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33화
정인이 물었다.
“호오?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미 틀을 바꿀 수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한 노사는 씨익 웃었다.
“관심이 가는가? 그렇다면 말해주지. 사람이 검이나 도를 사용함에 있어…….”
차근차근 이어나가던 한 노사의 말이 끝나자 잠시 생각하던 장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본인은 그런 것 없이도 충분하다.”
한 노사가 정인을 바라봤다.
“자네는 어떠한가.”
정인은 여전히 웃으며 도연의 어깨를 집었다.
“하하, 그보다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먼저 들어보도록 하죠. 전 그 다음에 답해드리겠습니다.”
정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를 주시하던 한 노사는 상대의 실눈에 압도당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흠, 아무리 봐도 십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실눈이군. 저 눈을 보고있으면 도무지 다른 생각이 안 떠오르니 원.’
그는 이어 헛기침을 했다.
“험험, 그러기로 하지. 도연아, 말해보거라. 구체적으로 어떠한 가르침이더냐.”
도연은 이곳에 오기 전 중소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그러자 어찌된 일인지 한 노사가 화를 내는 것이었다.
“멍청한!”
찔끔한 도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가 노사님의 허락 없이 수련한 것 때문이라면 그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한 노사는 더욱 화를 냈다.
“누가 그런 하찮은 것 때문에 화를 낸 줄 아느냐?”
“그럼…….”
“나는 네 수련방법이 그릇됐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목검을 사용해 중 대인과 대련을 했다고? 그것이 멍청하다는 것이다. 동철이 수련함에 있어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 생각해보거라.”
도연은 아무 것도 쥐고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표정을 본 한 노사가 말했다.
“생각이 났나보군. 본 노사가 뒷짐을 지게 한 것은 무의식적 목적성향을 없애기 위해서였고, 손에 아무 것도 쥐지 못하게 한 것은 무한한 초식의 흐름을 맨손으로 느껴보라고 권한 것이었다. 아무리 내공을 사용한다해도 들고있는 것은 들고있는 것이다. 아무리 종이를 들고있어도 무게는 무게다. 그것으로 인해 초식이 흐트러진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뒤로 갈수록 흥분됨을 인식했는지 한 노사는 숨을 고른 뒤 계속 말했다.
“흥, 네 딴에는 초식의 흐름 따윈 익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겠지?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깨달음뿐이라고. 웃기지 마라. 고작 몇 년을 가지고 손에 익었다 자부한다는 것은 네 오만과 편견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오만과 편견들은 종래에 너를……. 휴우, 그만 하마. 이 정도 말해줬으면 너도 뭔가 깨달았겠지.”
정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있는 도연을 잠깐 바라보다 이내 한 노사를 향해 손뼉을 쳐줬다.
“하하, 아주아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노사님의 이론. 충분히 박수 받을 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하긴 뭣하지만 제 선조 분 중에 노사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한 노사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이 이론을 발견한 사람은 본 노사와 스승님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생각했거늘…….”
정인의 두 눈매가 작은 동산을 만들었다.
“하하, 정말입니다. 그분께서는 그걸 무의식적 목적성향이라 하지 않고, 무의식적 자아발현(無意識的 自我發顯)이라고 하셨죠. 즉,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각기 한 팔들을 맡고있던 좌뇌와 우뇌가 서로들 맡은 부분을 좀더 영향력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이론이셨습니다. 대충 노사님이 말하신 이론과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재미있게도 수련방법 또한 노사님의 지금 방법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분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길 ‘무릇, 행(行)이라 함은 마음의 도(道)를 보고 전개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죠. 그렇게 그분은 그분만의 이론을 완성해 가셨습니다.”
한 노사는 급히 물었다.
“그, 그래서! 그래서 그 이론은 성공하였는가?”
정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금 그 결과물이 노사님의 앞에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정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한 노사는 그게 성공했다는 것인지 실패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장도는 실패한 것이리라 굳게 믿었다. 한 노사는 피식 웃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겠네.”
“하하, 그러시죠. 항상 그렇게 사셔야 오래 살수 있답니다.”
“그 말은…, 실패한 건가?”
정인은 말했다.
“지금 그 결과물이 노사님의 앞에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
한 노사는 신경을 끊기로 했다.
“곧바로 돌아가겠는가?”
