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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67화


수면(水面)의 파장(波長).

역천은 요새 한가했다. 그러나 한가한 육체와는 달리 마음만은 조급함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방 안에서 빙글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째서 소식이 없지? 이것들이 급료를 적게 준다고 톡 꼈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랬다간 즉결 처분이니까. 워낙 답답한 마음에 그도 그냥 지껄여본 것이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첫 달에 소식이 끊겼을 때 수소문을 하는 건데…. 좀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에 시기를 늦추었더니 이놈의 망할 지부 놈들이 도저히 못 찾겠다고 소식을 보내오네? 콱, 치료해준답시고 병신을 만들어 버릴까보다.”

저 혼자 울분을 터트리던 역천은 갑자기 깜짝 놀라더니 침대로 가 누웠다. 그리고 매향이를 부르자 조심스레 들어온 매향이는 역천의 얼굴에 오이마사지를 해주었다.

“자고로 피부 미용에는 시간 엄수가 필수 조건이지. 아암!”

자랑이다.


“아가씨, 아가씨!”

수련이 급박한 어조로 들어오자 눈을 감고 앉아 명상에 몰두하던 사정화는 그 아름다운 눈썹을 꿈틀거렸다.

“시끄럽구나.”

수련은 개의치 않고 재잘거렸다.

“아이 참? 시끄럽고 씻으러 가고 뭐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오늘 주인 어른께서 출관을 하신대요!”

사정화는 오랜만에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눈을 뜨진 않았다. 그녀는 다시금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이었나.”

수련은 새침한 표정으로 사정화의 말투를 따라했다.

“오늘이었나, 가 아니라 이럴 때는 좀 더 놀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자, 같이 놀라자고요. 앗? 오늘이었니? 이렇게 말이에요.”

사정화는 천천히 일어났다.

“말이 많구나.”

익숙하게 길을 비켜준 수련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수라비연동(修羅飛然洞)에 가보실 거죠? 밖에 역천 할아버지하고, 청목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다고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물 흐르듯 걸어가던 사정화는 약간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아버님께서 내게 볼일이 계시다면 이곳으로 찾아오실 것이다. 굳이 갈 필요는 없으니 그들에게는 그렇게 전하거라.”

“그래도….”

사정화는 매섭게 수련을 노려보았다. 찔끔한 수련은 더 이상 어찌해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에휴. 역천 할아버지와 청목 할머니께는 반드시 모시고 나오겠다고 했는데, 이제 어쩌지?”

역천과 정원에게 호언장담했던 수련은 막상 별 소득이 없자 그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걱정되었다. 밖으로 나온 수련이 아가씨의 이야기를 전달해주자,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못마땅해하는 눈초리가 강렬하게 그녀의 온몸을 콕콕 쑤셨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다짜고짜 그녀를 구박했다.

“이것아, 책임지겠다며!”

“요 망할 년, 네년의 그 가벼운 주둥이를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지.”

수련은 그동안의 무공 실력을 발휘해 빨빨거리며 도망쳤다. 조금 멀어졌다 싶었는지 신법을 멈추고 소릴 질렀다. 동천이 잘 써먹는 수법이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요! 모든 일이 뜻대로만 된다면 그게 어디 세상일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나름대로 거리 계산을 하고 나불거린 것이었지만 역천과 정원에게는 발 한번 뻗으면 닿을 거리였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련의 앞에 도달한 정원은 재빨리 그녀의 입술을 찰싹 때렸다.

“켈켈, 요년아. 이 기회에 주둥이의 무게를 늘려보거라.”

수련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도망쳤다.

“꺄악! 수련 살려!”

“거기 서 요년아! 켈켈켈.”

역천은 수련을 집요하게 쫓아가는 정원을 바라보며 남의 일 말하듯 중얼거렸다.

“쯧쯧,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이군. 이거야 원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도 아니고. 아아, 이 몸은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역천의 말이었다. 어쨌든 잠시 소동을 피운 후 수라비연동으로 향한 역천과 정원은 부교주의 호위대인 사혼대 중 일혼에게 물었다.

“오늘 출관하신다고 기별이 왔는데 아직 이신가?”

일혼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출관은 이미 하셨고, 지금은 씻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작은 정자로 안내된 그들은 차분히 부교주를 기다렸다. 시간을 맞춰 잘 왔는지 반각 정도가 지나자 사비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역천과 정원은 사비혼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했다.

“아니, 어찌된 일이십니까?”

“여위셨습니다. 혹, 폐관수련 중 잘못되시기라도.”

그들은 말라도 너무 말라있는 사비혼의 모습에 당황한 것이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움푹 꺼진 그의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음침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겉모습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품만큼은 변질시킬 수가 없었다.

“허허, 그리도 이상하게 보이는가?”

실수를 인식한 그들은 급히 아니라고 대답해주었다. 사비혼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시간이 흘렀으면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 헌데 딸아이가 안 보이는군.”

역천과 정원은 찔끔 고개를 수그렸다.

“그, 그것이.”

어느 정도 짐작한 사비혼은 손을 내저었다.

“됐네. 그 아이의 성품으로 볼 때 그럴 만도 하지. 우선 자리에 앉게.”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비혼은 역천과 정원이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자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 자네들만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그간의 일들을 자세히 들어보고자 함이네. 이제 딸아이의 나이가 열 넷이니, 교주위(敎主位)를 물려받을 시기는 4년에서 5년이 남았네.”

