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508화


스텔스 기능을 사용하고 있는 BX-F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시각 렌즈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리오는 그래도 모른다는 듯 지크에게 자기 대신 앞을 부탁한다는 신호를 보냈고, 짐이 무겁다며 불평하던 지크도 곧바로 정색을 하며 일행의 앞에 재빨리 섰다.

일행이 꽤 멀리까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BX-F는 움직이지 않았다. 리오는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며 일행이 간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시간 후, 공항.

공항 대합실에서 지친 다리를 쉬고 있는 일행에게, 리오는 지도를 보여주며 다음 스케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비행선을 타고 포르투갈까지 간 후, 그곳에서 배를 통해 여러분 대다수의 고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상 도착 지점은 트립톤이 될 것 같군요.”

트립톤이라는 말이 나오자, 케톤과 티베, 세이아와 라이아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마키 역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 공항 안에 설치된 가로 7m, 세로 5m의 대형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베히모스와의 전투 이후 몇일간 중단되었던 뉴스여서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시선을 돌렸고, 아무 할 일 없이 턱만 괴고 있던 바이칼은 슬며시 TV쪽을 향해 눈을 옮겼다.

「4일 전 일어났던 수수께끼의 괴 생물체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 의해 파리시의 일부가 철저히 파괴된 현장 사진입니다. 파리 임시정부는 어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오와 지크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자세를 낮추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자신들의 모습을 찍지 않았을까 해서 그러는 것이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화면이 리오와 일행들에게 보여졌다.

「이 화면은 그 지역에서 영업을 하던 비디오 촬영소의 한 직원이 극적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붉은 머리의 남자가 짙은 청색 머리의…성별은 구분이 안가지만 그 사람을 포옹하고 있는 화면입니다. 얼굴이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몰랐지만 리오와 일행들은 잘 알 수 있었다. 지크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리오와 바이칼을 번갈아 바라보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지…?”

“….”

루이체와 세이아, 라이아는 할 말을 잃은 상태였고, 역시 그 화면을 본 바이론은 미소를 지은채 자신의 코트깃과 검은색 모자를 추스리며 중얼거렸다.

“…크크큭…리오·스나이퍼…어쩐지 여자에겐 관심이 없다 했지….”

리오의 얼굴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나, 난 기억이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리오는 바이칼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고,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던 바이칼의 얼굴이 완전히 풀린 모습을 본 리오는 움찔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의 저런 표정은 처음봐…. 어, 어떻게 저런 상황이 나온거지…?’

눈을 크게 뜬 채 리오와 시선을 맞대고 있던 바이칼은 다시 예전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런 반응을 본 리오는 불안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런 곤란한 상황은 또 처음이군…. 아, 아니야, 이런 우스운 일에 정신을 빼앗길 틈이 없어. 화질이 나빠 사람들도 못알아보니 당분간 조용히 있으면 해결되겠지.’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날카로왔다.

“…엇, 혹시 저기 서 있는 붉은 머리 청년 아니야? 저기 봐, 군청색 머리 청년도 있고….”

“…!!”

“어머, 진짜네 진짜…?”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리오와 바이칼에게 집중되기 시작했고, 리오의 머리속은 점점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때, 임기응변에 강한 사나이, 지크는 리오에게 급히 전음으로 소리쳤다.

『바보야, 둘이서 빨리 사라져!!! 나한테 맡기고 어서!!!!』

그 말을 들은 리오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바이칼을 잡고 공항 밖으로 사라졌고, 둘이 갑자기 사라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지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아, 아니!! 그 사람들 어디갔지!!!! 아무래도 아까 TV에 나왔던 사람들 같은데 말이야!!!! 이런 젠장!!!!!”

지크의 그런 모습을 보던 챠오는 턱을 괸 후 다른곳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의리 한번 좋군….”

그러자, 지크는 챠오를 돌아본 후 살짝 헛기침을 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험…소저는 어인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

리오와 바이칼은 아무도 없는 공항의 관제탑 위에 앉아 있었다. 리오는 가만히 앉아 어떻게 말을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었고, 바이칼은 별 표정 없이 약간 구겨진 자신의 옷을 정돈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남자끼리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벌이는 모양이군. 별 일 아닌데도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짓다니…. 한심한 생물이야.”

리오는 그런 말을 하는 바이칼을 흘끔 바라보았고, 바이칼은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계속 말했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군…. 날 여기로 끌고 온 이유나 말하시지. 이유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널 처벌할테니까.”

그 순간, 리오는 고개를 푹 숙이며 실소를 터뜨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인데 괜히 죄를 진 사람처럼 도망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오는 미소를 지은채 슬그머니 일어서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훗…바람이나 좀 쐬려고….”

그때, 리오와 바이칼을 제외한 일행을 태운 비행선이 천천히 떠올랐고, 리오는 턱을 쓰다듬으며 바이칼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흐음…어쩌지? 비행선이 벌써 출발해 버렸는데….”

“…더러운 녀석….”


비행선에 탑승한 지크는 상당히 불만스런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결국 그는 스튜디어스를 불러 세우고 말았다.

“이봐요 누님.”

“예? 말씀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스튜디어스는 교육을 받은 그대로, 친절히 지크에게 물었고 지크는 떫은 표정을 지은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자리 좀 바꿀 수 있을까요? 자리가 좀 좁은 것 같아서요…보기에도 안그래요?”

스튜디어스는 지크의 옆에 앉은 사람을 돌아보았다. 검은색의 큰 모자와 코트로 자신을 최대한 가리고 있는 거한이었다. 하지만 좌석은 그리 모자른 편은 아니었기에 지크의 사정을 모르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본 비행선은 좌석제를 엄격히 지켜야만 하기 때문에 손님의 말씀은 들어드릴수 없습니다. 다른 말씀이 없으시다면 전 이만…즐거운 여행이 되십시오.”

스튜디어스는 곧 다른곳으로 사라졌고, 지크는 옆에 앉은 사나이, 바이론을 흘끔 쏘아보며 그에게 물었다.

“…빌어먹을, 비행선 표 누가 산건지 알고 있어?”

바이론 역시 지크를 흘끔 바라보았고, 곧 킥킥 웃으며 자신의 모자를 손으로 더더욱 깊이 내리눌렀다.

“…크크큭…, 불만이 있다면 문 열고 내리시지…. 다리에 끈 매고 다이빙을 하는 것 보다 훨씬 스릴있을텐데…운이 좋으면 엔진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가 믹서가 될 수도 있고…크크크크크크….”

지크는 더이상 들을 것이 없다는 듯 앞을 바라보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내가 바이칼 녀석을 껴안을걸…빌어먹을….”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