐야 해.

그러나 영혼과 육체는 주박(呪縛)에 걸린 듯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공포가 다가온다. 움직이지 않는다. 다가온다. 움직이지 않는다. 공포가 내쉬는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로 느껴진다. 고개가 돌아간다. 검은 두건이 벗겨진다. 눈을 돌려야 해! 나는 얼어붙어 있다. 마침내 공포와 눈이 마주친다. 칠흑 같은 암흑이 거센 파도가 되 어 자신의 몸을 집어삼킨다.

“끼아아아아악!”

양손으로 이불깃을 움켜쥐자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몸이 차갑다.

“…령… 령… 령..”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 먼 곳이다.

누구의 목소리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어두운 먹구름이 자신과 함께 기억까지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 번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령 아가씨!”

번쩍 눈을 뜨자 개벽의 아침을 맞은 듯 하늘이 동시에 열렸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에 그녀는 무심결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 다음 순간 여인은 무언가를 뿌리치려는 듯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헉헉헉!”

야생마처럼 날뛰는 호흡은 좀처럼 얌전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폐가 쥐어짜낸 비명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 듯하다. 식은땀 이 비 오듯 흘러내려 얇은 나삼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그리고 나는 누구??

잠시 후 호흡이 진정되자 여인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시커먼 무언가가 틀어막힌 듯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직도 음습한 악몽의 잔재가 그녀의 신경 한구석 을 붙들고 있었다.

‘진정하자, 진정해.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기억해 내는 거야.’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현실의 형상들을 움켜잡았다. 다시 악몽 속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또한 자신의 의식을 다시 한 번 현실에 매어 놓기 위해.

한참 동안 씨름한 후에야 그녀는 겨우 몽현(現)의 경계(境界)에서 현실의 물가로 간신히 몸을 빼낼 수 있었다.

“맞아. 생각이 나. 그랬었지…….”

그제야 희미한 안개처럼 머리 속을 뒤덮고 있던 짙은 안개 같은 기억이 명확한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여기는 자기 집이었고, 이곳은 자기 방이었다. 이불은 자신이 좋아하는 봉황 무늬가 수놓아진 분홍빛 비단 이불이었다. 방 안을 둘러보자 눈에 익은 정경이 들어왔다. 밤새 내려앉은 먼지가 거울 위해 살포시 덮여 있는 자단목 경대, 그 위에 놓여진 갖가지 화장 도구들, 그리고 차가운 초들이 꽂혀 있는 화려한 은 촛대, 빈 찻잔. 어제 자기 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 져 있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익숙함에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겨우 심신이 진정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이미 동이 터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해가 뜬 이상 지금은 밤이 아니었다.

다시 잠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그녀는 밤에 사로잡혀 던져진 깊디깊은 심연에서 떠올라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간신히 눈을 떠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는 밤이 두려웠다.

“또인가…….”

밤이면 밤마다 자신을 사로잡는 악몽. 그때마다 상처 부위가 불에 덴 듯 화끈거린다. 식은땀이 흥건하게 그녀의 나삼(羅衫)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도 의식이 몽롱 한지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실감이 없다. 몽현의 경계에서 흔들거리는 그네에 앉아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또 한 번의 반복.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밤마다 자신의 머리맡에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악몽에는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밤이 두려 웠지만 주야(晝夜)의 면면부절한 변화는 천도의 영역에 속하는지라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가는 것도 재촉할 수 없었다. 인간이 천도의 운행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공포와 절망과 어둠을 그저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는 그런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도는 해본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믿을 수 없다면 남은 수단은 단 하나. 바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뿐이 다.

그녀는 오랫동안 병치레를 한 탓에 기억이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여러 번 혼수상태 속에서 고열에 시달린 탓이라고 한다.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하녀 한 명이 장지문 바깥에서 또다시 기별을 넣는다. 기침 여부를 묻고 있는 것이리라.

