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52화
“그래서요?”
“본 노사의 말은 네가 그 기간 동안 제대로 간수하지 못할까 싶어 심히 걱정된다는 말이다.”
돌연 동천은 크게 웃었다.
“으히히,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히히, 제가 무슨 어린애인 줄 착각하신 거 아니에요?”
동천은 분명히 어린애였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동천이 쉽사리 넘어올 것 같지가 않자 한 노사는 하는 수 없이 비장의 패를 집어 들었다.
“쯧쯧, 남은 기껏 네놈을 생각하여 말해주었더니 듣는 놈이 멍청하기 짝이 없구나.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 철경을 잘 간수하거라. 조만간 도난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동천은 그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도난을 당하다니요? 설마 언놈이 제 철경을 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너는 혹시 느끼지 못했느냐? 중 대인. 중소구의 요즘 눈빛을…….”
흠칫한 동천은 한 노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금 그 말씀은…….”
“내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혼자 돌아다니는 중소구를 목격할 수 있었다. 예전의 일로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어 말이라도 걸어볼까 다가갔는데 본 노사가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너에 관한 별의별 욕을 다하더구나. 대충,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이라며 어떻게 해서든 네가 절망하는 꼴을 봐야 속이 다 시원하겠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렸지.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알아본 결과, 그 증세가 꽤나 심각하다는 게야. 그런 이유로 네놈의 철경이 걱정되어 본 노사가 잠시 동안 맡아주려고 했던 것인데, 네가 그렇게까지 하겠다면 마음대로 하거라.”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았던 한 노사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떨떠름함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 있던 동천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 이놈의 소구자식을!”
급히 동천을 붙잡은 한 노사는 내심 성질도 급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어허, 지금 이러한 심정으로 달려간다고 해결이 될 것 같으냐?”
동천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당장에 가서라도 이 사실을 밝히고 그놈을 쫓아내야죠! 어떻게 도둑놈하고 같이 다닐 수 있겠습니까!”
한 노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만일에 지금 그 사실을 폭로한다고 치자. 물증이 있느냐? 중소구 혼자 중얼거린 것이야 나름대로 변명을 하면 해결되는 것이지만, 괜한 사람을 의심했다고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너는 그렇지가 않다. 억울한 것도 억울한 것이지만 강호의 소문이란 게 무서워서 이렇듯 무가(武家)에서 퍼진 소문은 앞으로의 너를 힘들게 할 것이 자명하다는 소리다. 그래도 너는 경거망동하여 그에게 따질 것이더냐?”
크게 깨달은 동천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한 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은 한 노사는 생각대로 짜여져 있는 각본을 제시해주었다.
“아주 간단하다. 우선 그 철경을 아무도 몰래 본 노사에게 맡겨라. 그리고 가지고 있는 척하며 다니는 것이지. 그런 다음 일부러 허술한 척 내버려뒀다가 중소구가 훔치려고 하는 찰나, 재빨리 제압하는 것이란다. 그러면 그가 어쩌겠느냐. 꼼짝도 못하고 자백하는 수밖에.”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한 동천은 방금 전까지 미친 영감으로 보였던 상대가 풍채 당당한 위대한 학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단하십니다!”
그의 손은 어느새 철경을 건네주고 있었다. 흡족한 얼굴로 철경을 받아든 한 노사는 그것을 갈무리하고 모두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장노삼과 눈이 마주친 그는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장노삼은 고맙다는 무언의 인사를 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중소구는 못마땅해하는 어투로 동천에게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는지는 묻지 않겠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으니 빨리 가기나 하자꾸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중소구의 뒤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어림도 없을 것이외다.”
그것을 들었는지 중소구가 고개를 돌렸다.
“뭐? 지금 뭐라고 했느냐?”
동천은 씨익 웃었다.
“후후, 못 들었어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에, 하마터면 동천의 뺨을 갈길 뻔한 중소구는 속으로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재수 없게 보이던지 무의식중에 약조를 어길 뻔했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으음, 안 보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이성은 냉정해도 본능은 불같이 끓어오르고 있으니 원.’
