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00화
“후에〜냄새. 역시 단백질 타는 냄새는 가짜 장애인 구걸꾼만큼 구리군. 음? 엇, 당신들 누구예요?”
청년은 헤이그와 리진의 바로 앞에 와서 그런 소리를 했고, 헤이그와 리진은 일단 경계를 하며 청년에게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BH인가? 아니면‥.”
“BH? 어허, 뒤의 한 글자 빼고 두 글자만 덧붙여 주세요. 헤헷, 사실 BSP에요. 원래 오늘 이 도시의 방위를 맡은 BSP에 들어갈 사람인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서 꾸중도 면할 겸 얘들하고 운동 좀 했죠. 그런데, 아까도 물었지만 당신들은 또 누구예요? 이렇게 위험한 곳에 둘만 오는 것은 좀 이상한데‥설마 BH?”
그 청년이 당당하게 BSP라는 것을 밝히자 헤이그는 내심 안심을 했다. 청부업자도 겸하는 BH였다면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 위험할 것 같은 남자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리진은 달랐다.
“‥당신, BSP라는 직업이 호구로 보이나요? 그렇게 간단히 밝힐 직업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그러자, 그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리진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곧 귓속말로 그녀에게 살그머니 말했다.
“‥사실은 BSP에요. 이제 됐수?”
결국, 할 말을 잃은 리진은 자신의 황색 재킷 팔에 붙은 BSP 뱃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자, 우리도 당신과 같은 처지니까 어서 따라와요. 본부로 데려다줄게요. 타고 온 것 있죠?”
그러자, 청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역시! 괜히 구경하려고 서 있던 사람들은 아니군요! 잠깐 기다려요, 오토바이를 가지고 올 테니까.”
그 청년은 곧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고, 헤이그는 힘없이 웃으며 리진에게 말했다.
“‥뭔가, 굉장하고도 이상한 녀석이 한 명 들어온 것 같은데? 부장님 말씀대로 말이야.”
“‥흥, 모르죠.”
리진은 여전히 뭔가 맘에 안 든다는 얼굴로 청년이 뛰어간 방향을 쏘아보고 있었다.
“지크·스나이퍼! 23세! 오늘부터 대한민국 수도 방위 BSP에 참가합니다!! ‥헤헷, 잘〜부탁해요.”
지크는 씨익 웃으며 회의실에 모인 네 명에게 인사를 했다. 회의실 탁자 뒤쪽에 앉은 수도 방위 지부 부장인 처크·켄트는 이마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고, 대원 중 한 명인 케빈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맨 처음 지크에게 인사를 했다.
“옷, 난 케빈·브라이언. 동갑인 23세요. 함께 잘해 봅시다.”
케빈이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지크는 오른손으로 케빈의 손을 잡은 뒤 주먹을 쥐어 준 후 그 위에 자신의 주먹을 살짝 쳤고, 케빈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주먹으로 지크의 주먹을 살짝 내리쳤다. 곧, 펴진 둘의 검지 손가락은 약속을 한 듯 동시에 서로를 가리켰고, 둘은 뭔가 통한다는 듯 크게 웃었다. 미리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눈 헤이그와 리진은 서로 상반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사를 마친 지크는 주위를 둘러보며 처크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인원이 이것뿐이에요? 이건 좀 심하잖아요.”
“‥이젠 정식 대원이니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마. 루이랑 또 한 명이 아직 안 왔어. 볼일이 있던 모양인데‥.”
처크의 입에서 ‘루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지크는 흠칫 놀라며 처크에게 물었다.
“루이? 루우이? 설마, BSP 오퍼레이터 중 최고의 아이큐와 해킹 실력을 가진 사촌 동생님 루이 말씀하시는 것?”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렸고 약간 두꺼운 노트북을 가슴에 안고 있는 단발의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여성은 쓰고 있는 안경을 매만지며 지크를 가만히 쏘아보았다. 물론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었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지크? 여기 왜 있는 거지?”
“허허, 이런 이런. 이래 뵈도 정식 발령받고 왔다구. 너무 구박하지 마.”
“‥흠, 어쨌든.”
루이는 지크가 별로 달갑지는 않았는지 그대로 처크의 옆자리에 앉았고, 이미 숙달이 되어 있는 지크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때, 또 한 사람이 회의실 안에 들어왔고 지크는 이번엔 또 누군가 하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회의실의 문 앞엔 검붉은색의 머리를 두꺼운 밴드로 두어 번 묶어 내린 키 180가량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 여성의 눈은 지크를 보자마자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그 여성의 얼굴을 본 지크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반갑다는 듯 소리쳤다.
“우와앗! 이게 누구야! 린 챠오 양 아니야!!!”
슝–!
순간, 그 여성의 날카로운 발차기가 지크의 안면에 날아들었고 지크는 간단히 몸을 숙여 피한 후 아쉽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허어‥너무 반갑다고 해서 발길질을 하는 것은 좀 그렇지. 헤헷, 어쨌든 반가워 챠오. 3년 전 헤어진 후 오래간만이지?”
아직도 발차기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그 여성은 자세를 바로 하며 무뚝뚝한 얼굴로 지크에게 말했다.
“죽지 않고 잘도 살았군 바보.”
“‥으응?”
그녀의 말투에, 지크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3년 전 자신이 알고 있던 챠오와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는 것이었다. 머리 스타일이나, 단련된 근육, 말투 등 그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이유를 모르는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뭐, 차차 알게 되겠지. 자, 할아버지, 전 이제 뭘 하면 되나요?”
