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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54화


“교, 교대라고…?”

그레이는 놀란 얼굴로 슈렌을 바라보며 물었고, 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왼손에 거머쥔 창으로 마상전 자세를 취하였다.

“그렇습니다만…말씀드릴 시간은 부족하군요.”

그 말과 동시에, 슈렌은 카루펠을 몰고 몰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롯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옆에 있는 그레이를 팔꿈치로 툭 건들며 물었다.

“이봐, 저 커다란 말…본 일이 있지 않나?”

그 말을 들은 그레이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움찔 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맞아! 저 말은 벨로크 공국의 장군인 가르발이 타던 요마(妖馬) 카루펠!! 그런데 저 말을 왜 저 젊은이가 타고 있는거지?”

한편, 슈렌은 괴물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 앞에 있는 괴물들은 기억상으로 절대 이 대륙에 나타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이오 버그…?”

어쨌든, 지금은 추리를 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슈렌은 곧바로 창을 휘두르며 근접한 바이오 버그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조금씩 방출되고 있는 상태인 그룬가르드를 맞은 바이오 버그들은 모조리 불덩이로 변하며 사방으로 날려졌다. 게다가, 카루펠 역시 예전의 감각이 살아난듯 발굽으로 근접한 바이오 버그들을 강하게 짖밟아 나갔고, 바이오 버그의 숫자는 거짓말처럼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가 나타나 자신들의 숫자를 격감시키자, 바이오 버그들은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슈렌은 그들이 더이상 달려들지 않고 후퇴하자 창을 거두며 한숨을 내 쉬었다.

“…괜찮군.”

그 말과 함께 슈렌은 카루펠의 목을 조용히 두드려 주었다.


“아아, 공주님…무사하셨군요!!!”

레이필은 몇달째 상황을 모르고 지냈던 린스를 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고, 린스 역시 다행이라는듯 레이필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린스는 곧 레이필과 떨어진 후 일행쪽으로 손을 돌리며 말했다.

“만나면 더 반가워 할 사람이 있어.”

“예? 하지만 케톤군 말고는…아, 아니!?”

레이필은 순간, 케톤의 뒤에 숨은듯 서있는 티베를 보고 말을 잊고 말았다. 옆에 있는 그레이도 마찬가지였고, 하롯은 더욱 그러하였다. 마법에 대해선 노엘 이상의 천재라 불리우며 레이필 이후의 궁중 마도사 제 1 후보로 손꼽혔던, 그러나 마왕 아슈테리카와의 전투 후 다른 차원으로 날려가버려 생사를 모르던 티베가 지금 케톤의 뒤에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서 있는 것이었다.

“티, 티베야…?”

하롯은 아까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버리고 넋이 나간 노인의 모습으로 천천히 티베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티베는 잡고 있던 케톤의 어깨를 놓으며 입을 가린채 말했다.

“…할아버지…!!”

티베는 곧 하롯의 품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고, 하롯 역시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손녀의 일에 대해서 포기하고 거의 잊고 살았던 자신을 한탄했다.

“네가 살아있었구나…살아있었어…. 내 손녀야….”

하롯은 품에 안긴 티베의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었다. 1년 이상이나 까맣게 잊었던 감촉이 새로웠다.

그 재회장면을 바라보던 사바신은 자신도 감격스러웠는지 코트깃으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옆에 있는 슈렌에게 말했다.

“흐윽…너무 감동스러운것 같아….”

“음….”

슈렌은 그렇게 대답하며 별 표정 없이 그룬가르드를 헝겊으로 감아 나갔다.


그날 밤, 모두는 그레이의 숙소에 모여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금의 상황에 대한 얘기 역시 흘렀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그레이 등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상황 설명을 다 한 슈렌은 그레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도시에서부터 수도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슈렌의 질문을 들은 그레이는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대답해 주었다.

“으음…2, 3일이면 갈 수 있을걸세. 하지만 시간이 훨씬 더 걸릴걸세.”

“…?”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을 들은 슈렌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곧 하롯이 대신 그 대답을 해주었다.

“흠…오후에 보았던 그 괴물들이 수도 근처에 거의 깔리다시피 했거든. 수도에 가려는 도중에 슬쩍 본 것인데, 오늘 본 것은 비교도 안될만큼, 그러니까 거짓말 안 보태고 평지 위에 괴물들이 누워 일광욕을 즐길 정도로 쭉 깔려 있다네. 그걸 돌파하려면 왠만한 사람들 아니면 불가능하겠지. 괴물들도 만만치 않게 강한 듯 하더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하던 슈렌은 곧 눈을 지긋이 감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겠군요….”


다음날, 슈렌은 사바신과 함께 일찌감치 수도로의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물론 단 둘이 출발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일행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무슨 소리야!! 단 둘이서 가겠다는 말은 돌았다는 것과 같다고!!!”

린스는 슈렌과 사바신의 앞을 딱 가로막은채 그렇게 소리쳤고, 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압니다.”

“알면서 왜 꼭 둘이 간다고 그러는거야!!!”

이미 슈렌과 얘기를 끝낸 상태인 사바신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슈렌은 한숨을 쉬며 린스에게 말했다.

“저희와 같이 전투가 가능한 사람들이 가면 수도 까지는 간단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로 들어간 이후부터는 위험합니다. 레이필 여사님의 경우, 제가 보기엔 1급까지의 주문도 거뜬히 사용하실 수 있으시고, 티베양과 노엘 선생님의 경우도 2급 정도의 마법을 쉽게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대 주문을 한번만 사용해서는 돌파 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레이필 여사님이 경험상 더 잘 아시겠지요.”

린스는 곧 레이필을 바라보았고, 레이필은 인정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스는 안된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그, 그래도 안돼!! 휀 녀석도 그랬잖아, 같이 행동하라고!!!”

“….”

순간, 조용히 감겨있기만 하던 슈렌은 눈을 부릅뜨며 린스를 바라보았고, 린스는 움찔하며 표정을 풀었다. 슈렌은 아까보다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린스에게 말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같이 행동하라고 했지 방해하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

슈렌의 입에서 그런 의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슈렌에 대해 알고 있는 일행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고, 슈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휀의 경우라면 여러분이 전투중 사망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겠지만, 전 그런 성격이 안돼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결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할 일은 여러분이 미래라는 곳에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할 일은 저희가 만들어드린 길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미래를 만드는 것은 저희들 가즈 나이트들이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린스는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슈렌은 다시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말했다.

“…이해하셨다면 저희들의 길을 만들어 주십시오 공주님.”

그녀는 곧 노엘과 함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슈렌은 사바신과 단 둘이 도시의 출구를 향해 가며 나지막히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린스는 다시금 고개를 들고 슈렌에게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봐! 약속한거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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