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73화
“에, 그러니까 자네 아들의 병은 무언가를 잘못 먹어서 생긴 병이네. 혹시 배가 아파 오기 전 산이나 들 같은 곳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것을 먹었던 적이 있는가?”
상주는 자신이 아들의 아픈 곳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곳을 정확히 집어내는 동천의 물음에 완전히 감복한 모습을 보였다.
“있습니다요! 있고 말고요! 그러니까……. 아들놈 병이 생기기 하루 전, 제가 산에서 산나물을 캐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나물에는 제가 오십 평생 처음 보는 것들이 섞여 있었죠. 그래서 형님께 그것들 중 하나를 들고 가서 물어보려 갔는데 글쎄 밖에 나갔다 들어온 아들놈이 아무 것도 모르고 그 산나물로 국을 끓여먹었지 뭡니까. 어이구, 제가 죽일 놈이지요. 모르는 식물이 있으면 그냥 못 본체하고 지나쳐 오는 건데…….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혀! 죽어야 혀!”
상주는 정말로 자책감에 빠졌던지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 자신의 머리를 마구 두들겨댔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얼른 말렸겠지만 동천은 달랐다. 오히려 이 노친네가 과연 어디까지 버티며 지 머리를 때릴지에 대해 자못 흥미로운 눈초리를 했다. 그것을 알았음인가? 한참을 스스로 때리던 상주는 형님인 이청조차 말릴 생각을 않자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옥동자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손을 내렸다. 그러자 동천의 눈가에 잔잔한 아쉬움이 베어 나왔다. 그때 동천의 귓가에 도연의 전음이 들려왔다.
『방금 말씀하신 것이 사실입니까?』
흠칫한 동천은 고개를 돌려 도연을 응시했다. 도연의 안색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40년을 조금 상회하는 내공으로 무리하게 전음을 보내다보니 딸리는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 전음을 자유로이 사용하려면 적어도 1갑자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부하가 전음을 사용해 물어왔는데 주군인 자신이 꿀릴 수는 없는 법.
『그럼 넌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냐? 뭘 처먹었는지는 몰라도 복부에 독한 화기(火氣)가 쌓여있어 임마.』
허리띠의 제약 때문에 동천 또한 내력이 딸려서 울그락 불그락 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천이 1갑자도 안 되는 내공으로 이청과 상주를 치료했다는 것은 정말 칭찬할만한 일이었다. 기공술을 쓰려면 적어도 기본이 1갑자였기 때문이다. 아니, 동천보다는 귀의흡수신공을 칭찬해야 할까?
“옥동자님. 안색이 안 좋습니다. 무슨 불편한 것이라도…….”
혹여나 해서 괜히 가슴을 졸인 상주는 안절부절못했다. 전음을 중단한 동천은 본래의 얼굴로 돌아와 웃었다.
“아무 것도 아니네. 치료를 하기 전 선기(仙氣)를 모으다 보니 잠시 힘이 들어갔던 것뿐이네. 걱정들 말게나.”
“오오!”
이청과 상주는 감탄에 마지않았다. 그리고 누워있는 상부 또한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인 이상 약간은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을 주욱 둘러 본 동천은 이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방해가 되니 나가들 보게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역을 하겠는가.
“예예, 그럼 저희 미천한 것들은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있던 동천은 갑자기 무엇이 떠올랐는지 한마디 더했다.
“그리고 10여장 밖으로 물러나서 기다리고 있게. 치료를 하는데 잡기(雜氣)가 섞이면 큰일이니까.”
상주와 이청은 그러겠다고 말한 후 여전히 허리를 조아리며 나갔다. 이제 방안에는 동천과 도연. 그리고 병에 찌들어 누워있는 상부만이 남아 있었다. 조용히 방문을 주시하고있던 동천이 상부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도연이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흐음,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상부는 좀 어색한 얼굴로(사실은 많이 어색한 얼굴이다) 동천의 물음에 답했다.
“그, 그냥 버틸만 했……지요.”
그의 애비가 그러했듯 그도 처음에는 어린아이에게 존칭을 쓴다는 게 상당히 거북한 모양이었다. 동천은 그것을 다 안다는 듯 화내는 기색 없이 품속에서 나무토막 세 개를 꺼내들었다. 길이는 젓가락 만했지만 굵기는 그것의 열 배에 달할 정도였다.
“그게 뭐…….”
계속되는 상부의 행동에 찰나간 동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존댓말을 듣고싶은데 상대가 말끝을 흐려 화가 난 것이었다. 하지만 동천의 치켜 떠진 눈썹은 곧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는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내 이곳을 오기 바로 전에 자네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일세. 이것은 박달나무고, 이것은 소나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자네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무 가지일세. 비슷한 크기를 구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네.”
상부는 조심스레 동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자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보게.”
상부는 나무토막 하나 고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고민할 것도 없이 하나를 골랐다. 바로 자신의 앞마당에서 구했다는 사과나무 가지였다. 동천은 상부가 선택을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그후, 사과나무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나무토막들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남은 것을 상부에게 디밀었다. 상부는 묘한 얼굴을 했다.
“이걸 왜…….”