“집에 가.”
“?”
자신의 대답에 처크가 너무나도 간단히 대답해 주자 지크는 깜짝 놀랐고, 처크는 회의실 안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식 퇴근 시간이 여섯시 반인데 지금 시간이 다섯시잖아. 그리고 넌 예비 인원에서 발령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정식 절차를 밟기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그건 그렇고, 레니도 와 있지?”
“예에‥오시긴 하셨는데 호텔에 계세요. 전 아직 집을 못 구했거든요.”
“그래, 그럼 오늘부터 집이 마련될 때까지 우리 집에서 머물 거라. 그럼 넌 미리 주차장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난 대원들과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헤이〜옛설!”
지크는 웬 떡이냐는 듯 실실 웃으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처크는 대원들에게 각자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한 뒤 시가 하나를 꺼내 태우며 지크에 대한 얘기를 해 주기 시작했다.
“후우–‥챠오는 지크가 어떤 녀석인지는 예전에 같이 지내 봐서 잘 알 테고‥,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저 녀석이 누군지, 어떤 괴물 녀석인지 말을 해 주겠네. 지크, 저 녀석은 인간이 아니야.”
순간, 챠오와 리진을 제외한 셋은 깜짝 놀랐고, 루이는 처크로부터 카트리지를 받은 후 전자 스크린 플레이어에 끼워 내용을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맨 처음 나온 사진은 지크의 고등학교 시절 농구부 우승을 했을 때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 배경을 뒤로, 처크는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진 녀석이지. 힘과 스피드는 웬만한 고속 기동형 사이보그들을 능가하며, 생체적 재생 능력 역시 바이오 버그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 말을 들은 리진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 채 실실 웃고 있는 지크의 영상을 보며 속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저 배경으로는 설득력이 좀 부족한데‥?’
“그러나, 나쁜 일을 계획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나진 않으니 모두 안심해도 좋아. 그건 그렇고, 챠오는 지크에게 무슨 감정이라도 있나? 아깐 왜‥.”
“아닙니다 부장님.”
챠오는 간단히 대답하며 그 질문을 끝냈고, 처크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았네. 자, 오늘 야간 근무는 헤이그와 케빈일세. 수고했고, 모두 퇴근하도록.”
다음날.
2주일에 한 번 있는 휴일을 맞은 리진은 그날따라 할 일이 없었는지 사복 차림으로 천천히 BSP 본부에 들어섰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황실로 향했고, 그녀는 그곳에서 다른 2급 오퍼레이터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루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야–호. 오늘은 괜찮아 루이?”
“흠, 그럭저럭. 그런데, 리진은 오늘 비번일 텐데 웬일이지?”
“으응, 약속도 없고 해서 그냥 나온 거야. 아 참, 오늘 본부에서 특별한 일 있어? 아래에 보니까 사람들이 꽤 있던데.”
그 말을 들은 루이는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핸드북을 켰고, 오늘의 전체 스케줄을 살펴본 뒤 리진에게 말해 주었다.
“음, 오늘부터 예비 BSP들의 평가 일정이 시작돼. 정 심심하면 가서 구경하는 것도 좋아.”
“오, 그래? 알았어, 고마워!”
리진은 손을 흔들며 상황실을 빠져나갔고, 루이는 핸드북의 스위치를 끈 후 다시 오퍼레이터들에게 강습을 시작했다.
본부 지하에 있는 시험장에 들어선 리진은 시험관과 잠시 얘기를 나눈 후 참관인 자격으로 의자에 앉았고, 첫 시험인 100m 달리기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9초 4. 저 사람은 육상 선수나 해야 하겠네.”
트랙 중간 지점 근처에 앉은 리진은 전광판에 게시되는 기록을 보며 한탄을 했다. 참고로, 그녀의 기록은 7초 23. 초능력을 사용했을 때의 기록은 5초 1이었다. BSP 대원들의 기록은 대부분이 인간의 한계를 웬만큼 뛰어넘은 사람들의 기록이므로 운동 경기의 기록과는 별개로 처리된다. 덕분에 올림픽과 같은 경기들의 재미가 없어지진 않고 있었다.
“오옷! 헤이, 리진 양! 여길 좀 보세요오〜!!”
그때, 리진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리진은 설마 하며 트랙의 출발 지점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지크가 자신을 향해 팔을 흔들고 있었고, 리진은 애써 외면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 인간은 왠지 짜증이 나는군.”
타앙–!
순간, 출발 신호가 들렸고 지크를 제외한 다른 예비 대원들은 전력으로 트랙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억! 이런!!!”
스타트가 늦어버린 지크는 곧바로 출발 자세를 취한 뒤 다리를 움직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슝–
“으앗?!”
리진은 자신의 앞으로 무언가가 갑자기 지나가자 깜짝 놀라며 뒤로 몸을 움직였고, 그녀는 멍한 눈으로 트랙의 끝 쪽을 바라보았다. 리진이 고개를 돌리는 동안 지크는 기록 측정용 카메라를 통과했고, 전광판엔 ‘신기록’이라는 글자와 함께 2초 98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리진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 지크를 바라보았고, 다른 예비 BSP들 역시 말을 잊은 채 전광판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타트가 1초 이상 늦었는데 2초 98‥? 게다가 저 반응은 또 뭐지?”
리진은 힘없이 중얼거리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현재 숨을 헐떡거리는 커녕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런, shit!!! 스타트가 늦었다구요, 저 다시 할 거예요!!!”
지크의 건의를 듣고 있는 시험관도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