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45화
피할 수 없는 운명.
한해가 지나고 또다시 겨울이 찾아오자, 이번의 겨울에도 하루종일 한 노사의 뒷바라지만 해야했던(동천의 말에 의하면) 12살 동천의 가슴은 지금 희망이란 단어로 부풀어있는 상태였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머지않아 다가올 향기로운 봄 냄새에 아련한 향취를 느꼈다.
“아아, 이곳에 머문지도 어언 2년이 되어가는구나. 훗, 그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의 말대로 몇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긴 했었다. 그러나 동천이 저지른 일이 대게 그러하듯 설명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허나, 아무 설명도 없이 넘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기에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꺼내보겠다. 그 첫째가 능력을 잃어버린 문정에 관해서 인데 불쌍하게도 찬밥신세가 되어버린 그는 틈만 나면 동천에게 온갖 구박을 받으며 지내야했다. 심법도 못 익히고 능력도 없어진 그를 동천이 좋은 시선으로 대할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츰 동천의 화도 풀려, 구박을 받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 뒷 배경에는 생존을 향한 끊임없는 문정의 노력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둘째는 혈천도에 있었다. 비록 반 갑자 정도로 치우도법을 전개한다해도 워낙에 강맹함을 위주로 하는 도법인지라, 육 개월 정도를 사용하자 손잡이만 남기고 산산조각이 난 것이었다. 그래도 그 동안의 의리가 있었는지 동천은 부러진 것들을 모아 무덤을 만들어주고 슬퍼하며 우울해했다. 그러나 한 노사가 새것을 구해주자 쳐다도 안보는 철저한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여하튼, 그 동안 한눈팔 새도 없이 무공수련에만 정진했던 그는 치우도법의 틀을 잡는데 있어 이만하면 성공한 것이라며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로 오늘이 한 노사의 가르침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동천이 이리도 좋아하는 것이었고.
“야, 빨리 좀 안내해.”
동천이 재촉하자 그를 안내하던 문정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빨리 했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구나. 그렇게 안내를 해줬으면 세 살 짜리 어린애도 찾아가련만 이놈은 도대체가 시도조차 해보려하지 않으니…….’
한림서원에 당도하여 동천을 들여보낸 문정은 마당 한구석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가 생각해도 처량하기가 그지없었다. 어쩌랴, 한숨만 내쉴 수밖에.
“잘 왔다.”
차가운 한 노사의 음성이 흐르자 마주앉아있는 동천이 대답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섭섭하기 그지없습니다.”
한 노사는 비웃는 듯, 소리 없이 웃다 입을 열었다.
“어떠한 의미로 섭섭한지는 알 길이 없으나, 내 오늘 너를 부른 것은 돌려줘야 할 것이 있어서였느니라.”
동천은 의아한 눈으로 한 노사를 바라보았다.
“돌려줘요? 뭔데요?”
순간 주춤한 한 노사는 이걸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에 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양심이 있는 그였기에 돌려주는 쪽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치우철경을 꺼내들었다.
“본 노사가 참으로 많은 연구를 했고, 그것에 맞추어 해석의 교정이 일곱 차례나 있었다. 다행히 교정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별 탈이 없었지만 역심무극결에 관해서는 상당한 고민사항이 많았다.”
순간 동천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어떤 부분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다름이 아니라 철경 내의 역심무극결은 정파인들의 입장에서는 사공(邪功)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동천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그도 예상하고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동천은 짐짓 모르는 척 놀라했다.
“예에? 사공이요? 전 사공이라는 것을 느끼지 조차 못하고 익혔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어찌된 연유입니까?”
한 노사는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해주었다.
“당연하다. 그것은 사공은 사공이되 익히기만 하면 사공이 아닌 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예?”
동천은 어이없었다. 사공이긴 한데 익히기만 하면 사공이 아닌 무공이 존재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공들이 그러한 방법을 몰라 말똥말똥 사공으로 치부되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한 노사를 째려보았다.
‘혹시, 이 노인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사기치는 거 아냐?’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던 그는 한 노사가 분노어린 눈으로 치우철경을 집어들자 그것으로 맞기 전에 급히 믿는 척을 했다.
“오오, 그러한 무공이! 그래서요? 아니아니, 그런데 전 어떻게 익히는 데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았죠?”
한 노사는 잠시 침묵 후 말했다.
“너 말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참으로 저속한 방법을 택했구나.”
“……??”
할 말을 잃어버린 동천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그 후로 계속적인 침묵이 이어지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한 노사였다.
“그건 그렇고, 본 노사가 역심무극결을 그렇게 평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언제 꺼내들었는지 동천의 바로 앞에 역심무극결 내의 인체도해를 탁본한 한지가 놓여져 있었다. 종이로 보는 인체도해가 색다르게 느껴졌는지 동천이 흥미를 가졌다.
“와아, 이렇게 보니까 새로운 느낌이네요?”
한 노사는 피식 웃고 말했다.
“더욱 새롭게 해주마.”
“예?”
“이렇게 한다는 소리였다.”
한 노사는 화선지를 좌에서 우로 뒤집었다.