고르라고 해서 자신의 집에서 자라던 것을 고르긴 했지만 석연치 않았던 것이다. 동천은 그런 상부에게 말했다.
“허허, 입에 물게.”
“예?”
“좀 아플 걸세.”
“예?”
“인생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허허!”
“그게……웁! 우풉!”
순식간에 나무토막을 상부의 입에 물린 동천은 근엄한(?) 얼굴로 뱉어내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불안함을 느꼈음인가? 자칭 옥동자의 말대로 뱉어내지는 않았지만 쾡하니 꺼진 상부의 눈동자가 좌우로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동천은 그런 상부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품속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내들었다. 도연의 눈빛이 흔들린 것도 그때였다.
“주군, 그것은 칼이 아닙니까?”
그렇다. 동천이 들고 있는 것은 자그마한 소도였다. 장인이 완성된 칼날을 감상하듯 요리조리 돌려가며 검신을 만져보던 동천은 만족에 찬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상부에게로 향해있었다.
“고통은 잠깐이지만 기쁨은 영원할 걸세.”
상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제야 눈치를 챈 상부는 급히 입에 물린 것을 뱉어내려 했다. 하지만 동천의 주먹은 그보다 빨랐다.
퍽!
“꽥!”
상부는 단 한방에 기절해버렸다. 안 그래도 병으로 약화된 상태인데 그가 어찌 동천의 주먹을 감당하겠는가. 드디어 보다 못한 도연이 끼어 들었다.
“주군! 설마 그것으로 어찌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기분이 좋아져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 보려던 동천은 도연으로 인해 금새 기분이 잡쳐버렸다.
“어찌하면 니가 어떻게 할건데?”
도연은 단호히 말했다.
“안됩니다!”
동천도 지지않고 소리쳤다.
“뭐가 안돼!”
“지금 주군의 솜씨로 칼을 댄다면 이 사람은 죽을 겁니다!”
동천은 낮게 이죽거리며 대꾸했다.
“히히, 죽으면 다 지 팔자가 아니겠어?”
물론 본심은 아니었다. 다만 도연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즐기려는 동천의 못된 심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도연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재빨리 달려들어 동천의 손에 들린 소도를 잡아챘다.
“어?”
동천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지 혼자 히히거리다가 소도를 빼앗겼으니 당황한 것은 자명한 일.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동천이 아니었다.
“이런 씨팔! 너 죽을래? 그거 안 내놔?”
도연은 동천의 손길을 피하며 소리쳤다.
“나중에 벌을 받을지라도 이것은 절대 줄 수가 없습니다!”
“잔말 말고 내놔!”
둘이 서로 부대껴 엎치락 뒤치락 하기를 반각여가 지났을까? 이렇게는 도저히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한 동천은 한가지 꾀를 냈다. 바로 도연을 째려보다가 갑자기 딴 곳을 바라보는 수법이었다.
“엇? 저, 저것은?”
“안 속습니다.”
“으읏!”
동천은 불신의 눈빛을 보냈다. 자신 같았으면 속아넘어갔을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내 비장의 패가……. 아아, 어느새 저놈이 부동심(不動心)의 수법까지 익혔단 말인가? 크으! 아니다. 절대로 저놈이 그런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동천아 마음을 가라 앉혀라. 지금 것은 운이 좋아서 안 먹힌 것뿐이란다.’
시시한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던 동천은 의외로 효과를 보고 금새 안정을 되찾았다.
“훗! 네 뜻이 그러하니 그만두기로 하지.”
“정말입니까?”
순간 동천의 눈 꼬리가 사납게 치켜 떠졌다.
“그럼, 이 몸께서 한입 가지고 두 말하시겠냐? 뭐, 할 수도 있지만!”
동천은 포기하는 척 하다가 재빨리 달려들어 도연이 쥐고있던 소도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도연도 이번만큼은 약간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는 빼앗길 정도였다. 일이 아주 급하게 되었다. 피한다고 손을 휘젓다가 자칫 잘못하면 주군의 손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뒤의 벽면을 향해 소도를 던져버렸다.
‘히히! 고작 그거냐?’
그것을 본 동천은 내심 영악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뒤로 날아간 소도를 집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그때 벌어졌다.
팅!
소도가 벽면에 꼿히는 게 아니라 퉁긴 것이다. 그리고 동천 쪽으로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다 힘을 잃고 아래로 급속히 하강했다.
푸욱!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기절한 상부의 몸체가 움찔거렸다.
“…….”
잠시 정적이 일어났다. 도연은 눈을 부릅떴고 동천은 파래진 얼굴로 꿀떡꿀떡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잠시 후, 이 정적을 깬 것은 입만 살아있는 동천이었다.
“으아아……. 이, 이건 내 잘못이 아냐! 니, 니, 니가 죽인 거라고!”
오줌까지 찔끔한 동천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연에게 책임전가를 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에 반해 도연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기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떨리고 두려운 것은 동천과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도연이 동천과 사뭇 다른 점은 그 상황에서도 할건 다 한다는 것이었다. 주저하던 그는 아무 말 없이 떨리는 손길로 상부의 배에 꼿혀있는 소도를 뽑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