영산호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그에게 시달리다 못해 파김치로 변한 부진한이 힘없이 묻자 동천은 내심 안됐다는 생각에 혀를 차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휴우, 알겠네. 내 바래다주지.”
동천은 일부러 사양하는 척했다.
“아닙니다. 시비 붙여주든지 하시지요. 너무 피로해 보입니다.”
부진한은 얕게 웃어주었다.
“말이라도 고맙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자아, 힘내서 가 볼까나?”
‘히히, 거 좋지!’
하늘을 노니는 기분으로 내심 맞장구를 친 동천은 차분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가는 중간에 너무도 좋아 헤벌쭉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랄라~, 과연 몇 개나 주셨을까? 한 개? 아냐, 어찌 가주님께서 그런 짠돌이 짓을 하시겠는가. 그럼 두 개? 것도 아냐. 어찌 가주님께서 그런 짠돌이 짓을 하시겠는가. 오호라. 그럼, 세 개? 그것도 아냐. 어찌 가주님께서 그런 짠돌이 짓을 하시겠는가. 오오! 그럼 네 개? 당연히 아니지! 어찌 가주님께서 그런…….’
지금의 상태로는 한도 끝도 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당연히 끝도 있기 마련. 정신나간 사람처럼 입을 헤~ 벌리며 걸어가던 동천은 갑자기 자신의 얼굴이 따가워지자 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는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부진한에게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헤헤, 제가 좀 표정을 드러냈나요?”
부진한은 속으로 어린애는 어린애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찌 그가 동천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아마 자신이었어도 저렇게 웃었을지 모르는데.
“좀 드러나면 어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일세.”
‘짜식, 뭣 좀 아는군. 이히히!’
“그래도 자중했어야 했는데 마음대로 안되네요.”
부진한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은 뒤 동천의 거처로 향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부진한과 헤어진 동천은 마중 나온 문정이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자 순식간에 멱살을 쥐고 위협했다.
“제자야, 설마 사부의 일을 방해하진 않겠지?”
“무, 물론입니다.”
동천은 산뜻하게 쥐고있던 것을 놓아주었다.
“히히, 뭐 그렇다면 됐어. 가서 구결이나 외워.”
어쩔 도리가 없는 문정이었다.
“예, 사부님.”
문정의 일을 해치우고 방안에 들어온 동천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옥함의 뚜껑을 열어 제꼈다. 뒤이어 보이는 자그마한 갈색단환들. 심신을 울리는 듯한 맑은 향기가 퍼져 나오는 가운데 탐욕에 물든 동천의 눈동자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 하나. 두울, 세엣……. 세 개!’
“심-봤-다아아!”
어찌나 목청껏 소리를 질렀는지 와봤자 손해만 볼게 뻔한 문정이 찾아올 정도였다.
“사부님, 무슨 일입니까?”
누가 볼세라 급히 옥함을 챙긴 동천은 감격을 금치 못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자야, 오늘을 국경일로 정할 것이다! 이를 널리 공표 하거라!”
‘니가 무슨 힘으로?’
잠시 어이없어하던 문정은 동조하는 척이라도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아좋아. 큭큭큭. 이히히히!”
배꼽을 잡고 웃던 동천은 돌연 문정을 노려보았다.
“넌 여기 왜왔냐?”
동천의 눈빛이 의심으로 불타오르자 문정은 재빨리 엎드렸다.
“그럴 리가요! 전 다만 사부님께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제자 된 도리로서 얼른 뛰어온 것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래? 흐음, 믿어주도록 하지. 하긴, 사부가 제자를 믿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하하, 가 보거라.”
동천이 짐짓 호기롭게 나오자 주춤 일어서려던 문정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굳게 마음을 먹고 말했다.
“저…, 그런데 그 단환 말입니다. 도연 형님께 하나 줄 생각이지요?”
동천은 눈을 크게 떴다.
“어? 니가 그걸 어떻게 알지? 분명히 그런 생각은 안 했었는데?”
문정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당연히 사부님의 마음을 훔쳐본 것이 아니라, 아까 부득이하게 부 당주님의 얼굴을 대해서 알게된 겁니다.”
“부진한?”
