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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77화


누가 더 허망할까.

객점 주인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은자 1냥을 쥐고 히히덕거렸다.

“으흐흐, 내가 한눈에 무림인들인 줄 알았지. 다는 아니지만 누굴 찾을 때는 이렇게 거금을 선뜻 준단 말야?”

어린아이들을 꼰질렀다는 사실이 자못 찔리긴 했지만 어디 그것이 눈앞의 은자보다 우위에 있으랴. 더군다나 방값은 선불로 받아낸 상태가 아닌가? 아울러 내일 밥값은 굳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자! 이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이나 푹 자둘까?”

그는 계산대 옆으로 터져 있는 통로를 지나 잠을 청하기 위해 제법 넓적한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안에는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 같은 마누라가 잠을 퍼질러 자고 있었다. 말이 토끼와 여우지, 실제로는 새끼 돼지들과 어미 암퇘지였다. 생업이 객점인지라 잘 먹이고 입히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아주 후회되는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인데. 애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 와서 아내에게 살 좀 빼라고 닦달하면 곧바로 철퇴 같은 주먹이 날아오는 것은 자명한 일. 그의 부인은 남편이 새벽에 나가건 말건 입가에 침을 흘리며 코를 골고 있는 중이었다.

<으으, 내가 미쳤지. 저걸 이쁘다고 데려왔으니… 쩝, 그래도 처녀 때는 쭉쭉빵빵이었는데 말야.>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른 그는 그래도 마누라라고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의 부인은 잠결에도 얼씨구나 남편을 껴안았다. 객점 주인은 육중한 다리 한 짝이 자신의 배 위에 오르는 것을 묵과하며 속으로 그 다리가 건너편 기루에서 일하는 어여쁜 청홍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효과가 있는지 부인의 족발이 매끈한 잉어처럼 느껴졌다. 그는 부인의 육중한 다리를 슬슬 매만졌다. 갑자기 흥분이 일었다.

“흐으…”

기분 나쁜 신음성을 흘린 그는 도저히 못 참겠던지 부인의 몸에 올라탔다.

<청홍아. 청홍아.>

그 순간 그의 부인은 무언가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러웠던 것이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올라탄 무엇을 혼신의 힘을 다해 무릎으로 후려쳤다.

콰직!

“꾸에에에!”

객점 주인은 사색이 되어 나동그라졌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몇 대 나간 것 같았다. 인과응보. 이 상황에서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랴.

“으응? 무슨 일이… 앗? 여보! 왜 그래요?”

“아빠, 왜 그래요! 예?”

“엄마! 아빠가 어디 다쳤나 봐요!”

뒤늦게 깨어난 부인과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 객점 주인은 기절해 버렸다. 기절한 동안은 고통을 느끼지 않을 터이니 잘 된 일이라면 잘 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마침, 동천과 도연이 우회해서 되돌아왔을 때였다. 동천은 객점 내부가 환한 동시에 여러 점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응? 뭐이리 어수선해? 이봐, 무슨 일이야.”

급히 뜨거운 물을 떠가고 있던 한 점원은 아닌 밤중에 어린놈이 반말을 까대자 자신의 본분도 잊고 두 눈을 치켜떴다. 그때 그 점원에게는 운 좋게도 동천을 알고 있던 다른 점원이 다가왔다.

“아니? 도련님께서 이 밤중에 왜 나오셨습니까?”

“하도 시끄러워서 말이지. 뭔 일이야?”

“헤헤, 다름이 아니라 주인 어른께서 심하게 다치시는 바람에 의원님이 오실 동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동천에게 화를 내려던 점원은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말없이 지나쳐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에게는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동천의 눈이 반짝였다.

“다쳐? 어딜 다쳤는데?”

점원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 마냥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게 말이죠. 어찌 된 상황인지는 몰라도 갈비뼈 몇 개가 아작 났다는군요.”

“저런!”

동천은 정말 안타까워하는 듯한 눈빛을 내비쳤다. 헌데, 묘하게도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참으로 묘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낌새를 느낀 도연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코자 얼른 주군의 팔을 잡아당겼다.

“도련님, 참견 말고 올라가시지요.”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동천이 오만한 미소를 앞세우고 아까 점원이 들어간 곳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도연은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동천은 방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흐느끼는 울음소리들을 듣게 되었다. 대충 ‘여보, 죽지 마요. 아빠, 죽지 마.’ 정도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그 흐느낌을 듣게 된 동천의 얼굴에는 꼬습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히히, 많이 다쳤나 보네?>

동천이 웃고 있는 사이, 밖에서 의원을 기다리던 곰보 점원이 동천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떼밀었다.

“아니? 이 시간에 웬 어린애? 부모님 몰래 나왔나 본데 어서 되돌아가거라!”

“비켜!”

동천은 귀찮은 듯 내공을 사용해 곰보 점원을 되레 밀쳤다. 밀쳐진 그는 벽에 등허리를 부딪히고 나서야 멈추었다.

“어쿠, 어린애의 힘이 이렇게 세다니!”

도연은 주군을 쫓다 말고 그에게 다가가 상세를 살폈다. 방금 벽에 부딪힐 때 퍽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어디 괜찮습니까?”

점원은 주저앉아 홀린 듯 신음을 흘렸다.

“으으, 쪼그만 게 어디서 그런 힘이…”

곰보 점원의 놀람을 뒤로 한 동천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객점 주인의 부인과 자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맥을 짚었다.

