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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92화


“아〜아, 심심해. 리오 씨도 심심하지 않으세요?”

순찰 중 집에 잠시 들러 점심을 먹던 티베는 TV에만 붙어있는 리오에게 물었고, 리오는 머리를 슬쩍 들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심심하더라도 지금 밖에 나갈 상황은 아니잖아요. 다시 TV에 나오면 전 무슨 벌을 받게 될지 모른다고요. 그런데 순찰 중에 집에 들러서 점심 식사를 해도 괜찮나요?”

“근처 순찰이라 괜찮아요. 저희 팀 중에 제일 연로하신 선배님도 근처 순찰이시면 집에서 식사하시거든요.”

“음‥그렇군요.”

리오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소파에 누웠다. 시에와 바이칼은 이미 침대에 재운 상태였기에 그도 그럭저럭 홀가분했다. 하지만 티베의 말대로 그도 심심하긴 마찬가지였다.

띵동–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손으로 입가를 슬쩍 가린 채 소파에서 일어서서 현관으로 나갔다.

“예, 누구시죠?”

리오는 곧 문을 열었고, 순간 그는 돌처럼 굳어지며 문밖에 있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색 코트를 입은 금발의 남자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리오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한숨을 짧게 쉬며 말했다.

“‥인사는 필요 없겠지. 나와라.”

“음? 으음‥.”

리오는 곧 문 밖으로 나갔고, 식사를 마친 티베는 마키와 함께 잠깐 휴식을 취하러 거실로 나왔다. 그녀들은 리오가 거실에 없자,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 그렇게 밖에 나가기 싫어하던 사람이 왜 나갔지? 세이아라도 왔나? 음‥힉!!”

커튼을 슬쩍 들춰본 티베는 순간 짧막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마키는 깜짝 놀라며 티베에게 물었다.

“어? 왜 그래 티베?”

티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지겹다는 표정이 더 맞을 것이다) 마키를 돌아보며 손으로 창을 가리킨 채 마키에게 말했다.

“그, 그 남자야!! 그 남자라고!!!”

“? 그 남자‥라니?”

“냉혹무비의 잔혹한 킬러 말이야!! 그 백색의 공포 덩어리!!! 나쁜놈!!”

티베의 말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은 마키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티베에게 다가갔고, 티베와 마찬가지로 커튼을 슬쩍 들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키도 예외 없이 겁에 질리며 뒤로 주춤거리고 말았다.

“헛!? 휀·라디언트!?”

둘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커튼 사이로 시선을 돌려 밖에서 뭐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리오와 휀을 바라보았다. 마키의 경우 입술 모양을 보고 대충의 대화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휀과 리오 둘 다 입을 가린 채 모기 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어서 둘은 대화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리오가 고개를 살짝 살짝 끄덕이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곧, 휀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리오는 머리를 흔들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티베와 마키는 어느새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척’ 하고 있었다. 티베는 자신의 앞에 천천히 앉는 리오에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물었다.

“누구예요? 신문 배달원?”

그러자, 리오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좀 아는 잔소리꾼이었어요. 별일은 아니에요.”

“그래요? 무슨 얘기들 하셨는데요?”

“그냥‥예쁜 여자분들이 어울리지 않게 창문에서 엿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얘기 좀 했죠.”

“…….”

티베와 마키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퇴근 시간.

“헤이그 선배님, 오늘 야근 순찰은 누구예요?”

리진은 추위에 빨갛게 변한 볼을 매만지며 헤이그에게 물었고, 팔의 유압 실린더를 점검하고 있던 헤이그는 드라이버의 끝에 시선을 집중한 채 대답해 주었다.

“으음‥아마 지크랑 챠오일걸? 인원도 늘었으니 인원을 셋으로 늘리는 것도 괜찮을 텐데‥. 아, 리진은 바로 퇴근할 건가?”

점검을 끝낸 헤이그는 팔의 다중 장갑판을 닫으며 물었고, 리진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가다가 옷가게에 들러서 봄옷도 좀 사고 하게요. 선배님은요?”

“음, 난 오늘 가족들하고 외식하기로 해서. 아 참, 그런데 리진은 저번에 놀이동산에서 본 그 붉은 머리 남자를‥.”

“전 몰라요.”

