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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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93화


역천의 심중을 알리 없었던 감송은 담담하게 말했다.

“갈 때가 되어 가는 것인데 왜 그리 놀라십니까. 허허, 34년 정도를 떠나 있어서 제대로 찾아갈지 궁금하지만 가보긴 해야겠지요.”

역천은 금새 표정을 복구시켰지만 혼란스러운 것만은 여전했다.

‘교주 측은 항광의 내공을 이 몸의 제자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모르고있는데, 지금 감송이 만독문을 찾아간다면 제자를 소문주로 알고있는 그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오게 될지는 뻔한 일이다.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면 당연히 소문이 흘러 교주 측에게 넘어갈 것이고, 나중에 가서는 굉장히 곤란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감송에게는 미안하지만 막아야 한다.’

역천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있을 때 감송이 넌지시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 하하, 갑자기 떠나신다하니 매우 아쉽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있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떠나실 참입니까?”

감송은 청각을 극대화시켜 주위에 아무도 없는가를 확인했다. 밖에서 느껴지는 것은 4장 밖에서 대기하고있는 초향의 인기척뿐이었다. 그 정도 거리라면 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신중을 기하느라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가 오늘 이 자리를 청한 것은 바로 그것에 대해 상의를 드리러 온 겁니다.”

절로 신중해진 역천도 초향에게 물러가 있으라고 전음을 보낸 후 곧바로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만독문과 본교와의 사이가 매우 적대적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자 파견된 본교의 밀사들이 가는 족족 채 당도하지도 못하고 독수에 죽어 나자빠져 이쪽에서도 분개해 하고있는 실정이지요. 만일 이런 때에 감송님의 정체가 탄로 난다면 큰일일텐데 그래도 가시겠습니까?”

감송에게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절로 찌푸려진 미간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암흑마교의 밀사들을 죽인다고? 본 문이 암흑마교와 적대적 관계를 고수한다는 것은 문주님께서 모든 비밀을 아셨다는 말인가?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 더군다나 밀사를 죽였을 시에는 그에 따른 정당하고 타당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전면전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암흑마교가 조용하고 약 전주조차 내막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상황은 몇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문주님께서 진실을 아시고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것에 대해 교주인 냉소천이 당황해하거나 냉정히 사태를 추이하고있는 것. 둘째는 그 문제가 아닌 것으로 적대관계에 돌입했는데 약 전주가 그 내막을 알면서도 함구하고 있는 것.’

‘마지막으로 셋째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약 전주를 무시할 만큼 최고위층의 문제라, 약 전주조차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건 매우 희박하다. 그 정도의 문제라면 약 전주의 귀에 밀사가 파견된 소식이 접해질 수 없었을 테니까……. 으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내가 유추해본 것들이 적당히 섞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단은 약 전주의 동태를 살펴 확신을 얻은 후에 움직여야겠구나.’

꽤나 긴 고민이었다. 충분한 배려로 침묵하고있었던 역천은 감송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자 약간의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건넸다.

“몇 개월 전에 발생한 일입니다. 의당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곧 수습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오늘까지 왔더군요. 이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감송은 손을 저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저와 제 처를 생각하셔서 해결이 될 때까지 미뤄두신 것을 가지고 제가 뭐라 할 염치가 있겠습니까.”

“하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역천이 웃고 난 뒤, 잠시 동안 침묵이 일었다. 옅은 미소만 짓고있던 감송은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 말씀을 들으니 더욱 가야겠습니다. 사정을 알아보고 제가 손수 나서서 해결하면 암흑마교나 본 만독문이나 둘 다 이롭지 않겠습니까. 허허,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지요.”

역천은 아쉬운 감을 금치 못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막상 실현이 되어가니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감송이 해줄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역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제가 최대한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감송은 기뻐하며 말했다.

“약 전주께서 도와주신다면 분명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역천은 당치않다는 얼굴로 일관하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다.