그는 동천의 꾐에 빠져 거지 같은 내기를 걸었던 자신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허나, 그도 그 나름대로의 전세를 역전시킬만한 대비책이 있었기에 그때까지는 꾹꾹 참기로 마음먹었다.
“잘 가시게들.”
“안녕히 가십시오.”
“다시 또 보기를 바라겠소!”
진짜로 간다고 생각되었는지 사람들이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동천 일행은 그렇게 조촐한 배웅을 받으며 제갈세가를 떠나게 되었다. 바야흐로 때는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틀 정도를 지나 그럭저럭 평온을 유지하며 길을 재촉하던 동천 일행은 장노삼으로 인해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허허, 이 할애비는 저쪽으로 가야하니 여기서부터는 길이 다른 것 같구나.”
생각보다 일찍 할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동천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말했다.
“꼭 그곳으로 가야해요? 그냥, 저희랑 함께 가세요.”
문정과 중소구가 사뭇 긴장하는 가운데 장노삼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란다. 그곳으로 가는 것은 그 외에 또 다른 볼일이 있어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쉽긴 하지만 이 할애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우리 착한 천아는 이해하겠지?”
동천은 장 할아버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물어보았다.
“알겠어요. 그건 그렇고, 까먹고 안 물어본 게 있는데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장노삼은 살풋이 웃었다.
“허허, 하북성(河北城) 태행산맥 쪽을 가로질러 간단다. 험준한 산세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들이 종종 보이는 곳이지. 그곳들 중 창산(窓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찾아가는 것이란다.”
생각보다 멀자 동천은 약간 놀랬다.
“그 정도면 좀 걸리겠는데요?”
“그렇단다. 적어도 왕복에만 반년 정도가 걸리지. 허허, 그런 줄 알고 일찍 돌아오더라도 느긋하게 무공 수련을 쌓으며 기다리고 있거라.”
“예, 알겠어요.”
“그래그래, 착하구나.”
장노삼은 그렇게 문정을 데리고 천천히 사라져버렸다. 장노삼과의 아쉬운 작별을 끝으로 초기의 세 사람만 남게 된 동천 일행은 앞으로의 갈 길에 대해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도연아, 이제 어떻게 가야하냐?”
주군의 물음에 도연은 공손히 대답했다.
“형산으로 가는 자세한 지리는 중 대인께서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동천의 곱지 못한 시선이 중소구에게로 향했다.
“그래? 허면, 중 대인께서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상대의 시선이 곱지 못하자 중소구의 목소리도 아니꼽다는 티가 풍겨 나왔다.
“가르쳐주긴 가르쳐주마. 지금 이곳에서 호남성의 형산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동쪽 방면인 구화산을 비껴지나 호북성 무한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장사를 거쳐가는 방법이 하나이고, 서남쪽 방면인 황산에서 강서성 남창으로 들어가 의춘을 지나 마찬가지로 장사를 거쳐 내려가는 방법이다. 무엇을 택하겠느냐.”
“어느 쪽이 가까운데요?”
동천으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미운 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혀있는 동천은 뭘 해도 중소구에게 밉상으로 다가올 따름이었다.
‘어린놈이 게으름은 많아 가지고 편한 길을 찾는구나. 오냐, 이놈아. 어디 한번 당해봐라.’
중소구는 낮게 헛기침을 터트리며 말했다.
“험! 가깝기는 두 번째가 가깝지만 산세가 험하고 의외로 돌아가는 관문이 많아서 조금 힘이 든다. 거기에 비해 첫 번째는 여기에서 구화산까지 가는 길이 황산보다 멀긴 하지만 그곳에서부터는 황산에서 가는 길과 거의 똑같은 시일이 걸린다고 할 수 있다. 즉, 만일에 구화산과 황산의 중간 지점에서 형산을 찾아간다고 치면, 구화산 쪽이 빠르다는 이야기지.”
설마하니 가는 길 가지고 장난을 칠 줄 몰랐던 동천은 첫 번째 길을 골랐다.
“그럼 구화산 쪽으로 가기로 하죠. 도연 너도 이의 없지?”
“물론입니다.”
중소구는 도연까지 고생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담담한 자세를 가졌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빨리 떠나기로 하지.”