“어디 보자. 흐음, 기혈이 엉킨 것은 아니되 심한 외상을 입었구만? 아줌마, 가서 인삼탕 좀 끓여와.”

울고 있던 부인은 뭐가 뭔지 몰랐다. 어린애가 갑자기 들어와 의원 행세를 하는 데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울러 그녀의 투실투실한 볼이 좌우로 흔들렸다.

“요 꼬맹아. 지금 네 눈엔 내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줄 아느냐? 떽! 어서 나가지 못해? 정주(鄭奏)야, 넌 뭣했기에 이 애를 그냥 들여보냈느냐! 어서 끌어내거라!”

정주라는 사내는 아까 그 곰보 점원이었다. 하여튼 그는 주인 마님의 명이 있었음에도 동천이 두려운 듯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정주의 곁에 있던 도연이 나서려는 찰나 자그마한 동천의 입에서 대노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허! 어서 인삼탕을 가져 오라고!”

“에그머니나!”

“엄마!”

부인과 아이들이 놀라서 자지러졌다. 약간의 내공이 섞여 있었던 탓이다. 동천의 기세를 느낀 부인은 엉덩방아를 찧은 그 상태로 정주에게 명령을 번복했다.

“저, 정주야. 가서 인삼탕을 끓여오너라.”

이에 반색한 정주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요. 주인 마님.”

동천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사람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뭔가 모를 압박감에 저마다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기를 반각여가 지났을까? 그새 인삼탕을 끓여온 정주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동천에게 건네주었다.

“저, 여기…”

한번 당한 게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동천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인삼탕을 받아들었다. 덕분에 흩어졌던 시선이 인삼탕에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과연 저것이 무엇에 쓰이는가?’에 쏠려 있었다. 순간 동천의 입술이 실룩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못지않은 엄청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동천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고,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크어, 맛 좋다!”

동천이 인삼탕을 홀랑 마셔버린 것이다.

“…”

잠시의 침묵. 모두들 어이없는 것을 떠나 황당할 지경이었다. 특히, 남편의 생사를 앞두고 있던 부인의 입장에서는 이 당돌한 어린놈의 행각이 기도 안 찰 따름이었다.

“네, 네, 네!”

그녀는 기가 차도 너무 찼던지 ‘이놈!’이라는 뒷말을 차마 이어내지를 못했다. 울그락불그락. 마치 찜통에서 방금 꺼낸 돼지 모가지 같았다. 부인의 얼굴이 더 이상 벌게지면 위험할 지경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동천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쾅! 우지직!

동천이 발을 구르는 소리였다. 덕분에 나무 바닥이 산산이 으스러진 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어허, 경망스럽다! 치료를 하기 전 원기를 보충한 것뿐인데 어찌 이리도 생각 없이 나서느냐! 감히 죽고 싶으냐?”

이제야 이름이 나오지만 객점 주인은 홍이(虹二)였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진옥(眞玉). 지금은 시집을 왔으니 홍 부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리라. 여하튼 홍 부인은 남편에게 천하무적이었다. 아울러 먹이사슬의 원칙에 따라 남편이 부리는 점원들에게도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천하무적은 그것에만 한했다. 그의 집에서 제일 힘이 센 점원도 저리 하라면 고개를 내두를 게 뻔한데 그녀가 어찌 나서리오. 물론, 그녀의 몸무게라면 충분히 동천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녀는 그녀 자신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엉엉, 엄마. 무서워요.”

홍 부인은 소리치기에 앞서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자식새끼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우선 자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뭐가 필요하지… 요? 돈이요? 아니면 또 이, 인삼탕을 드릴까요?”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행동을 했다. 사람을 삐딱하게 꼬라보며 주먹을 말아 쥐는 것 말이다.

“이 아줌마가 사람 말 더럽게 못 믿네? 내가 당신 남편을 고쳐준다니까?”

그녀는 무의식중에 반문했다.

“예?”

동천은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참았다.

“다른 말 필요 없어. 내가 고쳐줄 테니까 다섯 셀 동안 다 밖에 나가 있어. 안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하나! 둘! 셋!”

기겁을 한 홍 부인은 자신 못지않게 뚱뚱한 두 아들을 양 허리에 끼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흑흑, 나쁜 놈의 꼬마 새끼! 곧 법의 무서움을 알게 해주리라! 여보, 저와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그때까지만 살아줘요.>

주인 마님이 나가는데 점원이라고 남아있겠는가? 그들도 잽싸게 튀어나갔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동천과 도연. 그리고 기절한 홍이뿐이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동천은 차질 없이 돌아가는 계획에 히히거리다 도연을 노려보았다.

“너도 나가.”

“하지만…”

“나가라고 했지! 또 저번 일 되풀이하고 싶어?”

도연은 할 말이 없었던 듯 이를 악물고 신형을 돌렸다. 그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주군을 믿습니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천은 청력을 극대화시켰다. 도연이 그리 멀리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거리라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안심한 동천은 고개를 돌려 홍이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히히히! 감히 꼬발려?”

사이한 웃음소리를 들어보면 지금 동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정도였다. 동천은 곧 웃음을 거두고 가차 없이 홍이의 뺨을 좌우로 때렸다. 그에 따라 약간 마른 듯한 홍이의 안면에 빨간 손자국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야! 정신 차리고 눈깔 좀 떠봐!”

“으으, 윽! 어이구 옆구리야!”

정신을 차리자마자 옆구리의 극통을 느꼈나 보다. 동천은 알 바가 아니라는 듯 홍이의 멱살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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