“아가씨.

자신을 부르는 시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누구였더라?”

잠시 흐릿한 기억을 더듬자 그것이 자신의 전속시녀인 몽무(夢霧)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정신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그래. 여기는 본가에 위치한 내 방이었지??

조금 전에 기억해 냈으면서도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여전히 몸은 물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저… 령 아가씨?”

다시 한 번 바깥에서 몽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이 몇 번째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동안 대답이 없자 안절부절못해진 탓인지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 었다. 더 이상 대답을 늦추면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녀의 시녀에게는 덜렁대는 면이 없잖아 있었고, 그것은 항상 주변의 골칫 거리였다. 그녀는 수리비를 아끼기로 했다.

“들어오너라. 나는 일어났다.”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문 저편에서 안심한 듯한 한숨 소리가 들리며 삐거덕 문이 열렸다. 아침 햇살이 열린 문틈 사이로 몰래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새하얀 나삼이 아침 햇살을 머금자 투명하게 빛나는 듯했고, 그 백광은 그녀의 검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땀에 젖은 흰 나삼은 몸에 착 달라붙어 육체의 풍만한 가슴에서 얄상한 허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육신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묘하게 교태적인 그 모습을 보고 몽무는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언제 보아도 이 아가씨의 미모는 감탄할 만했다. 잔혹하게 새겨진 단 하나의 ‘오점’만 없다면 더욱더 완벽했을 것을.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런 예술품에 안 타깝게 흠집를 내다니. 정말이지, ‘검각’ 놈들은 천인공노할 나쁜 놈들이었다.

“먼저 세안을 하세요, 아가씨. 그런 다음 제가 의복을 입혀 드리겠습니다.”

몽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그녀가 물음에 몽무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반문했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아가씨?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너는 당황하는 일은 있어도 서두르는 일은 없지.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 있느냐?”

“장주 어른께서 부르십니다.”

몽무가 자백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일단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검을 다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그녀는 몽무가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준 자신의 애검을 들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 아픔이 스쳐갔다. 단아했던 애검의 피부 위에는 격전의 흔적을 말해 주듯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었다. 검집의 겉이 조금 그을린 것 같기도 했다.

“앞장서라!”

“예, 아가씨!”

공손하게 방문을 열며 몽무가 대답했다.

“오, 왔느냐?”

“소녀, 문안 인사 올리옵니다.”

영령이 포권지례를 취했다.

“자리에 편히 앉거라.”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잔잔히 미소를 머금으며 장중한 태도로 손을 내밀며 자리를 권했다. 영령은 그 말에 따랐다.

“아침 일찍부터 널 귀찮게 했구나. 미안하다.”

“아닙니다. 하교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공손한 태도로 영령이 말했다.

“날짜가 정해졌다.”

영령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럼……?”

중년인이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한 달 뒤다. 각오는 되어 있느냐?”

“물론입니다, 아버님.”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를 그녀는 고대하며 기다려 온 것 같다.

“반드시 합격해서 그분의 힘이 되어드리겠어요.”

그녀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정혼자가 있다. 자신의 몸도 마음도 모두 그분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그분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요 몇 년간 사투 의 후유증으로 병치레를 하는 바람에 그분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 무척 미안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무력함을 얼마나 한탄했던가.

이제 이번에 있을 시험에 합격해 그분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분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가슴 한 켠이 이상하게 따끔따끔 아파왔다. 악몽이 그녀의 심신을 잠식할 때면 그녀는 언제나 그분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을 이 검고 추악하고 무시무시한 악몽 속에서 구해달라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공포스런 하얀 손, 귓가를 두들기는 빗소리, 세상을 집어삼키는 천둥, 그리고 일렁이는 불꽃과 그림자.

