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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61화


“그놈 참 운도 좋군. 우린 멀쩡한 정신으로 그 푸르죽죽한 물을 마셨는데 말야.”

동천은 중소구와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일부러 도연에게 물어보았다.

“뭔 소리냐?”

“다름이 아니라 도련님께서 기절하고 나서 저와 중 대인께서는 그 검푸른 물을 또 억지로 마셔야만 했습니다. 아혈을 제압해서 들이미니 어쩔 수가 없었죠.”

“그럼 나는 어떻게 먹였지?”

“저희가 먹은 방식과 마찬가지로 먹였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하루에 그것 한 끼만 제공되니까 굶고 싶지 않으면 먹어야 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거부한다고 해서 안 주는 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중소구가 하나 더 추가했다.

“기절한 주제에 잘도 처먹더군. 그 요녀가 다 놀랄 정도로 말야. 그렇게 배가 고팠나보지?”

화를 낼 만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동천은 듣는 체도 안 했다.

‘저런 개소리는 귀담아듣지도 말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이렇듯 지금의 동천은 중소구의 비아냥거림보다 훨씬 더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그렇다면 그 심각한 문제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이어지는 동천의 생각을 엿본다면 자세히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이 상황……. 어디선가 한번 겪어본 것 같단 말야?’

그렇다. 오래전 일이긴 했지만 동천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닌, 그러한 시기에 지금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것만 같았다.

‘그래, 분명히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 한 대 맞고, 또 한 대 맞고…. 또 몇 대 맞고…….’

순간 동천의 뇌리를 강타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앗? 그, 그렇구나!”

드디어 생각해낼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생애에 있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사정화!”

옆에서 왜 저러나 지켜보고 있던 도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아가씨 성함은 왜…….”

중소구가 돌연 눈을 번뜩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방금 거론된 사정화의 정체를 알아내기만 해도 도연이 소속된 문파, 혹은 가문을 밝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사정화? 아가씨? 그게 누구지?”

금세 정신을 차린 동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뚝 시치미를 뗐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전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중소구는 싸늘히 코방귀를 꼈다.

“흥, 됐다 이놈아. 본 대인 스스로 알아낼 것이니라.”

그런 뒤 뒤돌아 앉아 사정화란 여인에 대해 온갖 지식들을 끌어들였다. 중소구가 뭔 짓을 하든 전혀 관심이 없었던 동천은 불길한 예감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는 실로 그때의 상황과 비슷했던 것이다.

‘으으, 마녀는 마녀끼리 통한다더니 그 말이 딱 이로구나.’

그런 말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지? 세 번째의 재앙은 정녕 피할 수 없다는 말인가?’

정해진 수순이라면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동천이라는 종자가 이렇듯 쉽게 물러날 리 있겠는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라면 실수로 뽑힌 머리카락 한 올조차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이 바로 동천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아무 잘못도 없는 내가 어째서 두 번씩이나 얻어맞아야 했는지를 알아낸다면 분명 해결책은 있을 것이다. 혹, 내가 너무 잘나서? 아니면 너무너무 잘나서? 으음,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거야.’

보아하니 전혀 밝혀질 것만 같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뭘까? 난 그나마 비위 좀 맞춰주려고 높여서 불러준 죄밖에 없는데……. 앗, 그렇구나! 바로 그거였어. 그래 그거였어. 그거였던 거야.’

주먹을 불끈 쥔 동천은 드디어 예견된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고민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히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야. 괜히 말을 걸어서 피를 볼 이유는 없는 거라고.’

“랄랄라~! 역시 난 천재야. 랄라.”

동천은 느긋하게 드러누웠다.


“대주님, 소문주께서 무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앉아있는 사내가 그렇게 말하자 제일 좌측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일세. 만일 어떻게라도 되셨다면 우리의 죽음으로서도 사죄할 수 없는 크나큰 중죄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대화가 오가자 우측의 사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대주님, 이번에 그 계집이 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소문주님 쪽의 상황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처하신 상황이 어떤지를 알아야 나름대로 그 계집의 이목을 이쪽으로 돌려 그분께서 조금이나마 화를 면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대주인 가운데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군영(群英), 소문주님의 상황을 알아봐야 한다는 의견은 좋지만 그 뒷이야기는 너무 위험하다. 혹여, 그 계집을 도발했다가 그 화가 소문주님께까지 미친다면 더욱 큰일이 아니냐.”

군영은 재빨리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속하가 모자랐습니다.”

대주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독충에 물리지 않았을 것을…….”