그들은 근처 마을에서 마부를 고용한 뒤, 구화산(九華山)을 향해 여정을 떠났다. 한동안 잘 간다 싶었던 그들 일행은 아직도 멀었냐는 동천 특유의 사람 짜증나게 하는 질문으로 인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멀었다니까! 네놈은 도대체 일주일은 걸린다는 소리가 개똥으로 들리더냐?”
“아니오.”
동천의 대답에 중소구가 다시 꽥꽥거렸다.
“그렇게 알아들었다면 적어도 일주일 후에나 물어봐야 할 것이 정상이거늘, 어찌 된 놈이 하루에 벌써 스무 번 이상이나 아직도 멀었냐고 묻는 것이냐!”
바로 앞에서의 잔소리에 귀청이 따가워진 동천은 약간 물러서며 말했다.
“알았어요. 일주일 후에나 물어볼게요. 됐죠?”
됐긴 됐는데 대답하는 폼이 영 아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중소구는 화풀이할 대상이 없자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어대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참자, 참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험준한 고개가 수두룩하다. 흐흐, 그런 곳만을 골라가며 저놈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 그때 가서 약간의 복수를 해도 늦지 않음이야.’
순식간에 평온해진 그는 되려 웃기까지 하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것을 본 동천은 이제 무력으로 안 되니까 쉽게 포기한 것인가 생각하고 속으로 득의양양해했다. 동천에게 있어 약속이란 단어가 무의미하듯, 중소구와의 약속도 그와 같았던 동천은 입을 다문 지 단 하루 만에 그 약속을 어기고야 말았다.
“이놈,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신의(信義)가 없더냐!”
그에 대비를 하고 있었던 동천은 태연히 대꾸했다.
“전 하늘님께 아직도 멀었냐고 물어본 죄밖에 없어요. 그것도 죄가 됩니까?”
“너! 너!”
재미있어진 동천은 중소구의 말투를 따라 했다.
“저, 저, 저 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중소구가 애꿎은 가슴만 후려치자, 가만히 사태를 응시하고만 있던 도연이 주군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주군, 예전에 대한 화풀이도 좋지만 너무 저분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광객이라는 외호가 증명하듯 극에 다다르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절로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알겠다고 전음으로 대답해 준 뒤 이제부터는 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헤헤, 가는 길이 너무도 심심해서 장난 좀 쳤어요. 이제부터는 정말로 안 그럴 테니까 화 푸세요. 예?”
동천이 싹싹거리며 나오자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중소구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보겠다며 앞장을 섰다. 약속을 하찮게 여기는 동천이었지만 도연의 조언 덕분에 무난히 일주일을 넘긴 그는 구화산의 산맥으로 진입했다는 소리에 기뻐하며 물었다.
“우와, 그럼 이제 이 구화산 줄기를 타고 호북성(湖北省)으로 내려가는 건가요?”
“그렇지.”
“허면, 여기에서 호북성까지는 며칠이나 걸려요?”
무언가 불길한 조짐을 느낀 중소구는 처음부터 못 박아두었다.
“5일이다. 5일이면 충분하니 그 안에 허튼 소리하지 않길 바라겠다.”
중소구가 생각했던 것을 노렸는지 동천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대답했다.
“그러죠, 뭐.”
내심 안도한 중소구는 구화산 줄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마차에서 내려 중심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대로 가고있는 척 동천을 안내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나는 듯한 구름, 울창한 숲, 괴상망측하게 생겨 제멋대로 서 있는 바위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틈을 비집고 나와 도도하게 버티고 서 있는 소나무. 이렇듯 자연의 조화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치는 동천에게 하등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구화산의 중심부로 들어선 지 삼 일째 되는 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동천은 ‘아직도 멀었어요?’ 대신에 이런 말을 지껄였다.
“헉헉, 진짜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아요?”
중소구는 평소대로 크게, 그러나 즐기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글쎄, 그렇다니까. 그렇게 헉헉거리면서도 자꾸 물어보다니, 네놈은 지치지도 않느냐? 여기 도 소형제를 보거라. 숨이 차면서도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 것을!”
동천은 짜증이 나 소리쳤다.