‘저게 뭔 짓이랴?’
의아해하던 동천은 이내 무엇을 발견하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한 노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것을 보니 뭔가 알겠느냐?”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지금 이것은 탁본한 것의 반대 부분인데 이렇게 해놓으니까 구결대로 되어있습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역심무극결 내의 인체도해는 혈도 분포에 있어 뛰어난 세밀함과 정교함을 자랑하긴 했지만 역심무극결을 토대로는 익힐 수가 없게끔 만들어져있었다. 즉, 구결과 그것을 토대로 익히라던 인체도해는 최종적으로 연계(連繫)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이었다. 동천이 이런 사실을 알게된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늦게 알게된 이유는 이미 사부에게 배웠던 인체도해를 또 다시 참고해가며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첫 장의 역심무극결을 토대로 운기하라.’ 라고 쓰여진 것을 초보자를 위해 참고해가며 익히라는 뜻으로 치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잘못된 점을 깨달았을 때의 그는 역심무극결을 잘 익히고있는 상태였기에 ‘치우도 실수를 할 때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끝마무리를 짓는 극악한 머리회전을 보여주기도 했다. 각설하고, 지금이라도 수수께끼를 풀어 기쁘기도 한 동천이었지만 어째서 치우는 이런 불필요한 짓을 했는지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헌데, 어째서 치우는 이런 장난을 쳐놓은 것일까요?”
한 노사는 대답 대신 인체도해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동천은 저도 모르게 ‘아?’ 하고 놀라했다. 한 노사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흘흘, 지금 이것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지만 원래 사람의 심장은 왼쪽가슴에 있다. 그러나 구결대로라면 진기는 심장을 역행하여 지나쳐야한다. 그리고 치우철경 내의 인체도해는 지금처럼 뒤집어보지 않는 한 지극히 정상적이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느냐?”
동천은 눈알을 또르르 굴려가며 생각에 열중했다.
“에…, 그러니까 제대로 익히려면 이렇게 탁본을 떠서 뒷면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건가요?”
한 노사는 실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것이 아니다.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파괴의 신(神) 치우는 자신의 자손이 아닌 다른 자가 이 치우철경을 익힌다면 바로 주화입마에 걸리도록 안배를 해놓은 것이었다.”
“예에?”
“뭘 그리 놀라느냐. 정작 놀랄 일은 지금부터인데.”
동천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급히 물었다.
“그, 그게 뭡니까?”
한 노사는 차분히 대답했다.
“지금 너도 확인했다시피 좌우가 반대로 된 이 탁본은 오장육부(五臟六腑) 중 홀수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심장을 비롯한 위와 간 등이 반대로 위치해져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고 역심무극결을 익힐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란 뜻이다. 너는 알겠느냐? 이것이 의미하는 사실을 말이다.”
한 노사와 눈을 마주친 동천은 믿기 힘들어하는 얼굴로 주춤했다.
“설마…. 설마, 제 신체가 그러하다는 뜻입니까?”
한 노사는 살풋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더 앞을 내다보거라.”
동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더 앞을 내다보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한 노사는 이런 멍청한 놈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 자신이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해줄 말은 해줘야지.
“잘 듣거라. 본 노사가 좀더 앞을 내다보라고 한 이유는 바로 네가 치우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예에에에에?”
놀랄 만도 하리라. 아니, 놀람보다는 장난하는가 싶어 한 노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려면 적어도 말이 되는 소리로 사람을 속여야할 것이 아닌가. 동천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알만큼 아시는 분이 그러시면 못쓰죠. 우연히 얻은 것을 가지고 제게 치우의 자손이라고 하시면, 세상에 저와 비슷한 경우로 무공서적을 얻은 자들은 다 그 무공을 만든 기인의 자손이 되는 거 게요?”
딴엔 맞는 말이었다. 확률적으로 따져 99.999999할이라 해도 그가 천 몇 백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치우의 자손일 확률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한 노사는 동천이 그처럼 믿으려하질 않자 ‘당사자가 믿으려하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라고 생각하여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동천이 치우의 자손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한가. 욕심이 없었던 한 노사는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중에 역사적인 한 단면을 접한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했다. 그는 곧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 그렇고 말고! 아하하하하!”
동천은 웃음이 없는 한 노사가 웃어대자 그가 자신의 거짓말이 부끄러워 웃음으로 때우려는 줄 착각했다.
“역시, 그렇죠? 헤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농담까지 다 해주시고…….”
뚝, 웃음을 그친 한 노사는 다시 차분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 농담이었다. 이제 본 노사가 해줄 일들을 모두 끝마쳤으니, 너와는 볼일이 없어졌구나. 그러나 막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라도 찾아오너라.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미쳤소? 이런 지긋지긋한 곳에 다시 찾아오게?’
내심 코방귀를 뀐 동천은 감회에 젖은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예, 지체없이 찾아와 뵙겠습니다.”
한 노사는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만큼은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래, 이제 네 볼일을 보도록 하거라. 떠날 때에 굳이 찾아올 필요는 없느니라.”
