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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89화


한순간, 케이는 자신의 목을 스치는 날의 감촉과 함께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웅크려 조커 나이트의 낫으로부터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니!?」

낫으로부터 빠져나간 케이는 뒤로 빠르게 물러선 후 자세를 취했다. 목의 오른쪽에서 피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잘린 것보다는 상당히 나은 결과였다. 사용하지 않을 땐 보이지 않는 칼, 아신도를 빼어든 케이는 조커 나이트와 싸울 준비를 했고, 조커 나이트는 낫에 살짝 묻은 케이의 피를 털어내며 케이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그림자 묶기가 풀렸군요. 쿠쿠‥절 진짜로 화나게 하셨습니다 공주!! 죽어랏–!!!!」

주위에 멍하니 있던 병사들은 케이가 어느 순간 낫에서 빠져나오자 조커 나이트에게 덤벼들기 위해 칼을 빼들었으나, 조커 나이트가 휘두르는 낫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자 순간 겁을 먹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케이에겐 조커 나이트의 속도란 자신과 비슷하다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조커 나이트와 케이는 힘의 차원이 달랐다. 조커 나이트가 공격을 해도 방어는 하지 못했다. 만약에 방어를 하게 된다면 다음 공격을 방어할 자세를 잃어버릴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병사들을 밀치며 휀이 나타났고, 케이와 조커 나이트가 대치하는 모습을 흘끔 본 휀은 배틀 코트를 벗은 후 위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서 자신의 어깨에 걸친 후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구름이 좀 끼었군.”

그 뿐이었다.

조커 나이트의 맹공에 한참을 대치하던 케이는 운이 좋게도 근처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 휀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쪽은 보지도 않고 여느 때처럼 태평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결국 일부러 그가 있는 쪽으로 조커 나이트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싸우게 해 주지!!’

다시 한참을 대치하던 케이는 어느 순간을 노려 고속으로 조커 나이트로부터 빠져나갔고, 조커 나이트 역시 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케이를 쫓았다.

「도망가 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그때, 케이는 휀의 어깨를 짚고 그의 뒤로 돌아갔고, 휀의 존재를 모르던 조커 나이트는 광소를 터뜨리며 한 번에 둘 다 베어버리려는 듯 낫을 뒤로 크게 젖혔다.

「키하하하하하하하핫–!!!! 숨은 게 남자 뒤라니, 내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군!! 둘 다 베어버리겠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막 휘둘러지려던 조커 나이트의 낫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조커 나이트 자신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팔에 힘을 넣어 보았으나 더 이상 낫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휀이 조커 나이트를 감정 없는 차가운 눈으로 흘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방해했나?”

그렇게 말한 후, 휀은 유유히 자리를 옮겼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케이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니‥세상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조커 나이트의 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커 나이트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몸을 억누른 힘은 살기도 아니었다. 투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빛의 힘도 아니었다. 조커 나이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목적인 케이 대신 휀을 바라보았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휀을 향해 소리쳤다.

「‥넌, 도대체 뭐냐!! 어떤 녀석이길래 내 공격을‥!!!」

그러자, 휀은 조커 나이트를 또다시 흘끔 보며 중얼거렸다.

“‥그게 공격이었군.”

그 말에 조커 나이트는 흥분할 대로 흥분하여 휀에게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뭐라고!! 날 무시하는 거냐!!! 메피스토님에게 인정을 받은 악마 기사 조커 나이트를 말이냐!!! 너 먼저 죽여주겠다–!!!!」

휀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하늘에 시선을 둔 채 중얼거렸다.

“‥아까처럼 공격이란 명분의 이상한 행동을 또 할 거면 사양하지.”

「이, 이 녀석‥!!!!!」

굉장히 분해하면서도, 조커 나이트는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그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죽음의 느낌. 아니었다. 가즈 나이트를 보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초월한 압도감이었다.

그때, 휀과 그의 주위에 있는 병사들의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슈렌의 모습이 조커 나이트의 눈에 들어왔고, 조커 나이트는 재빨리 데몬 게이트를 열며 휀에게 소리쳤다.

「네 녀석!! 감히 가즈 나이트와 함께 있었다니‥오늘은 네 녀석의 운이 좋은 날이었다!!!」

곧, 조커 나이트는 데몬 게이트 안으로 사라져 갔고, 슈렌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맙군.”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훈련을 받은 듯 한꺼번에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케이는 인상을 찡그린 채 계속 휀을 바라보았고, 슈렌은 그룬가르드로 어깨를 툭툭 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휀 덕분에 너무 편한데.”


그날 저녁, 본성의 제궁 안에선 청성제와 왕비, 케이, 그리고 가즈 나이트들과 린스 등이 모인 자리에선 왕비의 폭언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마, 그렇게 조용하던 도성이 왜 시끄럽다고 생각하십니까!!”

왕비의 물음에 청성제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왕비를 바라보았고, 왕비는 계속해서 인상을 쓴 채 손에 든 봉선으로 케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다 공주가 이상한 괴한들과 사귀어 성에 저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옵니다!!”

그러자, 케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그 소리를 들은 사바신은 순간 치밀어 올랐으나 옆에 앉은 슈렌의 만류로 화를 꾹꾹 눌러가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 것은 린스 등도 마찬가지였지만 머물고 있는 손님일 뿐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휀은 혼자 그 방의 창가에 서서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 들리는 얘기는 무시한 채‥.

청성제는 시름 어린 한숨을 내쉬며 왕비에게 말했다.

“‥그 말은 너무 심하지 않소 왕비. 우연하게도 가희와 련희가 온 것에 때를 맞춰 언제나 시비를 걸던 야만족이 침략했을 경우도 있지 않소. 그리고 마귀의 경우도 가희와 련희가 오기 전부터 전국적으로 민폐를 끼치지 않았소. 우연일 뿐인데 그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마!! 병사가 똑똑히 들었다고 하옵니다! 그 악귀가 가희를 노리고 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이상 말씀드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때, 창밖 하늘을 바라보던 휀이 뒤를 흘끔 바라보며 왕비에게 말했다.

“왕비님. 조용히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왕비는 황당한 나머지 입도 다물지 못했고, 휀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면 감상하기 좋군요. 감사합니다.”

왕비의 표정을 본 사바신은 머리를 깊숙이 숙인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고, 슈렌은 짧게 한숨을 쉬며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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