“부인께서 성치 않으신 몸으로 동행하실 텐데 그것에 대해서는 방비를 하셨습니까?”

“그것은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 부인은 이곳에 남아서 소연이를 좀더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겠군요.”

감송은 의미 없이 찻잔을 어루만졌다. 역천의 눈길이 그 찻잔으로 향하는 순간 감송의 입이 열렸다.

“그렇지요. 약 전주께서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돌아가기가 수월할 겝니다.”

이미 역천이 도와주기로 약조를 했지만 감송은 이 일의 중대성을 알고있기에 재차 당부하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라도 하듯 역천의 무거운 마음은 가벼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금이 아니라 최대한 뒤를 봐드리겠습니다. 헌데, 떠나실 날자는 대충 잡아놓으셨습니까?”

감송은 좀 생각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일주일 내에 떠나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 전주님의 일정을 제가 무리하게 뺐을 염치는 없기에 넉넉한 시간을 잡고 기다리겠습니다.”

역천은 방금 전 감송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 마냥 자신의 찻잔을 뱅글뱅글 돌렸다.

“그래주시겠습니까? 하하, 그렇다면 저야 좋죠. 하지만 감송님의 부탁이고 하니, 일주일 내로 조용히 떠나실 빌미를 마련해보겠습니다.”

“마침, 몇 가지 약초재료가 필요했던 참이라 멀리 내보내는 약초꾼들 사이에 감송님을 합류를 시킨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겁니다.”

일의 시작과 끝마무리가 깔끔한 것을 좋아했던 감송은 떠날 차비가 확정된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이만 대화를 마치고자 했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역천도 상대의 성격을 알고있었던 터라 자신의 할말만 마치고 일어서는 감송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하하, 부탁이랄 것도 없지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 금방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살펴 가십시오.”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감송은 얼마 못 가 초향이라는 시비와 말싸움을 하고있는 30대 중반의 사내를 보게되었다. 그 사내는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소리를 쳤다.

“아 글쎄, 들어간다니까!”

초향은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내가 답답한 듯 상기된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아직은 안됩니다. 제가 벌써 네 번이나 말씀드렸다시피 손님께서 찾아 계신다니까요.”

사내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러니까 그 손님이 소전주님의 밑에서 빌붙어 살고있는 늙은이라며! 그 늙은이가 당주(堂主)인 나보다 높아?”

초향의 고개가 좌우로 돌려졌다.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전주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하셔서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되니까 그 동안만이라도 참으십시오.”

잘 알아듣게 설명해 줬건만 무대포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내가 아무도야? 전주님께서는 아무도만 들이지 말라 하셨고, 나는 아무도가 아니니까 비켜봐. 아주 급한 용무가 있단 말야.”

초향은 한 대 쥐어 팰 수도 없는 신분의 한심에게 되도록 차분히 대답했다.

“손님께서 들어가신 지 좀 되었습니다. 아무리 급하셔도 전주님께서 직접 들이지 말라 하셨으니 뒷일은 걱정 마시지요.”

가만히 듣고있던 감송은 자신으로 인해 급한 용무가 뒤로 미뤄졌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다가갔다.

“허허, 본인은 일을 마쳤으니 이제 들어가시오.”

초향은 뒤로 돌아 감송에게 예의를 차렸다.

“아? 이야기는 잘 끝마치셨습니까?”

격식을 차린 인사 덕분에 감송의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잘 되었단다. 허허허.”

감송으로 인해 볼일을 지금에야 보게 된 한심은 한발 앞으로 나서서 따지려다가 곧 얼굴을 폈다.

“이제 보니 예전에 소문주님께서 데려온 할아범이네? 헤헤, 진작에 알았으면 조용히 기다려 주는 건데. 이봐, 나 알아보겠어?”

한심은 단번에 감송을 알아보았지만 정작 감송은 이름 그대로 한심한 놈에게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경륜으로 볼 때 이 상황에서 모른다고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럼요. 당주님 아니십니까. 허허, 당연히 기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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