그렇게 대답하려 했던 리진은 순간 다른 곳에서 그런 대답이 나오자 깜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엔 막 들어오고 있는 챠오와 케빈의 모습이 보였다. 챠오와 키가 비슷한 케빈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계속 챠오에게 ‘수수께끼의’ 붉은 머리 남자에 대해 물었고, 챠오는 덤덤한 얼굴로 모른다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리진은 또 시작했구나 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고, 케빈은 결국 리진에게 받은 마지막 카드를 챠오에게 제시했다.

“그 남자의 이름이 리오·스나이퍼라고 하던데‥이래도 모른다고 할지‥?”

“….”

챠오는 말없이 케빈을 바라보았고, 케빈은 속으로 70% 정도 됐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모릅니다.”

“‥윽.”

챠오는 그렇게 잘라 말한 후 그 길로 제복 코트를 입으며 야근을 위해 차고로 향했고, 케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너무 어렵군. 난 그저 강자를 찾으려는 탐험의 의지만이 있을 뿐인데.”

그러자, 퇴근을 위해 대기실을 나서던 리진이 케빈을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여자의 비밀을 캐묻다니‥저질‥.”

그렇게 여자들이 모두 나가버리자, 케빈은 탁자 위에 팔을 기대며 헤이그에게 힘없이 물었다.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선배님?”

“‥엄밀히 말하자면 비밀은 비밀이지.”

헤이그 역시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오〜오, 챠오 씨, 왜 이리 오래간만으로 보이시나이까?”

챠오의 옆자리에 탄 지크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고, 챠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덤덤한 얼굴을 유지한 채 지크의 처음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질문을 던졌다.

“리오 씨는 왜 돌아오신 거지?”

햄버거를 먹기 위해 겉봉을 뜯던 지크는 순간 깜짝 놀라며 챠오를 바라보았고, 챠오는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지크를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지크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챠오에게 말했다.

“‥남자에 대해선 모든 것을 포기했다던 네가 리오 녀석에게만은 넘어갔구나‥. 역시 그 녀석의 사탕발림은 무적이야‥어흑‥.”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렇다고 때릴 것 까지는 없잖아‥.”

지크는 약간 붉어진 턱을 매만지며 햄버거를 씹었고, 챠오는 얼굴이 붉어진 채 운전을 계속할 뿐이었다. 세 개째의 햄버거를 먹은 후 콜라로 입가심을 한 지크는 자신의 주먹으로 챠오에게 맞은 부위를 툭툭 건드려 보며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너도 얘기는 들었을 거야. 세이아와 라이아가 우리 옆집에 기억을 잃은 채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챠오는 정색을 하며 지크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고, 지크는 콜라 컵을 흔들며 계속 얘기를 했다.

“‥리오는 그녀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곳에 돌아왔지(거짓말). 훗, 정말 한 편의 영화 같더군. 우리와 그렇게 싸우려 들던 라이아는 보통의 중학생으로 변해 있고, 세이아 씨는 기억만을 잃은 채 리오의 앞에서 의미 없는 미소를 짓고 있으니‥그렇게 슬픈 이야기가 있을까‥.”

지크는 과연 챠오가 넘어갈까 생각을 하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챠오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지크는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훌쩍

“‥?”

지크는 어디선가 갑자기 들려온 흐느낌 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그러자, 챠오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왼손으로 눈가를 부볐고, 지크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기뻐했다.

‘오오!! 나도 드디어 사탕발림의 길에 들어서는구나!!! ‥근데 저 녀석 진짜로 리오에게 관심이 있었나? 그 얘기 듣고 왜 울지? 안 어울리게 시리‥.’

지크는 이해가 안간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손에 든 콜라를 마무리 지었다.

삐익– 삐익–

그때, 순찰차의 경보기에서 경보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지크와 챠오는 정색을 하며 통신기의 버튼을 눌렀다.

「4급 경보입니다, 순찰 중이신 BSP는 즉시 ×××구역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순찰 중이신 BSP는 즉시‥.」

“헤헷, 좋아! 분위기 반전이다!! 가자 챠‥.”

부우웅–!!!!!

챠오는 곧바로 핸들을 급히 꺾은 후 액셀을 힘껏 밟았고, 지크는 뒤로 밀려나며 말을 차마 다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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