자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부대주가 더욱 비통하게 이를 악물었다.

“아닙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전서구를 형운곡 밖에서 날렸어야만 했는데 그 안에서 날리는 바람에 대주님께서 독충에게 물리게 되셨으니, 크윽!”

무슨 말이냐 하면, 동천의 뒤를 암암리에 봐주던 역마대 삼인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전서구를 날려 역천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것은 정해진 날짜에 맞추어 시행되었는데 형운곡에서 자취를 감춘 동천의 행방을 찾느라 그만 시일을 놓쳐버린 것이다. 뒤늦게 안 좋은 감을 느껴 전서구를 날렸지만, 채 몇 번을 파닥거리기도 전에 나무 위의 독사에게 물려버리자 대주가 뛰어올라 전서구를 낚아챘었다. 그러나 일진이 안 좋았던가? 무심코 발을 디딘 곳에 그만 독충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충에 물려 독기를 몰아내기 위해 꼼짝도 못하기를 하루. 기다렸다는 듯 민묘희가 나타났고, 그들은 별반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서찰을 적시에 처리했으니까요.”

대주는 군영의 말에 나직이 동조했다.

“그렇지. 비록, 역마패(逆魔牌)가 그 여인의 손에 넘어갔지만 쉽사리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수천에 문파들 중 하나의 부속기관에 불과한 우리들인데 어찌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겠느냐.”

부대주가 말했다.

“말로는 혼자라고 했지만 배후 세력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드세 높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닌 듯 보였다. 그것이 위장이라면 요녀라 불릴 만 하나 본 대주의 생각대로라면 뭔가 사연이 있어 은거한 기인으로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그때 철문이 열렸다. 세 사람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사슬들이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촤르륵, 촤르륵’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따갑게 만들었다. 문을 닫고 난 민묘희는 그들의 혈을 점하고 난 뒤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흥, 네놈들은 혈도를 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별로 없구나. 이호실의 녀석들은 나름대로 열심이었는데.”

흠칫한 대주는 표정을 감추고 그냥 지나쳐가듯 물었다.

“이호실의 녀석들? 우리들 말고 또 불쌍한 자들이 잡혀왔나 보군.”

민묘희는 한쪽 입술을 말아 올려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불쌍하다니. 입곡자사(入谷者死)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왔다면, 그만큼 각오가 되어있던 것이 아니겠느냐. 적어도 무림인이라면 그 정도의 결과는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본녀의 실험을 앞당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귀여운 실험물들이라 할 수 있으니……, 아? 거기에는 너희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걱정 말거라. 본녀는 실험물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니까.”

그녀의 비웃는 듯한 말에 화가 난 군영은 대뜸 소리쳤다.

“말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감히 이유도 없이 잡아와서는 우릴 이런 곳에 감금하고 실험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으냐?”

짝!

군영의 뺨을 후려친 민묘희는 싸늘히 말했다.

“방금 말했듯 너희들의 죄는 입곡자사를 무시하고 들어온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함부로 목청을 높이는 것은 용서치 않겠다.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니까.”

군영이 말없이 노려보자 민묘희가 다시 한번 뺨을 때렸다.

“그렇게 노려보는 것도 용서치 않겠다. 왠지 기분이 안 좋거든.”

가만히 지켜보던 부대주는 조용조용한 말로 민묘희를 자극시켰다.

“훗, 자칭 실험물들인 우리가 이렇게 대해지다니.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는 방금의 말은 거짓이었던 모양이구려.”

민묘희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부대주는 개의치 않고 할 말을 다했다.

“그렇다면 이호실의 사람들도 더하면 더했지 이보다 못하진 않을 거라는 말인데……. 이중인격자가 따로 없구려.”

싸늘히 부대주를 바라본 민묘희는 돌연 크게 웃었다.

“호호호호! 본녀를 도발시켜 어떠한 이득을 보려는 모양인데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난 다 알고 있어. 너희들이 이호실의 녀석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야. 녀석들을 잡아들인지 얼마 안 되어 너희들이 나타났고, 너희들은 그 녀석들이 지나온 자리만을 용케 알아내어 쫓아오더군. 너희들은 녀석들과 어떠한 관계지? 너희는 추적자들인가? 아니면 그와 반대?”

“…….”

세 사람은 입을 꼭 다물었다. 그들이 말할 것 같지가 않자 그녀도 굳이 알아낼 생각을 안 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느긋하게 알아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 마주보았다.

“본녀의 성미를 돋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지.”


