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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96화


얼굴이 세상에 만만치 않게 드러난 리오는 밖에 나갈 때 집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차림을 한다. 머리도 내리고, 내린 머리 위에 코트를 껴입은 후 눈엔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다. 모자까지 쓰는 게 정석이라면 정석이겠지만 아직까지 이런 차림을 해서 발각된 일은 없었기 때문에 리오는 나름대로 걸릴 때까지 모자는 쓰지 말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낀 큰 키의 남자가 곁을 지나갈 땐 한 번쯤 그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그가 TV에서 나온 바로 그 사람인지 알아내는 사람은 없었다.

묻고 물어 2037년 현재 폐쇄가 된 ‘남산 타워’ 앞에 도착한 리오는 부슬부슬 떨어지는 비를 소나무 아래에서 피해보며 자신을 부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흠‥이런 날씨에 비라‥. 웬만한 사람 같으면 그리 썩 좋지 않은 분위기라 생각하겠군. 그건 그렇고 저곳에서 뿜어지는 요기는 뭐지? 하긴‥도로 자체가 ‘바벨탑’처럼 구성되어 있으니 악마 등이 살기엔 꽤나 좋게 보이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오는 자신의 앞에 세워져 있는 낡은 고층 건축물을 주욱 올려다보았다.

이 근처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을 몇 번씩 들은 리오였기에 그는 선글라스와 코트를 벗은 후 평상시처럼 머리를 다듬고 다시 코트를 입고 계속 고독을 씹어나갔다. 조금 후, 멀리서 차 한 대가 올라오는 것을 리오는 볼 수 있었고 그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마중했다. 차는 곧 리오의 앞에서 멈추었고, 안에선 티베와 마키, 그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리진이 차례로 나왔다. 리오는 곧바로 자신을 부른 티베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니, 오늘 임무가 도대체 뭐길래 저까지 부르셨나요? 물론 심각해 보이긴 하지만‥.”

“아, 별거 아니고요. 여기 계시는 리진 양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으셔서 얘를 대신할 분을 좀 찾은 거죠. ‥그런데 심각해 보인다니요?”

리오가 이런 일엔 베테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티베와 마키는 그가 심각해 보인다는 말을 듣자마자 리진과 함께 얼굴이 새파래졌고, 리오는 웃음이 사라진 얼굴로 다시 타워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산은 영적으로 상당히 좋은 지형이죠. 이 도시 자체의 지형 역시 그렇게 보이는군요. 여기선 잘 모르겠지만 어떤 한곳의 지형이 네 개의 방위를 지키는 신들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지형‥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산 위에 도로와 건축물의 배치가 좀 좋지가 않아요.”

그러자, 티베의 머리에 예전에 배운 무언가가 번쩍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더욱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선형 도로‥그리고 타워!!”

“그래요. 일명 ‘바벨탑’ 지형이라 불리죠. 선신계 쪽에선 상당히 좋지 않은 지형으로 꼽고 있고, 그와는 반대로 악신계 쪽에선 신에게 인간이 도전을 하려고 했던 지형이라 해서 좋은 지형이라 꼽고 있죠. 음‥아무래도 여러분께 내려진 임무를 한번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1개월 전부터, 3월에 철거 예정이 되어 있는 남산 타워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박쥐들이 밤에 그 주위를 돌기도 하고, 예전에 사람들이 풀어놓은 조류들이 내장이 파헤쳐진 채 산 문턱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모든 동물들이 단 몇 주만에 멸종한 상태라 그런 일은 더 이상 있을래야 있을 수 없지만 조사차 올라갔던 경찰들이 모두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리자 대한민국 정부와 UN에선 결국 BSP에게 조사를 맡긴 것이었다. 하지만 처크 부장은 UN 측과 정부에선 일을 더 크게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씁쓸한 뒷말을 남겼다.

“‥그렇군요. 좋아요, 아무래도 이번 일은 진지하게 처리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럼 모두 올라갈 준비를 해 주세요. ‥리진 양?”

“….”

리진은 차에서 내린 뒤부터 마치 청각 장애자가 된 것 같은 모습으로 멍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팔로 몸을 감싼 채 부들부들 떨며‥.

“이봐요, 하리진!”

“‥!? 아앗, 리, 리오 씨?”

리오가 리진의 팔을 잡고 살짝 흔들며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리오를 그제서야 알아보았다.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리진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아니면 느낌이라도‥!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아, 아니요‥그냥, 그냥 무서울 뿐이에요. 공포감 외엔‥.”

리오는 리진의 팔을 놓은 후 턱을 매만지며 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긴, 초능력자니 영적 능력도 가지고 있겠지. 나 역시 느끼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런 사악한 기운을 처음 맞아보는 사람이라면 다분히 저러고도 남지. 보통 사람은 중급 이상의 악마가 앞에만 있어도 공포감에 자아가 붕괴되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 어쩐다? 저런 상태로는 올라가지도 못할 텐데‥.’

리오는 한숨을 후우 내쉬며 그 자리에서 복장을 바꾸었고, 티베와 마키는 이런저런 준비를 한 후 리오와 리진을 기다렸다. 리오 역시 원래 복장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준비는 끝이었지만, 리진은 모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아까와 같이 정신이 분산되어버린 상태였다.

“‥하는 수 없지‥.”

