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숙원
―시선(視線)
드디어 때가 왔다!
‘검심전(劍心展)’’. 지엄한 필치로 가주 집무실을 지키고 있는 편액 아래에서 청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묵직한 음성이 그를 맞이했다. “오늘 떠나느냐?”
“예, 아버님!”
청년이 짧게 대답했다.
부자지정이 그다지 돈독한 사이는 아닌 듯,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은 상당히 간결했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아들에 대한 믿음과는 별도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숙고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고 사내는 생각한 듯하다. 아들 역시 그런 아버지를 비난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오래전에 준비를 끝내고 있었습니다. 심신에 각오를 새겼으니 제 검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울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열아홉 나이에 걸맞지 않은 맹렬한 투지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십 년 고련을 거치는 동안 더욱더 강렬하게 타오 른 적은 있을지언정 결코 단 한 번도 미약해지거나 꺼진 적이 없었던 불꽃이었다. 그렇기에 사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부친, 즉 청년의 조부 역시 자신보다 이 아이에 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리라. 백 년 동안의 숙원을 이루어줄 큰 희망으로서.
‘백 년(百年)의 숙원…….’
백 년이란 시간을 들이고도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짐! 뛰어넘지 못한 벽, 이루지 못한 꿈!
그 생각을 하자 또다시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아마 물귀신처럼 평생 그를 괴롭히면서도 결코 떠나가지 않을 이 감각. 그는 한층 무거워진 마음으로 다시 아 들을 바라보았다.
“난 실패했다!”
자조와 회한이 섞인 부친의 말투에 청년은 움찔했다.
자신이 풀지 못한 숙제를 아들에게 떠넘기게 되었으니,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난 끝내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자신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숙원, 끝끝내 넘어서지 못한 ‘모란’의 벽! 그 벽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가슴 한편이 회한의 늪에 잠긴다.
“하지만…….”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넌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는다!”
시간의 강, 그 흐름을 무시한 채 백 년에 걸쳐 쌓인 숙원이 아니던가. 그 단단한 앙금을 풀어줄 사람은 이 아이밖에 없다. 그 역시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 다. 그렇기에 그, 아니, 가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낌없이 투자했던 것이다.
최고의 환경, 최고의 스승, 그리고 천재적인 재능을 연마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아들은 세인(世人)들이 운운하는 천재임이 분명했으며, 그 재능은 최고의 환경을 만나 최상의 형태로 개화했다.
그는 지금도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다.
이 아이가 바로 공손세가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다음 가주는 바로 이 아이라고!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이제 강호 사람들은 공손세가의 ‘지존검법(至尊劍法)’이 결코 모용가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란의 검은 제 손에 꺾 일 것입니다!”
청년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투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약관의 나이라 생각되지 않는 막강한 기백! 그 용솟음치는 기백을 접하며 공손세가의 현 가주 공손경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담했던 기억이 한순간에 날아 간 듯, 그의 마음은 파도처럼 밀려온 기대감으로 세차게 격동했다.
공손경운은 다가가서 아들의 두 손을 꽉 움켜잡았다.
“절휘(切輝)야! 너로 인해 우리 공손세가는 천하제일세가로 비상할 것이다!”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열기가 넘쳐흘렀다.
“이 아비는 널 믿는다! 명심하거라! 공손세가의 미래는 너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는 것을!”
공손절휘의 두 눈에서도 투지의 불꽃이 일렁거렸다.
“맡겨주십시오, 아버님! 무림은 이번 승천무제에서 모란의 후계자가 지존의 검 아래 꺾였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강호는 공손세가에 대한 평을 재수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 검을 받아라!”
공손경운은 한 자루의 검을 불쑥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이 검은…”
ܕ܂
그 검을 알아본 공손절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자는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공손절휘는 급히 허리를 숙이며 사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친이 내민 검은 오직 공손세가의 가주만이 지닐 수 있는 보검으로 그 명(銘)은 ‘극예(極銳)’였다. 그 런 귀보(貴寶)를 이제 막 관례를 올린 약관의 청년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처사였다.
그러나 공손경운은 뜻을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손이 거두어질 리 만무했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나는 지금 공손세가의 미래를 너에게 일임하려는 것이다! 이 검은 바로 그 증표다! 할아버님께서 여기 계셨다 해도 나와 같은 의견이셨을 터! 어서 공손세가의 미래를 받아라! 그리고 네 손으로 그 미래를 열어라! 그만한 각오 없이 어찌 대사를 치를 수 있겠느냐!”
공손경운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나의 각오이다! 그렇다면 너의 각오는 무엇이냐?”
마침내 청년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공손히 머리 위로 들어올려 검을 받았다. 그리고는 검을 향해 절하며 말했다.
““반드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청년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떠나거라!”
공손경운이 뒤돌아서며 말했다. 이미 목소리가 심히 떨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평정을 유지해 보고자 애썼다. “전송하지 않겠다!”