“아이고, 배고파.”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중소구는 자꾸만 옆에서 배고프다고 난리이자 그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제일 연장자로서 배고파하는 것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끄응, 내 이리도 배가 고픈데 어린 도 소형제는 얼마나 배가 고플꼬.’

그는 아무 내색도 않는 도연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벌써 나흘 동안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절로 구역질이 나는 것만 마셨을 뿐이니, 지금까지 참고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일 따름이었다. 사실 그가 버티고 있는 것에는 도연의 역할이 컸다. 끝에 있는 놈처럼(동천) 배고픔을 호소했다면 자신도 마음 놓고 떠들어 댔을 텐데 전혀 그런 내색조차 없으니 모범을 보여야 하는 그로서는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늘님 동천 죽어유!”

그 모습에 중소구가 말했다.

“이놈아, 언제는 동철이라며.”

“에이 씨! 동철이든 동천이든! 어쨌든 배가 고파 죽겠다는 데 지금 그 따위가 문제예요? 힘도 없어 죽겠는데 괜히 가만히 있는 분 건드리지 말라고요. 아아, 배고프다. 옆으로 간 그 할망구는 왜 이리도 안 오는 거야. 그렇게 오래 걸릴 거면 이쪽이나 먼저 들를 것이지…….”

중소구는 허리를 곧게 펴고 벽에 등을 기댔다.

“마치, 그 검푸른 시궁창 물을 기다리는 것 같군.”

동천은 대꾸할 힘도 없는지 병든 수탉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도, 도연아.”

도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십시오.”

“내, 내가 만일 죽거든 묘비에 이렇게 새겨다오. 동천은 죽는 그 순간까지 의연했다, 라고 말야. 해, 해줄 수 있겠지?”

갑자기 도연이 정색을 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주군께서는 충분히 버텨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중소구가 끼여들었다.

“주군? 그 무슨 소리인가? 도련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도연이 난처한 빛을 띄자 동천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소리쳤다.

“저 인간이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지금 그 따위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니까? 이 몸이 도련님이면 어떻고 주군이면 어떻다는 거야. 당신이 밥 차려줄 거야? 아니지? 아니면 아가리 닥치고 있으라고. 알겠어? 아이고, 배고파 돌아가시겠네!”

바닥을 뒹굴어가며 주린 배를 움켜잡던 동천은 중소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군침을 흘렸다.

“왔다, 왔다 왔어!”

동천의 말대로 민묘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철로 된 물통이 들려있었는데, 그 안에는 문제의 그 액체들이 찐득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득 차있었다. 그걸 본 동천이 침을 꿀꺽 삼키자 중소구는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저런 것을 보고도 군침을 흘린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 못 할 종자로구나.’

그 사이 혈도를 점한 민묘희가 중소구의 아혈을 제압하려 하자 그가 먼저 사양했다.

“됐다, 본 대인은 거부하지 않을 터이니 그냥 먹여라.”

민묘희는 아무 말 없이 한 바가지를 떠 중소구의 입에 가져다댔다. 순간 역한 냄새가 치고 올라왔지만 중소구는 용케도 참았다.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것들을 삼켰다.

“꿀꺽, 꿀꺽, 꿀…, 욱! 우웩!”

역시 무리인 것 같았다. 마셨던 것을 거진 토해버리자 물끄러미 바닥을 쳐다보던 민묘희는 중소구의 뺨을 수삼 차례 후려갈긴 뒤, 아혈을 제압하고 벌려진 입안으로 무자비하게 쏟아부었다. 혈도를 점할 때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들어가는 것은 있어도 목구멍 밖으로 나오는 것은 없었다.

“헉, 크으으으. 으웁! 윽!”

중소구는 내부의 고통이 극심한지 탈색된 얼굴로 고통스러워했다. 일별조차 않고 자리를 옮긴 그녀는 도연에게 무언의 선택을 종용했다. 도연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냥 먹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가득 찬 내용물을 도연에게 먹였다. 먹는 도중 잠깐 주춤하기는 했지만 도연이 깨끗하게 비워내자 그녀의 입이 절로 열렸다.

“훌륭하구나.”

동천은 내심 소리쳤다.

‘이년아, 훌륭하고 뭐고 빨리 나한테도 달란 말야!’

민묘희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그녀는 중소구처럼 고통에 일그러지는 도연의 얼굴을 바라보다 동천에게 다가갔다. 한번 입이 떨어져서 그런지 동천에게도 말을 걸었다.

“넌 어떻게 먹겠느냐.”

