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52화
6장 [종전]
쓸데없는 대 전투가 있은지 5일, 이제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7일이었다. 거리는 상황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울려퍼지는 캐럴송으로 가득했고, 일행이 묵고 있는 호텔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몸이 그런대로 회복된 리오는 루이체가 가져다준 식사를 하며 TV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같이 TV를 보고 있던 루이체는 화면마다 붉은색의 옷을 입은 흰 수염의 덩치좋은 노인이 나오자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에게 물었다.
“오빠, 저 할아버지는 누군데 저렇게 자주 나오는거야?”
그러자, 리오는 루이체가 크리스마스날 지크에게 선물만 받았지 무슨날인지는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음…산타클로스라고, 원래는 이 세계 어떤 나라의 한 신부의 선행에서 생겨난 상상의 인물이야. 하늘을 나는 사슴들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크리스마스 밤마다 집집의 굴뚝으로 들어와 양말이나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을 두고 간다고 전해지지. 물론 지크 녀석은 아직도 꼭 올거라 믿고 있긴 하지만 말이야. 음…하지만 얼핏 들은바로는 실존한다 하기도 해. 물론 나도 아직 만나본 일은 없지만.”
루이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TV를 바라보았다.
그 5일이라는 짧은 시일동안, 세계엔 이상한 일 한가지가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몇달 전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바이오 버그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보통 경찰로는 속수무책이던 각 나라 정부에선 이미 수배가 정지된 BSP들을 다시 임시로 소집하기에 이르른 것이었다. 지크가 다른 BSP일행들에겐 오히려 잘 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BSP일행들은 오래간만에 상당히 강한 전투를 한 탓인지 전신에 가까울 정도로 근육통이 생겨 아직도 호텔방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물론 육탄전을 하지 않는 프시케는 예외였다. 프시케는 아직도 휀을 간호하고 있었고, 깁스를 이틀만에 푼 지크는 바이칼과 함께 호텔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입에 핫도그를 문 채 계단에 앉아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끔 흘끔 살펴보던 지크는 자신의 반대편 계단에 기대서서 하품을 하고 있는 바이칼을 볼 수 있었고, 그는 씨익 웃으며 바이칼을 불렀다.
“어이 미소년. 졸리면 들어가서 자라고. 벌써 3일째 밖에서 잠 안자고 경비를 섰으니 세시간 정도는 내가 봐 줄께.”
“…흥.”
그러나 바이칼은 묵묵부답이었다. 지크는 눈썹을 위로 올렸다가 내리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때, 지크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덮쳐왔고, 지크는 팔을 위로 올려 자신을 덮친 시에의 머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으음…언니들이 안놀아주디?”
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심통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웅…다 침대에 누워있다. 시에 심심해.”
지크는 그럴만도 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크의 입에선 흰 입김이 뿜어져 나왔고, 그걸 본 시에는 신기한듯 숨을 길게 내 쉬어 입김을 뿜어 보았다. 그 때, 찬 바람이 싸늘히 불어왔고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인상을 구기며 옷깃을 여미었다. 그러나 마땅한 옷이 없던 시에는 지크의 머리에 바짝 붙으며 몸을 떨었고, 지크는 혀를 차며 자신의 자켓을 벗어 시에에게 올려주었다.
“자자, 입고 있어. 리오의 망토만은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따뜻할거야.”
“우웅…알았다 지쿠.”
지크의 붉은색 자켓을 껴 입은 시에는 그런대로 상황이 나아졌는지 다시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켓 안엔 언제나 반팔 면 티셔츠 차림인 지크는 그렇지가 않았다.
‘인간적으로 춥군….’
그러나 지크는 별로 내색하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방향에 있었다.
“엣취!”
“음?”
바이칼쪽에서 갑자기 강한 재채기 소리가 들려오자, 지크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바이칼은 재빨리 정색을 하며 다른곳에 시선을 돌렸다. 지크는 혹시나 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용이 감기에 걸리겠어. 걸리면 시에에게 아이스크림이나 사줘야지.’
“엣취!!”
다시금 재채기 소리가 들려오자, 지크는 한숨을 내 쉬며 고개를 푹 숙였고, 시에는 지크의 머리에서 내려와 그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왜그래 지쿠?”
“…아냐,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시에.”
지크는 곧 시에를 어깨 위에 올려놓은 뒤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고, 바이칼은 그 사이 품 안에 넣어두었던 휴지를 꺼내어 코를 매만지며 주위를 계속 둘러보았다.
잠시 후,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지크와 시에가 돌아왔고, 지크는 바이칼에게 딸기맛이 나는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말했다.
“자, 이열치열이라고 찬거 먹는것도 괜찮을거야. 먹어둬.”
그러자, 바이칼은 시에가 양손에 각각 들고 있는 초코렛맛 아이스크림에 잠시 시선을 두다가 할 수 없다는듯 지크가 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며 중얼거렸다.
“이걸 바친다고 내가 널 용서할거라 생각하나.”
“먹고 뻗지나 말아라, 헤헤헷….”
지크는 킥킥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바이칼은 천천히 자신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살짝살짝 핥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엣취!!”
갑자기 바이칼은 뜻하지 않은 재채기를 하고 말았고, 결국 그가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은 콘만을 남기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바이칼은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이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서운놈.”
지크는 고개를 저으며 시에에게 팔을 올리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중에 하나 더 사줄께 안먹은거 하나 줄래? 불쌍하잖아.”
시에는 쾌히 자신이 먹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지크에게 건네주었고, 지크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아직도 자신이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을 바라보고 있는 바이칼에게 건네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던걸 먹게 되어서 심히 축하한다.”
“….”
바이칼은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 뿐이었다.
그날 저녁, 일행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회의라고는 했지만 가즈 나이트 세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관인에 불과했기에 나머지 일행들은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상태인 휀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모든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제 실질적인 날짜는 6일이 남았다. 이틀 후면 모두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테니 일찌감치 일을 처리하도록 한다.”
손으로 턱을 괸 채 가만히 휀을 바라보던 리오는 모인 일행중에 누군가가 보이지 않자 옆에 앉은 지크를 툭 건들며 물었다.
“바이칼은 왜 안왔어?”
그러자, 지크는 쓴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감기로 누웠어.”
“…또?”
바이칼과 오랜 시간동안 같이 있어봤던 리오는 붕대가 감긴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고, 그 대답을 얼핏 들은 휀은 자신의 옆에 놓인 브랜디를 들며 허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력에 차질이 생겼으니 3일 후 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