공손절휘는 부친의 등을 향해 큰절을 올린 후 묵묵히 문을 나섰다. 가끔은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할 때도 있는 법이다. 중양표국의 사운을 건 표행이 남창에 도착하기 보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
“또인가?”
모용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앞에 불쑥 나타난 사내 한 명이 뭐라고 뭐라고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OXXOXXOX……..”
하지만 그 아무개 뭐라는 남자가 무슨 말을 외치고 있는지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내용까지 친절하게 인식해 주기에 지금의 그는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무 슨 내용인지는 안 들어도 뻔했다. 아마도 자기소개 중이겠지. 다음엔 자신이야말로 천무학관이 필요로 하는 인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안달할 것이다. 요즘에 는 흔하다 못해 아예 일과가 되어버린 일이었다.
“적어도 검은 제대로 쥐던가…….?
원래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건지,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건지 모용휘를 향해 검을 빼 든 아무개 어쩌고의 검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처럼 떠벌리 는 말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는 근래 들어 특히 더 흔히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단지 조금 한심할 뿐.
“적어도 시선은 상대의 눈에 똑바로 향해야 할 것 아닌가?”
미묘하게 어긋난 시선. 그것은 그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서는 허점이 너무 많아 어디를 때려야 될지 고르기도 곤란할 지경이라는 의미이기 도 했다.
‘오늘만 벌써 다섯 명째…….’
스윽!
모용휘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갈 길이 바쁘니까.’
드잡이질에 더 이상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어찌 보면 한심한 짓이다.
‘염도 노사님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그건 정말 상식인이 피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어억!”
벌써 오늘만 다섯 번째 듣는 상대의 당황성. 왜 다들 입으로만 반응하고 몸으로는 반응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모용휘는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방을 꼬꾸라뜨릴 수 있는 장소에 주먹을 한 대 꽂아 넣었다.
뻐억!
큰북이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무개 어쩌고의 몸이 반으로 꺾였다. 아니, 다섯 번째니까 오(五)번 아무개라 하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앞의 남자 들도 그의 머릿속에는 다들 아무개 아무개로 인식될 뿐이었다. 도전하면서 다들 자신의 사문과 이름을 밝혔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는 요즘 생각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어중이떠중이까지 기억해 줄 여유는 없었다.
“다행이군, 한 방에 끝나서.”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두 방이나 내지르는 아까운 짓은 피할 수 있었다.
흠칫!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은 직후 모용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 상대의 명치에 보기 좋게 들어간 주먹을, 또한 사나운 늑대처럼 도전했다가 지금 은 뒤집어진 바퀴벌레처럼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도전자를 바라보았다.
“이게 물든다는 건가…….”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바뀐다더니. 경험은 달리 말하자면 만남과도 같고, 사람은 좋든 싫든 만남을 통해 세상에 산재해 있는 숱한 가능성을 접하게 된다. 그러니 아 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최악 중의 최악이지만……
“악연이란 이런 것이겠지……..
모용휘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수많은 전생을 통한 수많은 만남, 그 무수한 경험 중에서도 비류연 같은 인간과의 만남은 실로 강렬한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가볍게 점혈만으로 승부를 결정지었을 것을. 검을 뽑을 필요가 없다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껏ᅳ약간은 기분 좋게―주먹을 내지 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호쾌한―나쁘게 말하면 폭력적인―방식은 그의 미학과 어긋나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도 하고 말았다.
“나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겠지…….”
씁쓸한 고소가 혀끝을 적신다. 비류연… 이상한 녀석… 그에게는 묘한 힘이 있다. 외면할 수는 있어도 부정할 수는 없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안 되는 사상을 확고한 신념으로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런데도 그는 그랬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간혹이나마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주장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건 위험한 징조였다.
그는 주위를 휩쓸고 다니는 태풍의 눈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자신은 잘 안 움직이려 들지…….”
“태풍의 눈이 움직이는 것 봤어? 원래 중심은 움직이지 않는 거야.”
항상 그렇게 말하는 게 그의 입버릇이었다.
“뭐, 진짜는 단지 귀찮은 것뿐이겠지만…….’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뭐, 이런 것도 가끔은 좋을지도…….”
하지만 역시 친구를 가려서 사귀어야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이 틀림없다. 고민해 볼 문제였다.
결국 오늘도 그의 검은 한 번도 뽑히지 않았다.
‘그만 갈까? 더 늦으면 염도 노사께서 화내시겠지??
약간 흐트러진 옷맵시를 가다듬으며 모용휘는 생각했다. 그는 아직 전설의 비기를 배울 기초 훈련도 채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본이 중요해. 많은 작물을 재배하려면 넓고 풍요로운 대지가 필요하고 큰 배를 띄우려면 많은 물이 필요하지. 그리고 높이 뛰어오르려면 단단한 땅이 필요하다. 너의 그릇이 이것을 담아낼 수 없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그릇을 깰 것이다.”