“에이 씨, 저놈은 저놈이고 이분은 이분이죠! 헉헉,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말야!”
중소구는 자신도 힘들면서 기쁜 마음으로 내심 즐거워했다.
‘흐흐, 그렇게 지껄이고 성질을 내거라. 그렇게 되면 열받는 것은 너뿐이고, 말을 하면 할수록 숨이 차는 것도 너뿐이니까 말이다.’
자신이 속고 있는 줄은 까마득히 몰랐던 동천은 험준하지 않다는 산도 이렇게 힘든데, 험준하다는 황산 쪽을 골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 혼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어이구, 처음에는 진기를 일으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건만, 쉬지 않고 진기를 운용하며 걷게 되자 내공을 사용할 때가 더욱 힘드는구나. 이렇게 힘든데 그냥 콱, 나 몰라라 드러누워버릴까? 소구 자식이 자꾸 재촉해서 짜증나는데 그래버릴까?’
마음 같아서는 드러눕다 못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죽더라도 한순간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바로 도연 때문이었다. 경쟁의식이 있었던 도연이 잘도 버티자 주군의 입장에서는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헉헉, 저놈의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더럽게 군말 없이 잘도 버티네. 으으, 짜증나! 저놈이라도 먼저 누워버리면 이 몸도 기분 좋게 드러눕겠건만…….’
차라리 내공이라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작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내공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동천은 시간이 흘러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것을 충당하랴 고단한 몸을 추스르랴 이중고를 겪게 된 것이었다. 이는 죽어라 경공을 사용해서 숨을 헐떡거리는 것만도 못한 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 대인, 이쯤에서 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군을 보다 못해 도연이 묻자 중소구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도연은 묵묵히 그를 따랐다.
“여기쯤이면 충분하겠군. 후우, 이제 좀 쉬기로 하지.”
제일 기뻐한 것은 동천이었다.
“으와, 살았다! 헉헉헉.”
대자로 누운 동천은 숨을 고른 뒤 운기조식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중소구가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말을 걸어 운기조식을 못하게 만들었다.
“헌데 말야. 형산파로 가서 무엇을 물어볼 셈이지?”
동천은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뭐 긴 뭐예요. 헉헉, 그걸 녹이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야지.”
중소구는 바로 물었다.
“그걸 녹이는 방법? 그게 뭐냐?”
동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왜 저러나 했던 것이다.
“지금 몰라서 묻는 거예요? 가뜩이나, 후우, 후.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 판에 괜히 장난하지 말라고요. 성질 돌아버리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정말로 몰랐던 중소구는 그 무슨 소리냐는 듯 다시 물었다.
“정말로 모른다니까? 본 대인은 도 소형제가 형산파에 무엇을 물어보러 가는데, 그 내용을 아는 것은 네놈밖에 없다고 들었을 뿐이야.”
누워있던 동천은 기겁을 하고 발딱 일어났다.
“예에에? 그게 정말이에요?”
“정 못 믿겠으면 도 소형제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 아니냐.”
동천은 획 소리 나게 도연을 노려보았다.
“방금 저 소리가 정말이야?”
도연은 평소 그대로의 얼굴로 조용히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아는 게 그것뿐이니 그렇게 대답한 것뿐입니다. 뭐가 잘못 되었습니까?”
도연의 말인즉, 자신이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중소구를 속였는데 그 일이 들통나면 큰일이니 박자 좀 맞춰달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동천은 급박한 와중에도 도연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잘못되기는, 그게 아니라 문정 이 가르쳐준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네가 모르고 있어 놀랐던 것뿐이야. 그렇다니 됐어.”
방금 전 동천과의 대화로, 도연이 자신까지 속인 줄 알고 내심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던 중소구는 그것이 착각으로 판명되자 오히려 미안해진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도연을 의심했다는 심중을 드러낼 수가 없어 일부러 동천에게 말했다.
“도 소형제도 모른다하니, 이 기회에 자세히 말해주는 것이 어떻겠냐?”
중소구가 그렇게 말했지만 일단 도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난 동천은 다른 중대한 문제를 생각하느라 중소구의 지껄임을 귀담아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