부진한의 존재가 떠오르자 동천은 절로 뜨끔해졌다. 여기 제갈세가에서 황룡신단의 비밀을 공유한 단 하나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 인간이 뭐라고 생각했지?”
한고비 위기를 넘기자 문정은 동천 몰래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며칠 내로 도연 형님께 잘 받았냐고 물어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동천은 펄쩍뛰었다.
“무어라? 지가 무슨 권리로? 으으, 그 부진한 새끼가 기어코 이 몸의 발목을 붙잡는군.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이 몸이 뭐 좀 해보려면 꼭 걸고넘어지는 새끼들이 있다니까? 안 그래? 어휴, 그 자식을 죽여버릴 수도 없고, 어디 가서 화풀이를…….”
잠시 침묵하던 동천은 나긋나긋한 웃음을 머금고 이럴 때만 사랑스런 제자를 바라보았다.
“화풀이를……, 히히히!”
“왜, 왜 그런!”
우득, 우드득.
동천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풀며 부드럽게 웃었다.
“히히, 이히히히…….”
중소구를 옆방에 재워놓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도연은 밖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회상하며 명상에 잠겼다. 그는 ‘행이라 함은 마음의 도를 보고 전개하는 것이다.’ 라는 정인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행함에 있어 마음의 도를 보라고 했지만, 과연 나에게 마음의 도가 있을까? 아아, 그분이 떠나시기 전 그 부분에 관해서 물어나 볼 것을 잘못했구나.’
문득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달래던 그는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감지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얼굴에 피멍으로 떡 칠을 한 문정을 접할 수 있었다. 이에 크게 놀란 도연이었다.
“아니? 그 얼굴은 어떻게 된 것이냐!”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비실거리던 문정은 ‘사, 사부님께서…….’ 라는 말을 남기고 기절해버렸다. 가슴이 철렁해진 그는 무언가 잘못됐나싶어 번개처럼 뛰쳐나갔다.
“주군! 주군!”
황룡신단 하나를 손에 꼬옥 쥐고 슬픈 표정을 짓고있던 동천은 도연이 들어오자 그 상태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야, 여기에서 주군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 쳇, 이거 먹을 생각하니까 그렇게도 기분이 좋으냐?”
동천의 안전함을 확인하자 도연은 긴장을 풀었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헌데, 무슨 말씀입니까?”
동천은 중앙에 의자를 갖다놓고 먼지 날리게 주저앉았다.
“잔말 말고 이 몸의 앞에서 무릎꿇고 공손히 두 손을 들어올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도연은 질문 없이 명령에 따랐다. 동천은 눈물을 머금고 도연의 손위에 황룡신단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내심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디야. 흑흑흑.’
한편, 손위에 감촉이 느껴지자 고개를 숙이고있던 도연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것은?”
동천은 그 짧은 순간에 표정을 바꾸어 진지하게 말했다.
“너를 위해 이 몸께서 어렵게 구한 황룡신단이다. 내공증진에 도움이 될 터이니 중소구 몰래 섭취하도록 하거라.”
도연의 얼굴은 당황에 물들었다.
“어찌 이런 귀한 것을 저에게…….”
동천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내 문정에게 다 들었다. 이 몸께서 수련하는 방법을 따라한다고?”
“죄,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동천은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다.
“죄를 묻고자 함이 아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내공의 뒷받침이 중요한 법. 혹여, 진도가 막히거든 이 몸이나 한 노사에게 주저 없이 물어보도록 해라.”
도연은 눈물을 흘리며 넙죽 절을 올렸다.
“주, 주군의 은혜는 평생…….”
“하하, 어찌 이 좋은 날에 웃느냐! 자아, 이제 돌아가서 네 볼일을 보거라.”
겉으론 웃고있었지만 속으론 그도 울고 있었다.
‘흑흑, 은혜를 갚겠다고? 오냐, 이자까지 갚게 해줄 테다. 아이고, 아까운 거!’
그는 도연이 일어날 생각을 앉자 한 대 칠까도 했지만 참고 또 참았다.
“나에게도 한 알이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말아라. 그리고 계속 이러고 있으면 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알고 혼쭐을 내주겠다.”
도연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동천은 만족스런 얼굴로 다시 한번 당부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중소구에게는 비밀이다. 이 일을 알고있는 것은 부진한 뿐이지. 만일 그놈이 알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 명심하거라.”