그들, 염도와 빙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막 걸음을 옮기려던 그의 발이 우뚝 멈췄다.
“거기 계신 분은 누구신지?”
모용휘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물었다. 어둠은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침묵을 뒤흔들어 보기로 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습니까?”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여전히 정적만이 가득 차 있었다.
요즘 자꾸만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그 시선의 주인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누굴까?”
시선은 은밀하면서도 집요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가문 빵빵하고 장래가 촉망받는 기재에다가 덤으로―이걸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이 대부 분이긴 하지만ᅳ미남이기까지 했기 때문에 노리는 여자들이 꽤 많았다. 그 때문에 골치를 썩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를 몰래 쫓아다니며 일거수일투족도 놓 치지 않겠다는 듯 눈에 불을 켜던 여자도 상당수 있었다. 민폐도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는 무력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여인들의 무시무시한 집요함에 두려움을 느꼈었다. 덕분에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여러 번 위기를 넘기다 보니 그쪽으로 감각이 특화된 모양이었다. 그 경험의 산물에 비추어볼 때 이 시선은 분명 남자의 것이었다. 그것도 널름거리는 적의가 서린 칼날 같은 시선이었다. 만약에 지금 이 시선의 주인이 여자라면 그것 은 공포 그 자체이리라.
‘설마 아니겠지…….?
모용휘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의 모든 것을 해부하겠다는 의지에 가득 찬 눈. 그 해체가 끝나는 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오직 시선의 주인만이 알 일이었다.
‘상당한 고수…….?
그의 감각에 잡히기는 하지만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련을 쌓은 자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수련이라면 모용휘 역시 혼백이 다 빠질 지경으 로 임하고 있었다. 거듭 증강되는 수련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엄격하고 강도 높은 수련을 쌓은 그로서도 견디기 힘들 만큼 빡빡한 일정이었다.
현재 그를 지도하고 있는 사람은 염도였다. 어떻게든 기반을 다진다는 것이 두 사람의 목표이자 역할인 듯싶었다. 얼마나 대단한 무공이기에 염도의 무공과 빙검 의 무공이 고작 기초 공사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과연 전설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수없이 자문해 보았지만 자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본편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리도 힘든 것이다.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의 주인이 누구일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대상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곧 알게 되겠지.”
어둠을 향해 가볍게 팔을 한번 휘두른 후 모용휘는 가야 할 길을 마저 가기로 했다. 아직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오늘 해야 할 수련도 아직 많이 남은 상 태였다.
게다가 할당 수련 중에서도 가장 힘든 염도 노사와의 대련이 남아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피로가 엄습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는 포기하지 말 자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자신이라는 존재의 한계선을 이 정도 선에서 그을 생각은 없었다.
모용휘는 부지런히 발을 옮겨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 녀석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
비가 오는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광막하게 펼쳐진 밤하늘은 거짓말처럼 청명하기만 했다. 그럼 어째서 이 몸은 이렇게 흠뻑 젖어 있는 걸까?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시선 을 왼쪽으로 돌린다. 그가 기대고 있던 담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거미줄 같은 금이 그를 포획하듯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흔적. 그 흔적의 중심지는 바로 그의 얼굴에서 한 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위험했다…….”
조금이라도 한 치만 오른쪽으로 왔다면 그의 얼굴에 벽과 똑같은 금이 났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평정을 잃고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그의 존재는 상대의 이목에 포착되고 말았으리라.
“휴우~”
청년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척을 죽인 채 완벽하게 어둠과 동화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부분적으로나마 간파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과연! 저것이 바로 칠절신검 모용휘인가!”
역시 대단한 인기였다. 솜씨는 차후 문제였다. 이걸로 모두 스무 번째. 쫓아다니며 지켜본 모용휘의 싸움 횟수였다. 겨우 사흘 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전혀 도움이 안 되잖아!”
청년이 투덜거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스무 번 모두 공통되게 모두들 한 방에 나가떨어지다 보니 그가 지닌 무공의 특성을 파악해 내기가 난해하다 못해 거의 불가능했 다. 검이라도 한번 뽑고 휘둘러야 그걸 보고 뭔가를 얻어낼 게 아닌가.
그나마 얻은 게 있다면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뿐이었다. 좀 더 단련할 필요성이 있었다.
“역시 필요한 건 실전인가……”
현재 상태로는 패배할지도 몰랐다. 승리자로 군림하는 자기 자신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진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가문의 명예와 백 년 동안의 숙원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좀 더 자신의 전의를 드높이고 검의 광채에 예리함과 살기를 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혼자만의 수련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편리하게도 하나뿐이었다. 다행히 사냥감은 많았다. 지금 이곳 남창은 널리고 널린 게 연습 상대였다. 한 방!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동일한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