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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78화


“히히, 주인장. 이 몸을 알아보겠수?”

홍이는 고통을 호소하다 말고 흠칫했다. 그리고 동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알아보겠지? 설마 내 눈앞에서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서 은근히 말꼬리를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왼쪽 옆구리 위쪽이 살가죽을 찢는 듯 아파 왔기 때문이다.

<이 꼬마 녀석이…, 윽! 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그는 채 생각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윽, 으으. 알고 있으니까 어서 의원 좀 불러주십쇼. 주, 죽겠습니다.”

지금 홍이는 동천이 어떻게 자신의 방까지 올 수 있었는지 알 바가 아니었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할 바에야 차라리 잉어를 한번 더 생각하는 게 나았다. 또 아는가? 잉어 생각에 잠시 고통이 물러날지. 그때 동천의 입에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원? 히히, 걔가 왜 필요해? 그보다 더욱 뛰어난 분이 바로 자네 앞에 있는데?”

홍이는 꼬마 놈이 웬 개소리를 하는가 했다. 아울러 일이 이렇게 되자 걸어다니는 돈이고 뭐고 없었다.

“이 꼬마 놈아! 욱! 자, 장난 말고 어서 의원이나 데려… 데려와!”

의외로 동천은 자신을 욕하는데도 화를 내거나 욕으로 되받아치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 하나를 살짝 눌렀을 뿐이었다.

“크아악! 이, 이, 잡놈이?”

까무러치는 홍이의 모습에 동천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좋아. 한 번 더.”

“으악! 흐으, 흐으, 사, 살려 줍쇼!”

부러진 곳을 두 번 찔리더니 자신의 신세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오죽 아팠으면 어른인 그가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망각했겠는가.

“걱정 마. 히히, 내 질문에 대답만 잘하면 조용히 사라질 테니까.”

홍이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곧바로 질문을 했다.

“뭐, 뭡니까?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의원 좀 불러…”

동천은 홍이의 뒷말을 끊었다.

“간단해. 금고는 어디다 놓지?”

“흐윽? 어, 어이구 아파.”

너무도 놀라 급히 숨을 들이켜다 무리가 간 듯 했다. 어쨌든 홍이는 숨결을 가다듬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헤헤, 제 수준에 금고가 있을 리 있겠습니까? 다만 그날 벌어들인 것을 모아 다음날 아침 전장(錢莊)에 맡길 뿐입니다.”

돈이 뇌리를 지배하다 보니 혓바닥이 잘도 굴러갔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가 그렇게 혀를 잘 굴렸음에도 불구하고 동천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자식 좀 보게? 니 밑에서 노는 놈 중 하나가 매일 혼자만 아는 금고에 돈을 숨겨둔다고 했는데 감히 거짓말을 쳐?”

순간 홍이의 안면에 당황함이 물들었다.

“그, 그럴 리가요.”

꽝!

동천은 분기탱천한 기색을 하고는 작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부수려고 내리쳤으니 부서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는 하얗게 탈색된 홍이에게 말을 건넸다.

“니가 봐서 알겠지만 난 평화주의자야.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불어. 안 그러면 니 갈비뼈가 이 바닥처럼 될 테니까.”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과 바로 눈앞에서 재현해주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결과물에는 속임수가 있을 수 있어도 재현하는 것에는 속임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속임수가 아니었다.

<크으으, 알고 보니 이 꼬마 놈도 무공을 할 줄 아는구나.>

무림의 세계에서는 어린애도 날아다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개뻥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들은 날기는커녕 기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던 홍이는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자 두려움에 떨었다. 또한 무림인은 냉혈하다고 들었던 그는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대신 언 놈이 꼬발렀는지 알려 주십시오.”

그 와중에도 입이 싼 놈을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동천은 그 소릴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왜 얼굴에 곰보가 난 자식 있지? 그놈이 가르쳐 주더라? 이제 됐어? 나 바쁘니까 빨리 말해. 어디야?”

홍이는 범인이 정주라는 소리를 듣고 내심 이를 갈며 말했다.

“제 오른쪽 끝에 보시면 두 칸짜리 서랍장이 있을 겁니다.”

홍이가 말한 곳에는 의도적인지 몰라도 비슷비슷한 서랍장이 3개나 자리해 있었다. 그냥 서랍장이라고 말했다면 동천은 분명히 성질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서랍장 칸이 두 칸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어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보여. 저걸 밀면 뒤에 금고가 있어?”

동천의 치기 어린 생각에 웃는 것인지, 지랄한다고 비웃는 것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몰라도 홍이는 툴툴거리며 웃었다. 웃으면 극통이 몰려옴에도 말이다.

