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98화
다섯 머리의 흑룡들은 제각기 입에서 흑색의 브레스를 뿜기 시작했고, 베히모스는 자신을 향해 쉴 새 없이 뿜어지는 브레스들을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유연하게 피해 나갔다. 몇몇의 브레스는 명중하긴 했지만 베히모스의 역중력 배리어에 밀려 그다지 효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흑룡들의 공격은 그야말로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흑룡들의 공격이 베히모스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베히모스는 공격다운 공격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바이론의 흑룡들은 베히모스뿐 아니라 근처의 건물에도 가차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한마디로 방해가 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 흑룡들을 조종하는 바이론은 투기의 구체 안에서 팔짱을 낀 채 광소를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부족해, 부족해‥부수란 말이다, 파괴하란 말이다!!! 크하하하하핫–!!!!!!”
이윽고, 흑룡들은 서로의 머리를 가까이 한 후 베히모스를 향해 일점 포화를 날렸다. 그러나, 베히모스의 역중력 배리어는 브레스를 맞은 부분만이 약간 흐려졌을 뿐, 나머지 부분은 건재했다. 계속 공격만을 당하던 베히모스는 반격을 하려는 듯 역중력 배리어의 농도를 짙게 한 후 바이론을 향해 머리를 돌렸고, 쉴 새 없이 뿜어지는 포화 속에서 전신의 에너지를 머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히모스의 사자 갈기 부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원반형 레이더의 안테나처럼, 머리를 중심으로 갈기 부분의 피부들이 전 방향으로 열리는 것이었다. 열린 피부엔 생물의 눈과 같이 생긴 붉은색의 생체 렌즈들이 하나씩 박혀 있었고, 그 렌즈 중앙에선 핵 융합 에너지의 광점이 모이기 시작했다.
※
“무어라!? 베히모스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고?”
와카루는 깜짝 놀라며 잠시 먹고 있던 인삼차를 놓고 위성 디스플레이를 향해 뛰었다. 화면엔 조수들이 말한 것 그대로 와카루 자신이 모르고 있는 생체 무기의 전개 상황이 떠올라 있었다. 와카루는 살집이 거의 없는 자신의 오른손 주먹을 꼭 쥔 채 부르르 떨며 환희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오‥저것이 진정한 자기 강화‥!! 카에의 스테이터스 화면을 올려주게!!!”
곧, 위성 디스플레이의 한쪽 구석엔 베히모스 모드가 발동된 카에의 스테이터스가 나타났고, 현재 전개된 무기의 예상 위력도 떠올랐다. 조수들과 와카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예상 파괴력 수치가 노멀 아토믹 레이의 세 배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저 가즈 나이트가 만든 흑룡들이 일점 포화를 날리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몸을 변화시킨 모양이군‥위력은 노멀 아토믹 레이의 세 배‥!! 허허헛‥저 가즈 나이트가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한데? 자네들은 어디에 걸겠나?”
와카루의 질문에, 조수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라이아는 살며시 눈을 떠 보았다. 눈앞에 맨 처음 보인 것은 짙은 갈색의 거친 옷이었다. 라이아는 조금씩 눈을 위로 올려 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을 안은 채 피를 흘리며 기절한 리오의 얼굴이었고, 라이아는 순간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크와 초 근육질의 누군가가 한참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라이아는 크게 지크의 이름을 외쳐 보았다.
“지, 지크 오빠‥!!!”
지크도 물론 그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죽음이었고, 지금 죽는다면 겨우 자신의 가까이에 돌아온 라이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호앗–!!!”
짧고 강한 기합성과 함께 지크는 앙그나의 명치에 기가 실린 장타를 넣었고, 앙그나는 연속적인 지크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뒤로 멀찍이 밀려났다. 그리고, 지크는 라이아가 있는 방향을 향해 오른팔을 잠시 내뻗어 보였다. 그의 손가락은 멋지게 V자를 그리고 있었다. 라이아는 눈을 크게 뜬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크‥오빠‥!!”
하지만 그리 오래 그리진 못했다. 앙그나의 공격이 다시금 날아온 탓이었다.
“빌어먹을 녀석, 좀 죽어라 죽어!!!”
앙그나의 펀치를 흘린 후 그의 머리를 짚고 그의 뒤로 돌아간 지크는 그렇게 소리치며 몸의 회전이 실린 무릎차기로 앙그나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그러나 앙그나는 앞으로 약간 주춤할 뿐이었다. 지크는 뒤로 멀찍이 떨어진 후 다시 기전력을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무명도‥무명도만 있다면‥!!! 내가 왜 그걸 안 가지고 나왔지?”
사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그였다. 하지만 거의 허리 뒤쪽에 차고 있는 무명도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은 그의 크나큰 실수였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가 아무리 정신파로 무명도를 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도가 지크에게 오지 않는 것이었다.
“고장이 났나‥? 쳇, 모르겠다–!!!”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보던 라이아는 리오의 품에서 빠져나와 한참 시끄러운 방향을 돌아보았다. 검은색 구체 안에서 눈을 붉게 빛내며 흑룡들을 조종해 싸우고 있는 바이론의 모습이 있었다. 라이아는 쓰러진 리오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리오 기사님‥지크 오빠‥바이론 아저씨‥! 모두‥모두‥!!!!”
라이아는 손으로 자신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자신이 이들을 공격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라이아는 눈물을 닦은 후 바이론 쪽을 바라보았다. 바이론의 앞에 떠 있는 베히모스가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이론이 뿜어내고 있는 투기의 양과 비교하면 바이론이 약간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바이론은 기의 소비가 엄청나다면 엄청난 오대명룡진을 반탄력을 지운 상태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바이론 아저씨‥!! 안 돼요‥!!!!”
라이아의 작은 목소리가 한참 전투에 몰두하고 있는 바이론의 귀에 들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라이아는 바이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라이아의 몸은 반신반인의 능력 때문에 상당히 강화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눈에서는 붉은색의 빛을, 얼굴은 광기에 젖어 있는 바이론이 살며시 라이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나마 라이아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런 후 그의 얼굴은 언제 웃었냐는 듯 다시금 광기로 일그러졌고, 아주 잠깐이지만 그의 그런 표정을 본 라이아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조그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비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켜줄 거야‥!! 모두를 지켜줄 거야‥!!!!!”
※
집 안엔 바이론이 쳐 놓은 결계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챠오는 아직도 힘없이 앉아 있는 세이아를 양팔로 안아주고 있었고, 티베는 소파에 앉아 걱정이 태산인 얼굴로 모두를 둘러보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아니, 그 바이칼이라는 남자는 문을 열고 휑하니 나가는데 우리는 나가지 못하는 거야!! 소리도 안 들리고, 이해를 못하겠어!!!”
그러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프시케가 티베에게 대충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바이론님 정도의 분이라면 이런 결계를 만들 수 있지요. 그런 이유로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바이론님에 근접한 ‘강함’을 가지고 있어야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지요. 바이칼님은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나가실 수 있으셨답니다. 하지만 이 집 안에 있는 저희로서는 무리겠지요.”
티베 역시 마법에 대해선 꽤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나쁜 인간들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계속 의자가 들썩거리네? 짜증 나게 시리‥!!!”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넬이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의자가 들썩거리다니요? 전 안 그런대요 언니?”
“‥뭐라고?”
그 말을 들은 티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고, 티베가 일어서자마자 그녀가 깔고 앉아있던 무명도가 공중으로 치솟은 후 베란다의 열린 틈을 이용해 밖으로 재빨리 사라져 갔다. 티베는 멍한 얼굴로 무명도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