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38화
“잘가 모두들~.”
시에는 지금의 상황을 잘 모르는지, 지크의 머리 위에 올라선채 떠나가는 슈렌과 사바신 일행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지크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고, 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로 왕국 수도를 향해 가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주력이 되는 둘이 아무 말 없자, 다른 일행들도 손만 흔들어줄 뿐, 별다른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멀리 사라졌을때, 지크는 조용히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사람들 역시 지크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그때, 휀은 조용히 자신의 아래쪽을 향해 말했고, 휀의 코트 끝을 손으로 잡아당기던 시에는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들어가자 헨, 밤엔 추워.”
“….”
그러나 휀은 아무 대답이 없었고, 두어차례 계속 휀의 코트자락을 잡아 당기던 시에는 결국 포기한듯 집안으로 돌아갔다. 집 안을 두리번거리던 시에는 지크가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의 머리 위로 뛰어 올라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지쿠, 지쿠, 헨 이상해. 헨 대답을 안한다.”
그러자, 지크는 피식 웃으며 시에에게 말했다.
“…풋, 넌 바위돌을 앞에 놓고 말을 건낸거라구. 저녀석은 원래 말하기를 싫어하니 괜히 잡고 늘어지지 마.”
“…후웅….”
지크의 말에, 시에는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불만을 표시했다. 시에가 그렇게 있는 동안 지크는 다시 정색을 하며 무언가를 계속 생각해 보았다. 사실 그는 현재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서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게 된다면 모두와 영영 안녕을 한다는 것도 있었고, [멸망]이라는 흔해 빠진 소재를 처음 접하는 일종의 공포감도 그가 긴장하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후우….”
지크는 머리 위에 시에가 올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내 쉬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시에는 팔을 양쪽으로 벌려 겨우 중심을 잡았고, 그녀는 결국 지크에게 불만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지쿠!! 얘기도 안하고 숙이면 시에 위험하다!!!”
그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지크를 내려다 보았고, 지크는 이윽고 머리 위의 시에를 잡아 인형을 안듯 꼭 안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흐윽…엄마 보고싶어….”
“…?”
물론 농담이 상당히 섞인 한탄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지크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말이었다. 시에는 계속 의아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안고 있는 지크를 흘끔흘끔 볼 뿐이었다.
“…지쿠, ‘엄마’가 뭐야…?”
시에의 그런 질문을 받은 순간, 지크는 움찔 하며 정신이 팍 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크는 즉시 시에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지크가 약간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시에는 재미있다는듯 빙긋 웃어보였다.
“….”
지크는 시에의 미소를 보며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직도 어리구나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머리속에서 고속으로 떠올리던 그는 곧 씨익 웃으며 시에에게 말했다.
“…엄마라는 분은…우리들에게 너무나 고맙고도 소중한 사람이지.”
“…? 그럼 시에도 엄마를 가질 수 있어?”
이 질문에서 지크는 상당히 난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 그건…아, 그래, 가질 수 있을거야. 하하핫….”
지크는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고, 시에는 그렇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느새 집 안에 들어온 휀이 그를 슬쩍 지나쳐가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이 늘었군. 어쨌든 한가지 묻지.”
시에를 다른곳으로 보낸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앞에 앉은 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휀은 자신의 백색 장갑을 벗은 후 손을 풀며 지크에게 물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 세계에 고속으로 대륙간을 비행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상황이 좀 안좋은 것으로 아는데…지금도 그런 교통수단이 있나.”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지금 고속은 아니더라도 비행을 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비행선 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행기도 사용은 할 수 있으나 비행기로 유럽에서 미국까지 가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에 결국 결론은 비행선 뿐이었다. 지크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속은 아니더라도 잔뜩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비행수단은 있긴 있어. 하지만 좀 느린데….”
그러자, 휀은 됐다는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10일 이내로 갈 수 있다면 돼. 실질적인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아.”
지크는 휀이 너무나 자신감있게 말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봐…좀 바보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너 지금 떨리지 않아?”
지크의 질문에, 휀은 다른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말했다.
“너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나.”
“…쩝, 하긴.”
휀은 다시 장갑을 끼며 일어섰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가며 지크에게 말했다.
“출발한다. 모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그는 더이상의 말 없이 나가버렸고, 지크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네네~대장님.”
일행들에게 말을 전달해 모두 밖으로 내보낸 지크는 모두가 나간 것을 확인한 후 바이칼의 방 문을 두드렸다. 바이칼은 일찌감치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지크가 몇차례 방문을 두드리자 바이칼은 약간 잠에 취한 눈으로 방문을 열고 나오며 중얼거렸다.
“…죽고싶나.”
지크는 그 말을 무시한듯 바이칼의 약간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미소를 지은채 말했다.
“자자, 우리들은 지금 출발할테니 여기서 리오나 기다리고 있어. 혼자있기 외롭다고 또 술마시지 말고. 헤헤헷….”
“…알았으니 빨리 사라져.”
바이칼은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는 지크의 손을 가볍게 밀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크는 이제 처리할 것이 다 끝난듯 어깨를 으쓱이며 소파에 기대어 놓은 무명도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가 집 안에서 바이칼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휀은 그와 같이 행동할 동료들을 흘끔 바라보았다. 지크와 자신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자인 그 멤버들을 보며, 휀은 한심하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자신 없는 사람은 여기서 빠져도 좋아. 강요는 안한다고 분명 말했다. 물론, 이곳을 떠난 후에 무섭다고 도망을 치면 나에게 죽는다.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일은 시작되니까.”
“흥, 여자라고 우릴 무시하는거야 당신?”
그때, 챠오가 팔짱을 낀채 휀에게 당당히 말했고, 휀은 그녀를 흘끔 보며 말했다.
“실력을 무시했지 성별을 무시하진 않았어. 하긴, 착각은 자유니까….”
“…!!”
챠오는 순간 발끈하며 눈을 부릅떴으나, 그때 마침 집에서 나온 지크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리며 말했다.
“에헤~밤중에 화를 내면 피부가 거칠어진다구. 자자, 즐겁게 즐겁게. 어이 휀, 이제 출발하지?”
휀은 곧 항구쪽으로 몸을 돌린 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지크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자아 가자구!! 우리들의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