리오는 어깨를 으쓱인 후 멍하니 서 있는 리진에게 다가갔고, 티베와 마키는 리오가 뭘 할까 궁금한 눈초리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머? 두 명 간격이 너무 좁아지는 것 아니니?”

“서, 설마‥.”

. . . . . . . . . . . . . . . . . . . . . . . . . . .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아무리 제가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온 리진은 얼굴이 붉히며 리오에게 계속 따지고 들었고, 리오는 미안하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정신을 어떤 한군데로 집중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 방법뿐이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리진 양은 이곳에 들어올 수도 없었을 걸요.”

“그렇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하여튼!!! BUT!!!”

리진은 아직도 펄쩍펄쩍 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티베와 마키는 약간 얼굴을 붉힌 채 서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리오 씨‥바람기가 농후한 것 같지 않니?”

“‥그런 부끄러운 일을 수치심 없이 하는 것을 보니‥.”

“‥우리도 위험할지 몰라. 정신을 차리자.”

그러는 동안에도, 리진은 리오의 앞에 서서 계속 손가락을 휘두르며 아까의 일을 따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First’를 어떻게 그리 쉽게 빼앗으실 수가 있어요!!”

‘이럴 때 휀이라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간단히 답할 텐데‥음? 왔군‥.’

순간, 리오의 얼굴은 진지하게 굳어졌고 리진은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했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한다고 해도 따질 건 따져야‥.”

「쿠워어어어어어어어–!!!!!!!!!」

그때, 리진의 머리 위에서 소름이 끼칠 법한 괴성이 갑자기 들려왔고 리진은 재빨리 블래스터를 뽑으며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으, 으악!?”

리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천정에서 떨어지고 있는 무수한 괴물들이었고 리진은 블래스터로 응전을 하며 리오의 뒤쪽으로 재빨리 피하였다. 블래스터의 탄을 맞은 괴물 몇 마리는 회색 체액을 뿜으며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고, 나머지 괴물들은 가볍게 착지를 하며 리오와 다른 사람들을 눈동자가 없는 이상한 구조의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들의 모습을 본 리진은 사격 자세를 취하며 리오에게 물었다.

“‥뭐죠? 바이오 버그라면 생체 레이더가 반응했을 텐데‥?”

리오는 망토 안에서 자신의 검, ‘디바이너’를 꺼내며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생명체이긴 한데, 고등 생물도, 저등 생물도 아닌 ‘악마’죠. 상당히 저급 악마들이라 바이오 버그라 불리는 인공 생명체들과는 별 다를 바 없어요.”

“악마‥? 설마,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만화’라는 말에, 리오는 순간 긴장감을 잃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만화에서 나오는 녀석들보다는 좀 더 흉포할 겁니다. 저급 악마들이라 말이 통하진 않을 거고‥. 자, 그 다음 얘기는 저 녀석들을 편하게 해 준 후 계속하죠.”

말을 맺은 리오는 곧바로 앞쪽으로 향해 튀어나갔고, 마키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나갔다. 리진과 티베는 지원 공격을 위해 각각 블래스터와 마법 주문을 준비한 후 마키의 사각지대로 몰려드는 악마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리오 씨에겐 지원 사격을 안 해도 괜찮은 거야!”

리진은 예비 탄창을 왼손에 든 채 사격을 하며 티베에게 물었고, 주문 탄을 쏘고 있는 티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 바람둥이 오빠에게 기술의 사각지대라는 개념이 있을 것 같아?”

“?”

그 말을 들은 리진은 리오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티베의 말대로, 리오의 보라색 검은 360° 전 방향에서 몰려드는 악마들을 순식간에 조각조각 갈아 사방으로 흩어놓고 있었다. 게다가 리오의 주위에 흩어진 악마들의 시체 수는 지금까지 자신과 티베, 마키가 없앤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아 보였다.

“‥우린 오히려 방해로구나. 하긴, 저번에도 봤으니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리오의 ‘즉효약’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던 듯, 리진은 아까 전까지 이상한 공포감에 정신이 분산된 것도 다 잊고 전투에만 계속 전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안된다니까, 미안하지만.”

지크는 레니와 시에가 함께한 자리에서 넬의 하숙 신청을 단호히 거절하고 말았다. 레니는 지크가 누구의 부탁을, 그것도 여자의 부탁을 거절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에 놀란 눈으로 지크를 보고 있었고, 넬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지크도 속으로는 미안하다 느끼며 넬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나도 너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고, 너 역시 나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지금 이 집엔 정신이 나가버린(?) 바이칼 녀석에, 티베에, 마키에, 게다가 리오 녀석까지 식객이 너무 많다구. 물론 시에도 포함되긴 하지만 시에는 먹는 것만 많이 먹지 공간은 적게 차지하니까 제한다 치지만‥. 너도 이 집에서 머물려면 리오랑 같이 소파에서 자야 해. 하지만, 리오 녀석이야 원래 집에서 자는 것보다 노숙을 많이 한 녀석이라 괜찮지만 넌 그렇지 않잖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어머니께 면목이 없어.”

“난 괜찮은데‥.”

레니는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말했고,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넬에게 말했다.

“‥널 위해서 내가 거절을 하는 거야. 이 집에 잘 수 있는 공간이 더 있다면 내가 허락을 했을 테지만, 더 이상 공간이‥.”

그 순간, 넬은 모자를 벗고 비장한 눈으로 지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선배하고 같은 방에서 잘래요!!”

“아, 그러면 되겠구‥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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