도연은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가 보거라.”
도연이 문을 닫고 나가자 간간이 미소를 짓고있던 동천은 돌연 악귀 같은 얼굴을 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악! 으악! 결코! 절대! 도저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그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으득, 내 이놈을! 으드득, 당장 이놈을……, 그러니까, 에…, 그놈이 누구지?’
지가 이를 갈고도 그 대상을 모르는 동천이었다. 한참 후에야 헛기침을 하고 일어난 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이 몸에게는 아직 두 개나 남아있다. 청로명단……. 그때처럼 빼앗아 처먹을 사정화도 없고, 은혜도 모르고 홀랑 처먹은 화정이도 없다. 사부님은 당연히 드려야했던 거니까 예외로 치고, 도연을 줬다는 것만 똑같을 뿐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충실한 하늘님의 종으로서 교세를 넓히기 위해 노력까지 하고있지 않은가. 자, 기도합시다. 하늘님 아버지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그 영광이 땅에 이르옵시며 하늘에서 보살펴주신 것과 같이 땅에서도 그 사랑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아자! 아랏찻차!”
완전히 심신을 평정시키고 우선 옥함 속의 황룡신단 하나를 꺼내든 동천은 감정하듯 코끝으로 향기를 맡아본 뒤 씨익 웃었다.
“진품이군.”
동천이 하는 짓은 대게 의미가 없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콩고물 주워먹듯 냉큼 집어삼킨 동천은 입안에서 향긋하게 퍼지는 단환의 맛을 음미하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뱃속을 시작으로 후덥지근한 기운이 동천의 내부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 기운들을 하나하나 잡아채 단전으로 끌어내리던 동천은 왠지 버거운 느낌을 금치 못했다.
‘얼레? 분명 이 몸의 내공은 2갑자를 바라보건만 어째서 요거 하나 끌어들이는데 이렇게도 힘이 드는 거지? 이상하네.’
고민 고민하며 운기에 전념하고있던 동천은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아, 맞다. 허리띠를 차고있었구나. 곤란한데? 지금상태에서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길, 덕분에 힘겹게 흡수하겠군.’
역심무극결로 진기를 유도하고 귀의흡수신공으로 보조를 맞춰볼 까도 했지만 내공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굳이 모험을 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안전한 방법을 택해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하던 동천은 스며들어야 할 황룡신단의 기운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자 의아한 마음에 그 통로를 확인해보았다. 곧이어 그는 기겁을 했다.
‘뭐, 뭐야? 지금 황룡신단의 기운이 우, 운석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거야?’
고오오오.
때를 맞춘 듯 허리띠 속의 운석에서 기묘한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더불어 흡수 속도를 빨리 했다. 당황한 동천은 자신이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진기를 끌어올렸다.
‘욱? 이 씨필 것이? 어디이이-일!’
그러나 운석이 빨아들이는 강도는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오히려 동천의 힘을 넘어설 정도였다. 타는 듯 얼굴이 붉어지고 실핏줄이 툭툭 튀어 오른 동천의 모습은 기괴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빼앗길 수 없다는 똥고집으로 한도 이상의 힘을 끌어올리려던 그는 마침내 우려하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쿨럭! 커어? 아이고, 동천 죽…, 우웩!”
어이없게 황룡신단의 힘을 흡수당하고 내상까지 당한 동천은 헐떡이는 가운데 허리띠를 풀고서 마지막 남은 황룡신단을 삼켰다. 다시 가부좌를 튼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본능적으로 귀의흡수신공을 운기했다.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진기를 돌리고 또 돌린 동천은 다음날 새벽닭이 울 때까지도 그 작업을 멈추지 못했다. 동천이 정신을 차린 것은 묘시 초(卯時 初: 오전 5시)였다. 눈을 뜨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이고 두야. 뭐가 어떻게된 거야?”
그러다 갑자기 황룡신단을 먹다 잘못된 일이 떠올라 급히 심법을 운기시켰다.
“휴우, 다행이 내상은 없군. 내공도 그대로고. 응? 내공도 그대로?”
가슴이 철렁해진 동천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아마도 두 번째 황룡신단은 내상을 치료할 때 효력을 다하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우째 이런 일이…….”
놀란 얼굴 그대로 굳어버린 동천은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그렇게 굳어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