동천은 속으로 얼씨구나 기뻐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올 때 침울한 얼굴로 나온 그는 한림서원을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귀에다 걸었다. 그는 절로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히, 이히히!”
문정은 사부가 배꼽까지 부여잡고 연신 웃어대자 슬쩍 그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모든 힘든 과정을 끝마치셨다니, 축하드리옵니다.”
낄낄거리던 동천은 돌연 근엄한 자세로 고쳐 잡았다.
“그래그래, 당연히 축하해야하고 말고. 이게 어디 뒷간에서 힘을 주는 것처럼 쉬운 일이더냐? 자아, 오늘은 맘껏 즐겨보자꾸나.”
“예, 사부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미소하며 대답한 그는 ‘어디서 비유도 지 같은 것만 생각해 내가지고…….’ 라는 불만을 삼키며 겉으로는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말야. 이곳 제갈세가 내에서도 대장간이 있겠지?”
“아뇨, 이곳에는 없지만 바깥엔 제갈세가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곳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동천은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뭐? 이곳에 없어? 아니, 그러고도 지들이 제갈세가라고 떠들어댈 수 있는 거야? 그러고들 살고싶데?”
문정은 쓸데없는 것에 성질을 부리는 사부를 지켜보다,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싶었는지 재빨리 끼여들었다.
“고정하세요. 아마도 사부님께서는 이곳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으셨나본데, 쪼오금만 낮추시면 내가 왜 화를 냈을까 의아해하실 거예요.”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동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잠깐 이성을 잃었구나. 하긴, 이런 촌 동네의 무가(武家)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이만해도 그나마 잘사는 것이겠지.”
“맞습니다. 그놈의 대장간은 제가 당장에 알아보겠으니 오늘은 마음껏 즐기십시오.”
“하하, 그래야 하겠구나!”
문정의 말솜씨에 쉽사리 넘어간 동천은 당장에 제갈일위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먹을 것이 풍부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제갈일위를 부르는 것과 대장간을 알아보는 일까지 떠맡게된 문정은 사부를 정운각에 데려다주고 난 뒤에 제갈일위를 먼저 찾아갔다. 문정이 찾아왔다는 소리에 접객실에서 미리 기다리고있던 제갈일위는 온화한 미소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들어오너라.”
문정은 대 제갈세가의 소문주가 먼저 기다리고있음에도 의아함 없이 그를 대할 수 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제갈일위는 덥지도 않은 봄날에 살랑거리며 부채질을 하였다.
“나야 언제나 잘 지내지. 그래, 네가 이곳에는 어쩐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오늘이 제 사부님께서 한 노사님의 밑에서 수련을 끝마친 날이기에 첫째 도련님을 초대하셨습니다.”
흠칫 놀란 제갈일위는 급히 섭선을 들어 얼굴 표정을 가렸다. 이어 평정심을 되찾고 밝게 웃었다.
“하핫, 그것참 축하할 일이구나.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내가 좀 바빠서 말야.”
문정은 제갈일위가 꺼리는 듯 하자 그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바쁘신 일이라도 계십니까?”
제갈일위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오늘 외부의 친구를 만나기로 약조 되어있어 아쉽게도 힘들겠구나. 그 대신 아랫것들에게 말해놓을 테니 먹을 것에 관한 지출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거라.”
동천에게 있어 제갈일위는 먹을 것만 확보되면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문정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내심 한숨을 돌렸다.
“예, 그렇게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헌데…….”
“다른 할말이 있거든 어려워말고 해보거라.”
문정은 고맙다는 눈치를 보이며 제갈일위에게 물었다.
“혹시, 이 부근에서 제일 뛰어난 대장간을 알고 계십니까?”
제갈일위는 충분히 가르쳐줄 수 있는 문제이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하하, 물론이고 말고. 본 세가에서 일다경만 걸어가면 노(蘆)씨가 운영하는 대장간이 있는데 그 솜씨가 자자하여 인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
문정은 짐짓 살았다는 듯 말했다.
“휴우, 다행입니다. 사부님께서 그러한 곳을 알아오라고 시켰는데 마땅히 물어볼 사람도 없어 내심 조바심을 가지고있었거든요.”
제갈일위는 절로 으쓱하여 반짝이는 이를 드러냈다.
“도움을 준 것 같아 다행이로구나. 아? 네가 원한다면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는 녀석을 붙여주마. 승낙하겠느냐?”
“물론이고 말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첫째 도련님.”
“흐음, 이 정도쯤이야.”
제갈일위는 내심 그놈의(동천) 마수(魔手)를 피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상대한다 = 손해는 따 논 당상이다.’ 라는 공식이 자연스레 성립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를 못 본지 두어 달이 넘었나? 말 나온 김에 오늘 한번 찾아가 봐야겠군.’
동천을 회피하기 위해 부득이한 방법을 썼던 제갈일위는 이것을 빌미로 그 동안 발길이 뜸했던 친구를 찾아가게 되자 ‘그 녀석도 가끔은 착한 짓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그는 그것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동천이 한 짓치고는 제대로 된 결말을 본적이 거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