앞은 컴컴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있는 것은 천천히 다가오는 하얀 손과 불에 덴 듯한 화끈한 통증뿐.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도움의 손길은 오지 않았 다. 언제나 그녀를 괴롭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에서 그녀는 빠져나오고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사 년 전에 시험을 쳤어야 했지만 부상의 후유증으로 요양하느라 몇 년을 소모하고 말았지. 그날의 일만 없었어도 너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구나.”

“이번에는 어떤 방해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곧바로 채비를 갖추어 출발하도록 하여라. 너에게 ‘몽무夢霧)’, ‘환무(幻霧)’ 두 아이를 붙여주마. 네가 우리 가문의 명예를 훌륭히 지켜낼 거라 믿는다.”

“예, 아버님. 소녀 결코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장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네가 그 간악한 년들 때문에 사고를 당해 비록 남보다 불리한 상황이 되었지만 능히 극복하리라 믿는다. 그래야 그분의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겠느냐? 너의 몸과 마음은 모두 그분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길게 잔향이 남는 목소리로 장주가 말했다.

“예, 그 사실을 잊을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것만이 제가 이 세상에 생을 부여받은 유일한 의미이니까요.”

어떤 위화감도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영령이 대답했다. 그녀의 마음 안에서 그것은 절대 불변의 신성한 명제임이 분명했다.

“음, 좋아좋아. 믿음직스럽구나.”

여인의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제 출발하겠느냐?”

“시간이 촉박하니 내일 출발하겠습니다.”

딸의 듬직한 대답에 장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은 예정대로였다.

“몽환쌍무(夢幻雙霧),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너라.”

조용히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여인이 들어왔다. 한 명은 아침에 그녀의 시중을 들었던 몽무였고, 다른 한 명은 환무 란 이름을 지닌 여인으로 몽무보다는 조금 더 어 른스러워 보이는 미인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이곳 산장의 장주이자 영령의 아버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어떠냐, 아가씨의 상태는?”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후덕하고 자상한 표정을 짓던 사람과 도저히 동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없는 싸늘한 안광을 빛내며 그가 물었다.

“예, 아직은 특별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때는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조치를 취해라. 항상 눈을 떼서는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두 여인이 부복하며 예를 취했다.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알고 있겠지?”

얼음장보다도 더 차가운 목소리에 순간 두 여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절대 대계(大計)를 그르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아, 믿겠다.”

“존명.”

“어머, 아가씨, 오늘 안개는 유난히 지독하네요. 여기가 아무리 산 위라지만 너무한 것 같아요. 환아, 그렇지 않니?” 몽무가 옆에 있는 동료인 환무에게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

그러나 환무는 대답없이 주인인 영령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쳇, 넌 정말 여전히 무뚝뚝하구나. 대꾸 좀 하면 혀에 종기라도 생긴다니?”

“무의미한 대화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상이다.”

그 대답을 끝으로 환무는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쳇, 무뚝뚝하긴. 너랑 대화하느니 절간의 돌부처랑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몽무가 투덜거렸다.

“대화 상대는 잘 고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예예∼”

몽무는 환무랑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영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 아가씨, 정말 자욱한 안개죠?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것 같지 않아요? 정말 산장 이름이랑 잘 어울리는 광경이에요. 그렇죠?” “그래, 그렇구나.”

그녀는 산장을 나서며 자신의 집을 돌아보았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산장의 현판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몽환산장.

안개 속에 묻힌 산장의 모습은 그 이름에 걸맞게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기루처럼 보였다. 그러자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난 과연 저기서 살았던 걸까? 아니, 애초에 저곳이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난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흔들어 상념들을 떨쳐 버렸다. 지금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최우선 상황이었다.

“가자!”

“예, 아가씨.”

몽무와 환무가 대답했다. 몽무에 비해 환무는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다.

비록 시비의 지위에 있긴 하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버지 몽환장주로부터 직접 무공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적어도 발목을 잡는 일은 없으리라. 그리하여 영령은 시비 둘과 함께 자욱한 몽환의 안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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