역천과 정원이 자못 흥분된 음성으로 동시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암흑마교의 교주자리는 열화마가와 수라마가가 번갈아 대통을 이었지만 그 자리를 내주는 시기에 있어 초기에는 분란의 소지가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언제 물러나나 싶어 손가락만 빨며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4대 교주 때 정해진 것이 나이를 칠십을 제한하고 다음 교주위를 잇는 자는 부교주가 아닌 부교주의 자식, 혹은 손자 손녀가 잇는 것으로 공표되었다. 비록 여인이 교주가 된 적은 역대 단 한 번밖에 없었지만 전례가 있는지라 사비혼의 힘이라면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지금 교주의 나이가 66세이니 적어도 4년 정도가 남은 셈이었다. 지금 사비혼은 그것을 말하고 있고 말이다.

“본가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은 아직 변함이 없는가?”

정원이 누런 이를 드러냈다.

“켈켈, 물론입죠. 그들이 지금의 자리를 고수하게 된 배경에는 부교주님의 은공이 컸거늘, 감히 다른 마음을 먹겠습니까?”

정원의 말을 끝으로 사비혼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지자 역천의 입이 떨어졌다.

“저 또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헌데 교주 측에서 4년 전, 난데없이 절강성에 분타를 세우겠다며 거액을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비혼은 관심을 보였다.

“그 이야기라면 본좌도 들었네. 하지만 일혼에게 듣기로는 계획 없이 추진한 일이 아니라던데?”

역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면상으로는 절강성의 동태를 감시하자는 것이었지만 그 정도는 그곳에 상주한 하위 정보가문들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감시 목적이었던 그곳이 만독문과의 결전 전초기지로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쪽에서 먼저 비위를 거슬렀다면 충분히 이해를 하겠으나 아무래도 걸리는 것이 있어…….”

역천이 말끝을 흐리자 눈치 빠른 사비혼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건 나중에 시간 날 때 듣기로 하겠네. 그보다 교주께서는 폐관수련을 마치셨는가?”

“예, 한 달 전쯤에 폐관수련을 마치셨는데 며칠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출타를 하셨습니다.”

“어디로 말인가.”

“그게….”

역천은 더 이상 아는 게 없는지라 주춤거렸다. 약왕전은 그 특성상 힘을 키울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비혼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약간 멋쩍어하며 정원에게 물었다. 정원은 대답했다.

“귀주(貴州)로 향하셨지만 워낙 삼엄하고 넓은 경계망을 펼쳐놓아 아랫것들이 차마 뚫고 쫓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좀 더 실력 있는 녀석들로 파견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이목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쓸데없이 일이 커질 것만 같아 그 정도로 그쳤습니다. 지금이라도 명하시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움푹 꺼진 눈을 가늘게 뜬 사비혼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됐네, 지금쯤이면 볼일을 다 마쳤을 테니 나중에 은밀히 귀주 분타주를 시켜 알아보기만 하게.”

“켈켈, 알겠습니다.”

정원의 대답이 끝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사비혼은 정자를 걸어 나오며 말했다.

“내 오늘 저녁에 각 수뇌부들을 볼 것이니 그렇게 전갈을 띄우게.”

대답은 역천이 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정원은 같이 뒤따르며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처소로 드시겠습니까?”

우뚝 멈춰선 사비혼은 의미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딸아이를 한번 보고 싶군.”


“아가씨, 아가씨!”

수련이 급박한 어조로 또다시 들어오자 겨우 차분한 마음으로 명상에 잠기게 되었던 사정화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 조로 말했다.

“네 그 경박함은 아무래도 병인 것 같구나.”

수련은 개의치 않고 재잘거렸다.

“아이 참? 병(病)이고 병(甁)이고 뭐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지금 주인 어른께서 찾아오셨다구요!”

사정화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는지 수련이 원하던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빨리도 오셨군.”

수련은 새침한 표정으로 사정화의 말투를 따라했다.

“빨리도 오셨군, 이 아니라 이럴 때는 좀 더 놀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자, 같이 놀라자고요. 앗? 벌써 오셨니? 이렇게 말이에요.”

사정화는 천천히 일어났다.

“알겠으니 그만 하거라.”

수련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너무 맨 얼굴이신데 화장이라도 해드릴까요? 아참, 주인 어른을 만나러 가는 것과 그것은 별 상관이 없나? 그래도 말 나온 김에 해드릴까요?”

사정화는 뚝 멈추어 말했다.

“참으로 말이 많구나. 다 큰 처녀가 그렇게 말이 많아서야 누가 너를 데려가려 하겠느냐.”

기분이 상한 수련은 입술을 대뜸 내밀었다.

“그렇지도 않을 걸요? 주위의 아저씨들이 절 얼마나 귀여워 해주시는데요. 아들이나 손자의 신부 후보감 첫 순위가 저라니까요? 뭐, 전 이미 점찍은 사람이 있어서 거들떠도 안 보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앗? 아가씨!”

사정화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들을 가치가 없자 볼 것도 없이 먼저 나간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재빨리 따라나간 그녀는 수련동의 입구 안쪽에서 잠시 서있는 아가씨를 볼 수 있었다. 햇빛에 익숙해지려는 것이었다. 일각 정도를 그렇게 서있던 사정화는 여전히 감은 눈으로도 잘도 거처를 찾아갔다. 물론 거기에는 그녀를 뒤따르며 방향을 제시해준 수련의 덕이 컸지만 말이다.

“아이 참? 거기가 아니에요! 좀 더 옆으로. 더 왼쪽으로요! 아니, 거기를 지나치시면 안 되죠! 내참, 제 말을 듣고는 계신 거예요?”

멀리서 사정화를 뒤따르던 호위대는 그런 수련의 행동에 ‘저러면서도 안 죽는 게 용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수련의 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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