“푸흐흐, 아닙니다. 바로 그 서랍장이 금고입니다. 쇠 위에 나무를 겉 씌운 거죠. 첫째 손잡이를 비틀어보십쇼.”

동천은 ‘설마?’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홍이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끼릭!

“어? 진짜네?”

손잡이가 비틀려진 곳에는 숨어있던 열쇠 구멍이 보였다.

“이봐, 열쇠는 어디 있어.”

홍이는 말해주기 어려운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동천이 눈알을 부라리자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만약 저 서랍장이 금고라는 걸 내부의 사람이 알아도 열쇠 구멍에 집착하라고 만들어 놓은 눈속임입니다. 지, 진짜는 두 번째 손잡이죠.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한 번, 다시 오른쪽으로 두 번을 돌리면 여, 열릴 겁니다.”

동천은 뒤통수를 때리는 상대의 대답에 한동안 멀뚱히 홍이를 바라보았다. 홍이의 대가리가 참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햐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큰일 나겠구나.>

뜻밖에 큰 교훈을 얻게 된 동천은 홍이가 가르쳐 준 대로 두 번째 손잡이를 좌우로 돌려댔다. 손잡이는 꽤 오랫동안 사용했다는 것을 알 정도로 매끄럽게 돌아갔다. 그리고 딸깍, 소리가 나며 금고가 열리려는 순간이었다.

“환자를 찾아왔소. 어디요?”

의원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밖에서 도연의 눈치를 보고 있던 한 점원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의원을 말렸다.

“들어가면 안됩니다! 들어가시지 마십쇼!”

그러나 그것은 환자가 방안에 있다고 가르쳐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의원은 뚝심이 센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당당히 동천이 머무는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때 도연도 나서 말렸다.

“의원님. 안에 환자는 계시나 다른 분이 먼저 와 계시니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시지요.”

“뭣이? 나를 불러놓고 또 다른 의원을 불렀다고? 이런 고얀! 내 오기로라도 그 의원이 얼마나 잘 고치나 들어가 봐야겠다.”

도연의 회유는 오히려 한 고집하는 의원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격이 되었다. 의원은 도연이 말릴 새도 없이 화를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수월히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나올 때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사, 살려주시오. 소악귀가 내 다리를 분질렀소!”

아까 의원을 말렸던 점원은 당황해하면서도 내심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앞으로 고꾸라진 의원을 끌고 나왔다. 그는 잠깐이지만 방안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때 동천은 챙길 건 다 챙기고 정말로 홍이를 고쳐주기 위해 뼈를 맞추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고, 홍이 죽네!”

뼈를 맞추는데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히히, 아프지? 그래도 참아.”

남은 고통은 곧 동천의 기쁨. 그런 연유로 히히거렸지만 직접 목격한 점원은 그게 아니었다.

<이럴 수가… 저 소악마가 주인 어른의 남은 뼈를 몽땅 부러뜨리고 있구나!>

두려움을 느낀 점원은 쓰러진 의원을 다른 의원에게 데려다준다는 빌미로 살기 위해 객점을 벗어났고, 그 사이 도연은 동천에게로 다가갔다.

“주군의 생각대로 이곳에 오긴 했지만 불안합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숨는 것은 무리인 듯하니, 어서 고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천이 금전을 뜯어내기 위해 다시 오자고 한 것이지만 도연은 그것을 모르기에 넌지시 말을 꺼냈다. 어느새 홍이의 부러진 뼈를 다 맞춘 동천은 귀의흡수신공을 일으키며 간단히 대꾸했다.

“알았어.”

이는 심법을 일으키는데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동천은 뼈가 자리를 잡을 정도까지만 내공을 흘려보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장 난 이만 가야겠어. 만일 아까 그놈들이 내 행방을 물으면 무조건 서쪽으로 갔다고 해. 만일 그렇게 말 안 했다간…, 알지?”

“그러믄입쇼!”

대답하는 표정은 밝았지만 은자 1냥을 얻으려다 무려 그에 백 배나 달하는 98냥을 도둑맞은 홍이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로 이틀 전에 모아두었던 돈을 전장에 맡겼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동천은 가증스럽게도 밝은 얼굴로 홍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 히히, 심심하면 또 놀러올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였지만 홍이는 잘도 태연한 신색을 유지했다.

“그, 그럼요. 또 오시면 그때는 제가 아주 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럼, 안녕! 이히히히!”

재수 없는 웃음소리를 여운으로 남긴 동천은 객점을 벗어난 후 도연에게 물었다.

“야, 서쪽이 어디지?”

도연은 주군이 반대쪽으로 가려는가 싶어 그곳을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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