어제 결심한 바로는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상황이 이렇게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그, 그냥 먹겠습니다!”

동천의 모습이 너무 경박스러워 보이자 민묘희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일었다.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고 동천의 뜻대로 해주었다.

“꿀꺽꿀꺽꿀꺽! 프하!”

단숨에 들이킨 동천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저기, 더 주실 수는 없나요?”

민묘희의 눈이 의외라는 듯 커졌다. 그것을 마시고도 더 요구하고 인간은 동천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해서 일부러 물통을 들어 올려 흔들어보기까지 했다.

“이걸 말하는 것이냐?”

“예!”

그녀가 보건대 아주아주 갈구하는 눈동자였다. 거기에 꼬리라도 달려있다면 영락없이 먹이를 반기는 강아지였다.

‘미쳤나?’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리라. 수십 년을 제조해온 자신조차 그 역한 냄새에 고개를 돌리는데, 겨우 사나흘 마신 것뿐인 꼬마 녀석이 맛있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한번 더 먹인 그녀는 잘도 받아 마시자 미각이 마비된 것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간혹, 약효가 강한 탓에 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맛은 어떻더냐.”

어느 정도 배고픔을 달랜 동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맛이요? 으음, 그러고 보니 어떤 맛이었지? 아무래도 한번 더 먹어봐야겠는데요?”

민묘희는 군말 않고 주었다. 이번에는 양을 좀 줄여서. 왜냐하면 하루에 마셔야 할 한계 치를 훌쩍 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부러 더 마시기 위해 맛을 모르겠다고 거짓말을 한 동천은 차근차근 마시며 그 맛을 음미했다.

“음, 이게 무슨 맛일까? 쓴맛? 매콤한 맛? 그러니까 이 맛이 달콤한……. 그래, 달콤 씁쓸한 맛!”

민묘희는 그런 맛도 있나 싶어 보기 좋게 얼굴을 구겼다.

“다, 달콤 씁쓸한 맛?”

“예, 맞아요! 틀림없다니까요?”

동천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이제는 중소구와 도연까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동천은 그들을 노려보았다.

“왜들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내가 좀 더 마신 게 그렇게 아까워?”

중소구는 혹여 자신이 이상한가 싶어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뒤통수를 벽에 후려쳤다.

“쓰읍!”

무지하게 아팠다. 그래서 결론은 났다.

“며칠 공복으로 있다시피 했다고 미쳐버리다니……. 그래도 완전히 못된 놈은 아니었거늘.”

동천은 중소구가 놀리는 줄 알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 몸이 미쳤다고? 하긴, 뭐 눈엔 뭐밖에 안 보인다고들 하지.”

철썩!

“으엑?”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했다. 고개가 홱! 돌아간 것은 그 다음이었다. 뒤이어 또 한번의 손찌검이 날아왔다.

“켁! 왜, 왜 때려요!”

민묘희는 동천이 뭐라 하건 말건 주먹부터 휘둘렀다.

퍽! 퍼억! 우두뚝(?) 짜악! 퍽!

“끄아악!”


끼이이익, 철컥.

철문을 닫고 난 민묘희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살랑 흔들었다.

‘아무리 흥분했다고 하나 어린아이를 그렇게까지 때렸다니. 후우, 수양이 부족하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었다. 동천의 미친놈 눈엔 미친놈밖에 안 보인다는 말은 중소구를 향한 것이었는데, 동천의 미친 증상을 의심했던 그녀는 왠지 모르게 화가 뻗쳐 이성을 잃다시피 때렸던 것이다. 원래는 처음의 따귀 한 대로 끝마치려고 했다. 헌데,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항의하는 어린놈의 얼굴이 왜 그리도 밉살맞게 보이는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절로 손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의 희고 매끄러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만일 중간의 아이가 소리쳐 말리지만 않았어도 지금의 이 손은 아직도 그 아이를 때리고 있었겠지…….’

그러고 보니, 중소구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겸사겸사 해서 그것을 물어볼 작정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폭력 행사로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물어볼 시간은 많다.’

문득, 사호실의 세 녀석들이 떠올랐다. 침울하던 마음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녀석들이 날 도발시키지만 않았어도 이호실로 갔을 때, 안 좋은 기분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평상시의 기분으로 가서 그 아이가 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날 이리도 부끄럽게 만든 것은 다 사호실의 그 녀석들 때문이야.’

분홍빛 입술을 잘근 깨문 민묘희는 신형을 돌려 다시 사호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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